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72화 (73/165)

72화

노이즈 속으로 서서히 완연한 얼굴을 드러내는 그녀.

그녀는 바로 이수연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자신의 모친 이정화.

지금껏 자신을 괴롭혀왔던 이 악몽 같은 장면 속의 주인공이 자신의 엄마였다니.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눈앞의 광경에 하준은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가 않고 있었다.

“저, 대표님……?”

귓바퀴로 다시 최윤섭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그 순간, 그의 얼굴 위를 뒤덮고 있던 노이즈가 일사불란하게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검은 양복의 사내들 속에 껴 있던 그녀의 모습 또한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혹시 제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한 손으로 자신의 뺨을 더듬으며 물어오는 최윤섭에 하준은 대답 대신 잠시 호흡을 골랐다.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탓에 다소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대표님 안색이 좀 안 좋아 보이시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오늘은 이쯤 하고 자릴 정리하는 게…….”

조심스럽게 내뱉어오는 최윤섭의 말에 하준은 크고 느릿한 숨을 한번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잠깐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고갤 들어 올려 최윤섭의 눈을 바라보며 하준이 물었다.

“혹시 이수연이라는 배우에 대해선 전혀 떠오르는 게 없으실까요?”

하준의 물음에 최윤섭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흐음, 글쎄요. 도저히 생각나지가 않아서 조금 전에 검색을 좀 해봤는데도 전혀 나오는 게 없더라고요? 아무리 20년 전에 활동했다고는 해도 아주 사소한 거라도 남아 있게 마련일 텐데.”

최윤섭이 한 손으로 턱을 짚으며 물어왔다.

“혹시 아예 신인급 배우였던 걸까요?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되기는 하는데.”

자신 또한 그 어떤 사소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하준은 짧게 고개를 내저었다.

“……글쎄요. 저도 자세한 것까지는. 그래도 한 영화에 주연까지 했을 정도면 아예 인지도가 없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주연’이라는 단어에 최윤섭이 눈을 빛내며 물어왔다.

“오, 그래요? 혹시 어떤 영화였는지 알 수 있을까요?”

“<눈 위에 핀 꽃>이라고 아시나요?”

“흐음, 눈 위에 핀 꽃이라. 잠시만요.”

테이블 위로 올려둔 휴대폰을 집고는 검색을 시작하는 최윤섭.

그러고는 나오는 결과값을 한동안 훑더니, 이번에도 역시나 고갤 내저어왔다.

“흠…… 아무래도 제 기억엔 없는 모양인데요, 대표님. 그래도 이 바닥에서 활동했던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혹시나 했던 기대가 수포로 돌아가자, 그를 바라보고 있던 하준의 눈빛도 일순간 힘을 잃을 수밖엔 없었다.

이제 그녀에 대해 물을 수 있는 건, 오로지 구명호밖에 남지 않은 듯싶었다.

“그나저나 그 이수연이라는 배우에 대해선 갑자기 왜 물으시는지.”

다시 입을 열어 물어오는 최윤섭에게 하준은 낮은 음성으로 답했다.

“그냥 좀,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짧게 답을 내뱉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최윤섭을 바라보는 하준.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처음 자신의 꿈에 나타났던 건 미래 예지를 겪고 얼마가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들의 차림새와 분위기가 다소 올드해 보인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것도 알 수 없었던 그 꿈.

그저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와 매번 같은 장면만 반복될 뿐이었음에도, 하준은 그것들이 주는 불쾌한 느낌들을 쉽사리 지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검은 양복 사내들 사이에 둘러싸인 그녀의 분위기는 매번 강한 위화감을 느끼게 하고 있었고.

그렇게,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들의 정체도, 매번 같은 꿈이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 한 채로 지내왔던 하준.

조금 전 최윤섭의 얼굴 위로 나타난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자, 하준의 복잡했던 머릿속은 더욱더 엉망으로 뒤섞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모친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앎과 동시에.

그 악몽 속 베일에 가려져 있던 여인의 정체 또한 바로 자신의 모친 이정화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체 아까 그 노이즈 같은 현상은 왜 갑자기 나타났던 걸까.

게다가, 왜 최윤섭을 바라보는 시점에 그의 얼굴 위를 덮으며 나타났던 거고.

연이어 닥친 충격적인 사실들로 인해 하준의 머릿속은 아무런 것도 정리가 되질 않고 있었다.

“저, 대표님? 대표님께서 꼭 알아봐야 하는 거라면 제가 한번 따로 찾아봐드릴까요? 20년 전이면 저희 내부 자료엔 뭐라도 남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뭐, 그게 아니라도 저희 부장이나 선배들한테 물어보면 한 명쯤은 알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최윤섭의 얘기에 잠시 고민하던 하준은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그래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가 따로 보답은 꼭 하도록 하겠습니다.”

“에이, 보답은요 뭘. 저희 사이에. 지난번 일은 제가 제대로 못 알아봐 드리기도 했으니까, 이번엔 제대로 한번 알아보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연락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이번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예요.”

자신감을 내비치는 최윤섭의 모습에 하준도 얕은 웃음을 내비쳤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최 기자님.”

“예! 걱정 마세요. 그럼 오늘은 대표님 컨디션도 별론 거 같으니 이쯤 하고 일어나 보는 걸로 할까요? 오늘 술값은 제가 계산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하하.”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최윤섭에 하준도 몸을 일으켰다.

“아뇨, 오늘은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 일로 아직 보답도 못 드린 상태니까요.”

“아이고 뭘 그런 걸 세세하게 다 기억하고 계십니까? 오늘은 저 혼자 다 마신 거나 다름없으니 그냥 제가 사는 걸로 해주시죠.”

