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하준의 뜻밖의 얘기에 놀란 듯, 이준이 입을 반쯤 벌리고선 하준을 쳐다봤다.
“대표님 그게 무슨…….”
“왜, 자신 없어?”
“…….”
이준이 대답 대신 곤란한 얼굴을 하고선 지현성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그런 중요한 작업은 카인 선배님께서 하시는 게…….”
데뷔 앨범, 그리고 개인 작업이 아닌 공동 작업이라는 점.
전문적인 트레이닝 없이 지금껏 독학으로만 작업해 온 이준에겐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부족한 자신의 실력으로 인해 멤버들과 하준 모두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점이 가장 그랬고.
이준의 시선에 지현성이 고개를 절레 내저었다.
“어휴, 데뷔곡도 모자라서 지금 나한테 후속곡까지 떠맡기려고? 나 이거 만드느라 몇 날 밤을 샜는지 알면 네가 그런 소린 못할 텐데 말야~ 형은 때려 죽어도 못 한다, 이준아~”
말을 내뱉고는 쓰고 있던 모자를 눈까지 덮어쓴 지현성이 의자에 널브러지듯 기댔다.
한층 더 곤란이 짙어진 이준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준이 말했다.
“공동 작업이긴 해도 전반적인 방향은 이준이 네가 이끌어가게 될 거야. 이미 그쪽에도 그렇게 얘기해 둔 상태고. 이준이 너한텐 분명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 제대로 실력 발휘 한번 해봐.”
하준의 얘길 듣고는 이준이 멤버들 쪽을 잠시 바라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멤버들이 이준을 향해 주먹을 불끈 치켜세웠다.
충분히 자신감 가져도 된다는 응원의 표정들도 함께 지어 보이며.
그 모습에 이준도 마음이 바뀐 듯, 곧 입을 열어왔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최선을 다해볼게요.”
“그래. 그렇다고 벌써부터 너무 부담감 느끼고 그러진 말고. 작업 시작하면 옆에서 현성 씨도 계속 봐주긴 할 거니까.”
하준의 얘기에 지현성이 눌러썼던 모자를 쓰윽 올리고는 이준에게 윙크를 살짝 보내왔다.
이준도 그제야 안도감이 드는지 심호흡을 짧게 내뱉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대표님.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해요.”
“와, 그럼 우리 이준 형이 만든 곡으로 활동하는 거예요? 대박! 진짜 그런 날이 올 줄이야!”
흥분된 목소리로 지호가 말을 꺼내오자 멤버들도 감회가 새롭다는 듯 한마디씩을 내뱉어왔다.
“저희끼리 맨날 상상으로만 하던 얘기였는데. 이렇게 빨리 이루어질 줄이야…… 우와, 형. 축하해요!”
“이야, 서이준 좋겠네. 작곡하면 저작권료도 들어온다던데. 너 나중에 돈 많이 번다고 우리 무시하면 안 된다? 진짜 가만 안 둬?”
“에이, 형이면 몰라도 이준 형은 안 그러죠. 우리 때문에 장비까지 다 팔아 버렸던 형인데.”
“이 자식이…… 야, 김강준. 나도 너희를 위해서라면 그런 건 얼마든 팔 수 있거든? 없어서 못 파는 거지.”
“왜요, 형은 토끼 잠옷 팔면 되겠던데? 그 토끼 잠옷 지금 인터넷에서 급상승 아이템으로 올라오는 중이라 꽤 비싸게 팔 수 있을걸요? 크크큭.”
킬킬거리며 지호가 은호를 놀리기 시작하자, 멤버들도 어제의 방송이 떠올랐는지 웃어대기 시작했다.
다시 온화한 얼굴로 돌아온 이준이 멤버들을 훑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너희들에게 폐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해볼게. 오늘부터 더 공부도 많이 하고.”
리더이자 맏형 이준의 진심이 담긴 말에, 멤버들도 엄지를 치켜세우며 응원의 미소를 보내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지현성은 잠시 시선을 옮겨 하준을 바라봤다.
이미 멤버들보다 앞서 해당 소식을 전해 들은 지현성.
