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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스타 메이커-51화 (52/165)

51화

구세희.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그녀의 등장에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달라붙었다.

높은 하이힐 탓에 평소보다 족히 10㎝는 더 커보이는 듯한 키.

팔짱을 낀 채로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실장과 로드 매니저를 내려다봤다.

“조금 전 그 말씀은 우리 방송국이 특정 소속사나 그룹한테 특혜라도 주고 있다 이 말인가요? 대체 평소에 우리 NTV를 어떻게 보셨길래 그런 말을 이렇게 아무데서나 서슴없이 하시는 거지?”

그녀의 정체를 아직 파악하지 못한 듯한 로드 매니저와는 달리, 해당 실장은 무척이나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곧바로 수습에 나섰다.

“아,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사장님. 그, 그런 말이 아니라…….”

사장이란 단어에 로드 매니저가 눈동자를 키우며 곧바로 자세를 바꾸었다.

구세희가 실장의 말을 자르며 불쾌한 감정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

“그런 말이 아니면 뭐죠? 얼마나 평소에 우리 방송국을 우습게 봤으면 그런 소리가 이렇게 아무나 다 들을 수 있는 자리에서 서슴없이 나올 수 있는 건지, 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요? 아, 우리 방송국이 아니면 여기 피디님을 무시하는 건가?”

“아, 아뇨!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아까와는 180도 달라진 태도로 양 팔을 격하게 흔들어대는 그. 구세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뱉어나갔다.

“무대 순서는 온전히 피디의 재량인 걸 모르시나? 그렇게 정한 데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고. 아마 제가 여기 피디였어도 똑같이 그랬을 것 같은데요?”

구세희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오며 위압감 가득한 눈빛으로 실장을 바라봤다.

“제가 무슨 말 하는지는 잘 알고 계실 것 같은데. 매 방송 때마다 잦은 지각에 최근엔 학폭 논란까지 불거진 그룹을 이렇게 출연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엄청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 드리머, 지상파 무대는 죄다 거절맞았다면서요?”

음악 방송 무대에서 무조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에 하나.

절대로 지각만큼은 없어야 한다는 거였다.

모든 음악방송이 생방으로 진행되는 만큼 무척이나 예민한 문제일 수밖에 없기에.

조금이라도 지각할 경우 다음 무대는 없다고 보는 게 이 바닥의 국룰 같은 거였고.

이미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듯 거침없이 내뱉는 구세희의 발언에 실장과 로드 매니저는 애꿎은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손까지 모으고 있는 모습은 마치 죄인의 모습 같기도 했고.

올해로 데뷔 3년차를 맞는 .

최근 그룹 멤버의 학폭 논란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제대로 된 컴백 무대조차 갖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겨우 NTV만이 출연 허락을 해온 상태였고.

쐐기를 박으려는 듯 구세희가 팔짱을 풀고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래도 최 대표님이랑 그간의 정이 있어서 배려해 드리려고 했던 건데. 이런 식이면 저도 못 참죠. 오늘 드리머 출연은 없던 걸로 할게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려는 듯한 구세희의 액션에 담당 실장이 황급히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사장님!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출연 철회만큼은…….”

“어? 지금 어딜 잡으시는 거죠? 이거 성추행인 거 아시죠?”

자신의 팔을 가리키며 매섭게 쳐다보는 구세희의 시선에 실장이 곧바로 팔을 놓으며 몸을 90도로 숙여왔다.

“정말정말 죄송합니다, 사장님. 부디 이번 한 번만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가 주시면 다음부턴 반드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이번 한 번만…….”

구세희가 누구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는지 잘 알기에 그는 연신 몸을 숙이며 사과 말을 내뱉어왔다.

그런 그의 모습에 구세희도 휴대폰을 다시 집어넣고는 말했다.

“실장님. 소속 아티스트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으면 그걸 케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게 소속사의 역할이에요. 이렇게 덩달아 뒤에서 호박씨나 까는 게 아니라요. 본인들이 했던 행동은 생각지도 않고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들만 막 쏟아내니까 괜히 엄한 피해자들이 생기는 거 아니겠어요? 가뜩이나 이 바닥 루머가 판치는 곳인데. 앞으론 말조심 좀 해주세요. 아시겠죠?”

