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57화 (58/165)

57화

멤버들의 첫 지상파 데뷔 무대가 끝나고 난 저녁 시간.

정진웅에게 멤버들을 맡긴 뒤, 하준은 미리 예정된 저녁 약속을 위해 평창동으로 왔다.

평창동 구명호의 집에선 오랜만에 모인 세 사람이 화기애애한 저녁식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여튼 유하준 이 자식 완전 능구렁이 같은 놈이라니까? 미국에서 7년을 그러고 있었으면서 우리한텐 말 한마디 안 한 것 좀 봐. 이거 완전 우리 농락한 거 아냐, 아빠?”

“허허허.”

“아이참? 자꾸 웃지만 말고 아빠도 뭐라고 얘기 좀 해보라니까 그러네? 아빠가 맨날 오냐 오냐 하니까 유하준 저 자식이 자꾸 지 맘대로 나대는 거 아냐!”

마치 친오빠의 괴롭힘을 고자질하는 동생처럼 구세희는 식사 내내 구명호를 채근하고 있었다.

그런 구세희의 얘기에 구명호가 젓가락질을 이어가며 웃어 보였다.

“그 어린 나이에 혼자 외국에 나가서 그만큼 성공했으면 대단한 거지 뭘. 그 넓은 땅덩어리에서 자리 잡기가 어디 쉬운 줄 알어?”

“어휴, 내 이럴 줄 알았다, 알았어. 아빠가 내 편을 들어줄 리가 없지. 쳇! 유하준 이 뱀 같은 놈.”

하준에게 눈을 흘기며 구세희가 덧붙였다.

“너 다른 건 몰라도 이번에 니네 애들 데뷔 무대만큼은 내 공도 꽤 컸다는 거 잊지 마라? 내가 무대만큼은 특별히 더 신경 쓰라고 따로 일러두기까지 했다고. 안 그럼 우리 방송국 욕먹는 짓이라고.”

“음, 그 정돈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NTV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만들어낸 주인공들인데, 그 정도 대우는 해줘야 사장인 너도 곤란해지지 않았을 테니까. 안 그래?”

도무지 한마디를 지지 않는 하준의 모습에 구세희가 얄밉다는 듯 잔뜩 눈을 흘겨왔다.

“후…… 그냥 고맙다고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꼭 이렇게 토를 달아요. 아주 그냥 세상이 다 니 거 같고 그렇지? 응? 그런 거지?”

오랜만에 보는 하준과 구세희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구명호의 얼굴 위론 흐뭇한 미소가 지워지질 않고 있었다.

그때, 가사 도우미가 스티로폼 박스를 가리키며 구명호에게 물어왔다.

“회장님. 오늘 사 오신 전복도 조금 손질해서 올릴까요?”

구명호가 좋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 그래, 그래. 전복을 잊고 있었구만. 그렇게 해요, 아줌마. 반은 올리고 나머지 반은 내일 아침에 죽으로 좀 끓여주고.”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전복이란 단어에 구세희가 의아한 듯 물어왔다.

“전복? 갑자기 웬 전복이에요? 아빠 전복 별로 안 좋아하잖아.”

“하준이가 좋아하니까 사 왔지. 안 그래도 이래저래 바쁠 텐데 먹고 힘 좀 내라고.”

“참나. 딸이나 좀 그렇게 챙기지. 하여튼 누가 친자식인지 모르겠다니까?”

고개를 절레 내젓고는 구세희가 다시 물어왔다.

“근데 죽은 왜? 아빠 어디 아파?”

“아프긴. 그냥 아침 대용으로 먹으려고 하는 거지. 너도 좀 싸줄 테니까 집에 가서 아침마다 먹고 다녀. 괜히 속 버리게 굶지 말고.”

“아이구, 나는 알아서 잘 챙겨 먹으니까 아빠나 많이 드셔.”

말을 내뱉고는 다시 식사를 이어가기 위해 젓가락을 드는 구세희.

그러다 문득 뭔가가 떠오르기라도 한 듯 다시 구명호를 바라봤다.

