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61화 (62/165)

61화

“아무래도 그게…….”

말을 꺼내는가 싶더니, 또다시 맺지 못하고 입술을 질근 깨무는 이재호.

그 모습에 윤채경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아이 참, 오늘따라 왜 이러실까? 대체 무슨 얘기길래 그렇게 자꾸 입만 뗐다 붙였다 하세요. 오늘 그 여배우 기사가 왜요, 뭐가 어쨌는데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윤채경과는 달리, 하준은 이미 뭔가를 알아차린 듯 표정이 심각하게 바뀌었다.

이재호를 바라보며 하준이 곧바로 물었다.

“혹시, 그 기사에 나온 여배우가 우리 작품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하준이 내뱉은 말에 윤채경의 눈동자가 일순간 커졌다.

말도 안 된다는 듯 윤채경이 하준과 이재호를 번갈아 쳐다봤다.

“에? 마, 말도 안 돼요. 설마 그럴 리가…… 아, 아니죠, 감독님?”

말까지 더듬으며 묻는 윤채경에 이재호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일단 아직까지 확실한 건 아니야. 우리도 지금 확인해 보려고 계속 연락해 보는 중이고.”

“그, 그럼 진짜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아니…… 대체 누군데요? 세연이? 민정이? 아니면 설마 선배님들 중에?”

놀람과 흥분 상태의 윤채경이 캐스팅된 여배우의 이름을 하나씩 거론하자, 이재호가 주변을 빠르게 훑고는 목소리를 낮춰왔다.

“채경 씨 일단은 목소리 좀 낮추고 얘기하자. 말했듯이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서 우리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상황이야. 다른 출연자들은 아직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고.”

이재호가 한 손을 이마에 짚으며 상황을 설명해왔다.

“대본 수정 관련해서 오전에 민정 씨한테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더라고. 가능하면 오늘 리딩 때 맞춰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했는데. 혹시 자는 건가 싶어서 점심 먹고 전화해봤더니 그때도 연락을 안 받더라고. 한 다섯 통은 넘게 한 것 같은데. 하…… 그때부터 뭔가 느낌이 싸해지더라고.”

“그, 그럼 자고 있는 거겠죠! 저도 어제 대본 연습하느라 오늘 12시 다 돼서야 겨우 일어났는데요?”

윤채경의 얘기에 이재호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럴 거라 생각하고 계속 기다려봤어. 근데 한 시, 두 시가 넘어가도 연락이 안 오더라고. 조금 전에 또 걸어봐도 역시나 안 받고. 후,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긴 한숨과 함께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이재호. 그제야 윤채경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혹시 매니저분께는 연락해 보셨을까요? 아니면 소속사 쪽이라든가.”

하준의 물음에 이재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민정 씨가 아직 소속사가 없어요. 미팅 때 들어 보니까 여기저기 조율하고 있는 상황인 거는 같던데…… 첫 촬영 들어가기 전엔 계약할 거라고 했으니 아직 매니저도 없을 거예요.”

“어떻게 이런 일이…… 절대 그럴 애처럼은 안 보였는데.”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윤채경의 옆으로 하준도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김민정은 이번 드라마에서도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조연급 여배우.

제작사와의 계약은 물론, 이미 캐스팅 기사까지 모두 나간 상황이라 만약 그게 사실로 판명이 된다면 엄청난 타격일 수밖엔 없었다.

자신의 소속 배우인 윤채경은 물론, 몇 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하는 이번 작품까지.

오전 기사를 접했을 당시만 해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하준.

종일 연예란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논란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같은 작품의 출연 배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엔 없었다.

물론 아직 정확히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저 잘못된 추측이기만을 바랐고.

한숨만이 오고가는 잠깐의 정적을 뚫고 하준이 다시 입을 열어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직접 자택으로 가보는 게 어떨까요? 계약서까지 썼으면 제작사 쪽에선 집 주소를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예, 안 그래도 그것밖엔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그러려고 하던 참이었어요. 진실이든 아니든 일단 직접 들어봐야 하는 거니까.”

말을 마치고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드는 이재호.

