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여의도 증권가 골목에 위치한 ‘프라이빗 비즈니스 클럽’.
김창완이 일러준 장소로 도착한 최윤섭이 짧게 숨을 내뱉고는 지하계단을 내려갔다.
잠시 후, 입구에 서 있던 여직원에게 명함을 건네자, 그녀가 어딘가로 그를 안내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어느 한 룸 앞에 멈춰 선 그녀가 인사를 건네고는 돌아갔고, 닫혀 있는 문을 바라보며 최윤섭은 목구멍으로 침을 삼켰다.
제너럴.
이름, 직업, 나이 등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는 의문의 사내들.
더 정확히는, 알려고 해서도 안 되는 존재들.
최윤섭은 그들과의 첫 만남을 위해 이곳에 들어선 것이었다.
똑똑.
길게 심호흡을 한번 내뱉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노크하는 최윤섭.
곧바로 문을 열자, 어두운 조명 아래 앉아 있던 여섯 명의 사내가 일제히 그에게 시선을 보내왔다.
“최 기자님?”
“아, 네.”
“제 시간에 맞춰 오셨네요. 앉으시죠.”
이렇다 할 소개도 없이 짧은 말과 함께 빈자리를 가리키는 한 사내.
최윤섭은 위압감 가득한 시선들 사이로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빈자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최윤섭이 자리에 앉고 나자, 상석에 자리하고 있던 남자가 그에게 통 하나를 내밀어왔다.
“우선 가지고 오신 소지품들은 이 통 안에 모두 넣어주시면 됩니다. 물론, 휴대폰 전원은 끄셔야 하고요.”
“예. 알겠습니다.”
다소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요구에도 최윤섭은 군말 없이 그의 말에 따랐다.
이미 이곳에서 오기 전, 지켜야 할 규칙들에 대해선 김창완에게 모두 전해 들은 상태였기에.
주머니에 있던 모든 소지품들, 그리고 휴대폰의 전원까지 끈 채로 통 안에 넣자, 남자는 곧바로 그것을 구석으로 옮겼다.
그러고선 그제야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앞으로 저희와 함께 일하게 될 분이라고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 부장님이 가장 신뢰하는 분이라길래 무척이나 기대가 되더군요.”
“아, 예.”
어색한 표정의 최윤섭을 바라보며 그가 짧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김 부장님께 전해 들으셔서 잘 알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간단히 한 번 더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왜 모였는지. 그리고, 이곳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분명 미소를 짓고 있음에도 그의 어투와 표정에선 뭐라 형용하기 힘든 위압감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최윤섭은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그의 말을 경청해 나갔다.
“우선, 이곳에서 나누는 모든 대화의 내용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일절 발설해선 안 됩니다. 우리의 신뢰가 깨졌다고 여겨지는 순간, 기자님은 물론, 썬데이 미디어와 쌓아왔던 그간의 모든 관계들 또한 끝이 날 테니까요.”
“……예.”
“그리고, 이곳에 모인 저희 여섯 명과 기자님.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위해 이 자릴 함께하고 있는지 분명히 아셔야 할 겁니다. 이곳에서 논의하고 결정하는 모든 사안들은, 단순한 금전적 이익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와도 얽혀 있는 일이니까요. ”
이들의 존재에 대해 처음 전해 들었을 당시.
최윤섭은 도무지 믿기 힘든 얘기들에 그저 황당한 소리처럼 들릴 수밖엔 없었다.
이 바닥에서의 루머, 즉 찌라시라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떠도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최윤섭.
자신이 연예계에 직접 몸담고 있는 기자였기에 너무나도 익숙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찌라시는 어디까지나 찌라시일 뿐.
그저 ‘카더라’를 타고 출발지도, 목적지도 없이 떠돌다 마는 것이 바로 그런 유의 것들이었다.
그랬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게 사실이었고.