처음 그 얘길 접하자마자,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엔 없었다.
하준의 입에서 내뱉어진 이름이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이름이었기에.
물론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에게도 그럴 거였고.
하준의 얘기가 더 이상 농담도, 장난도 아니라는 걸 깨달은 시점부턴 지현성의 머릿속은 하준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길래 이런 어마어마한 일들을 조금도 어려워하지 않고 해내는 걸까.
아니, 더 나아가.
대체 이 팔도 엔터테인먼트는 어디까지 성장하게 되는 걸까.
멤버들을 바라보며 온화한 미소만 짓고 있는 하준.
지현성의 시선은 좀처럼 그에게서 거두어지질 않고 있었다.
“근데요, 대표님. 저희랑 같이 콜라보하는 분은 어떤 분이에요? 아, 아니면 분들이신가?”
하늘의 물음에 멤버들도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듯 하준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궁금해?”
“네! 미리 알고 있으면 이준 형뿐만 아니라 저희도 뭐든 준비해 둘 수 있을 테니까요!”
“음.”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가장 왼쪽에 있는 하늘을 시작으로 멤버들의 얼굴을 순차적으로 훑어나가는 하준.
곧 묘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지금 내가 얘기해 준다 해도 어차피 딱히 준비할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은데.”
그러고는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어쩌면, 아예 모르고 있는 게 너희들 심신엔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 * *
-헤이, 쭌. 우리 드디어 얼굴 보는 건가? 나 버리고 한국 가니까 좋았지?
“하하. 버리긴 누가 버렸다고. SNS 보니까 너야말로 아주 살판 난 것 같던데? 집도 이사하고 새 차도 몇 대나 더 뽑고 말이야.”
-오우, 바쁜 와중에도 내 SNS 구경까지 와준 거야? 이거 영광인데, 쭌?
마트 촬영이 있는 멤버들을 보기 위해 근처 대형마트 앞으로 차를 몰고 온 하준.
반가운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로 인해 얼굴 위론 미소가 번져 있었다.
“아무튼, 한창 바쁜 시기일 텐데 어려운 부탁해서 미안해, 안토니. 이번 일은 내가 나중에 꼭 보답할게.”
-오, 노노.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쭌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난 브루클린 브릿지 앞에서 거지꼴로 빵이나 뜯고 있었을 텐데. 쭌을 위해서라면 이런 일은 백번도 더 해줄 수 있다고.
진심이 가득 담긴 어투로 말을 내뱉고는 그가 물어왔다.
-그나저나 이번엔 케이팝 그룹이라고? 어떤 애들이길래 쭌의 선택을 받은 건지 벌써부터 기대가 큰데? 걔네는 내가 가는 거 알고 있는 거야?
“음, 아직. 미리 얘기해 주는 것보단 만나서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오 마이 갓. 너무 잔인한 거 아냐? 그러다 애들 심장마비라고 걸리면 어떡하려고. 그럼 데뷔도 못 하고 해체해야 하는 아주 슬픈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하하. 오바하지 마.”
그때, 웃음을 지어 보이던 하준의 시야에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하늘의 모습이 들어왔다.
하준은 통화를 유지하며 차량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럼 오기 전에 한 번 더 통화하는 걸로 하자. 중요한 작업이 될 거니까 안토니가 옆에서 많이 도와줘.”
-당연하지. 이 안토니 스미스가 직접 작업하고 피처링까지 들어가는 곡인데. 최소 빌보드 정도는 올라야 하지 않겠어? 쭌은 그냥 맘 놓고 삼겹살에 소주나 준비해 두라고. 나 그거 때문에 가는 거야, 알쥐?
“하하, 그래. 그러자. 들어가.”
-오케이~
통화를 종료하며 하늘의 곁으로 다가가자, 이미 통화를 마친 하늘이 입을 반쯤 벌리고선 하준을 쳐다봤다.
“우와. 대표님 영어 진짜 잘하시네요! 원어민인 줄 알았어요!”
“그래? 그래도 비싼 돈 주고 미국까지 다녀온 보람은 있네. 그나저나 왜 혼자 나와 있어? 다른 애들은.”
