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49화 (50/165)

49화

청담동의 N 헤어숍.

이른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헤어숍 내부는 분주한 움직임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막 샴푸를 마치고 나온 멤버들의 머리를 드라이하며, 메인 디자이너가 신기한 듯 물어왔다.

“다들 안 피곤해요? 보통 이 시간에 숍 오면 다들 꾸벅꾸벅 졸기 바쁘던데.”

디자이너의 물음에 은호가 또랑또랑한 눈빛을 빛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전 너무 말똥말똥한데요? 두 시간밖에 안 잤는데도 하나도 안 피곤하고 막, 막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것 같아요!”

“어머, 그래요? 하긴, 아직 데뷔 전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조금만 지나 봐. 아마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허구한 날 졸고 있을걸? 꼭 기면증 환자처럼.”

“에이, 그 정도로 피곤하다는 건 그만큼 스케줄도 많아졌다는 뜻일 텐데. 그땐 오히려 더 에너지가 넘치지 않을까요? 맨날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기쁨에!”

옆에서 듣고 있던 강준도 말을 보태왔다.

“저흰 그동안 너무 쉬기만 해와서 에너지가 잔뜩 쌓여 있거든요. 그래서 이제부턴 부지런히 쏟아내야 해요.”

은호와 강준뿐 아니라, 거울에 비쳐지고 있는 다른 멤버들의 얼굴에서도 강한 의지들이 느껴지고 있었다.

강준의 말처럼, 오로지 오늘의 이 순간만을 기다리며 버티고 버텨왔을 테니까.

멤버들의 결연한 모습에 디자이너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참, 나중에 까먹지 말고 싸인 씨디 꼭 주고 가야돼, 알겠죠? 우리 조카가 팬이라고 나중에 꼭 좀 받아달라 그랬거든. 어휴, 아직 데뷔도 안 한 그룹한테 뭘 그렇게 극성인지.”

“오, 정말요? 누구 팬이래요? 누구누구?”

기대감 가득 찬 눈빛으로 물어오는 은호의 시선에 디자이너가 피식 웃어 보이며 이준을 쳐다봤다.

“걔 완전 얼빠라서 맨날 이준 씨 나오는 장면만 돌려보더라고. 지가 쌍둥이가 되고 싶다나, 뭐라나? 아주 그냥 하루 온종일 이준 씨 품에만 안겨 있고 싶다고 난리도 아니야.”

디자이너의 얘기에 급실망한 듯 은호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쳇. 실제로 보면 서이준이나 나나 별반 다를 것도 없는데. 그냥 취향 차이인 거지.”

옆에서 듣고 있던 지호가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걸 그냥 넘어갈 리 없는 지호였다.

“푸하. 에이, 실제로 보면 더 차이가 크죠! 이준 형은 카메라가 실물을 다 못 담아내는 비주얼인데!”

“야, 얘가 못 담아내긴 뭘 못 담아내? 똑같은 카메라로 다 같이 촬영해놓고선. 그럼 뭐, 나는 있는 그대로 아주 족족 다 담기는 비주얼이냐?”

“워워. 메이크업 받으시는데 그렇게 움직이시면 안 되죠, 형님? 릴렉스~”

“아, 죄송합니다!”

은호와 지호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은호 담당 디자이너가 피식 웃어 보였다.

“역시 신인 그룹이라 그런지 사이가 아주 돈독하네. 어떤 그룹들은 서로 얘기도 안 하고 사이 안 좋은 게 딱 티가 나던데. 연차 쌓여도 지금 같은 사이 계속 유지할 거죠?”

“에이, 그럼요. 저흰 이미 볼 거 안 볼 거 다 본 사이라! 지금껏 말다툼 한 번 해본 적도 없는걸요? 헤헤.”

“오, 그래요? 리더가 팀을 아주 잘 이끄나 보네? 잘 되는 팀들 보면 리더가 딱 잘 잡아주더라고. 멤버들도 그만큼 잘 따르고.”

지금껏 숱한 아이돌 그룹들을 봐왔을 디자이너의 말에 멤버들이 이준 쪽으로 시선을 옮기고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들을 끄덕였다.

하준과 정진웅은 멤버들의 아침 식사를 사기 위해 잠시 자릴 비운 상황.

멤버들은 생에 첫 데뷔 무대를 위한 준비들을 바쁘게 이어가고 있었다.

드라이가 모두 끝나고 잠시 소란스러운 소리가 잦아들 쯤, 샴푸실 쪽에서 보조 스태프의 곤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지원 씨……? 이쪽으로 앉으실게요.”

다른 멤버들은 해당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 눈을 감은 채 메이크업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샴푸실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던 이준만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 지금 물방울 하나 튀어 있는 거 안 보여요? 닦아주고 앉으라 해야 할 거 아냐.”

“아…….”

존댓말과 반말이 섞인 하대하는 말투.