하지만, 이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만들어낸 ‘제너럴’이라는 모임.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간의 모든 생각들을 통째로 뒤집어 놓는 얘기들이었다.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 그리고 필요에 따라 찌라시를 만들어 내고 유포하는 것.
그러한 것들을 통해 ‘분명’하고도 ‘확실’한 이득을 얻어내는 것.
이 모임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그것만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게다가, 이 사내들의 존재 뒤로는 또 다른 엄청난 것들이 함께 얽혀 있는 듯 보였고.
“이 모임의 역사가 단순히 하룻밤 사이에 이뤄진 게 아니란 걸 알고 계셔야 합니다, 기자님. 그리고 그사이에, 바로 썬데이 미디어가 껴 있다는 사실 또한요.”
이 위험하고도 믿기 힘든 일에 최윤섭이 끼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
바로 자신이 속해 있는 썬데이 미디어가 지난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들과 손을 맞잡아왔기 때문이었다.
그 대가로 대한민국 최고 연예 전문 매체라는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설 수 있던 거였고.
김창완의 윗선배, 그리고 김창완의 뒤를 이어 최윤섭이 해야 할 일이란, 이들이 원하는 자료들을 제공하고 기사로 써내는 것.
바로 그런 것이었다.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모두 끝낸 듯, 상석의 남자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톤을 바꿔왔다.
“자, 이 정도면 충분히 이해하셨을 것 같고. 그럼 준비해 오신 걸 바로 꺼내주실까요, 기자님?”
“아, 예. 알겠습니다.”
그의 말뜻을 이해한 최윤섭이 소지품이 담긴 통 안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USB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음, 좋습니다.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말을 마치고는 테이블 중앙에 놓인 노트북으로 USB를 꽂는 그.
뒤이어 암호창 하나가 띄워지자, 그가 암호를 입력하고는 자료들을 띄워냈다.
분명 최윤섭이 일러주지 않았음에도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다른 다섯의 사내들 또한 펜과 수첩을 꺼내 노트북 화면 위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슥슥-
화면 위로 새로운 자료가 띄워질 때마다 자신들의 노트에 뭔가를 적어가는 사내들.
이미 수없이 해봤던 일인 듯, 무척이나 빠르면서도 여유로운 손놀림들이었다.
그렇게 약 20분에 걸친 검토 작업이 끝나고.
검은 양복의 사내들은 각자가 메모해 놓았던 내용들을 꺼내며 자료 하나하나마다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최윤섭은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의 내용은 물론.
자신이 가져온 자료들을 어떤 용도로 쓰려고 하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상석의 남자가 최윤섭을 불러왔다.
“최 기자님.”
“네.”
“이 자료, 내일자 기사로 내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늦어도 오전 중으로는 나왔으면 하는데.”
최윤섭이 USB에 담아온 다른 자료들은 모두 삭제하고, 단 하나의 파일만 남겨둔 그들.
화면 위로 띄워진 자료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최윤섭의 표정 또한 자못 심각해졌다.
상석을 바라보며 최윤섭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아, 예. 물론 기사를 내보내는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이게 파장이 클 수밖엔 없는 내용인지라…… 아직 보충 취재가 안 된 자료이기도 하고요. 우선 제가 데스크에 승인 요청을 올려보고 그 뒤에 다시 말씀드리는 게 어떨까 싶은데.”
최윤섭이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들이 내보내길 원하는 자료의 내용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일같이 특종만을 좇으며 사는 기자라고는 해도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 강령’이라는 게 있는 법.
김창완에게 건네받은 해당 자료는 분명 ‘미확인 보도’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제보를 받았다고 해서 팩트 체크도 없이 무작정 기사로 써내는 건 당연히 그것에 어긋나는 일이었고.
최윤섭이 내뱉은 얘기에 룸 안으론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하하.”
그러다 갑자기 상석의 남자가 실소를 터뜨리며 사뭇 달라진 눈빛으로 최윤섭을 바라봤다.