“아, 형들은 지금 차에서 대기하고 있어요. 피디님이 준비 다 되면 나오라고 하셔서. 전 할머니랑 통화 좀 하려고 잠깐 나온 거구요.”
하늘의 말에 하준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물었다.
“할머니는 잘 계시지? 숙소 생활 한다고 나와 있어서 할머니가 많이 쓸쓸해하시겠네.”
“헤헤. 그래도 고모가 할머니 집에 와 계셔서 한결 마음이 놓여요. 할머니가 다리가 안 좋으셔서 혼자 계시기에 불편한 것도 있으시거든요. 저까지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시간 날 때마다 종종 찾아뵙고 해. 지금처럼 전화도 자주 드리고.”
“헤헤. 네, 대표님!”
하늘이의 가정 환경을 아는 하준은 기특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팀 내 막내임에도 늘 밝고 의젓한 모습만을 보여온 하늘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유독 마음이 쓰이기도 한 멤버였고.
멤버들이 있는 밴으로 걸음을 옮기며 하늘이 물어왔다.
“근데요, 대표님. 이준이 형이랑 같이 작업하는 분은 어떤 분이에요? 대표님이 그 얘기 꺼내시고 난 뒤로 저희끼리 숙소에서 맨날 그 얘기만 하거든요! 다들 엄청 궁금해해요.”
“음, 글쎄. 엄청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우와, 그렇게나 유명하신 분이에요? 그렇게나 유명하신 분이 우리 이준이 형이랑 같이 작업해 주는 거고요? 와, 이준 형 잘됐다!”
“이준이 일인데도 그렇게나 기분이 좋아?”
“그럼요! 이준 형이 우리 팀 리더인데, 이준 형이 잘되는 게 곧 우리가 잘되는 거죠! 아마 다른 형들도 다 저랑 똑같은 마음일걸요?”
예뻐할 수밖에 없는 하늘의 모습.
하준은 흐뭇한 미소와 함께 밴에 다다랐다.
그런데, 조용해야 할 밴의 주변으로 꽤나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교복을 입은 여학생 몇 명이 열린 뒷좌석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건네고 있었다.
“오빠들! 이거 방금 마트에서 사온 건데, 좀 드시고 하세요. 어떡해, 실물이 더 쩔어. 저 레티 방송 보고 완전 오빠들 팬 됐거든요!”
“저도, 저도요! 앞으로 프로그램도 다 챙겨볼 거예요. 힝, 오빠들 빨리 데뷔 좀 해주시면 안 돼요? 저 덕질 완전 잘할 자신 있는데!”
“이준 오빠! 저랑 사진 한번만 찍어주시면 안 돼요? 나중에 데뷔하면 여기저기 완전 자랑하고 다니려고요!”
뜻밖의 광경에 하준이 하늘을 잠시 바라보자, 하늘도 놀란 듯 눈동자를 키워왔다.
“이상하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었는데.”
한껏 들뜬 표정의 여고생들은 차 안에 있는 멤버들과 돌아가며 사진을 남겼고, 하준은 한 발자국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잠시 뒤,
“뷔뷔앞 파이팅!”이란 응원의 말을 남기고 여고생들이 사라지자, 밴의 뒷좌석 쪽으로 다가갔다.
“어, 대표님!”
“준비들 잘 하고 있었어? 진웅이는?”
“아, 저희 마실 것 좀 사 오신다고 잠시 카페에 가셨어요! 대표님 것도 부탁드릴까요?”
“아냐. 근데 조금 전에 누가 왔다 가는 것 같던데.”
“아! 저희 팬이라고 찾아오셔서 마실 거랑 과자들 좀 주고 가셨어요. 레티 형 방송이랑 저희 프로그램도 다 챙겨봤대요!”
지호의 말에 하준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근데 너희가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차량만 보고 너희라는 걸 바로 알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아, 그게.”
하준의 물음에 지호가 은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준이 은호를 잠시 쳐다보고는 대신 답해왔다.
“사실 찾아왔다기보단 은호가 대놓고 부른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열 명 중 다섯 명은 무조건 자기 알아볼 거라면서 뒷좌석 문 다 열어놓고 30분 동안 얼굴 내밀고 있었거든요.”
