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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스타 메이커-62화 (63/165)

62화

-여보세요? 어떤 상황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열려온 문틈으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화장기 없는 맨 얼굴.

하준은 그녀의 상태를 빠르게 확인하고는 수화기에 대고 답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버튼을 잘못 누른 것 같네요.”

-아, 그러세요.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하고 그녀와 얼굴을 마주한 하준.

다행히 우려했던 일이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듯싶었다.

그녀가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른 입술을 열어왔다.

“누구…… 시죠?”

“윤채경 씨 매니저 유하준이라고 합니다. 오늘이 대본 리딩 날인데 민정 씨랑 계속 연락이 안 된다고 해서요.”

“……아.”

잠시 시선을 떨구었던 그녀가 이내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어왔다.

“제가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감독님껜 제가 따로 연락드려서 말씀드릴게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을 마치고는 다시 문을 닫기 위해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그녀.

그때, 하준이 문틈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움직임을 멈춰 세웠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신 거죠?”

“……네?”

“아픈 곳이 있다면 병원을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요. 대본 리딩도 참여 못 할 정도면 보통 상태는 아닐 것 같은데.”

“아.”

하준의 얘기에 뭐라 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듯한 그녀의 표정.

이내 머리를 쓸어넘기고는 낮은 목소리로 내뱉어왔다.

“아뇨, 그냥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거라 집에서 쉬면 될 것 같아요. 여기까지 와주셨는데 차 한잔 대접 못 해드려 죄송합니다.”

힘없이 고개를 떨구는 그녀의 뒤편을 하준은 빠르게 훑었다.

이대로 문이 닫히고 나면 뒤이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이미 알고 있는 상황.

하준이 다시 김민정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민정 씨. 죄송하지만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

“……네?”

눈동자를 키워오는 그녀를 일별하곤 하준이 곧바로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그러고는 서슴없이 집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저, 저기요! 지금 뭐 하시는.”

투 룸의 구조로 이루어진 오피스텔 내부.

무척이나 당황한 듯 자신을 빠르게 쫓아오는 김민정을 무시하곤 하준은 ‘그것’의 실체를 찾기 시작했다.

거실을 시작으로 화장실까지 훑고는 마지막 남은 방 문을 여는 하준.

그러자, 하준의 시야 속으로 침대 위에 놓인 약통 하나가 들어왔다.

“지금 뭐 하시는 거냐니까요? 남의 집에 그렇게 함부로 들어오시면……!”

“푹 쉬면 된다는 게 이걸 얘기하셨던 건가요?”

이미 뚜껑까지 열린 약통을 집어 들고는 그것을 가리키는 하준.

그곳엔 반 이상 채워진 알약들이 모아져 있었고, 김민정의 동공은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왜요? 아프면 약 먹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신경 쓰지 마시고 그거 얼른 이리 주세요.”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그녀를 뿌리치곤 하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걸음을 옮겨나갔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변기 안으로 알약들을 모두 쏟아붓기 시작했다.

“지,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그만하세요!”

그녀의 거친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준은 레버까지 내리고는 빈 통을 쓰레기통에 던지듯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놀람과 황망함이 한데 섞인 표정으로 떠내려가는 알약들을 바라보는 김민정.

화장실을 빠져나오며 하준이 냉정한 어투로 말했다.

“단순히 하루아침에 모을 수 있는 양은 아닌 것 같은데. 고작 저런 알갱이 따위에 본인의 모든 걸 의지하고 맡긴다는 게 저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네요. 물론, 무척이나 어리석게 보이기도 하고요.”

이로써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일단 끝마친 상황.

애초에 이런 상황 자체를 알지 못했다면 몰라도, 반드시 일어날 미래를 본 이상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록, ‘그 기사’의 진실이 무엇이든지 간에.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듯 앉아 있는 김민정을 바라보며 하준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분간은 혼자 계시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혹시 함께 지낼 만한 가족이나 지인분이 있으실까요? 있다면 제가 지금 데려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을 넘겼다고 해서 또다시 같은 마음을 먹지 말란 법은 없는 법.

계속 혼자인 상황이 반복된다면 오늘과 같은 일은 언제고 또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하준은 다음 조치까지 취해 놓을 생각이었고.

