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67화 (68/165)

67화

“네?! 지호 씨가 공병을 주워다 팔았었다고요?”

“아, 아니. 지호 씨 나이가 몇인데. 그런 건 우리 어렸을 때나 용돈 벌이로 했던 건데?”

녹화 시작과 함께 멤버들의 개별 소개가 끝나고, 어릴 적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냐는 MC들의 질문에 지호가 공병을 줍고 다녔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자, 지호가 팀 내에서도 어린 편에 속한다는 걸 알고 있는 MC들이 눈동자를 키우며 되물어왔다.

“공병뿐만 아니라 빈 박스랑 폐지도 막 주우러 다니고 그랬는걸요? 형들을 만나기 전까진!”

“아…….”

지호의 얘기에 메인 MC 이진경이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왔다.

“지호 씨가 많이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었군요. 그렇게 힘든 시간들 속에서도 꿈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거구나. 그래서 결국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된 거고. 와, 너무 대견하고 대단한 것 같지 않아요?”

이진경의 멘트에 다른 세 명의 MC들도 지호를 보며 저마다 한마디씩을 내뱉어왔다.

“지호 씨가 아직 고등학생이죠? 그럼 남들 피시방 가고 오락실 다닐 때 혼자 그러고 다녔다는 건데…… 아휴, 어린 나이에 고생 많았겠다.”

“방송으로만 볼 때는 항상 밝아 보이길래 걱정 고민 같은 건 전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사연이 있을 줄은.”

“저도요. 그저 부잣집 도련님 같은 이미지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MC들의 멘트에 가만히 듣고 있던 이준이 짧게 툭 내뱉어왔다.

“맞아요, 부잣집 도련님. 지호 집 엄청 잘살거든요.”

“……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는 MC들을 바라보며 이준이 말을 이어갔다.

“예전에 인터넷 방송에서도 한번 얘기한 적이 있어서 아마 팬분들은 아실 건데. 지호네 아버님이 큰 사업체의 사장님이시거든요. 그래서 말씀하신 대로, 정말 걱정 고민 없이 살아오긴 했을 거예요. 본인 입으로 그렇게 얘기하기도 했고.”

“아, 아니 그럼. 아까 그 공병이랑 폐지 얘기는……?”

이진경이 물어오자, 이준을 비롯한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지호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지호가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그게…… 공병이랑 폐지 모아서 리어카 할머니께 가져다주면 개당 가격에 0 하나씩 더 붙여서 정산해주시겠다고 해서. 헤헤.”

“정산요? 누가?”

“저희 아버지가요.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직접 겪어봐야 쓰는 것도 올바르게 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학교 마치면 매일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막 주우러 다녔어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개에 마치 짜기라도 한 듯 MC들이 일제히 입을 벌려왔고, 지호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근데 저는 그게 되게 재밌었어요! 주워서 리어카 할머니께 가져다드리면 막 떡도 주시고 사탕도 주시고 그러셨거든요. 가져다 드린 거 아버지께 인증하면 개당 개수에 맞춰 돈도 주시고! 저한텐 완전 일석이조였죠, 헤헤.”

“그럼 공병이 개당 20~ 30원씩 하니까 0 하나 더 붙여서 받으면 개당 300원 정도씩 받았던 거예요?”

이진경이 묻자, 지호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응? 개당 100원이었는데. 그래서 개당 천 원씩 받았고.”

“100원이요? 나 때는 20~30원이었는데 요즘은 그렇게나 올랐구나. 와, 그럼 천 원씩이면 엄청 쏠쏠했겠는데요?”

“그쵸! 막 슈퍼나 가게 같은 곳 가서 애교 좀 부리면 그냥 가져가라고 막 주고 그러셨거든요. 그래서 하루에 많을 때는 30~ 40개씩 모을 때도 있었고!”

“30~ 40개면…… 컥. 3, 4만 원이네요? 우와. 그때 지호 씨 나이가 몇 살이었는데요?”

“저 초등학교 때요. 헤헤.”

“……컥.”

머릿속으로 숫자 계산을 끝마친 MC들의 얼굴 위론 황당함이 물들었다.

“초등학교 때 공병으로 3, 4만원씩 벌었던 거예요 그럼? 진짜 부잣집 도련님이 맞긴 맞구나…… 이거, 다른 멤버들도 알고 있었어요?”

멤버들이 물론이라는 듯 고갤 끄덕여왔다.