“아, 예예. 그럼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야 속이 후련해졌는지 고개를 까딱하고는 구세희가 발걸음을 옮겨나갔다.

그러다 하준과 잠시 눈이 마주치자, 대뜸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대표님, 오늘 무대 세팅에 돈 엄청 들이셨다던데. 저도 뷔뷔앞 데뷔 무대 잔뜩 기대하고 있을게요?”

말을 마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져가는 구세희.

그런 구세희의 뒷모습을 보며 김예슬이 감탄을 내뱉어왔다.

“와, 여기 사장님 카리스마 장난 아니다…… 내가 본 여자 중에 탑 오브 탑 걸크러쉬야.”

옆에 있던 정진웅도 감동한 표정으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카리스마도 카리스마지만 외모도 장난 아니신데요?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완전 연예인인 줄…….”

두 사람이 연이은 감탄에도 하준은 그닥 공감하지 못하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게, 하준에겐 무려 20년을 봐왔던 모습이었을 테니까.

짧지만 강렬했던 구세희의 등장과 퇴장 사이, 어느덧 무대에선 의 드라이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준도 무대로 시선을 옮겨 사뭇 진지한 얼굴로 멤버들을 지켜봤다.

그런데 그때, 스튜디오 내에 흘러나오던 <로즈>의 AR이 갑자기 끊기더니, 뒤이어 담당 PD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지금 동선이 자꾸 꼬이는 것 같은데? 맨 오른쪽에 있는 멤버는 안무도 계속 틀리는 것 같고. 연습 제대로 한 거 맞아요?”

약간의 짜증이 섞인 PD의 말에 하준은 곧바로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하늘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단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헷갈려서…… 실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나참. 데뷔 무대라 떨리는 건 이해하는데 본 무대에선 절대 실수하면 안 돼요, 알죠? 이거 무대 세트비만 수천이야, 수천. 그쪽 대표님이 얼마나 공을 들인 무댄데.”

담당 PD가 스태프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원래 리허설은 한 번밖에 안 되는 건데 다시 한 번만 빠르게 가볼게요. 이번엔 실수 없도록 합시다.”

PD의 말에 멤버들이 곧바로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대형을 갖춤과 동시에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로즈>의 초반부.

그와 동시에 하준의 시선은 하늘에게로 고정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어딘가 모르게 불안함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 * *

드라이 리허설을 끝마치고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멤버들.

저마다 하늘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한마디씩을 내뱉어왔다.

“역시 연습실에서 할 때랑은 차원이 다르긴 하더라. 그치? 무대 조명이 그렇게나 밝고 뜨거운지 오늘 처음 알았다니까?”

“그쵸? 조명 때문에 무대 앞쪽이 잘 보이지도 않더라고요. 어휴, 저도 당황해서 몇 번이나 실수할 뻔했는지. 왜 리허설을 두 번이나 하는지 완전 이해되더라니까요.”

“사실 아까 PD님이 음악 끄셨을 때 나도 실수했었거든. 순간적으로 2절 안무랑 헷갈려 가지고는. 후우, 하늘이 덕분에 한 번 더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아마 하늘이도 우리 동선에 맞춰주느라 실수했을걸요? 제일 오른쪽에 있어서 하필 PD님 눈에 띄었던 거지. 크큭.”

평소 연습 때에도 실수라곤 좀처럼 하지 않았던 하늘.

오히려 멤버들이 안무를 틀릴 때마다 하나하나 짚어주는 역할이었다.

그런 하늘이 한 번의 실수로 너무 우울하게만 있는 것 같아 멤버들이 없던 실수까지 만들어내면서 위로를 하는 중이었다.

멤버들의 연이은 위로의 말에 하늘이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피해 가는 일 없도록 본 무대에선 절대 실수 없도록 할게요.”

“야야, 우리 오늘 첫 데뷔 무대야. 난생 처음 서는 무댄데 당연히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완벽하면 어디 그게 신인이냐? 그냥 편하게 하자고, 연습 때처럼.”

