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53화 (54/165)

53화

“ 카메라 리허설 갈게요!”

하준과 하늘 사이 감동적인 대화가 오고가던 그때,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조연출이 멤버들의 순서를 알려왔다.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친 멤버들은 길게 숨을 한번 내뱉고는 결연한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대표님, 저희 다녀올게요!”

“그래, 긴장하지 말고 연습 때처럼만 하고 와.”

“네!”

하준과 함께 있던 하늘도 의지가 담긴 표정을 한번 지어 보이고는 멤버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멤버들이 대기실을 빠져나가자, 정진웅이 물어왔다.

“대표님, 저희도 무대 앞으로 가서 보고 오실 거죠?”

“그래야지. 나중에 따로 모니터링할 수 있게 촬영 꼭 해두고.”

“네!”

카메라 리허설까지 끝내고 나면 더블 타이틀곡인 <우산>의 사전녹화가 진행된다.

그리고 그 뒤, 대망의 생방송이 시작되게 되고.

마지막 리허설인 만큼 별도의 촬영을 해두어 철저한 모니터링을 하기 위함이었다.

하준과 정진웅이 멤버들이 나간 대기실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잠시 자릴 비웠던 김예슬이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들어왔다.

“대박! 대박 소식이에요 대표님!”

대단한 소식이라도 가져온 듯, 김예슬이 곧바로 문까지 닫고는 하준에게로 다가왔다.

“대체 어딜 갔다 온 거예요? 한참 동안이나 자릴 비우더니.”

정진웅의 얘기에 김예슬이 주변을 한번 살피고는 곧바로 답했다.

“대기하는 동안 요 앞에서 친한 스타일리스트 언니를 잠깐 만나고 왔거든요? 그 언니가 <프레스티지> 담당하고 있는데 마침 오늘 스케줄이 딱 겹쳐서요!”

“프레스티지? 거기 오늘 1위 후보 아닌가? 이야, 예슬 씨 인맥도 좋네.”

정진웅의 얘기에 김예슬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맞아요, 1위 후보! 근데 걔네가 지금 생방 무대 안 하겠다고, 그냥 철수하겠다고 막 그러고 있는가 보더라고요! 생방까진 겨우 몇 시간도 안 남았는데!”

김예슬의 얘기에 정진웅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잉? 그게 말이 돼요? 1위 후보에까지 오른 팀이 갑자기 왜 생방을 안 하겠다고 해요? 뭐 갑자기 누가 아프기라도 한 건가?”

“아프긴요. 빈정이 확 상해 버려서 그런 거지!”

행여나 누가 들을까 싶어 김예슬이 주변을 또 한 번 훑고는 한층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도 예전에 다른 팀 스타일리스트 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건데, 방송사에 따라 그날의 1위 팀을 미리 알려주는 경우가 있다더라고요. 수상소감이나 앵콜 같은 거 미리 준비해 두라고. 근데, 오늘 1위 팀이 <프레스티지>가 아닌가 보더라고요! 그래서 완전 기분 상해 가지고 걔네 지금 생방 안 하고 그냥 가겠다고 막 난리치고 있대요. 담당 PD님은 그거 막 설득하느라 진땀 빼고 있고.”

오늘의 1위 후보는 총 세 팀. 좀 더 정확히는, 두 팀이었다.

<프레스티지>를 제외한 다른 후보 둘은 같은 가수의 다른 곡이었으니까.

음원 및 공연 외에 방송 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 그녀였던 터라, 매주 후보로만 이름을 올리고 있는 상황.

물론 각종 음원 차트 줄 세우기로 두 곡 모두 1위 후보에 오르기엔 손색이 없었고.

그를 방증하듯 지난 2주 동안 그녀의 두 곡이 사이좋게 1위를 나눠 가지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공교롭게도 <프레스티지>는 그녀와 3주째 1위 후보를 다투고 있었고.

방송에 출연하지 않은 그녀와 달리, 프레스티지는 매 주마다 생방 무대에 올랐고, 매번 1위 발표 순서 때마다 있지도 않는 상대를 위해 축하의 박수를 건네야만 했다.

