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추모공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
양옆으로 펼쳐진 광안대교 아래의 바다를 바라보며, 하준과 구세희는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백미러에 비춰지는 뒷자리를 힐긋거리며 기사님이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고, 여행 오셨나 보네예? 허허. 선남선녀네, 선남선녀야.”
“네? 아,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그냥 친구예요, 친구.”
백미러로 기사님과 눈을 마주치며 구세희가 부정했다.
그러자, 기사님이 코웃음을 치며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왔다.
“하이고야~ 하하하. 내가 여서 기사 생활만 수십 년짼데. 딱 보면 딱이지예. 친구로 왔다가도 저 드넓게 펼쳐진 부산 앞바다를 보고 나믄 갈 때는 깍지 끼고 돌아가게 돼 있다고! 어허허허!”
“……아, 예.”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친화력이 좋은 기사님의 말을 흘리며, 구세희는 옆자리를 바라봤다.
7년 만에 가는 길이라 그런지 오늘따라 무거움이 느껴지는 듯한 하준의 얼굴.
평소처럼 아무 말이나 붙이기보단 구세희도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바다를 응시했다.
잠시 후, 추모공원에 도착한 하준과 구세희는 한적한 길을 나란히 걸어나갔다.
“근데 어머니는 왜 부산으로 모신 거야? 너 고향도 서울이라며.”
“아저씨 말씀으론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다더라고. 제일 행복한 순간을 여기에서 보내셨다고.”
“아빠가? 음…… 그래서 여기로 모신 거구나.”
가족이라곤 엄마밖에 없었던 하준.
그마저도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떠나보냈기에 기댈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그런 하준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구명호가 모든 장례 절차부터 시작해 이후의 일들까지 다 도맡아 처리했던 거고.
구명호의 보살핌 덕에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잘 지내올 수 있었지만, 봉안당으로 걸어가는 이 길만큼은 매년 무거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봉안당에 도착한 하준은 추모를 위해 안쪽으로 사라졌고, 구세희는 둘만의 시간을 위해 추모 화분을 판매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 왔어요.”
그 흔한 사진 한 장 없이 유골함만이 쓸쓸히 안치돼 있는 이곳.
하준은 고전영화가 담긴 DVD를 올려놓고는 짧게 내뱉었다.
“아저씨가 추천해 준 거예요. 엄마가 보면 분명 좋아할 거라고. 저도 오늘 돌아가면 한번 보려고요.”
생전에 영화를 좋아했다던 모친.
하지만 하준은 그런 사실조차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됐다.
물론 그 외의 것들 또한 마찬가지였고.
“…….”
하준은 모친의 이름이 적힌 유골함을 바라보며 20년 전의 기억들을 상기시켰다.
20년 전, 예고도 없이 찾아왔던 모친의 사망 소식.
죽음이란 단어의 정의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만큼 어렸던 탓에, 하준은 당시 어떤 종류의 슬픔을 느꼈는지조차 지금은 제대로 떠오르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찾아든 소식은 어린 하준이 어떤 마음의 준비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기에.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물어볼 곳이 없어요. 그나마 있던 기억들마저도 이젠 사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기억에 상상을 더하고, 짧았던 추억에 바람을 얹으며 버텨왔던 하준.
수십 년을 그렇게 지내온 탓에 이젠 어떤 게 정말로 있었던 일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기억이란 본래 시간이 지날수록 왜곡될 수밖에 없는 거니까.
그런 탓에,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는 몇몇 사실들은 하준을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했다.
그것에 대한 진실의 답 또한 그 누구에게서도 전해 들을 수 없었으니까.
“으흠.”
하준이 깊은 상념에 빠져 있던 때, 인기척을 내며 구세희가 다가왔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추모 화분을 건네며 말했다.
“너무 휑해 보이면 좀 그럴 것 같아서 올 때마다 놔두고 갔던 거야. 난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인사드리고 와.”
구세희가 건넨 추모 화분을 잠시 바라보던 하준은 이내 그것을 유골함 옆으로 올려두었다.
“다 드렸어. 가자.”
“벌써? 그래도 오랜만에 찾아뵙는 건데 더 있다 오지. 난 그냥 밖에서 기다리면 되는데.”
하준은 대답 대신 옅은 미소만 지어보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추모공원의 입구로 걸어 나가며 구세희가 물어왔다.
“근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는 거야? 하다못해 어떤 분이었는지 정도라도 얘기해 주셨을 것 같은데.”
“없었어. 아니면 있었는데도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걸 수도 있고. 중요한 건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다는 거지.”
적어도 자신의 기억하는 내에선 존재조차 없는 그.
지금껏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하준 또한 지워 버린 지 오래였고.
하준의 대답에 구세희는 긴 한숨을 내뱉어왔다.
“휴우…… 너도 정말 갑갑하겠다. 추억할 사진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지, 가시는 길 마지막 모습은 지켜보지도 못했지. 그렇다고 돌아가신 이유에 대해 속 시원히 알고 있는 것도 아니지. 어휴. 나 같으면 진작 미쳐 버리고도 남았을 거야.”
“…….”
모두 사실이었다.
모친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연유에 대해 ‘많이 아파서 그랬다’라는 추상적인 얘기만 전해 들었던 어린 하준.
그땐 너무 어려 그렇게 알고 넘어갔지만, 성인이 된 후 하준은 구명호에게 다시 물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교통사고였다는 것뿐.
