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의 첫 예능 녹화를 무사히 끝내고 다시 멤버들의 숙소로 모인 일행들.
마블링 가득한 거대한 한우 세트를 중심으로 모두가 둥글게 모여 앉았고, 게 중엔 퇴근과 함께 합류한 김지혜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와, 그러니까 이준이가 마지막 문제를 맞혀서 극적으로 이 한우를 받아왔다 이거지?”
김지혜의 물음에 하늘이가 가장 먼저 고갤 끄덕여왔다.
“네, 맞아요! 저희는 한 문제도 못 맞혀서 이준 형한테 모든 게 다 달려 있는 상황이었는데, 마지막 문제를 이준 형이 딱 맞혀 버리는 거예요! 저흰 도저히 모르겠어서 완전 포기하고 있었는데!”
“오, 진짜? 이준이 짱이다!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문제들 보면 죄다 옛날 것들이라 난 하나도 모르겠던데!”
“헤헤, 그쵸? 이준 형이 원래부터 그 프로 애청자였대요.”
“그래서 마지막 문제가 뭐였는데?”
이번 김지혜의 물음엔 이준이 답해왔다.
“영화 속 대사를 맞히는 거였는데, 사실상 안개꽃의 꽃말을 맞히면 되는 거였어요. 제가 예전에 꽃집에서 알바를 좀 했어서.”
“우와, 이준이는 정말 안 해본 일이 없구나? 그래서 정답은 뭐였어?”
“죽음이요. 흰색 안개꽃의 꽃말이 죽음이거든요. 그래서 보통은 그거 모르고 흰색 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럼 제가 다른 색의 안개꽃이랑 섞어서 드리곤 했어요. 안개꽃은 색깔마다 꽃말이 다 달라서.”
“와…… 이래서 사람은 이것저것 많이 경험해 봐야 한다니까? 그럼 오늘 이 한우는 이준이가 쏘는 거나 다름없는 거네? 잘 먹을게, 서이준? 후훗.”
“많이 드세요, 누나.”
모인 인원 전부가 다 먹고도 남을 만한 양의 한우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지혜.
문득 가장 중요한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입을 열어왔다.
“어? 근데 대표님이 안 보이시는 것 같은데. 어디 가신 거야?”
“아, 네.”
부엌에서 불판과 그릇들을 옮겨오던 정진웅이 그것들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대표님 저녁 일정이 있다고 하셔서 저희끼리만 왔어요. 그, 기자님 만나시는 것 같던데.”
“기자님? 누구?”
“그 왜 있잖아요, 항상 저희 애들 기사 써주시던 최윤섭 기자님. 그분과 통화하시면서 장소 얘길 하시더라고요. 아마 그분 만나러 가신 게 아닐까 싶은데.”
“아, 그래? 으음. 그렇구나.”
한우 포장지를 뜯고 있던 강준이 물어왔다.
“대표님 건 따로 빼둘까요? 나중에 드실 수 있게.”
강준의 얘기에 김지혜가 피식 웃어 보였다.
“대표님이 그러길 바라시겠어? 좋은 거 있음 너희한테 뭐라도 더 챙겨주려고 하시는 분인데. 오늘은 첫 예능 프로 잘 끝낸 기념으로 너희가 마음껏 먹어. 대표님도 그러길 바라실 테니까.”
정진웅도 동의한다는 듯 말을 보태왔다.
“지혜 누나 말이 맞아. 혹시나 너희 이걸로 부족할까 봐 대표님이 모자라면 얼마든 더 사 먹으라고 개인 카드까지 주고 가셨거든. 그러니까 오늘은 먹고 싶은 만큼 마음껏 먹어도 돼!”
“우와……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아니라 대표님한테 해야지.”
잠시 후, 불판 위로 한우 굽히는 소리가 지글지글 올라오기 시작했고, 젓가락을 든 멤버들의 시선은 일제히 한 곳만을 향하고 있었다.
목구멍으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려오자, 김예슬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 너희 지금 모습 진짜 웃긴 거 알아? 누가 보면 한우 처음 먹는 애들인 줄 알겠는데?”
김지유도 옅게 웃어 보이며 말을 보태왔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요. 다들 엄청 배고팠나 보다.”
“저희 오늘 김밥이랑 샌드위치 말고는 아무것도 안 먹었거든요! 아까 녹화하는데도 얼마나 먹고 싶던지. 휴우, 아주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진짜, 진짜. 만약 이준 형이 못 맞혔으면 오늘 울면서 집에 왔을지도 몰라.”
