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60화 (61/165)

<60화>

김지혜의 얘기에 지현성도 기사의 하단부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어, 그러네? 작성자가 썬데이 미디어 최윤섭 기자라고 돼 있네. 이분이 항상 우리 애들 기사 좋게 써주시던 그분 맞지?”

“네네, 맞아요. 우리 대표님이랑도 되게, 되게 가까운 사이시고.”

“이야, 항상 좋은 기사만 써주시길래 그저 온화한 분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기사도 서슴없이 써내시는 분이었구만.”

김진성이 당연하다는 듯 보태왔다.

“기자들이야 특종으로 밥 벌어 먹고사는 직업인데 당연하지. 특종이 없을 때야 이런저런 기사들로 실적 채우는 거고.”

다시 소파에 등을 붙이며 김진성이 덧붙였다.

“뭐 지금이야 우리한테 좋은 방향으로 써주고 있다지만 또 언제 달라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특종이라도 하나 잡았다 싶으면 언제든 안면 몰수 해버릴 수 있는 게 바로 기자라는 부류들이니까.”

이 바닥에서 20년째 활동해 온 김진성이었기에 충분히 내뱉을 수 있는 말.

김진성의 얘기에 김지혜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러려고요. 그 기자님이 우리 대표님이랑 얼마나 각별한 사이신데! 하루가 멀다 하고 거의 매일 통화하신다니까요 두 분이? 그 정도면 거의 베프나 다름없는 거 아니에요?”

“뭐 물론 정말 좋은 의도로 그러는 걸 수도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는 얘기지 난. 비즈니스로 만난 사이에선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는 법이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지현성도 김진성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야. 이 바닥에서 일하면서 나도 별의별 경우들을 다 봐왔으니까. 지금이야 우리 대표님이 능력 좋고 여기저기서 관심 갖는 상황이니까 그럴 수 있다지만. 나중에 상황이 달라졌을 때도 지금과 같을지는 지켜봐야지? 진성 형님 말처럼 특종이라 생각하면 언제든 등 돌릴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김진성과 지현성, 두 사람의 다소 냉소적인 얘기들에 김지혜가 무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이참…… 두 분 다 그동안 얼마나 데이고 살았길래. 음음, 뭐! 어쨌거나 우리 대표님은 늘 한결같이 승승장구만 하실 거니까 딱히 걱정 안 해도 되겠죠. 그렇죠오, 대표님?”

김지혜 얘기에 하준이 웃으며 답했다.

“글쎄? 또 모르지. 오늘 그 여배우 기사처럼 언젠간 내가 그런 기사의 주인공이 될지도.”

“에에?! 말도 안 돼! 대표님이 뭐가 아쉽다고 해외 스폰을 받겠어요! 게, 게다가…… 성매매는 더더욱 말도 안 되고!”

김지혜의 얘기에 하준이 눈동자를 살짝 키우며 물었다.

“응? 그런 내용도 있었어? 생각보다 꽤 자극적인 기사였나 보네.”

“그러니까 제가 놀랐던 거죠! 항상 본인 자식들 대하듯 좋게 좋게만 써주시던 분이 이렇게 완전 180도 다른 기사를 쓰셨으니! 휴,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이번 명절 때 따로 선물이라도 보내 드리든가 해야지. 그래야 우리 애들한테만큼은 앞으로도 쭉 좋은 기사만 써주지 않겠어요? 그래도 되죠, 대표님?”

최윤섭이 항상 특종에 목말라 있다는 건 하준도 알고 있던 터라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문득 기사의 내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 연예계라고는 해도, 여배우의 성매매 기사는 지금껏 접한 적이 없었던 터였기에.

김지혜의 물음에 하준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그렇게 해. 그리고 기사 링크 하나만 나한테 보내주고.”

“호호, 역시 대표님도 궁금하시긴 하셨나 보네요? 넵, 지금 바로 보내 드릴게요!”

김지혜가 기사의 링크를 복사하며 하준에게 물었다.

“아 참, 오후엔 애들한테 가실 거예요 대표님? 애들 오늘 육아 프로그램 촬영 있는 날인데.”

하준이 결재 서류를 덮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음, 오늘은 다른 일정이 있어서 어렵지 않을까 싶네.”

“아하, 넵. 애들 이제 촬영도 몇 번 안 남았다고 하길래 가실 건지 여쭤봤어요. 헤헤.”