이준의 얘기에 지호가 킬킬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강준도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 내저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눈 다 마주치면서 자기 알아봐달라고 막 사인 보내는데 결국 아무도 못 알아보더라고요. 이상하게 쳐다보기만 하고. 그러다 30분 만에 겨우 얻어 걸린 거죠.”
지호가 연신 웃음을 내뱉으며 이어 말했다.
“크큭, 근데 너무 웃긴 건 은호 형을 알아보고 온 게 아니라 이준 형을 알아보고 온 분들이었어요. 사진도 이준 형한테만 찍자 그러고. 그때 은호 형 표정 진짜 웃겼는데, 크크큭.”
“김지호 조용해라…….”
은호의 반응을 보니 과장된 얘긴 아닌 모양.
은호에게서 시선을 뗀 하준이 멤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늘상 조심들은 하도록 해.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야 하는지 너흰 아직 모를 수밖에 없으니까. 혹여나 말이나 행동에서 사소한 실수들이 나올 수도 있거든. 무슨 말인지 알지?”
“아, 네! 죄송해요, 대표님. 아침에 집 앞 슈퍼 아주머니네 딸이 저를 알아보길래 괜히 들떠 가지고…… 앞으론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아.”
고개를 푹 숙이며 반성하는 표정의 은호에게 하준은 웃으며 말했다.
“아냐, 죄송할 건 없어. 가뜩이나 다 이준이만 알아봐서 속상할 텐데. 은호는 예외로 해줄 테니까 다음번엔 토끼 복장을 입고 한번 거리에 나가보도록 하자. 그럼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예?”
하준의 농담 섞인 말에 은호가 고개를 옆으로 까딱거리며 입을 벌려왔고, 다른 멤버들도 웃음이 터진 듯 킬킬거리며 은호를 놀려댔다.
“푸하하. 은호 형은 진짜 평생 떼지 못할 꼬리표를 달아 버린 것 같은데. 형 어떡해요? 10년 뒤에도 그 영상이 떠돌고 있을 것 같은데.”
“10년은 무슨. 20년, 30년 뒤에도 떠돌고 있을걸? 할아버지가 된 은호의 얼굴로 합성해서?”
“푸하하. 그럼 진짜 웃프겠다. 어떡해, 은호 형.”
“이것들이 진짜…… 팀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했더니 돌아온다는 말이 고작 뭐가 어쩌고 저째? 다신 내가 너희들을 위해 희생하나 봐라. 후우.”
“에이~ 또 왜 삐지고 그럴까, 우리 멋쟁이 은호 형이?”
멤버들의 주고받는 농담들을 지켜보며 하준도 살짝 웃어 보였다.
물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멤버들의 순수함이 자칫 예상치 못한 오해로 번질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짧게나마 경각심을 준 것.
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들을 멤버들이었고.
시간을 확인하려 하준이 왼쪽 손목을 힐긋하려던 그때, 하준의 안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려왔다.
휴대폰을 꺼내 액정을 바라보니 구세희의 이름이 떠 있었다.
“여보세요.”
-오, 웬일로 바로 받네? 어디서 농땡이 부리고 있었나 본데?
“그랬으면 아예 안 받지 않았을까.”
-뭐? 이 자식이. 하여튼 입에서 꼭 거친 말이 나오게 만들어요. 어디야?
“일하고 있지. 애들 촬영날이니까.”
-로드도 있으면서 되게 열심히 하네? 윤채경까지 계약한 마당에.
“너야말로 심심해서 전화한 것 같은데. 사장치고는 너무 한가한 거 아닌가?”
-야, 나도 바쁜 시간 쪼개고 쪼개서 전화한 거거든? 누굴 뭐 한량으로 아나.
늘 그렇듯 하준과 티격태격하는 대화를 짧게 나누고는 구세희가 물어왔다.
-암튼, 너 다음 주에 갈 거지?
“어디?”
-어디긴 어디야. 부산이지.
짧게 내뱉고는 구세희가 곧이어 말을 덧붙였다.
-다음 주 너희 어머니 기일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