그것도 자신의 팬들이 모두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김예슬의 말에 정진웅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아,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기들이 1위가 아니라고 그냥 막무가내로 가버린다고요? 그런 무책임한 일이 어디 있어요. 다른 팀도 아니고 1위 후보 팀이 그냥 가버리면 그 자리는 누가 채운다고. 가뜩이나 유일한 1위 후보 무대였는데.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긴 왜 안 돼요? 전 이런 일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대형 소속사 갑질이란 소리가 괜히 있는 거겠어요? 3주째 상 하나 안 주는 건 그냥 대놓고 자기들 무시한다 이거겠죠. 팬들 다 있는 데서 출연하지도 않는 가수한테 1위를 계속 넘겨주고 있으니. 그것도 3주째 허공에 박수만 쳐대면서!”

국내 대형 기획사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U&U 소속의 <프레스티지>.

분명 적지 않는 규모의 팬덤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유디’의 이번 앨범이 워낙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던 탓에 좀처럼 기대치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예슬이 내뱉는 얘기의 정황상, 분명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듯 보였고.

이 바닥에서의 경험이 많은 김예슬과는 달리 정진웅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어투로 물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면 진짜 대박이긴 한데……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프레스티지>가 정말로 안 하겠다 하고 가버리면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생방 스케줄이라는 게 정해져 있을 건데.”

“그래서 제가 대박 소식이라고 했던 거예요! 생방 스케줄이야 제작진들이 알아서 할 문제고, 중요한 건 우리가 <프레스티지> 바로 앞 순서라는 거죠.”

김예슬의 얘기에 정진웅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김예슬이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어왔다.

“아이 참,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프레스티지>가 그냥 가버리면 가 엔딩 무대에 서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그것도 데뷔 무대를!”

“컥. 말도 안 돼…….”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 정진웅이 입을 벌려왔다.

김예슬이 하준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물론 정말로 그런 일이 생길 확률은 적겠지만, 그래도 대표님은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듣자마자 바로 뛰어왔어요! 만약 정말로 우리가 엔딩 무대에라도 서게 되면…….”

엔딩 무대.

음악 방송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가수들의 로망과 같은 그것.

앞선 순서를 마친 모든 가수들이 나와 지켜보는 건 물론이고, 그들의 팬덤 또한 바라보고 있기에 훨씬 더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엔 없었다.

하지만 김예슬의 얘기에도 하준은 고개만 살짝 내저을 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뒷 순서를 배정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엔딩 무대까지 노리는 건 욕심이라는 판단이었다.

다른 무대도 아닌 데뷔 무대였기에 더더욱.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 가지고 괜히 호들갑 떨지 말자고. 지금 순서만으로도 우리 입장에선 충분히 배려받은 거니까.”

그러고는 곧바로 왼쪽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고는 정진웅에게 말했다.

“모니터링용 영상 찍으려면 얼른 서둘러야지, 가자.”

“아, 네 대표님!”

아직 명확히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는 상황.

김예슬이 기대하는 바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질 확률은 희박하다는 게 하준의 생각이었다.

이제 막 데뷔 무대를 치르는 신인 그룹에게 엔딩 무대를 맡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 * *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로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멤버들의 카메라 리허설이 끝나고 사전 녹화를 위해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있던 그때.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김문환 PD가 하준을 불렀다.

그리고 지금, 대기실 앞 복도에선 김문환이 하준에게 그 소식을 전해오고 있었다.

“후,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 대충 그렇게 됐어요. 졸지에 1위 후보들 없이 생방을 진행해야 하는데 하필이면 가 1위 후보 바로 앞 순서라 어쩔 수가 없네요.”

꽤나 실랑이가 있었던 듯, 김문환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상태.

게다가, 그의 얼굴 위론 스트레스와 해탈의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고 있었다.

“후우, 뭐 애초에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우리도 한번 크게 밀어준다 생각하려고요. 뭐 특혜 논란이야 일 순 있겠지만 어차피 같은 방송국에서 육아 프로그램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큰일이야 나겠어요? 다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

희박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그 일이 현실이 되자, 하준도 생각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데뷔 무대가 아닌, 한 프로그램의 엔딩까지 맡게 된 지금의 상황.

이전과는 무게감 자체가 달라질 수밖엔 없었다.

멤버들 또한 부담감을 더 느낄 수밖에 없을 거였고.

하지만, 지금 하준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은 그것에 대한 걱정이 아닌 오히려 다른 것이었다.

짙은 한숨을 내뱉는 김문환을 바라보며 하준이 물었다.

“음, 저희야 감사한 일이지만 그럼 남은 시간은 어떻게 채우실 생각이실까요. <프레스티지>가 빠진 시간만큼은 채워야 할 텐데.”