“기자님. 제가 질문형으로 얘길 해서 뭔가 착각을 하신 모양인데. 전 부탁을 드리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하시면 된다고 ‘전달’을 드리는 것이지.”
머금고 있던 미소를 모두 지우고는 그가 말을 이었다.
“김 부장님께 인수인계가 확실히 됐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아닌 모양이군요. 이 자리에서 데스크를 운운하시는 걸 보니.”
“…….”
일순간 달라져 버린 그의 태도에 최윤섭은 마른침을 넘겼다.
위압감 가득한 눈빛의 그를 마주하는 것 외에는 어떤 말을 내뱉어야 할지 쉽게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가 등받이에서 등을 떼며 한층 더 낮아진 음성으로 최윤섭에게 말을 내뱉었다.
“이 자리에서 결정되는 사안들에 대해 기자님께선 그저 군말 없이 이행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 외에 다른 부분들은 일절 신경 쓰실 필요도, 걱정하실 것도 없고요. 물론 조금 전 말씀하셨던 그 ‘데스크’라는 것 또한.”
이미 일을 처리하기 위한 모든 프로세스는 갖춰져 있다는 듯, 그의 어투에선 당당함이 묻어나 있었다.
물론 최윤섭 또한 그것의 의미를 모르진 않았다.
김창완이 자신에게 전했던 이야기들 또한 그것의 ‘결’과 결코 다르진 않았으니까.
이 검은 양복의 사내들과 썬데이 미디어 간의 관계.
겉으론 손을 맞잡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철저한 ‘갑과 을’의 관계였다.
굳어 있는 최윤섭의 얼굴을 훑으며 그가 다시 입꼬리를 올려왔다.
“하하. 물론 첫 자리인 만큼 충분히 그러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손발이야 앞으로 하나씩 맞춰지게 되겠지요.”
그가 떼었던 등을 다시 뒤로 붙이며 최윤섭에게 온화한 시선을 보내왔다.
“하지만, 기자님. 이거 하나만큼은 절대 잊지 마셔야 할 겁니다.”
윤기 흐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그가 덧붙였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썬데이 미디어가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 전문 매체가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걸 가능케 한 존재가 바로 누구였는지.”
* * *
다음 날 오전, 팔도의 대표실.
점심시간을 앞두고 김진성과 지현성, 그리고 김지혜가 하준의 방으로 모여들었다.
배달 앱을 터치하며 김지혜가 말했다.
“자자, 다들 드시고 싶은 메뉴 얘기해주쎄요오~ 전 육회비빔밥!”
“응? 뭐야. 그럼 지혜 씨랑 같은 가게에서 골라야 하는 거잖아? 이거 완전 답장너구만?”
김진성의 얘기에 김지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풉. 답장너가 아니라 답정너거든요? 주워들으시려면 제대로 주워듣고 오시지!”
그러고는 검지 손가락을 펼쳐 슬며시 대표 자리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메뉴가 마음에 안 드시면 제가 아니라 대표님한테 말씀하셔야 할 것 같은데에? 전 대표님이랑 같은 메뉴로 고른 것뿐이니까. 호호.”
“……아?”
김지혜의 얘기에 옆에 있던 지현성이 곧바로 손을 들어왔다.
“오호, 그럼 나도 같은 걸로 추가요~ 안 그래도 오늘 눈 뜨자마자 그렇게 비빔밥이 먹고 싶더니. 아무래도 대표님이랑 텔레파시가 통하려고 그랬나 본데? 후후.”
“어머, 정말요? 역시! 현성 오빠가 눈치 하난 최고라니까? 호호.”
웃음소리를 내고는 김지혜가 다시 김진성에게 물어왔다.
“어떻게, 진성 삼촌은 그럼 다른 가게에서 시켜 드릴까요? 혼자 다른 메뉴 드실래요?”
김지혜와 지현성의 엄청난 사회 생활 능력에 김진성이 혀를 차며 말했다.