김지혜가 휴대폰 화면을 터치하고는 다시 말했다.

“링크 보내 드렸어요, 대표님! 그럼 오후 일정은 뭐라고 체크해 둘까요? 혹시나 대표님 찾는 전화 오면 그렇게 얘기해 두려구요!”

“대본 리딩이라고 해둬. 오늘 채경 씨 리딩에 같이 가려고 하는 거니까.”

“오오, 정말요? 안 그래도 그거 캐스팅 기사 보니까 배우 조합이 되게 신선하던데! 오늘이 리딩 날이었구나!”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리던 김지혜가 이내 의아하다는 듯 다시 하준에게로 시선을 보내왔다.

“응? 근데 왜 윤철 씨가 안 가고 대표님이 가시는 거예요? 윤철 씨 무슨 일 있대요?”

김지혜의 의문 섞인 시선에 하준은 대답 대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이미 쌓여 있는 메시지함 위로 때마침 또 하나의 신규 메시지가 도착했고.

발신자는 윤채경이었다.

* * *

“내가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까먹고 계셨던 거예요? 대본 리딩 날 다시 뵙겠다고 감독님, 작가님이랑 직접 약속까지 하셨으면서? 차암나.”

한남동 윤채경의 집에서 SBC로 향하는 차 안.

조수석에 올라타자마자 윤채경이 어이없다는 듯 연신 말을 내뱉어 오고 있었다.

“약속은 직접 손가락까지 걸고 해야 성립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네요.”

“하, 무슨 그런. 왜요? 아예 도장에 복사에 ‘퉤퉤퉤’까지 해야 진짜 약속이라고 하시지? 무슨 초딩도 아니고!”

윤채경의 어이없어하는 모습에 하준이 웃으며 뒷자리를 가리켰다.

“다른 날도 아니고 대본 리딩 날을 제가 까먹었을 리가요. 배우분들 드시라고 다과까지 미리 준비해 뒀어요.”

하준의 말에 뒷자리로 시선을 옮기는 윤채경.

차량 뒷좌석엔 유명 샌드위치 가게의 빵들과 음료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윤채경이 다소 당황한 듯 입을 벙긋거렸다.

“아, 아니 언제 또 이런 걸. 굳이 이렇게까지 준비 안 하셔도 되는데…….”

불과 30초 전까지만 해도 하준을 마구 쏘아붙이던 자신의 모습의 떠올라, 윤채경이 민망한 헛기침을 내뱉었다.

“으흠. 다 기억하고 계셨으면서 그럼 문자는 왜 그렇게 보내셨대? 괜히 사람 오해하게.”

“전 별말 안 했는데 채경 씨가 혼자 오해를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냥 요즘 일이 많다고만 했던 것뿐인데.”

“쳇, 이게 다 제가 피해의식에 잔뜩 싸여 있어서 그런 거라구요. 저번에 저랑 계약서 쓰기로 하고 뷔뷔앞 애들한테 신경 쓰느라 혼자 사무실에서 기다리게 한 거 아시죠? 이게 다 거기서 비롯된 거라구요!”

윤채경이 팔짱을 끼고는 한탄하듯 한숨을 내뱉었다.

“에휴. 천하의 윤채경이 이런 대우나 받고 살다니. 더 추한 꼴 보이기 전에 차라리 그냥 은퇴해 버리는 게 낫겠네.”

시야에 들어오고 있는 SBC 로고를 바라보며 하준이 웃어 보였다.

“할 땐 하더라도 일단 오늘 대본 리딩까진 참여하시는 게 어떨까요? 샌드위치를 딱 개수에 맞춰 사 와서.”

“하, 지금 그게 저한테 할 소리에요? 그깟 샌드위치가 뭐라고. 좋아요, 그럼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다 먹어버리고 불참하면 되는 거죠? 그렇죠?”

말을 마치고는 곧바로 뒷자리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 드는 윤채경.

씩씩거리는 윤채경의 모습에 하준이 재밌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단발이 꽤 잘 어울리네요. 전보다 훨씬 어려진 느낌인데요?”

“칫, 됐거든요? 그런 건 딱 차에 타자마자 말씀하셨어야죠! 하여튼 외모는 그렇게 안 생기셔 가지고 엄청 놀려먹는다니까? 하나밖에 없는 소속 여배우한테 잘해줄 생각은 안 하고!”