“아참, 어제 아빠 전화 안 받길래 최 비서님한테 연락했더니 최 비서님도 같이 안 계신다고 하던데. 아빠 혼자 어디 갔다 왔던 거야? 종일 연락도 안 되고.”

내내 궁금했던지 구세희가 말을 이어나갔다.

“최 비서님 말론 한 달에 한두 번씩은 꼭 그렇게 자릴 비운다고 하던데. 그것도 김 기사님도 대동 안 시키고. 대체 어딜 다녀오길래 그렇게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거예요?”

구세희의 물음에 구명호가 태연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허허. 매일을 일에 치여 사는데 가끔은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도 가져야 하지 않겠어? 정신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한 법이야.”

“흐음. 아냐,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해.”

잔뜩 의심 섞인 눈빛과 함께 구세희가 작게 속삭였다.

“혹시 뭐, 새엄마라도 들이려고 그러는 건가? 나 몰래 비밀스럽게?”

“허허. 왜, 그러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 이 정도 혼자 살았으면 이젠 누굴 들일 때도 됐지 뭘.”

“어머? 어머, 어머? 이 아저씨가 진짠가 보네?! 대박, 어떤 분인데요? 어떻게 알게 되신 분이야?”

눈동자까지 키우며 물어오는 구세희의 모습에 구명호가 하준을 바라보며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때마침 가사 도우미가 건네 오는 전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거니까 지금은 전복이나 얼른 먹어. 아주 싱싱한 놈으로만 골라서 사 온 거라 아주 맛이 있을 거니까. 하준이 너도 어서 먹고.”

“네, 아저씨.”

“어휴, 유하준이 왜 능구렁이 같은가 했더니 아빠를 닮은 거였어! 대체 쥐도 새도 모르게 언제 또 애인을 만들었대? 차암나.”

오랜만에 모인 가족 간의 식사는 그렇게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갈 무렵, 구명호가 물잔을 들어 올리며 하준에게 말했다.

“하준이 시간 좀 있지? 오랜만에 바둑이나 한판 두고 가. 아, 너 없는 동안 급수 맞는 상대가 없어서 좀 심심했어야지.”

구명호의 얘기에 하준도 기다렸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네, 아저씨. 그렇지 않아도 저도 드릴 얘기가 있어서.”

* * *

잠시 후, 서재에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하준과 구명호.

“녀석, 사장이라 많이 바쁘긴 한가 보구만. 저녁만 먹고 또 금방 가버리는 걸 보면.”

식사가 끝남과 동시에 다시 회사로 가봐야 한다며 먼저 자리를 뜬 구세희.

하준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답했다.

“그래도 최근엔 잘돼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흑자 얘기도 나오는 걸 보면.”

“허허. 그래? 아무쪼록 하준이 네가 옆에서 많이 도와줘. 어쩌다 보니 딸이나 아들이나 둘 다 같은 일을 하는 바람에 내가 뭘 해주고 싶어도 도와줄 게 있어야 말이지.”

“이제 각자 알아서 할 나이들인데요 뭐.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하준의 얘기에 구명호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래,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아, 네.”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하준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아저씨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엄마에 관한 건 아저씨 말곤 어디에도 물어볼 곳이 없어서.”

하준의 얘기에 구명호의 입가에 남아 있던 미소가 순간적으로 옅어졌다.

하준이 어떤 유의 것을 물어올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에.

“흐음. 또 그 얘기인가 보구나. 그래, 알고 싶은 게 있다면 알아야 하는 게 맞겠지. 물론, 내가 해줄 수 있는 얘긴 이미 네가 다 들은 얘기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질 않아서요. 교통사고였다면 분명 가해자가 있었을 거고, 이후에 어떻게 처리됐는지 정도는 제가 충분히 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전 아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심지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답답함이 묻어나 있는 하준의 얘기에 구명호도 잠시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준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얘기도 결코 많진 않았기에.

“네 말대로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다, 하준아. 당시에 가해자는 이미 죗값을 다 치르고 자기 인생을 살아가고 있겠지. 20년이란 시간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큼 긴 시간일 테니. 네가 어떤 걸 알고 싶어 하는진 몰라도 그럴수록 힘들어지는 건 결국 너다, 하준아.”