“그럼요. 쟤는 가수가 안 됐으면 지금쯤 경영 수업 받고 있었을 거예요. 물론, 그 모습이 전혀 상상은 안 되지만.”

“와, 진짜 의외다. 지호 씨 배경을 듣고 나니까 그게 또 지호 씨한텐 남다른 추억일 수도 있었겠는데요? 호호.”

대본엔 없었던 지호의 얘기들로 오프닝 분량이 채워지고, 본격적인 퀴즈 순서가 시작됐다.

“자, 이제 그럼 VCR에 나온 영상들을 보면서 문제를 풀어볼 시간인데요. 추억의 아이템, 추억의 음악, 그리고 추억의 영화 순으로 진행될 거예요. 선미 씨? 오늘의 우승 상품은 어떤 게 준비되어 있죠?”

“네! 오늘은 멤버들을 위한 특별한 선물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무려 한우 세트입니다!”

“와!”

한우라는 말에 멤버들이 일제히 눈동자를 빛내왔다.

“그럼 저희 중에 한 명이라도 우승을 하게 되면 한우 받아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럼요. 뭐, 물론. 저희 MC들의 내공도 만만치가 않아서 아마 쉽진 않겠지만?”

“꼭 받아가고 싶습니다!”

역시나 먹을 거 앞에선 대동단결이 되는 멤버들.

비장한 표정과 함께 잠시 후 VCR 영상이 흘러나왔다.

“이야, 저는 어렸을 적에 이거 정말 많이 가지고 놀았거든요. 심하게 찌그러뜨리다가 터지기라도 하면 선생님한테 엄청 혼나기도 하고! 그날은 교실부터 해서 복도까지 대청소 하는 날이었거든요, 호호.”

출연자 중 가장 연장자인 이진경의 말에 은호가 물어왔다.

“대청소요? 그럼 저 안에 또 다른 뭔가가 들어 있다는 걸까요?”

“그쵸. 저 말랑말랑한 고무팩 안에 밀가루인지 베이킹 소다인지 그런 하얀색 가루가 엄청 들어 있거든요? 저게 터지면 온 사방에 막 다 튀고 그렇죠.”

“으음…… 대체 뭐지, 저게?”

추억의 아이템이라고 흘러나온 VCR 영상 속엔, 머리카락과 눈알만 달린 아담한 인형 같은 물체가 나와 있었고, 멤버들은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물음표 같은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아! 나도 저거 막 가지고 놀았었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이름이.”

MC 쪽 또한 물체의 용도나 정체는 아는 듯싶었지만, 정확한 답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었다.

메인 MC 이진경의 좌우로 모두가 초조한 표정들만을 짓고 있던 그때, 이준이 손을 들어왔다.

“정답 얘기해도 될까요?”

“오오, 이준 씨는 답을 알고 있나 봐요? 표정에서부터 자신감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자, 틀리면 앞에 있는 기계에서 어떤 게 튀어 나올지 모른다는 건 알고 계시죠?”

“네.”

겁을 주기 위한 이진경의 멘트에도 불구하고, 이준의 얼굴 위론 자신감이 한껏 비춰지고 있었다.

“자, 그럼 정답은요?”

“만득이입니다.”

“잉? 만득이? 그게 뭐야?”

“뭐 만두라고? 저게 먹는 거였어?”

이준이 내뱉은 단어를 처음 듣는다는 듯 멤버들은 고갤 갸웃거렸고, 다른 MC들은 탄식들을 내뱉어왔다.

“아, 맞아! 만득이였는데! 으으으…….”

“윽, 아깝다. 거의 다 기억해 냈었는데…….”

아직 정답 여부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MC들은 패배를 인정하는 분위기.

그 속에서 메인 MC 이진경이 큐카드를 허공에 들며 ‘정답’을 외쳐왔다.

“만득이, 정답입니다! 와아. 이건 저희 세대나 가지고 놀던 장난감인데, 이준 씨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죠?”

이준이 정답자에게 주어지는 작은 인형을 자신의 앞으로 놓으며 웃어 보였다.

“이거 요즘 유아용 장난감으로도 많이들 가지고 놀거든요. 저 베이비시터 할 때 그 집 애들이 맨날 이거 가지고 노는 걸 봐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아, 맞아. 한때 이준 씨가 베이비시터 경력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이야, 쉽지 않은 문제였는데. 정답 축하드립니다!”

첫 문제를 이준이 맞추고 나자 멤버들의 얼굴 위론 기대감이 한껏 더 고조됐다.