잔뜩 삐진 표정을 지어 보이던 윤채경이 샌드위치 포장지를 벗기며 이내 다시 물어왔다.

“으흠. 근데 저 정말로 단발 잘 어울려요? 막 푼수 같고 그래 보이진 않고?”

“네. 개인적으론 전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한두 살 정도는 더 어려 보이기도 하고.”

하준의 대답에 윤채경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어휴, 하여튼 죽어도 빈말은 안 하신다니까. 이왕 기분 좋게 해줄 거면 한 열 살은 어려 보인다고 해줘도 될 것을!”

윤채경이 목 주변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안도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그래도 대표님한테 잘 어울린단 얘기 들으니까 안심은 되네요? 작품 때문에 난생처음으로 단발 해보는 건데 머리 자르면서도 어찌나 떨리던지. 어제 내내 머리만 쥐어뜯고 난리도 아니었다니까요? 휴우.”

“채경 씨 외모도 그렇고, 수연 이미지에도 이편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음, 머리는 그만 뜯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혹시나 나중에 곤란한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

“참나, 오바하시기는. 그거 뜯었다고 뭐 탈모가 오기라도 하겠어요?”

대답 대신 미소를 띠고는 부드럽게 악셀을 밟아나가는 하준.

잠시 후, 하준의 차량이 SBC 정문을 통과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윤채경은 내릴 채비를 하며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휴, 그나저나 오전에 터진 기사 때문에 또 한동안 시끌시끌하겠네. 곧 제작발표회라 이목이 다른 곳에 쏠리면 영 별론데. 하필 타이밍이 이렇게 될 게 뭐람.”

하준 또한 이미 해당 기사를 접한 상태였기에 윤채경이 말하는 바를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사건의 크기상, 분명 하루아침에 잠잠해질 내용은 아닐 터.

이미 수많은 어뷰징 기사들까지 쏟아져 연예계 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모든 관심과 이목들 또한 그것에 집중될 수밖엔 없었고.

하준이 주차를 마치며 말했다.

“뭐 그래도 언젠간 잠잠해질 일이니까요. 내리시죠.”

“휴우, 그래요. 우린 우리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거니까!”

미소를 주고받고는 차에서 내린 하준과 윤채경.

곧바로 대본 리딩 장소가 있는 9층으로 올라왔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인지 회의실 안은 아직 한산한 분위기였고, 스태프 몇 명만이 테이블 위로 생수와 다과를 세팅하고 있었다.

“채경 씨, 잠깐 쉬고 계시겠어요? 전 차에 가서 사 온 것들 좀 챙겨올게요.”

“아, 그러실래요? 그럼 전 앉아서 대본이나 좀 읽고 있을게요.”

“네.”

고갤 끄덕이고는 다시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하준.

그런데 그때, 낯익은 얼굴의 두 사람이 회의실 입구 쪽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머, 감독님, 작가님!”

이재호와 양 작가. 두 사람을 발견한 윤채경이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자, 두 사람도 하준과 윤채경을 발견하고는 인사를 건네왔다.

“어, 어. 채경 씨 일찍 왔네? 대표님도 그동안 잘 지내셨죠?”

“네, 그럼요.”

“어휴, 차 막힐까 봐 일찍 출발했더니 너어무 일찍 왔나 봐요. 오니까 아직 아무도 안 왔더라고요? 호호.”

“으응. 곧 다들 오겠지 뭐.”

내내 웃음을 띠고 있는 윤채경과는 달리 이재호의 얼굴 위론 어딘가 모르게 어둠이 깔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옆에 있는 양 작가 또한 지난번 만남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고.

하준뿐 아니라 윤채경도 그걸 느꼈는지 곧바로 물어왔다.

“근데 무슨 일 있으세요? 두 분 다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보이시는 것 같은데?”

윤채경의 물음에 곤란한 표정과 함께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이재호와 양 작가.

둘 중 누구도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입술만 달싹이고 있었다.

그러다 이재호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어왔다.

“저, 그게 말야…… 이게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아무래도 주연배우인 채경 씨는 미리 알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응? 뭔데요?”

“저, 그게.”

꽤나 꺼내기 힘든 얘기인지 계속해서 입술만 열었다 떼었다를 반복하는 이재호.

그러다 긴 한숨을 한 번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그 오전에 뜬 기사 채경 씨도 봤지? 여배우 해외 스폰 관련해서 나온 거. 아무래도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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