“그래. 연습 때 그 느낌만 떠올리면서 편하게 하자. 오후에 카메라 리허설도 한 번 더 있을 거니까.”

은호와 이준 두 맏형의 말에 하늘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네, 형들. 저 그럼 잠시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멤버들에게 말을 남기고는 하준과 정진웅을 지나 대기실 밖으로 나가는 하늘.

첫 데뷔무대인만큼 충분히 긴장할 수도, 또 그로 인해 실수가 나올 수도 있는 법이었다.

다만, 하준은 하늘의 모습에서 어딘가 모를 불안한 기색이 자꾸만 느껴지고 있었다.

뭐랄까, 단순히 긴장으로 인한 것만은 아닌 것 같은, 그런.

“대표님! 애들 카메라 리허설까지 시간이 좀 남는데. 제가 가서 먹을 것 좀 사 올게요. 대표님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정진웅의 얘기에 하준이 왼쪽 손목을 들어 올려 시간을 확인했다.

멤버들의 카메라 리허설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5시간.

음악 방송이 있는 날엔 이렇게 온종일 대기의 연속이었기에 하준은 고개를 살짝 주억거리며 말했다.

“같이 가. 계속 대기하려면 이것저것 사 올 게 많을 것 같으니까.”

“아, 넵. 대표님!”

정진웅과 함께 대기실을 빠져나온 하준은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나갔다.

걸어가는 동안에도 하준의 머릿속엔 하늘에 대한 우려가 계속 맴돌고 있었다.

혹여나 다음 리허설 때도 실수하지는 않을까 싶은.

평소 밝기만 하던 하늘이었기에 더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엔 없었다.

그런데 그때, 하준과 정진웅의 시야에 화장실 앞에서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 하늘의 모습이 들어왔다.

정진웅이 곧바로 다가가 물었다.

“하늘이 여기서 뭐 해?”

정진웅이 묻자, 그제야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하늘이 황급히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아, 잠깐 집에 연락 좀 드리느라요! 어디 가세요?”

“응, 먹을 것 좀 사 오려고. 우리 하늘이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 전 아무거나 다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형.”

“감사하긴. 그럼 들어가 있어, 금방 다녀올게.”

“네.”

하준과 정진웅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다시 대기실 방향으로 걸어가는 하늘.

다시 휴대폰을 꺼내는 하늘이의 뒷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축 늘어져 보였다.

하준은 아무래도 찝찝한 기분이 남아 걸음을 멈추고는 정진웅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혼자 다녀와야겠다. 난 잠깐 하늘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아, 네. 대표님. 그럼 제가 가서 후딱 사 오도록 할게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준이 하늘을 불렀다.

“하늘아.”

“아, 네 대표님.”

이번에도 역시나 휴대폰을 감추는 하늘.

하준은 하늘의 휴대폰을 잠깐 흘깃하고는 말했다.

“아까부터 계속 표정이 안 좋던데. 혹시 무슨 일 있는 건가 해서.”

“아…… 아뇨. 그냥 첫 무대라서 계속 긴장이 되나 봐요. 청심환 같은 거라도 먹고 올걸 그랬나, 헤헤.”

평소의 웃음과는 분명 어딘가 달라보이는 어색한 얼굴.

아무래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던 그때.

하늘이의 휴대폰에서 짧은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액정 화면 위로 짧게 떠오르는 메시지 한 줄.

하늘이와 하준의 시선이 동시에 화면으로 향했고,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하준은 그것의 내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흠, 역시 다른 이유가 있었네.”

하준의 얘기에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하늘.

하늘의 휴대폰 액정화면 위론 또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고, 하준이 입을 연 건 그와 같은 타이밍이었다.

“왜 얘기 안 했어? 이렇게 심각한 일을.”

* * *

그로부터 약 30분 뒤, 커다란 건물 앞으로 택시 한 대가 멈춰 섰다.

잠시 후 택시 뒷좌석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이는 하준.

도착한 장소는 ‘서울 세한 병원’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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