눈앞에 놓인 마블링 가득한 한우가 머지않아 자신들의 입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기에.

“어째 대표님은 잘 모르시는 것 같던 눈치던데요? 크큭.”

화면 위로 다음 VCR 영상이 흘러나오는 동안, PD 안철호가 하준의 표정을 살피며 물어왔다.

하준이 순순히 인정한다는 듯 옅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네, 처음 보는 물건이기는 하네요. 어릴 때도 장난감은 별로 안 좋아했어서.”

“응? 정말요? 어릴 때 장난감 안 좋아하는 아이도 있나요? 하하, 그럼 대표님은 뭘 좋아하셨는데요?”

안철호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던 하준이 옅게 웃어 보이며 답했다.

“비디오 보는 거요. 어릴 적에 집에 영화 비디오가 많이 있어서. 그래서 봤던 거 보고 또 보고 그러면서 시간을 많이 보냈던 것 같네요.”

“아아, 그랬지 참? 어머님이랑 함께 많이 보셨다고. 이야, 그럼 대표님은 엔터 쪽이 아니라 배우 쪽이 더 맞았겠는데요? 어릴 적부터 영화에 관심도 많아, 또 흥미도 있어. 게다가.”

다시 봐도 감탄스럽다는 듯 안철호가 하준의 얼굴을 이리저리 훑으며 덧붙였다.

“크흐, 이 외모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배우들 뺨치고 남을 정도의 비주얼이시니까? 응?”

안철호의 과장된 리액션에 하준이 가늘게 웃어 보였다.

“제가 연기엔 영 소질이 없어서. 다음 생엔 한번 도전해봐야겠네요.”

“아, 왜요. 늦깎이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도 전혀 늦지 않았습니다? 하하.”

안철호와 하준이 잠깐의 대화를 주고받던 사이, 어느덧 MC 이진경이 다음 코너를 알려왔다.

“와, 누가 오늘의 우승자가 될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팽팽한 스코언데요? 자, 이제 다음 문제. 추억의 영화를 누가 맞히느냐에 따라 저 1등급 한우의 주인공의 윤곽이 가려지겠네요!”

꿀꺽.

이진경이 가리키는 거대한 한우를 바라보며 멤버들의 침이 또 한 번 꿀꺽 삼켜졌고, 이내 시선이 일제히 이준에게로 향했다.

“형, 파이팅!”

이준의 앞에 놓인 인형은 두 개.

여기서 만약 이준이 또 하나의 문제만 더 맞히게 된다면, 눈앞의 마블링 가득한 한우는 멤버들의 저녁 식사로 확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자, 그럼 이제 VCR 영상이 나오게 될 텐데, 해당 영화를 보고 다음 대사를 정확히 맞혀주시면 됩니다. 음절 하나하나까지 정확히 맞혀야 정답으로 인정되는 거 알고 계시죠?”

“네!”

“자, 그럼 VCR 틀어주시죠.”

이진경의 사인과 함께 VCR 화면 위로 흘러나오는 한 영화.

‘추억의 영화’인 만큼 필름 시절의 느낌과 분위기가 가득 묻어나오는 화질이었다.

“대표님? 이번 문제 한번 맞혀보시죠. 대표님이 맞추시면 제가 1등급 한우로 하나 더 챙겨 드릴라니까.”

카메라 뒤편에 서서 하준도 VCR로 시선을 두고 있던 때, 안철호가 아까의 내기를 상기시키며 말을 건네왔다.

하준도 수긍의 의미로 얕게 웃어 보이고는 다시 VCR 속 영상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산들거리는 배경 음악과 함께, 나풀거리는 치맛자락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는 한 여자.

그런 그녀를 먼발치서 바라보고 있던 한 남자가 화면 위로 비춰졌다.

그가 꽃 한 송이를 들고는 설레는 눈빛으로 그녀를 향해 한 발자국씩 다가갔다.

그녀의 앞에 다다르자, 그가 심호흡을 한번 내뱉고는 그녀의 등을 톡톡 건드렸다.

[수연아.]

부드러움과 떨림이 묻어나는 그의 음성에 그녀가 춤을 멈추고는 몸을 천천히 돌려왔다.

이내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환한 미소를 짓는 그녀.

[어, 오빠!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그런데, 그때였다.

VCR 영상 속으로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순간, 화면을 바라보던 하준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하준은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뜨릴 수밖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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