비록 그것이 임시방편밖엔 안 될지라도.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때, 하준의 주머니 속에서 짧은 진동이 울려왔다.

휴대폰을 꺼내자, 윤채경으로부터 온 메시지 하나가 떠있었다.

[대표님 도착은 하셨어요? 민정인 집에 있던가요? 일단 대본 리딩은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는데 보시면 바로 답 좀 주세요. 지금 감독님도 대표님 연락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

이곳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할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윤채경과 이재호.

하준은 어떤 답을 보내야 할지 잠시 생각하며 휴대폰 액정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김민정이 있던 화장실 방향에서 갑자기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흑흑…….”

이내 들릴 듯 말 듯한 낮은 목소리로 그녀가 절실하게 말을 내뱉어왔다.

“저 좀…… 도와주세요. 저 정말 살고 싶어요…….”

그 순간, 하준의 시선이 김민정의 뒷모습으로 옮겨졌고, 하준의 머릿속으론 조금 전 그녀의 말들이 강하게 박히기 시작했다.

‘도와달라’. ‘살고싶다’.

잠시 동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하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잠시 후, 작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

조금은 진정이 됐는지 상기됐던 김민정의 얼굴이 조금씩 본래의 피부색을 회복하고 있었다.

김민정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준이 물었다.

“어떤 의미로 제게 도와달라고 하신 건진 모르겠지만,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돕도록 하겠습니다. 단, 그러기 위해선 저도 몇 가지를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 솔직하게 대답해 줄 수 있으실까요?”

하준의 물음에 김민정이 대답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왔다.

“감독님 얘기론 어제까지도 분명 밝게 통화를 하셨다고 하던데. 오늘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고 이렇게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상황만 놓고 보면 충동적인 결정인 것 같으면서도 수면제 양을 보면 또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서.”

하준의 얘기에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는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을 떨어뜨리는 김민정.

천천히 입술을 열어왔다.

“수면제는 불면증 때문에 그동안 조금씩 처방받아 왔던 거예요. 물론 이런 상황을 생각하고 모아뒀던 것도 아니었고…….”

떨꿨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그녀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냥 너무 무서웠어요. 아무도 제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고 저 스스로도 맞서 싸워볼 용기가 나지 않았거든요. 그럼 결국…… 제가 하고 싶었던 연기도 더 이상은 할 수 없게 되는 거고…….”

말끝을 흐리는 김민정에게 하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오전에 보도된 기사와 김민정 씨가 어떤 연관이라도 있는 걸까요? 조금 전 하신 말들이 왠지 그것과 연관된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요.”

하준의 물음에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그녀가 이내 순순히 인정했다.

“……네, 맞아요. 물론 기사의 내용은 조금도 사실이 아니지만요.”

‘사실이 아니다’라는 그녀의 말을 아직까진 하준도 온전히 믿을 순 없었다.

김민정을 실제로 마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거니와, 그녀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또한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라는 건 그 기사가 100% 오보라는 말씀이실까요?”

그리고, 하준이 그녀의 말을 온전히 신뢰할 수만은 없는 또 다른 이유.

바로, 해당 기사의 최초 작성자가 다름 아닌 최윤섭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특종에 목말라 있는 그라고는 해도 이런 종류의 기사를 일말의 팩트 체크도 없이 내보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완벽히 안다고는 할 수 없어도, 지금껏 겪어왔던 모습만으론 그런 유의 인물은 아닐 거라는 게 자신의 판단이었다.

하준의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는 답해왔다.

“네…… 물론 기사의 내용처럼 해외에 나갔던 것도, 또 거기서 누군가를 만난 것도 모두 사실이지만 정말 그 기사의 내용처럼 그런 일은 절대, 일절 없었어요. 누군가에게 부끄럽거나 당당하지 못할 만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그 기사의 내용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들로만 채워져 있더라고요. 꼭 일부러 저를 망가뜨리려고 작정한 것처럼…….”

“혹시 짐작 가는 사람이라도 있을까요? 분명 누군가의 제보를 통해서 기사를 썼을 텐데.”

