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논현동 안무연습실.
안무 트레이너와 댄스팀이 신곡 <로즈>의 안무를 짜는 동안, 한편에선 김진성과 지현성, 그리고 멤버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맡은 파트들은 마음에 들어? 진성 선배님이랑 얘기하면서 각자한테 어울릴 만한 파트들로 분배해 봤는데.”
“네, 다들 마음에 들어 했어요. 일단 곡 자체가 좋으니까 누가 무슨 파트를 맡든 상관없는 것 같아요.”
“지호랑 하늘이는? 너희 둘 파트가 다른 애들에 비해 조금 적게 분배됐는데. 괜찮아?”
“에이, 그럼요! 형들이 저희보다 실력이 좋으니까 당연한 거죠! 그리고 진성 선생님이랑 카인 형이 결정한 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고요.”
“그럼, 그럼. 당연하지. 저도 하늘이랑 같은 생각이에요.”
하늘이와 지호의 얘기에 김진성과 지현성이 동시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저희 데뷔곡은 이제 <로즈>로 완전 확정이 난 거예요?”
은호의 물음에 지현성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너희가 직접 결정한 거니까 나야 뭐 군말 없이 따라야 하지 않겠어? 믹스 작업까지 다 끝내놨으니까 이제 녹음 일정만 잡으면 돼. 물론 그 전에 진성 선배님께서 따로 코칭은 해주실 거고.”
멤버들의 시선이 김진성에게로 옮겨지자, 김진성이 자신만 믿으라는 듯한쪽 눈을 찡긋했다.
“후후. 진짜 데뷔곡을 녹음하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뭔가 되게 떨리는 것 같아요. 그만큼 연습도 많이 해둬야 할 것 같고.”
“그쵸? 막 벅차고 설레는 감정만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녹음한다고 하니까 긴장된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다른 것보다 인생에 한번밖에 없을 데뷔곡이니까!”
다른 멤버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김진성은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준이 넌 준비 잘돼가? 후속곡 작업은 네가 맡기로 했다며. 그것도 아주아주 유명한 작곡가랑 공동 작업으로.”
“아, 네. 근데 어떤 분이랑 작업하게 될지를 모르니까 제 맘대로 준비를 해도 되는 건가 잘 모르겠어요. 어떤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아직은 감이 잘 안 오고.”
이준의 얘기에 작곡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지현성은 수긍한다는 듯 이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 아직 데뷔곡 녹음도 안 한 상탠데 벌써부터 서두를 거야 없지. 같이 작업하는 상대가 누군지 알고 나면 그때 같이 얘기 나누면서 해도 늦지 않을 거야. 대신 괜히 기죽거나 하지는 말고. 알겠지?”
말을 마치고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지현성.
물론 그의 마지막 말처럼 되지 않을 거란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이준의 입장이 된다 해도 분명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아니, 자신뿐 아니라 그 누가 되더라도 역시 같았을 거고.
“네. 옆에서 많이 도와주세요, 형.”
“뭐, 내가 도와줄 게 있다면야? 하하.”
지현성과 이준이 미소를 주고받던 그때, 연습실의 입구 문이 서서히 열리며 하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꽤나 오랜만에 보는 탓에 너 나 할 것 없이 일제히 일어나 하준을 반겨왔다.
“대표님!”
그런데, 당연히 혼자일 거라 생각했던 하준의 뒤쪽으로 또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외관을 보는 순간.
모두가 일제히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일 수밖엔 없었다.
“어? 뒤에 저 외국인분은 누구시지?”
“그, 그러게. 대표님 미국 친구이신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탓에 단번에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멤버들.
그건 연습실 내에 있는 다른 이들 또한 모두 마찬가지였는지, 하준의 뒤를 힐긋힐긋 쳐다보며 오묘한 시선들을 보내왔다.
“아, 안녕하세요 대표님.”
“오셨어요? 근데 같이 오신 분은 누구…….”
김진성의 물음에 하준이 그를 소개했다.
“저희 후속곡 작업해 주실 작곡가분이에요. 앨범도 몇 개 낸 경력이 있는 가수라 아마 아시는 분도 있을 것 같긴 한데.”
말을 마치고는 다시 자신의 옆으로 시선을 옮기는 하준.
그러자 그가 주머니에서 한쪽 손을 빼고는 가리고 있던 선글라스를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헤이, 가이즈! 나이스 투 미 츄.”
“예, 하이. 나이스 투 미 츄 투…… 어?”
멤버들 중 유일하게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던 은호.
무리를 대표해 맞인사를 건네던 은호의 눈동자가 일순 커졌다.
그와 동시에, 김진성을 포함한 안무팀 인원 대부분의 입에서 탄성들이터져 나왔다.
“헉.”
“혹시……!”
그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어색한 한국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안토니입니다.”
“헉…… 말도 안 돼!”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여전히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지호와 하늘이 낮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왜, 왜 그러는데요. 형들은 아는 사람이에요?”
“얼마나 유명하신 분이길래…….”
지호와 하늘이 물어오는 동안, 안무팀 곳곳에선 휴대폰 카메라의 촬영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사이, 김진성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하준을 바라봤다.
“하, 유명한 사람이라길래 그래도 제가 아는 작곡가 중에 한 명이겠거니 했는데…….”
잠시 말을 멈추고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안토니를 바라보는 김진성.
“이렇게 예고도 없이 빌보드 톱스타를 데리고 오실 줄이야…….”
“음, 역시 선배님은 바로 알아보시네요. 혹시나 못 알아보실 수도 있겠다 했는데.”
“하, 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매년 그래미 어워드를 씹어 먹는 초대형 스타 가수를.”