“참내. 두 사람 다 나이는 한참이나 어리면서 어쩜 이렇게 사회생활들을 잘하는지. 아주 누가 보면 따로 과외라도 받는 줄 알겠구만.”
말을 내뱉고는 일부러 하준에게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렇다면 당연히 나도 대표님이랑 똑같은 메뉴로 해야지. 메뉴를 통일해야 우리 대표님께서 덜 시장하실 수 있도록 배달이 빨리 될 테니 말야. 후후.”
한술 더 뜨는 김진성의 모습에 하준이 웃으며 말했다.
“저 신경 쓰실 것 없이 각자 드시고 싶으신 거 편하게 드시면 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식사만큼은 그렇게 하기로 했잖아요.”
“에이, 어디 그럴 수 있나요? 그랬다간 나중에 지혜한테 어떤 소릴 들을라고요? 어이구, 생각만 해도 피곤합니다, 피곤해.”
“풉, 잘 알고 계신 것 같으니까 그럼 다 같은 메뉴로 바로 시킵니다?! 이견 없으시죠?”
김지혜의 물음에 일제히 고개들을 끄덕여왔고, 김지혜는 곧바로 휴대폰 화면을 터치해 나갔다.
“자, 그럼 난 밥 오기 전까지 인터넷 기사나 좀 훑어볼까나.”
“난 그럼 잠깐 눈 좀 붙이고 있어야겠네. 어제 하도 밤잠을 설쳤더니 피곤하구만, 피곤해.”
김지혜가 주문을 하는 동안 지현성은 휴대폰을 꺼내 포털사이트 창을 띄웠고, 김진성은 소파에 머릴 기대 잠시 눈을 감았다.
하준 또한 자신의 자리에 앉아 하던 업무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고.
“주문 완료요! 그럼 나도 막간을 이용해 쇼핑이나 해볼까나아?”
주문을 마친 김지혜도 좀 더 편안한 자세로 바꾸고는 휴대폰 화면으로 눈빛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
갑자기 지현성이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눈동자를 키워왔다.
“컥…… 이거 아무래도 대형 사건 하나 터진 것 같은데요?”
지현성의 얘기에 김지혜가 하던 걸 멈추고는 지현성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왜요, 뭔데 그래요?”
김지혜의 물음에 지현성이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고, 김진성도 감았던 눈을 떼고는 액정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헐, 대박…… 여배우 해외 스폰 의혹이라고……? 이거 정말 사실이면 완전 난리 나는 거 아니에요?”
기사를 빠르게 스캔한 김지혜가 입을 반쯤 벌리고선 놀란 표정을 지어왔다.
김진성도 기사를 모두 읽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이 정도 사건이면 소속사에서 먼저 알고 어떻게든 입막음하려고 하는 게 보통인데.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나온 걸 보면 별로 인지도가 없는 배우라는 건가?”
김진성의 얘기에 지현성이 말을 보태왔다.
“소속사가 힘이 없는 곳일 수도 있죠. 아니면 아예 소속사가 없는 배우이거나.”
“허…… 저 이렇게 스폰 기사가 터진 건 처음 봐요. 이런 건 기껏해야 떠도는 루머나 인터넷 찌라시로만 접해봤던 건데.”
김지혜의 얘기에 김진성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게. 나도 데뷔한 지 20년째지만 이런 기사는 처음 보는 것 같아. 실제로 이런 게 존재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이거 한동안 엄청 시끄럽겠는데요?”
세 사람의 연이은 반응에도 불구하고, 하준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하던 업무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본래 연예계란 하루가 멀다 하고 떠들썩한 일들의 연속이었으니까.
그런데, 다시 한번 기사를 정독해 나가던 김지혜가 갑자기 눈동자를 키우며 짧게 입을 열었다.
“어?”
그러고는 하준이 앉아 있는 대표 자리 쪽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어왔다.
“이거 작성자가 매번 우리 애들 기사 써주시던 그 기자님인데요, 대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