고기를 구워주고 있던 정진웅이 먹어도 된다는 사인을 보내오자, 멤버들의 젓가락이 전광속화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아…… 진짜 너무 맛있다. 진짜 너무, 너무, 너무!”
“크, 이거 알지? 소고기 씹을 때 육즙이 주르륵 흘러나와서 입안에 다 느껴지는 거. 하, 정말 맨날 먹어도 안 질릴 맛이다.”
소고기 하나에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듯 행복해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다른 일행이 못 말린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김예슬이 김지유의 앞접시로 고기를 올려주며 물어왔다.
“아 참, 아까 대표님이랑 잠깐 나갔다 오는 것 같던데.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뇨. 뭐 좀 물어볼 게 있다고 하셔서.”
“너한테? 어떤 거?”
“아, 그게.”
잠깐 고민하는 듯싶던 김지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표님이 어떤 캐스팅 디렉터분을 찾고 있다고 하셔서 제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좀 알려 드렸어요. 대표님이 가지고 계신 명함이 제가 예전에 샵에서 봤던 거랑 비슷해가지구.”
“오, 그래? 어떻게 또 그런 우연이 다 있었대? 그 캐스팅 디렉터라는 분은 어떤 사람인데? 대표님이 찾고 계실 정도면 엄청 대단한 분인가 보다?”
“음, 그것까지는 저도 잘. 저도 그냥 손님이 같은 명함을 가지고 있어서 주워들은 것밖에 없어서. 그래서 대표님한테도 그렇게 말씀드렸구요.”
“우움. 야, 근데 우리 채경이 누나도 불러야 하는 거 아냐? 누나가 우리 육아프로그램 할 때 되게 많이 챙겨줬었는데.”
김예슬과 김지유가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우물우물 씹어대던 은호가 윤채경을 언급해 왔다.
그러자 강준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답해왔다.
“에이, 채경이 누나가 우리가 부른다고 막 오고 그러겠어요? 얼마나 바쁜 분인데.”
이준도 동의한다는 듯 말을 보태왔다.
“그래. 누나가 아무리 편하게 대해준다고 해도 그건 아니지. 우리가 연락하면 괜히 곤란해하실 거야.”
“음…… 그런가? 아니 난 그냥 맛있는 거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뭐, 듣고 보니 또 그런 것 같기도 하네.”
멤버들의 짧은 대화 사이로 김예슬과 김지유의 대화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음, 근데 대표님은 갑자기 왜 캐스팅 디렉터를 찾으시는 거지? 혹시 새로운 그룹을 구상 중이신 건가?”
“아뇨, 그런 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분은 배우 지망생들 위주로만 명함을 주는 것 같더라고요. B&D 대표랑도 각별한 사이인 것 같아 보였고.”
“B&D? 설마 내가 아는 그 B&D? 와, 그래서 대표님이 직접 찾아 나서신 거구나? 이미 검증된 사람이나 마찬가지니까?”
김예슬의 반응에 김지유가 잠시 입술을 달싹였다.
정확하진 않았지만, 아까 하준의 반응은 왠지 그런 쪽은 아니었던 것 같았기에.
김지유가 말을 꺼낼까 말까 잠깐 고민하고 있던 그때, 멤버들의 숙소 안으로 누군가의 초인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띵- 동.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에 멤버들도 의아한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응? 누구지? 더 올 사람이 없는데.”
눈동자를 키우는 멤버들과 달리, 지호만큼은 이미 정체를 알고 있다는 듯 반가운 표정으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인터폴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현관문으로 뛰어가더니 곧장 문을 열어재쳤다.
“누나!”
“지호야~”
현관문 방향에서 들려오는 꽤나 익숙한 목소리에 멤버들의 눈동자가 일순간 커졌다.
설마 ‘그녀’일까 하는 눈빛들과 함께.
그런데, 잠시 후 지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에 멤버들의 표정은 또 한 번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헉…… 채, 채경 누나.”
“누나가 어떻게 여기에…….”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일제히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멤버들의 모습에 윤채경이 서운하다는 듯 쳐다봤다.
“치, 이렇게 맛있는 걸 너희끼리만 먹으려고 했던 거야? 나는 쏙 빼놓고? 우리 지호 연락 아니었으면 감쪽같이 모를 뻔했네.”
