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32화 (33/165)

32화

첫방은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가져왔다.

평균 시청률 1.9%.

케이블에, 별다른 홍보 없이 시작된 첫방이었던 만큼, 모두가 1% 미만을 예상했던 게 지배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NTV 전체를 통틀어도 1%를 넘겼던 예능 프로그램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무려 두 배에 가까운 수치를 달성하게 되었고, 실시간 검색 순위에까지 프로그램과 멤버들의 이름을 올리는 등 예상치 못한 쾌거를 이루어냈다.

물론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호재로 작용하는 등 운이 따라주기도 했다.

동시간대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던 타 방송사 프로그램이 국가 대표 A매치 중계로 인해 결방이 된 것.

그로 인해 해당 프로그램의 일부 시청자들이 자연스레 멤버들의 프로그램으로 유입될 수 있던 거였고.

물론, 실질적인 시청자들의 관심과 민심을 끌어온 건 당연스럽게도 멤버들에 대한 높은 호감도 때문이었지만.

레티의 방송을 통해 드러난 멤버들의 과거 이력.

그곳에서 흘러나왔던 멤버들의 노래와 안무가 담긴 짧은 영상.

그리고, 지난 2년이란 시간 동안 반지하방에만 갇혀 있던 멤버들을 양지로 끌어 올려준 팔도 엔터테인먼트의 새 대표까지.

동정과 연민, 응원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사연으로 인해, 방송을 접한 시청자들의 민심은 단번에 호감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한 방에 수면 위로 끌어 올린 장본인.

바로 윤채경이었다.

현관문이 열리며 깜짝 손님의 등장을 알렸던 예고편.

뒤이은 장면에서 윤채경이 등장함으로써, 실시간 반응을 포함한 각종 포털사이트의 검색 순위는 일순간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최근 자신의 가정사를 고백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한 몸에 받던 그녀였기에, 예능 프로에서의 깜짝 등장은 무척이나 파급효과가 클 수밖에 없었던 것.

실시간 검색 순위 상위권, 순간 시청률 2.6%.

이 모든 것들은 단연코 윤채경의 등장 하나만으로 달성한 업적들이었다.

“야, 너 어제 그거 봤어? NTV에서 아이돌 애들이 육아하는 거?”

“아, 그 윤채경 나왔다는 거? 본방은 안 봤는데 하도 기사가 많이 뜨길래 뭔가 싶어서 클립으로 보긴 했지. 근데 기대 하나도 안 한 것치고는 생각보다 볼만하더라? 나 원래 아이돌 그런 거에 일도 관심 없는데.”

“그치? 나도 <불타는 프라이데이> 결방이라길래 채널 돌리다 우연히 봤는데 의외로 재밌더라니까? 아직 데뷔도 안 한 애들이라 그런지 뭔가 괜히 응원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풉. 너 그러다 걔네한테 푹 빠져가지고는 나중에 덕질하고 있는 거 아냐? 그래서, 넌 누가 제일 맘에 드는데?”

“야, 당연히 은호지! 쌍둥이들 달랜다고 땀까지 흘리면서 쩔쩔매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풉. 우울할 때마다 보려고 토끼 짤도 저장해 놨다니까.”

“에이, 은호보다는 이준이 아니야? 외모로는 다른 아이돌 그룹도 완전 압살해 버리겠던데.”

“으구. 누가 얼빠 아니랄까 봐.”

지현성의 녹음실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하준.

함께 서 있던 여학생 두 명의 대화를 귓바퀴로 담으며, 꽤나 흐뭇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제자 방송의 반응을 바로 눈앞에서 생생하게 확인하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윤채경이 나오는 2화 정도는 돼야 본격적인 반응이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레티의 방송에 출연했던 일이 이렇게 큰 파급효과를 만들어낼 거라곤 하준 자신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들어선 하준.

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자, 미리 도착해 있던 멤버들이 카인의 주변을 둘러싸고는 무언갈 열심히 듣고 있었다.

“어! 대표님!”

가장 먼저 하준을 발견한 하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른 멤버들도 그제야 집중을 멈추고선 곧바로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오셨어요? 애들이 하도 궁금해하길래 잠깐 맛보기로 들려주고 있었어요. 하하.”

재생되고 있던 음악을 중지시키며 지현성이 씨익 웃어 보였다.