전화번호부를 뒤지더니 제작사 PD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어, 난데요. 김민정 씨 집 주소 알고 있죠? 대본 리딩 날인데 아직 연락이 안 돼서 혹시 까먹고 있는 건가 해서. 아, 일은 무슨. 알잖아, 민정 씨 아직 매니저도 없는 거. 그래도 우리 작품 주조연급 배운데 챙길 수 있는 건 챙겨줘야지. 어어, 그럼, 그럼.”

오전의 기사만으로는 누군지 전혀 추측할 수 없었던 해당 여배우.

그렇기에 이재호 또한 아직까진 무척이나 조심스럽고도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행여나 자신의 잘못된 심증으로 엄한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이재호가 통화를 이어가는 동안 하준은 윤채경의 얼굴을 살폈다.

분명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을 것이기에,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윤채경을 바라보고 있던 하준의 시야가 일순간 어둠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어어, 그…… 래요. 문자…… 남…… 줘…….”

동시에 귓바퀴로 들려오던 이재호의 통화 소리까지 뭉개지기 시작.

이내 깜깜한 시야 앞으로 어떠한 장면들이 서서히 밝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서울역’이라는 큰 로고가 박혀 있는 해당 장소.

수많은 유동인구가 붐비고 있는 걸 보아 내부 대합실의 풍경처럼 느껴졌다.

지금껏 겪었던 미래 예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하준 또한 다음 장면이 전혀 짐작이 가질 않고 있는 상황.

대체 어떤 장면들을 보여주기 위해 이 타이밍에 나타난 건지 하준은 긴장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대형 TV 화면 위로 낯익은 여자 앵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금 전 들어온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다음 달 방영 예정이었던 SBC 새 미니시리즈 <봄, 바다, 그리고>의 조연 배우 김민정 씨가 오늘 저녁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인데요. 발견 당시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안타깝게도 끝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민정 씨의 나이는 올해로 향년…….]

분명 현실이 아님에도 음성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박히고 있는 여자 앵커의 멘트.

그것들을 주워 담는 하준의 온 신경은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닌, 바로 ‘그녀’의 사망소식이었기 때문에.

지금껏 숱한 미래 예지를 겪어오는 동안에도 누군가의 사망 소식을 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현재 연락 두절 상태인 그녀의 소식이 이런 식으로 전해질 거라곤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었다.

[현재 정확한 사망 원인을 두고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타살 혐의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유서의 여부 또한 현재까지 밝혀진 바가 없는 가운데, 또 다른 새로운 소식이 전달되면 바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자 앵커의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전환되는 TV 화면.

하지만 하준의 미래 예지만큼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화면이 바뀌자, 소식을 접한 대합실 내부의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을 내뱉기 시작했다.

“야야, 혹시 오늘 아침에 뜬 그 기사랑 관련 있는 건 아니겠지? 왜 있잖아, 여배우 해외 스폰 의혹 관련해서 기사 떴던 거!”

“에이, 설마…… 아직 명확히 나온 것도 없는데 벌써 저런 선택을 한다고? 말도 안 돼.”

“그게 사실이니까 그렇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건 너무 뜬금없지 않아? 내가 알기론 저 드라마가 첫 조연작인 걸로 아는데. 윤채경이 주연이면 시청률은 이미 보장된 거나 다름없는 거 아냐? 그런 엄청난 기회를 놔두고 대체 왜 그랬겠어, 그럼.”

“그거야…….”

“봐봐. 내 추측이 맞나 안 맞나 오늘 중으로 기사든 뭐든 나올 거니까! 으아, 정말 연예계는 무섭다, 무서워. 그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친구의 대화를 끝으로 다시 흩어져가는 서울역 대합실 내부.

늘 그렇듯, 하준은 다시 현실로 시야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후우, 지금 문자로 보내준다고 하니까 우리 조연출 시켜서 한번 가보라고 할게. 일단 사실이든 아니든 직접 만나서 들어봐야 무슨 판단을 하든가 할 거니까.”