“지, 지호가요?”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지호에게로 옮겨지자, 지호가 한껏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숙소 오는 길에 제가 채경 누나한테 문자 보냈거든요. 우승 상품으로 한우를 받았는데 누나도 같이 먹으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누나가 흔쾌히 오케이하시던데요? 후훗.”
“설마 다들 내가 와서 막 달갑지 않고 그런 건 아니지?”
“그, 그럴 리가요! 그냥 저흰 누나가 너무 바쁘신 분이라 함부로 부르기가 좀 그랬던 건데…….”
“김지호, 너.”
이준의 시선에 지호가 윤채경의 뒤로 재빠르게 몸을 숨겼고, 윤채경도 이준에게 그러지 말라는 듯 웃어 보이고는 말했다.
“얼른들 앉자. 다들 프로그램 녹화하고 오느라 배 많이 고팠을 텐데 일분일초라도 더 먹어야 하지 않겠어? 훗.”
“네, 누나도 얼른 앉아서 같이 드세요.”
“그래볼까아 그럼?”
윤채경의 옆으로 지호도 엉덩이를 붙이려 하자, 이준이 곧바로 지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김지호, 넌 편의점에 좀 다녀와. 채경 누나 드실 즉석밥이랑 음료수 좀 사 와야 하니까.”
“에? 제, 제가요……?”
“응. 누나 바쁘실 텐데 괜히 곤란하게 만든 죄로 네가 얼른 다녀와. 하늘이 끌어들일 생각 말고.”
“……힝.”
지호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윤채경에게 시선을 보내오자, 윤채경도 지호와 비슷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말했다.
“아이구, 이번엔 우리 지호 편을 못 들어주겠는데 어쩌지? 이준이가 리더라 이준이 말을 따르는 게 맞는 것 같은데에. 게다가, 내가 또 밥이 없으면 고기를 못 먹는 스타일이라. 후훗.”
윤채경의 얘기에 지호가 하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우, 하는 수 없죠 뭐. 저 얼른 후다닥 다녀올 테니까 저 먹을 건 남겨둬야 해요. 알겠죠?”
“그럼, 그럼. 이 많은 한우가 그 사이에 어디 가겠어? 고마워, 지호!”
지호가 곧바로 현관문을 빠져나가자, 윤채경이 김예슬과 김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 두 분은 얘네 스타일링 맡아주시는 분들이신가 보다, 그쵸?”
윤채경이 곧바로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보자, 김예슬이 사뭇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머, 어떻게 단번에 바로 알아보셨어요? 아직 저희 소개도 드리기 전인데.”
“훗. 딱 보면 딱이죠. 지혜 씨 말고 여자 뉴페이스들이면 스타일리스트분들 외에 더 있겠어요? 뭐, 물론. 겉으로만 봐도 스타일리쉬한 게 딱 티가 나기도 하고?”
최고 여배우의 듣기 좋은 말들에 김예슬이 감동의 눈빛을 보내왔다.
“어머, 그렇게 말씀해주 셔서 감사해요. 그렇지 않아도 방금 B&D 얘기하면서 언니가 제일 먼저 떠오르던 참이었는데.”
“B&D? 갑자기 B&D는 왜요?”
“아, 그게.”
윤채경의 물음에 김예슬이 조금 전 김지유와 있었던 대화 내용들을 하나씩 전달해주었다.
그리고, 그 얘기들을 주워 담는 동안 윤채경의 표정은 꽤나 심각하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 캐스팅 디렉터라는 사람이 B&D 박성환 대표랑 둘도 없는 각별한 사이라 했다 이 말인 거죠?”
“아, 네. 물론 저도 손님한테 전해 들은 얘기라 정확한 건 아니지만.”
이미 김민정에게 전해 들어 알고 있었던 그의 이름.
하지만, 그가 박성환과 각별한 사이라는 얘긴 처음 접한 터라 꽤나 심각한 표정이 지어질 수밖엔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 일에 설마 또 박성환이 연관돼 있을까 싶은 생각과 함께 찝찝한 기분이 떨쳐지지가 않았고.
물론, 으레 사기꾼들이 그러하듯 단순 허세용으로 내뱉은 멘트일 수도 있었지만.
“저도 처음 명함을 봤을 땐 긴가민가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그 이름이 그렇게 흔한 이름은 아닌 것 같아서…… 그래서 대표님께도…….”
그런데, 김지유의 말을 주워 담는 동안 머릿속으로 박성환의 주변 인물들을 떠올리던 윤채경이 갑자기 소 리없는 탄식을 내뱉어온 건 바로 그때였다.
그와 동시에, 윤채경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얼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