이준이 앉은 자리에선 앞에 놓인 거울 너머로 샴푸실의 광경이 온전히 다 보이고 있었다.

시선은 휴대폰에 둔 채 짜증스럽게 내뱉는 그녀의 말투에, 보조 스태프가 황급히 수건을 꺼내서는 자리를 닦아냈다.

그러자 그제야 그녀도 자리에 기대듯 누웠다.

“에휴, 또 시작이네.”

이준 담당 디자이너가 들릴 듯 말 듯한 혼잣말을 내뱉었다.

마치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옅은 한숨을 섞으며.

그런데, 잠시 조용한 듯싶던 샴푸실에서 전보다 한층 더 뾰족한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아, 휴대폰에 물 튀었잖아요! 수압 조절을 그렇게 못 해요?!”

“아, 죄송합니다. 바로 닦아드릴게요.”

“아 진짜 아침부터 짜증 나게!”

샴푸를 하는 동안에도 내내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던 그녀.

얼굴도 아닌 휴대폰에 물이 튀었다는 이유로 보조 스태프를 향해 한껏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뱉어왔다.

이번엔 다른 멤버들에게도 들릴 만한 크기였기에, 멤버들도 일제히 샴푸실 쪽을 힐긋했다.

“휴. 잠깐 실례 좀 할게요.”

이준을 담당하던 디자이너가 양해를 구하고는 샴푸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옆에서 은호의 머리를 손질하던 디자이너가 알려주듯 말했다.

“여기 뿐 아니라 연예인 숍 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에요. 어린 나이에 인기를 얻다 보니까 다 자기 밑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지. 특히나 저런 보조 스태프들한텐 더더욱 막 하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고. 에휴, 이래서 회사에서 인성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니까.”

이른 새벽 시간부터 한껏 짜증을 내고 있는 그녀는 분명 멤버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걸그룹 썸데이걸즈의 리더 윤지원.

올해로 데뷔 4년차를 맞은 그녀는 그룹 활동뿐 아니라 최근엔 솔로 앨범까지 발매함으로써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 소속사 또한 규모가 작지 않은 곳이었고.

데뷔 이래로 줄곧 성공가도만 달려왔을 터라 콧대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였다.

이제 막 데뷔를 앞두고 있는 멤버들이 이렇다 저렇다 말을 보탤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다시 시선을 거두고는 메이크업을 이어갔다.

잠시 후, 이준 담당 디자이너와 함께 윤지원이 샴푸실을 빠져나와서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보조 스태프가 머리를 드라이 하려 하자, 손으로 막으며 다시 한번 짜증을 내왔다.

“쌤. 오늘은 그냥 쌤이 다 해주세요. 저 오늘 중요한 날인데 이분한테 받았다간 죄다 엉망될 것 같으니까. 그래줄 수 있죠?”

보통 메인 스타일링 외에 다른 부분들은 각 담당 보조 스태프들이 하는 일.

윤지원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메인 디자이너가 곤란한 표정으로 잠시 이준 쪽을 바라봤다.

“아휴, 지원 씨. 나도 그렇게 해주고 싶기는 한데. 지금은 먼저 온 쪽이 있어서 좀 힘들 것 같은데. 저쪽도 오늘 아주 중요한 날이라.”

윤지원의 어깨에 손을 살짝 올리고는 디자이너가 살짝 웃어 보였다.

“오늘은 지원 씨가 이해 좀 해주자, 응? 드라이하고 기초만 먼저 하고 있으면 내가 끝내고 얼른 봐줄 테니까. 알겠지?”

말을 마치고는 옆에 서 있던 보조 스태프를 향해 눈짓을 보내는 디자이너.

그녀도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드라이기를 들어 윤지원의 곁으로 섰다.

“아이참, 싫다니까요? 쌤, 이 분한테 받기 싫다구요. 그냥 쌤이 해주세요.”

“지원 씨. 저쪽도 오늘 데뷔날이라 신경을 안 써줄 수가 없어. 먼저 예약 잡은 것도 저쪽이고. 지원 씨는 갑자기 온 거니까 서로 이해 좀 하자. 응?”

윤지원과 이준 사이에서 곤란한 입장이 되어 버린 디자이너.

윤지원의 말이 내뱉어질 때마다 곁에 있던 보조 스태프의 얼굴 또한 어두워져만 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무시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다소 살벌해진 분위기 속에서 멤버들을 포함한 모두가 어색함을 느끼고 있던 때.

윤지원의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말을 내뱉어온 건 바로 그때였다.

“선배님 요구대로 해주세요, 선생님. 저는 그동안 이분께 받고 있을게요.”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아닌 이준.

갑작스러운 이준의 얘기에 디자이너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분이라면 누구……?”

이준이 보조 스태프 가슴에 달려 있는 명찰을 한번 확인하고는 답했다.