“안 그래도 지금 그것 때문에 다들 모여서 회의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당장 무대에 설 누굴 급하게 섭외해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후우…… 진짜 대형 기획사 놈들 하고 다시는 상종 안 해야지.”

다른 방송에 비해 음악 방송의 CP는 자주 바뀌는 편.

CP가 바뀌게 되면 자연스레 관계가 회복될 거고, 그때 다시 출연하면 된다는 게 대형 기획사의 생각일 터였다.

하준 또한 그걸 모르지 않기에 위로의 의미로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혹시 지금 당장 뾰족한 대안책이 있으신 게 아니라면 제가 제안 하나 드려보면 어떨까 싶은데.”

“제안요? 제안이라면 어떤.”

“빈 시간 만큼 인터뷰로 채우면 어떨까 싶어서요. 억지로 시간을 메꾸는 것보단 그 편이 훨씬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하준의 제안에 김문환이 괜찮은 생각인지 아닌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이내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 왔다.

“오, 그거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미 다른 음악방송들에선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니까. 오호, 이런 간단한 방법을 놔두고.”

그러다 김문환이 생각을 확장시킨 듯 하준을 바라봤다.

“그럼 이왕 인터뷰하는 거 인터뷰 대상은 가 하는 걸로 하시죠? 괜히 뜬금없는 그룹이 나와서 하는 것보단, 팬들이 더 궁금해할 그룹이 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 어떻게, 괜찮으실까요?”

이미 제안을 던질 당시부터 이렇게 될 상황을 기대하고 뱉은 하준이었기에 당연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하준이 표정을 숨기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너무 많은 배려를 받는 거 아닌가 싶기는 한데. 그래도 거절하지는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D님.”

“감사는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애매하게 가는 것보단 우리 입장에서도 확실한 콘셉트로 밀어붙이는 게 낫죠. 그럼 인터뷰 내용 최대한 빠르게 만들어서 전달드릴 수 있도록 할게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네, 그럼요.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준과 김문환이 마무리 인사를 나누던 그때, 두 사람이 있는 복도 쪽으로 누군가가 다급히 뛰어오기 시작했다.

도착과 동시에 하준을 발견하고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

다름 아닌 의 담당 실장이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김문환에게 말했다.

“저, PD님? <프레스티지>가 오늘 무대를 못 서게 됐다 하던데. 그럼 혹시 엔딩 무대는…….”

머리카락까지 헝클어진 채로 꽤나 거친 숨소리를 내뱉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김문환을 급하게 찾아 헤맨 듯싶었다.

물론 그 이유는 안 봐도 훤해 보였고.

“엔딩 무대요?”

“아, 예예! 기존 순서야 그렇다 쳐도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제 막 데뷔하는 그룹이 엔딩 무대를 갖게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말을 내뱉는 동안에도 하준을 살짝씩 곁눈질해 오는 그.

오전에 그 일이 있었음에도, 엔딩무대만큼은 절대 에게 양보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고 있었다.

“아이고, 이거 어쩌죠? 그 부분은 이미 결정이 났는데. 카메라 리허설까지 모두 끝마친 상황이라 순서를 바꾸기가 애매해요. 기존 순서대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예? 그럼 엔딩은…….”

“그야 당연히.”

운을 띄우고는 하준에게로 시선을 옮기는 김문환.

“가 서게 되겠죠? 그게 원래 순서니까.”

황당함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황망한 표정으로 김문환을 멍하니 쳐다보는 담당 실장.

김문환이 그런 그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쪽에서 정 못하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긴 한데. 정 그러시면 이쪽 대표님께 한번 부탁해 보시던가요.”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 하준을 향해 살짝 눈빛을 보내오는 김문환.

김문환의 말에 드리머 담당 실장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고는 이내 자존심을 내려놓기로 했는지 하준에게로 시선을 옮겨왔다.

“저, 혹시…….”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가 운을 제대로 떼기도 전에 먼저 잘라 버리는 하준.

그러고는 자신의 왼쪽 손목을 들어 올리며 덧붙였다.

“PD님이 정해주신 순서인데 저희 같은 신인 그룹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것 같아서. 그럼 전 인터뷰 준비 때문에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돌아서는 하준의 뒷모습을 한동안이나 멍하니 바라보는 드리머 담당 실장.

그런 그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김문환도 웃음을 참으며 하준의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겨나갔다.

“자아, 그럼 나도 인터뷰 준비나 하러 가볼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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