안토니를 쳐다보며 김진성이 말을 덧붙였다.
“근데…… 이렇게 눈앞에서 직접 보고 있는데도 좀처럼 믿기지가 않기는 하네요.”
김진성뿐 아니라 대부분이 비슷한 표정들을 짓고 있는 안무 연습실 내 풍경.
하준은 잠시 주변을 훑고는 말했다.
“여긴 보는 시선들이 많으니까 우선 스튜디오로 자리를 좀 옮겨서 마저 얘기들 나누실까요? 멤버들 정식 소개도 할 겸.”
* * *
안무연습실 2층에 마련된 녹음 스튜디오.
자리를 옮기는 동안 안토니의 위상에 대해 제대로 듣게 된 지호와 하늘은 지금까지도 넋을 놓은 채 멍한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분이 우리랑.”
“이준 형…… 형 괜찮겠어요? 만약 저였으면 같이 작업하다 심장 마비 걸렸을 것 같은데…….”
지호의 물음에 이준은 쉽사리 웃음을 짓지 못했다.
다른 무엇보다, 작곡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로 줄곧 롤모델이나 다름없던 그였기에.
게다가 후속곡 작업이 결정 난 이후론 그의 자작곡만을 내내 반복하며 영감을 얻고 있기도 했고.
갑자기 눈앞에 등장한 초대형 스타의 모습에, 이준은 어떻게 마음을 차분히 해야 할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런 이준의 얼굴을 살피며 지현성이 말을 건넸다.
“이준이 이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겠는데? 온갖 부담감에 긴장감에. 숨은 제대로 쉴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 크큭.”
“형은 미리 알고 계셨던 거죠? 귀띔이라도 해주시지…… 그럼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말해줬으면 뭐 더 나았겠어? 나는 알고 있었는데도 아까 보는데 심장이 다 떨리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비현실적인 그림이기는 하니까.”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컸던 지현성.
조금 전 그가 뱉은 말처럼, 애초에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일이었기에 언제든 무산될 가능성 또한 존재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자, 애초에 쓸데없는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무엇보다, 그를 소개해 오는 하준의 모습이 마치 너무나도 당연한 일을 해낸다는 듯 여유로움 그 자체였기 때문에.
모두가 놀란 감정들을 하나씩 내뱉고 있던 때, 스튜디오의 문이 열리며 하준과 안토니가 등장했다.
그런데.
“어? 저건…….”
“소주?”
안토니의 손에 들려진 초록색 물체로 인해, 멤버들의 얼굴 위로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게, 주머니에 한 손을 꽂고 서 있는 그의 외관과는 너무나도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반쯤 비워져 있는 상태이기도 했고.
멤버들의 시선에 하준이 입을 열어왔다.
“아아, 안토니가 소주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거니까 그렇게 놀랄 것들 없어. 대신 지호랑 하늘이도 있으니까 스튜디오 내에선 먹지 말라고 얘기도 해뒀고.”
“아! 그렇구나! 우와, 저 쓰디쓴 소주를 저렇게 병째로 마실 정도라니. 진짜 좋아하시나 보다.”
지호의 얘기에 하준이 웃음을 지었다.
“저렇게 들고 마시다 보면 왠지 초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나 뭐라나. 물론 그때로 다시 돌아갈 마음은 추호도 없다고 하면서.”
“아, 그거야 당연히 그럴 것 같기는 해요. 아하하…….”
노숙자 신세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그의 스토리는 모두가 알고 있는 바.
그렇기에 하준의 입에서 내뱉어진 ‘초심’이라는 단어의 의미 또한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은 안토니가 곧바로 시선을 이준에게 고정시켰다.
“헤이, 쭌? 네 이름도 쭌이라던데. 만나서 반가워.”
“아, 저는 이준입니다. 서이준.”
“이쭌? 흐음. 오케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재밌게 한번 작업해 보자고. 우리 쭌이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될 인물이라고 하길래 나도 아주 기대가 크거든! 하하.”
은호의 통역을 받은 이준이 살짝 놀란 듯 하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하준이 뜻 모를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뭘 그렇게 놀라? 꿈은 크게 가지라고 있는 건데. 이번을 계기로 정말 아티스트가 될 수 있도록 한번 열심히 해봐. 이준이 넌 충분히 그만한 가능성이 있으니까.”
가능성이 아닌, 머지않아 현실이 될 자신의 말.
확신이 담긴 하준의 눈빛에 이준도 그 눈을 지그시 바라보다 곧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표님. 열심히 해서 꼭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해볼게요.”
“그래.”
하준이 멤버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한동안 정신없이 바빠질 거야. 프로그램 촬영은 촬영대로 하면서 데뷔 준비도 빠르게 하나씩 해나가야 하니까. 게다가, 계획이 좀 수정되기도 했고.”
계획이 수정됐다는 말에 눈동자를 키워오는 멤버들.
하준은 지현성 쪽을 잠시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너희들 데뷔 앨범. 더블 타이틀곡으로 결정됐어. 물론 다른 한 곡은 이준이와 여기 있는 안토니가 공동 작업한 곡이 될 거고.”
하준의 말에 모두가 놀란 듯 눈동자를 한껏 키우고는 일제히 하준에게로 시선을 옮겨왔다.
그러자 하준이 손을 뻗으며 멤버들보다 한발 앞서 입을 열었다.
“아아. 여기에 대해 아마 각자 묻고 싶은 게 많을 것 같은데. 일단 자세한 얘긴 이 친구와 했던 계약 조항부터 이행하면서 하는 걸로 할까?”
그리고 안토니를 가리키며 입꼬리를 올리는 하준.
“아까부터 내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상태라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