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55화 (56/165)

55화

“20년 전 사고요? 사고라면 어떤…….”

연예 전문 매체, 썬데이 미디어.

하준과의 통화를 끝마치려던 최윤섭이 갑작스러운 하준의 부탁에 의아한 듯 되물었다.

“흐음. 그러니까 20년 전 있었던 교통사고에 대해 좀 알아봐 달라 이 말씀이신 거죠? 그때의 자료가 있는지 없는지.”

연예부 소속 기자인 자신과는 거리가 먼 부탁이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하준의 부탁이었기에 최윤섭은 흔쾌히 수락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하준이 이런 부탁을 해오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알겠습니다. 혹시 정확한 날짜, 그리고 사망자의 이름이나 그밖에 아시는 정보가 있으면 더 알려주세요. 그 정보들을 토대로 저도 한번 찾아보도록 할게요.”

수화기 너머 하준이 알려준 정보들을 하나씩 메모해 가는 최윤섭.

“으흠. 이정화라……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내부 자료나 주변 기자들을 토대로 알아보고 최대한 빨리 연락드릴 수 있도록 할게요. 다만, 이게 워낙 오래된 사건이기도 하고, 또 당시에도 기사가 안 났을 정도면 아예 자료가 없을 확률도 어느 정도는 염두해둬야 할 거예요. 그래서 일단은 큰 기대는 안 하고 계시는 게.”

20년 전 사건, 그리고 유명인도 아닌 일반인의 교통사고 건을 찾아낸다는 건 아무리 언론사에 몸담고 있다 해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혹시나 원하는 자료를 찾지 못해 하준이 실망할 상황이 올까 싶어 미리 언질을 준 것이었고.

메모하던 펜을 내려놓고선 최윤섭이 하준에게 물었다.

“혹시 이분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다른 건 아니고.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부탁을 해오는 걸 보면 뭔가 특별한 사이이신가 해서요.”

최윤섭의 물음.

그리고 곧이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하준의 대답.

최윤섭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답변에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어머니셨군요…… 흐음. 알겠습니다, 대표님. 제가 어디 한번 힘닿는 데까지 알아보도록 할게요. 아이, 감사는요, 뭘. 예예, 그럼 들어가세요. 대표님.”

하준과 통화를 끊고는 받아둔 메모로 시선을 옮기는 최윤섭.

20년 전 일어난 교통사고를 지금에 와 다시 알아본다는 건 분명 어떠한 사연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사건을 다시 알아본다는 건 분명 아직 해소되지 못한 의문점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그와 별개로, 하준에게 미처 알지 못했던 아픈 사연이 있다는 것에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최윤섭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메모를 바라보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말을 건네왔다.

“이정화? 누구길래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어?”

워낙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탓에 최윤섭이 깜짝 놀라며 뒤를 바라봤다.

“아, 깜짝이야. 왜 남의 메모를 훔쳐보고 그래요? 부장, 이거 사생활 침해인 거 아시죠?”

“뭐? 뭔 침해? 참나, 차라리 치매라고 해라. 너랑 나 사이에 사생활은 무슨.”

김창완 부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최윤섭의 모니터를 훑었다.

“또 그놈의 아이돌 그룹 기사냐? 아주 누가 보면 팔도 엔터테인먼트 전속 기자라도 된 줄 알겠네. 차장 대우급 기자라는 놈이 허구한 날 아이돌 그룹 띄워주는 기사만 쓰고 앉았으니. 쯔쯧. 초심을 잃었구만, 초심을 잃었어.”

“왜요, 또 뭔데요. 심심하면 어디 사우나나 다녀올까요? 아니면 당구장가서 짜장면 내기?”

“이 자식이. 어디 신성한 업무 시간에 농땡이를 피우려고. 내 모토가 ‘노력의 대가 없이는 아무것도 바라지 말라’인 거 몰라? 업무 시간엔 일을 해야지 가긴 어딜 가?”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뻔뻔하게 말을 내뱉는 김창완의 말에, 최윤섭이 어이없다는 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참나. 그럼 그동안은 내가 유령한테 홀리기라도 했었나 보네. 그것도 7년씩이나.”