어느새 통화를 종료한 이재호가 문자 메시지를 기다리며 윤채경에게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미래 예지에서 돌아온 하준은 불안한 감정에 강하게 휩싸여 있을 수밖엔 없었다.

뉴스 앵커의 보도 내용, 그리고 마지막에 이어지던 두 여자의 대화.

김민정에게 일어날 일은 바로 오늘인 듯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아직 정확히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저희도 너무 섣불리 판단하고 있지는 말죠, 감독님. 진실 여부는 당사자한테 직접 들어봐야 아는 거니까.”

“응, 그래야지. 그러자고.”

조금 전 미래 예지만으로는 하준 또한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함으로써 누군가는 진실을 자의적으로 판단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진실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없다는 것.

윤채경과 이재호의 대화 사이로 하준은 왼쪽 손목을 들어 올렸다.

시간을 확인한 하준은 빠르게 머릿속을 정리하고는 이재호를 바라봤다.

“감독님, 김민정 씨 자택엔 제가 직접 다녀오는 게 어떨까요?”

“예? 대표님이요? 대표님이 왜…….”

“채경 씨 말처럼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게 없는 상태에서 괜히 여러 사람이 알게 할 건 없을 것 같아서요. 곧 대본 리딩이 시작되니 감독님은 여기에 남아 계셔야 할 거고.”

하준의 얘기에 윤채경도 그게 좋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왔다.

“그래요,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괜히 아무나 보냈다가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면 일만 더 커질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시죠, 감독님.”

“흠…….”

두 사람의 얘기에 턱 끝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이재호.

그러는 사이, 들고 있던 휴대폰 화면 위론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약 30초 뒤, 이재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하준을 바라봤다.

“그래요, 일단은 그렇게 합시다. 그럼 좀 부탁드릴게요, 대표님.”

* * *

약 30분 뒤,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마친 하준이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섰다.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연신 시간을 확인하고 있는 하준.

그녀의 극단적 선택이 바로 오늘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것의 정확한 시간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초조함과 불안한 마음은 더욱더 강해질 수밖엔 없었고.

기사의 진실 여부, 그로 인해 드라마에 끼치게 될 엄청난 피해들.

하준에겐 지금 그런 것들이 우선순위에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무엇보다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었으니까.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 하준.

14층까지 올라가는 길지 않는 시간 동안에도 하준의 왼쪽 손목은 연신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도착 소리와 함께 14층에 도착한 하준이 곧장 1403호로 걸음을 옮겨나갔다.

그리고 문 앞에 섬과 동시에 짧게 숨을 내뱉고는 초인종 버튼을 눌렀다.

부디 안쪽에서 곧바로 인기척이 들려오기만을 바라며.

띵동.

띵동.

띵동.

하지만, 연이은 초인종 소리에도 안쪽에선 아무런 인기척이 들려오질 않았고.

하준은 다급해진 마음에 곧바로 현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김민정 씨, 계신가요? 윤채경 씨 매니저 유하준이라고 합니다. 안에 계시면 잠깐만 문 좀 열어주세요.”

다소 거친 하준의 문 두드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그녀의 인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질 않았다.

이미 미래를 알고 있는 하준이었기에 이대로 계속 시간을 보낼 수만은 없는 상황.

안에선 이미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몰랐기에 하준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키패드에 119 버튼을 누르며 현관문에 대고 한 번 더 말을 내뱉었다.

“김민정 씨. 혹시 듣고 계시다면 지금 하고 계신 거 잠시 멈춰주세요. 제가 도와드릴 게 있다면 뭐든 돕겠습니다.”

이미 일이 벌어졌다면 어쩔 수 없는 상황.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만약 아직 희망이 있는 거라면 어떻게든 그녀를 설득시켜야 했기에.

119 수화음이 연결되는 동안에도 하준의 시선은 현관문을 향해 있었고, 잠시 후 수화기 너머에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119 종합 상황실입니다.

그런데, 그때였다.

하준이 곧바로 말을 내뱉으려던 그때, 현관문 안쪽에서 미세한 인기척이 느껴지는 듯싶더니.

굳게 닫혀 있던 현관문이 서서히 열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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