하준의 물음에 그녀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딱 한 사람 있어요. 저를 그곳에 데리고 갔던 사람.”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듯 김민정의 얼굴 위론 괴로움이 묻어났다.

“몇 년 전 제 SNS 계정으로 연락을 해왔던 분이 있었어요. 캐스팅 디렉턴데 제 프로필을 한번 받아보고 싶다고요. 그땐 저도 막 데뷔해서 단역 하나에도 기뻐할 때라 흔쾌히 수락했죠. 직접 만나 미팅도 가졌었고요.”

“……음.”

“명함도 그렇고 방송국 출입증까지 가지고 있길래 정말 날 좋게 봐서 연락을 주신 거구나 싶었어요. 최고의 여배우로 만들어주겠다고 하길래 엄청 들뜬 것도 사실이었고요. 그런데…….”

지금까지의 얘기만으로도 하준은 뒤이어 나올 스토리가 이미 예상되는 듯싶었다.

이런 유의 일은 이 바닥에선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일들이었으니까.

“어느 날부터 오디션이 잡혔다고 하면서 저를 밤마다 불러내더라고요. 그런데, 저를 불러낸 장소가 매번 술집 같은 곳이었어요. 왜, 그 가라오케 같은 곳 있잖아요. 그러면서 그분들한테만 잘 보이면 배역은 따놓은 당상이라며 자리만 잘 지키라고 하더라고요.”

“그분들이라면.”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그냥 엄청난 재력가들이라고만…….”

“흠.”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준이 물었다.

“그럼 기사에 나왔던 해외 스폰이나 원정 성매매 얘기도 민정 씨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얘기라는 걸까요?”

“그럼요! 그런 일은 절대, 절대 없었어요! 제가 정말 그런 선택을 했더라면 지난 몇 년 동안 단역 생활만 전전하진 않았을 거예요. 정말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어요.”

김민정의 이번 얘기엔 하준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자세히는 알지 못해도, 그녀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연기 경력을 쌓아왔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게다가, 이번 작품의 배역 또한 오디션을 통해 당당히 따냈다는 것도 이재호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였고.

만약 김민정이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코스를 밟고 있진 않았을 터였다.

“아까 그러시지 않았나요? 해외에 나간 것도, 거기서 누굴 만난 것도 사실이라고. 그럼 그건.”

“그것도 마찬가지였어요. 나중에 해외에서 활동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미리 가서 얼굴도장이라도 찍어두자고 하더라고요. 작품이 없다고 계속 놀고만 있으면 안 된다면서.”

김민정이 다시 생각해도 바보 같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어왔다.

“휴…… 지금 생각하면 제가 너무 순진하고 바보 같았어요. 그땐 그저 운이 좋아서 그런 기회를 잡은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하준의 눈을 마주하며 그녀가 결연한 눈빛을 보내왔다.

“그렇지만, 정말 맹세코 부끄러운 짓은 절대 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아서 먼저 돌아가겠다고 하고, 곧바로 비행기 티켓 끊어서 한국으로 들어왔거든요. 그 이후론 일절 연락도, 만나지도 않았고요.”

“그럼 그런 기사가 왜 나온 걸까요. 민정 씨 말의 사실 여부는 둘째 치더라도,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일을.”

“그때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그 사람이 저한테 그랬거든요. 이대로 가면 분명 후회할 거라고, 다시는 이 바닥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자기한테 그런 건 일도 아니라고…… 아무래도 그때의 일을 지금에 와 부풀려 제보한 게 아닐까 싶어요.”

“흠.”

그녀의 어투나 표정을 봐선 분명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다만 그럼에도, 하준은 뭔가가 쉬이 납득이 가질 않고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최윤섭이 조금의 팩트 체크도 없이 기사를 내보냈다는 사실이 제일 의아할 수밖엔 없었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하준이 최윤섭을 떠올리며 김민정에게 물었다.

“혹시 그 기사를 처음 보도했던 기자분에게는 따로 연락을 취해보셨을까요? 이런 사실을 얘기했다면 정정 기사를 써주셨을 것도 같은데.”

하준의 얘기에 웬일인지 김민정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내 입술을 깨물고는 그녀가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어왔다.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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