“뭐? 뭐라고 혼자 중얼대는 거야?”

“아닙니다~ 노력의 대가 없이는 아무것도 바라지 말라시니까 전 그럼 하던 일이나 마저 해야겠네요. 방해되니까 이만 가주시겠어요, 부장?”

“누가 벤댕이 소갈딱지 아니랄까 봐. 고새 삐져가지고는. 크큭.”

킬킬거리던 김창완이 천천히 웃음을 지우며 최윤섭에게 말했다.

“잠깐 내 방으로 와. 할 얘기 있으니까.”

“뭔데요, 중요한 거 아니면 그냥 여기서 얘기하시죠. 단 일분일초라도 아껴서 더 열심히 일해야 하니까.”

“아이참, 고놈 뒷끝 하고는. 중요한 얘기니까 잔말 말고 따라 오기나해. 후딱 끝내고 사우나나 다녀오자.”

김창완의 얘기에 그제야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최윤섭.

부장을 앞지르며 말했다.

“그럼 곰탕은 부장이 사는 겁니다. 오케이?”

* * *

잠시 후, 김창완의 방에 마주 앉은 두 사람.

김창완이 손수 타온 믹스커피를 건네며 최윤섭에게 물었다.

“윤섭이 네가 올해로 12년찬가 그렇지?”

“예, 맞아요. 다음 달이면 딱 12년차네.”

“흐음. 이럴 때 보면 세월이 참 말도 안 되게 빠른 것 같단 말이지. 코 질질 흘리면서 입사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말야.”

최윤섭이 믹스커피를 입으로 가져다대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참나. 무슨 초등학교 입학식도 아니고. 제가 무슨 코를 질질 흘려요? 하여튼 과장하는 건 세계에서 제일이라니까.”

“야 인마. 나 과장 아니고 부장이야.”

혼자만 재밌다는 듯 킬킬거리는 김창완의 모습에 최윤섭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종이컵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할 얘기라는 게 뭔데요? 그냥 수다나 떨자고 부르신 건 아닐 거고.”

“음.”

최윤섭이 묻자, 김창완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게 바뀌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파일 하나를 최윤섭에게 건넸다.

“앞으로 이 건, 네가 맡아서 해봐. 너라면 내가 유일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애니까.”

“이게 뭔데요?”

최윤섭의 물음에 김창완은 말없이 종이컵을 들어 올렸고, 최윤섭은 그가 건넨 파일을 집어 들었다.

한동안 파일 속 문서를 살피던 최윤섭.

그러다 잠시 후, 당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고갤 들고는 김창완을 바라봤다.

“이게 대체 뭔 소리예요? ‘제너럴’은 뭐고, 또 이 규칙같이 적혀 있는 것들은 죄다 뭔 소린지. 회사에 뭐 새 부서라도 생긴 거예요?”

김창완이 건넨 A4 한 장짜리의 문서.

그곳엔 마치 십계명 같기도 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고, 최윤섭은 그것들의 의미를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국정원 같은 곳에서나 통용될 법한 내용들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최윤섭의 물음에 김창완이 이해한다는 듯 천천히 고갤 주억거렸다.

그러고는 이내 차분한 어투로 답해왔다.

“거기에 적혀 있는 것들이 내가 지난 10여 년 동안 해오던 일이야. 물론 나도 내 윗 선배한테 인계받은 일이기도 하고.”

“……여기 적힌 것들요? 국장 뭐 남들 모르게 국정원 활동이라도 해왔던 거예요?”

자신의 질문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물을 수밖엔 없었다.

해당 문서에 적힌 내용들이라곤 온통 그런 유의 것들처럼만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이를 테면.

이름, 나이, 직업 등 그 어떠한 것들에 대해 묻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

그곳에서의 대화 내용은 외부에 절대 발설하지 않을 것.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김창완이 대답 대신 최윤섭을 향해 물었다.