구명호의 진심어린 얘기에도 하준의 답답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전 그저 명확히 알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런 일들을 처리하고 감당하기에 그때의 전 분명 어린 나이었지만, 그렇다고 기억까지 못 해내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온통 의문투성이들로만 남아 있을 수밖엔 없는 거고.”

하준이 너무 어렸기에 당시의 모든 일들을 도맡아 처리했던 구명호.

물론, 그 누구보다 자신을 아낀다는 걸 알기에 다른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다만, 그때를 떠올리면 모든 일들이 빨라도 너무 빠르게 처리된 듯한 느낌이었다.

교통사고의 뒤처리뿐 아니라, 장례식 이후의 절차들까지도 모두.

게다가, 모친을 추억할 무엇 하나 남아 있지 않다는 것 또한 하준에겐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고.

당시의 정확한 내막을 자신이 모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알아선 안 될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지.

하준은 그것을 밝히고 싶은 거였다.

한층 더 어두워진 표정으로 하준이 말을 이었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혼자서 저를 키워왔는지. 전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그렇게 갑자기 떠나보냈어요. 그마저도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건 아저씨뿐이고요.”

아버지도 없이 혼자 자신을 키워온 모친.

때때로 자신을 맡기고 며칠씩 집을 비우곤 했지만,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사실들마저도 답답하게 느껴질 수밖엔 없었고.

하준의 얘기에 잠시 말이 없던 구명호가 천천히 입을 열어왔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네 엄마는.”

짧게 말을 마치고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싶던 구명호.

이내 자신이 앉아 있던 책상의 서랍 쪽으로 손을 옮겼다.

그러고는 오래된 듯한 낡은 파일 하나를 끄집어내더니, 그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하준에게 건넸다.

“이게 나한테 남아 있는 유일한 네 엄마 사진이다. 얼굴이 제대로 나와 있지 않아 그냥 내가 간직하고 있던 건데, 하준이 네가 이렇게까지 그리워하는 걸 보니 나보단 네가 가지고 있는 게 나을 것 같구나.”

구명호가 건넨 사진을 받아 든 하준.

그 속에 담긴 모친의 모습을 본 순간, 하준의 심장은 빠르게 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엄마와 모습과는 무척이나 이질감이 느껴지는 한 여자가 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밝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엄마라고요?”

하준의 물음에 구명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마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모습이지. 어떠냐, 참 예뻤지?”

분명 그랬다.

배경이나 분위기, 당시의 시대를 연상케 하는 올드한 화질이었음에도 분명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하준의 기억 속엔 존재하지 않았던 그런.

한참을 사진 속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하준이 곧 시선을 옮기며 구명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하나밖에 없는 사진, 저한테 주셔서 감사해요 아저씨. 아저씨도 많이 그리워서 가지고 계셨던 걸 텐데.”

“허허, 내가 아무리 그래봤자 그 크기가 너만 하려고. 진작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오히려 미안하구나.”

구명호가 표정을 풀고는 웃음을 지어왔다.

“요즘은 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저장해 두는 시대니까 나야 그걸로 찍어두면 되지 않겠어? 허허.”

“네, 그러세요. 아저씨.”

하준이 다시 사진을 건네자 구명호가 흐뭇한 미소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구명호가 사진을 찍는 동안 하준은 다시 찻잔을 들어 올려 입으로 가져다댔다.

그래도 모친을 추억할 사진을 얻게돼 다행이란 마음과 함께.

그런데, 하준이 무심코 옮긴 시야에 무척이나 기시감이 느껴지는 한 장면이 포착된 건 바로 그때였다.

하준은 들려던 찻잔을 곧바로 내려놓고 구명호의 책상 위로 올려진 파일 하나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니, 정확히는. 파일 속에 찍혀 있는 어느 한 로고.

그 로고를 본 순간 하준의 표정은 일순간 바뀔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일전에 꿈에서 보았던 그것과 같은 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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