최윤섭의 말에도 전혀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하준의 얼굴.

최윤섭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후우. 정 그러시다면 뭐 어쩔 수 없죠. 대신 다음번엔 제가 꼭 사게 해주셔야 합니다? 안 그럼 저 대표님 계속 못 만나요, 부담스러워서. 하하. 아시겠죠?”

“그러시죠.”

짧았던 실랑이를 끝내고 함께 룸을 빠져나온 하준과 최윤섭.

카운터에 다다를 쯤, 최윤섭이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하준을 불러왔다.

“아참, 대표님.”

“네.”

“혹시 박 대표가 대표님한테 해꼬지하거나 그런 건 아직 없었죠? 지난번 일로 혹시나 해서요.”

윤채경 때의 일 이후로 지금과 같은 얘길 한번 꺼내온 적이 있었던 최윤섭.

그 이후 일련의 사건들이 있기는 했지만 우려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최윤섭의 물음에 하준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없었습니다. 아직까지는요.”

* * *

다음 날 오후, 팔도의 연습실에 모인 멤버들이 다음 음방 준비를 위한 연습을 이어가고 있었다.

잠깐의 쉬는 시간이 주어지는 동안, 지호는 바닥에 앉아 생수 뚜껑을 잘근 씹어대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그 이수연 배우님을 얘기하는 것 같기는 했는데…….’

어젯밤 편의점 앞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내뱉어졌던 단어들.

그 단어들로 유추해 보건대, 분명 자신이 VCR에서 보았던 그 이수연 배우를 가리키는 것 같단 확신 아닌 확신이 들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대화 속 ‘20년’이라는 숫자가 지금의 생각에 가장 큰 시발점으로 작용하고 있었고.

‘근데 그분이 매니저였다고…….’

지호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떠나지 않고 있던 또 하나의 내용.

바로 B&D의 박성환 대표가 20년 전 그녀의 매니저로 일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 그들의 대화를 주워 담을 때만 해도 그저 낯익게만 느껴졌던 그의 얼굴.

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비로소 그가 누군지 떠올려지고 나자, 지호는 꽤나 놀라운 마음이 들 수밖엔 없었다.

그가 국내 최고의 배우 풀을 가지고 있는 B&D 엔터의 대표라는 사실은 물론, 그의 입에서 내뱉어졌던 단어들의 농도가 무척이나 짙으면서도 적나라했기 때문이다.

‘그런 분이었었나……?’

비록 그간 많은 매체에 자주 얼굴을 드러내왔던 건 아니었지만, 나름 눈썰미가 있었던 지호는 그의 얼굴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느껴왔던 그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달랐던 어젯밤 대화들에 적잖은 충격을 받을 수밖엔 없었다.

지망생, 원정 성매매, 검찰, 경찰 등.

아직 어린 나이인 자신이 듣기에도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그것들이었고.

‘언젠간 꼬리를 밟히게 될 거다.’라는 그의 말은 분명 무언가 의미심장한 뜻이 내포돼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이미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져 버린 플라스틱의 병뚜껑을 쉼 없이 씹어대며 혼잣말을 내뱉는 지호.

박성환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처음 내뱉은 말들이 내내 이해가 되질 않고 있었다.

‘네가 그때 수연이 걜 안 맡고 대충 어쭙잖은 애나 맡았으면 그렇게 빨리 올라갈 수 있었겠어? 걔가 그래도 여기저기서 관심을 많이 받으니까 너도 이쪽 세계에 대해 더 빨리 눈을 뜰 수 있었던 거지.’

이쪽 세계에 눈을 빨리 뜰 수 있었다는 말은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게다가.

‘암튼 너나 나나 같은 족쇄에 묶여 한배를 탄 거나 마찬가지니까 평생 함께 가자고.’

같은 족쇄에 묶여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의미로 쓰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는데.

어린 자신이 이해하기엔 온통 어려운 얘기들로만 느껴져 지호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눈을 질끈 감으며 옅은 한숨을 내뱉던 지호.

그때, 지호의 머릿속으로 잠시 잊고 있던 또 하나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마, 맞아…… 분명 이젠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애라고…….”

이제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애 얘길 뭐하러 꺼내냐며 상대방을 타박하던 박성환.

그 말은 즉, 이수연이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였고, 그건 또 다른 말로.

“죽, 죽었다는 건가……?”

“뭐? 뭐가 죽어?”

다소 충격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지호의 옆으로 은호가 다가오며 물었다.

지호의 손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있는 병뚜껑을 보며 은호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쯔쯧. 그렇게 씹어대니 살 턱이 있겠냐? 당연히 죽지. 몸에도 안 좋은 거 그만 씹어대, 인마.”

지호의 손에서 병뚜껑을 뺏어서는 곧장 쓰레기 통으로 던져 버리는 은호.

그러고는 다시 지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뭔 생각을 해대길래 그렇게 멍한 표정을 짓고 있어? 너 뭐 고민이라도 있냐?”

“형. 어제 녹화 때 봤던 그 여배우님 기억나요?”

“어제? 그 여자주인공? 기억나지, 그건 왜.”

“그 여배우님 이름이 이수연이거든요? 근데 어제 제가 편의점 앞에서 B&D 박성…….”

그런데, 지호가 꽤나 조심스러운 어투로 은호에게 말을 이어가던 그때, 안무 연습실의 문이 거칠게 열려오더니 누군가와 통화를 이어가고 있는 정진웅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세요, 피디님……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리시면…….”

피디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한껏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진웅.

대화를 이어가던 은호와 지호뿐 아니라,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정진웅에게로 달라붙었다.

그와 동시에 멤버들과 시선을 마주한 정진웅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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