하준의 답답함은 더욱더 짙어져 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모친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하지 못한 연유 또한 좀처럼 납득하기가 힘들었고.
하나하나가 다 의문으로만 남아 있었지만, 그것에 대한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 또한 전혀 없었기에 매년 찾아오는 기일은 하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줄곧 말이 없는 하준을 지켜보던 구세희가 화제를 돌리려는 듯 입을 열어왔다.
“야, 근데 너 미국에선 대체 뭐 하면서 지냈던 거야? 돌아오자마자 엔터부터 차린 거 보면 거기서 뭐 대단한 공부 같은 걸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설마 거기서부터 엔터 관련 일을 했던 거야?”
구세희의 의도를 알아차린 하준도 잠시 진지해져 있던 표정을 풀고는 답했다.
“응. 우연한 기회에 어쩌다 보니까.”
“참나. 그 먼 미국까지 가서 한국에서도 전혀 관심 없어 하던 분야에 갑자기 흥미가 생긴 거야? 뭐 그래서, 성과는 좀 있었고?”
“없진 않았지. 7년 동안 굶어 죽지는 않았으니까.”
그 얘기에 구세희의 머릿속으로 그동안의 하준의 행보가 스쳐 갔다.
“흠. 너 와서 하는 거 보면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닌 것 같던데? 뭣보다, 아이돌 그룹 하나 키우는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할 텐데. 너 지금까지도 아빠한테 일절 손 안 벌리고 있잖아.”
구세희의 얘기에 하준이 웃어 보였다.
“나이가 몇인데 손 안 벌리는 게 당연하지. 난 누구랑은 달라서.”
“……이게 진짜. 너 지금 그 말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지!”
“여기 우리 둘 말고 누가 또 있나?”
“후, 진짜. 오늘 날이 날인 만큼 좀 잘해주려고 했더니. 아주 매를 벌지 네가? 죽을래?!”
잔뜩 인상을 써 보이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구세희.
때마침 그때, 먼발치서 ‘빈차’라고 적힌 택시 한 대가 다가오자 하준이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구세희에게 말했다.
“일찍부터 움직이느라 배고팠을 텐데 올라가기 전에 밥이나 먹고 가자. 맛있는 거 사줄게.”
“휴우. 그 말 안 했으면 너 지금쯤 쌍코피 흘리고 있었을 거야. 오케이, 콜! 메뉴는 조개구이다?”
“그래. 타기나 해.”
뒷좌석에 올라탄 구세희는 이미 생각해 둔 곳이 있는 듯 곧바로 목적지를 얘기했다.
그러고는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대며 하준을 바라봤다.
“너 없는 동안 매년 혼자 갔던 곳인데 진짜 맛집이야. 오죽했으면 몇 번 먹어보고 서울에 하나 차려 버릴까 싶기도 했다니까?”
“고마워. 매년 잊지 않고 시간 내서 여기까지 오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
“이게 대화의 기본이 안 돼 있네? 조개구이집 얘기하는데 갑자기 웬 뜬금없는 소리야? 나랑 대화하기 싫어?”
하준이 말없이 웃음만 지어 보이자, 구세희는 고개를 절레 내젓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문득 뭔가가 떠올라 다시 하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 참. 근데 너 나한테 선물했던 그 키링 말야. 돛단배 달린 거.”
“응.”
“그거 혹시 다른 사람한테도 선물한 적 있어?”
“그건 갑자기 왜?”
“아니, 얼마 전에 안토니 스미스 앨범 커버를 봤는데 거기서 걔가 나랑 똑같은 키링을 하고 있더라고. 이거 분명 네가 나랑 있을 때 수제 작업하는 분한테서 직접 사서 줬던 건데. 그것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모양으로.”
구세희의 말에 하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세상에 하나밖에 없던 게 아니었나 보네. 아니면 비슷한 듯 다른 거거나.”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의아한 듯 물어오는 구세희에게 하준은 입꼬리를 한층 더 올리며 말했다.
“궁금해?”
“뭐?”
“궁금하냐고.”
“……그럼 궁금하니까 물었겠지! 빨리 말 안 해?”
채근해 오는 구세희를 바라보며 하준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곧 알게 될 거야.”
* * *
며칠 뒤, 인천국제공항.
드넓게 펼쳐진 활주로 위로 전용기 하나가 멈춰 섰고, 잠시 후 회색 후드티와 농구화 차림의 한 흑인 남성이 열린 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곧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그.
생에 첫 방문한 한국의 정취를 느끼려는 듯 몇 번이고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헤이. 그렇게 좋아, 안토니? 오는 내내 잠도 한숨 안 자더니 말야.”
뒤이어 나온 매니저가 그의 들뜬 표정을 보며 물어오자, 그가 흰 치아를 드러내며 답해왔다.
“하하, 물론이지! 내가 한국을 얼마나 오고 싶어 했는지 잘 알잖아? 오직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고.”
말을 마친 그는 한참 동안이나 전경을 훑어댔다.
그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매니저가 궁금하다는 듯 물어왔다.
“네가 기다렸다는 게 한국이야, 아니면 ‘H’야?”
“물론.”
짧게 운을 뗀 그가 당연하다는 듯 덧붙여왔다.
“H가 있는 한국이지. 하하.”
꽤나 행복한 웃음을 지은 그가 활주로 위를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울리는 휴대폰의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기다렸다는 듯 통화를 연결하며 반가운 목소리로 상대를 불렀다.
“헤이, 쭌. 어디야? 나와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