“윤섭이 너, 항상 내 방 옆에 있는 창고가 궁금하다고 했지? 대체 뭐가 있길래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하냐면서.”

“아, 그게 창고였어요? 난 그것도 오늘 처음 알았네.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죠. 부장 외에는 아무도 못 들어가는 미지의 곳이었으니까. 게다가 도어록도 아니고 열쇠 구멍으로 돼 있으니까 더 이상하게 보일 수밖엔 없는 거고. 다른 직원들도 다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걸요?”

수긍한다는 듯 고갤 짧게 끄덕이는 김창완.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최윤섭에게 건넸다.

“앞으론 궁금해하지 말고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봐. 이제부턴 너만 유일하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니까.”

자신의 앞에 놓인 열쇠를 바라보며 최윤섭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게 뭐예요, 부장?”

“말했잖아. 이제부턴 너만 유일하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이라고. 그 방 열쇠야.”

“아니, 그러니까 이걸 왜 저한테…….”

여전히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되묻는 최윤섭을 바라보며 김창완이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너도 차장 대우급 기자니까 잘 알고 있을 거야. 우리가 기사로 내보내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다는 걸. 그렇지?”

“물론이죠. 그걸로 제가 부장한테 얼마나 많이 따졌는데요. 대체 왜 특종감을 못 내보내게 하냐면서. 뭐, 데스크엔 말할 것도 없고요.”

김창완의 표정을 살피며 최윤섭이 덧붙여나갔다.

“그때마다 그러셨잖아요. 못 내보내게 하는 게 아니라 잠깐 묵혀두는 거라고. 필요한 때가 오면 분명 더 크게 터뜨릴 일이 있을 거라고.”

“그래, 그랬었지.”

수긍한다는 듯 고갤 끄덕이고는 김창완이 열쇠를 가리켰다.

“그 방 안에 그렇게 수 년간 묵혀뒀던 자료들이 한데 다 모아져 있어. 말했듯이 앞으론 네가 그것들을 관리하게 될 거고.”

“……그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는 듯, 김창완이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기사를 내보내는 시점은 따로 알려줄 거야. 그때가서 넌 그 기사만 작성하면 되는 거고.”

썬데이 미디어에서 근무해온 것만 벌써 12년째인 최윤섭.

그러나, 이 방에 들어온 뒤부터 부장이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죄다 의문투성이처럼 느껴질 수밖엔 없었다.

무엇보다 기자의 독립성을 누구보다 강조해 온 부장이었기에 더더욱.

최윤섭이 곧바로 물었다.

“그 시점이란 건 대체 누가 알려주는 건데요? 부장이에요? 아니면 데스크?”

따지듯 물어오는 최윤섭의 말에도 김창완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최윤섭의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시선이 A4 용지로 옮겨졌다.

“거기에 적혀 있는 사람들 보이지? 그들이 알려줄 거야.”

“사람들요? 여기에 사람들이 어디…….”

다시 한번 문서를 훑어나가던 최윤섭이 곧 손가락으로 문서를 가리키며 되물어왔다.

“혹시 이거 말하는 거예요? ‘제너럴’인가 하는 이거……?”

김창완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등받이에서 등을 뗐다.

그러고는 한층 더 진지한 표정과 함께 최윤섭을 바라봤다.

“지금부터 잘 들어.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들이 뭔지, 또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줄 테니까.”

* * *

늦은 저녁, 불 꺼진 썬데이 미디어 사무실엔 스탠드 하나만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 빛 사이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남자.

바로 최윤섭.

김창완에게 낮에 받았던 문서를 바라보며 좀처럼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고, 짙은 한숨만이 고요한 사무실 내에 정적을 이따금씩 깨고 있었다.

“하아…….”

도무지 믿기 힘든 이야기.

아니,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

김창완에게 전해 들은 충격적인 내용들은 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받아들여지질 않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건.

단연코 ‘그들’의 존재였고.

자신이 속해 있는 썬데이 미디어가 굴지의 연예 전문 매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걸 가능케 한 존재들.

최윤섭은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그것들을 떠올리며 또 한번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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