“김지유 디자이너님요. 선배님이 중요한 일정이 있다고 하시니까 제가 저분께 받을게요. 선생님이 둘 다 맡으시기엔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서.”

이준의 얘기에 가장 놀란 건 다름 아닌 보조 스태프 김지유였다.

다른 날도 아닌 생에 한 번밖에 없을 데뷔날을 자신에게 맡기겠다고 하고 있으니.

게다가,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디자이너란 호칭까지.

떨림과 감동스러운 마음이 복합적으로 섞여 그녀의 동공은 거침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 아직 이 친구는 실습 중인 단계라 이렇게 중요한 일을 맡기기엔 좀. 혹시나 잘못되면 대표님께서도 가만있지 않으실 거고…….”

“그 부분은 제가 책임질게요. 물론 그럴 만한 상황 자체도 안 생기겠지만.”

말을 마치고는 김지유 쪽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리는 이준.

“그럼 부탁 좀 드려도 되겠죠, 선생님?”

“아…… 그게.”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김지유가 디자이너를 바라보자, 그녀도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자신의 앞에선 여전히 뭐가 잘못됐는지 모른다는 듯 윤지원이 휴대폰만을 쳐다보고 있었고.

그냥 무시해 버리기엔 뒤이어 일어날 후폭풍이 어떨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내 결심한 듯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일단 그렇게 하자. 하다가 좀 어려울 것 같으면 바로 나한테 얘기하고. 알겠지?”

메인 디자이너의 허락까지 떨어지자, 김지유의 심장은 더욱더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무려 수습 기간 4년 만에 찾아온 순간이었으니까.

떨리는 손으로 드라이기를 내려놓으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실수하지 않도록 잘 해볼게요 선생님.”

그녀가 이준 쪽으로 다가가자, 이준이 온화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지유 디자이너님.”

“맡겨주셔서 감사해요. 생에 한 번 밖에 없을 데뷔 무대, 제가 멋있게 설 수 있도록 잘 꾸며 드릴게요.”

잠시 소란스러웠던 상황이 이렇게 잘 마무리되자, 지켜보던 멤버들의 얼굴 위로 흐뭇한 미소들이 떠올랐다.

모두가 이준의 의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은호의 디자이너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 왔다.

“어머, 리더 너무 멋있는 거 아냐? 인성도 완전 갑이고! 이 팀은 잘될 수밖에 없겠네. 호호.”

지호가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쵸? 이준 형은 그냥 외모만 잘생겨서 리더가 된 게 아니라니까요. 헤헤.”

이번만큼은 은호도 흔쾌히 수긍을 해왔다.

“이건 나도 킹정이다. 서이준 짜식, 좀 멋있네.”

* * *

잠시 후, 멤버들의 아침 대용으로 샌드위치를 사온 하준이 숍 직원들에게도 일일이 나눠주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스타일링을 마무리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윤지원.

이내 하준의 손에 든 샌드위치를 확인하고는 순간적으로 눈빛이 바뀌었다.

‘어? 저거 한참 전에 예약해야 겨우 살 수 있는 건데. 어떻게 이 새벽 시간에 사온 거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거였기에 좀처럼 하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그녀.

그러는 동안 하준이 멤버들에게로 다가왔다.

“아침이니까 이걸로 간단히 먹고 나머진 리허설 끝나고 먹는 걸로 하자.”

“네, 대표님! 잘 먹겠습니다!”

멤버들을 포함해 디자이너 및 보조 스태프들에게 일일이 샌드위치를 건네는 하준.

그러다 마지막 하나의 샌드위치가 남게 되자, 하준의 시선이 윤지원과 김지유를 번갈아 가며 훑기 시작했다.

“아, 저 아직 못 받았는데!”

내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윤지원이 하준과 눈빛을 마주하자 곧바로 말을 내뱉어왔다.

그러자 하준이 샌드위치를 들고는 윤지원에게 다가왔다.

“죄송하지만 사람 숫자에 맞춰서 정확히 사 온 거라 남는 게 없는데. 다음번에 만나면 제가 꼭 한번 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지금 들고 있는 건…….”

윤지원의 말에 대답 대신 미소만 건네고는 걸음을 옮기는 하준.

이내 이준의 머리를 만지고 있는 김지유에게로 다가갔다.

“지금껏 본 이준이 모습 중에 오늘이 제일 멋있네요. 이거 여기 놔둘 테니까 좀 있다 드세요, 선생님.”

“앗, 감사합니다! 우와, 이거 엄청 유명한 가게 거라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잘 먹겠습니다, 대표님.”

윤지원이 아닌 김지유에게 마지막 샌드위치를 건넨 하준.

윤지원의 시선이 자신에게 달라붙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하준은 그저 모른 척 미소만 띠울 뿐이었다.

하준은 이미 이곳에서의 일을 모두 전해 들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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