하준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멤버들을 바라봤다.

“어때, 너희랑 잘 맞게 나온 것 같아? 어쨌거나 일생에 한 번밖에 없을 데뷔곡인데 너희 마음에 드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아아. 난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들 얘기해! 비록 근 한 달을 매일 두 세 시간씩만 자면서 아주 죽어라 작업한 거긴 하지만 말이야.”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멤버들을 향해 부담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지현성.

하지만 하준과 지현성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멤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어 보이고 있었다.

“데, 데뷔곡이요? 아까 카인 형이 분명 다른 아이돌 그룹 노래라고…….”

“유명한 그룹의 신곡이라고 어떤지 한번 들어봐 달라고 하셨는데…….”

“서, 설마 그럼 저희가 듣고 있던 게 저희 데뷔곡인 거예요 대표님……?”

“지, 진짜예요, 카인 형?”

멤버들의 반응에 하준이 지현성을 쳐다보자, 지현성이 입꼬리를 올렸다.

“얘네한텐 데뷔곡이란 얘긴 따로 안 했어요. 저도 꽤 오랜만에 하는 작업이라 객관적인 평가를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

지현성이 멤버들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조금 전에 들은 게 너희 데뷔곡이야. 물론 아직 작업이 완전 다 끝난 건 아니지만.”

“헐…… 이렇게나 빨리 나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큭, 그래? 근데 이것만 있는 게 아냐. 너희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하나 더 준비했거든. 뭐, 물론. 이건 대표님의 무언의 압박 때문이긴 했지만?”

지현성이 하준을 쳐다보며 눈썹을 꿈틀거리자, 하준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 달 반 만에 두 곡을 뽑아내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고생 많으셨어요.”

“후우. 뭐 좀 고생을 하긴 했지만 저도 나름 재밌었습니다. 하다 보니까 ‘그래, 역시 이게 내 본업이었지’라는 생각도 새삼스레 들었고요.”

지현성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멤버들에게 말했다.

“가이드 녹음까지 마친 거니까 둘 다 들어보고 딱 꽂히는 걸로 하나만 투표해 봐. 거기서 과반수 나오는 걸로 마무리 작업 끝내서 녹음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지현성의 얘기에 멤버들의 얼굴 위로 일순간 긴장감과 설렘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지현성이 노래를 재생시키려던 그때, 지호가 갑자기 손을 들어 올리고는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 근데요 카인 형. 저희가 투표해서 한 곡만 결정되면 남은 곡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아, 혹시나 둘 다 좋으면 남은 건 후속곡으로라도 쓰면 안 되나 싶어서.”

지호의 물음에 잠시 하준과 눈을 마주치는 지현성.

그러고는 곧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어왔다.

“글쎄. 그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 싶은데? 후속곡은 이미 대표님이 따로 생각해 둔 게 있으셔서.”

일제히 하준에게로 향하는 멤버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지현성은 다시 키보드 쪽으로 손을 옮겼다.

“자, 우선 거기에 대해선 차차 얘기하는 걸로 하고. 지금부터 딱 한번씩만 들려줄 테니까 어떤 게 더 스타일에 맞을지 신중히 고민하면서 들어보도록 해. 너희가 이 노래를 직접 무대에서 부른다고 상상해하면서 말이야. 알겠지?”

“네!”

멤버들의 우렁찬 대답과 함께, 드디어 첫 번째 곡의 가이드 버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후우.”

“하…….”

“으아.”

정확히 10분 뒤.

두 번째 곡까지 모두 듣고 나자, 멤버들의 입에선 일제히 탄식이 내뱉어졌다.

“이건 너무 잔인한 것 같아요. 여기서 한 곡을 고르라니.”

“첫 번째 곡 들었을 땐 바로 이거다 싶었는데, 두 번째 곡을 듣고 나니까 또 이게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흐아. 이건 정말 고문이에요!”

괴로워하는 멤버들 사이로, 이준이 입을 열어왔다.

“저, 대표님. 저희가 투표로 결정하는 것보단 대표님이랑 카인 형이 정해주시는 게 어떨까 싶은데. 아무래도 저희보단 안목이 더 뛰어나실 테니까.”

이준의 얘기에 하준이 대답 대신 온화한 어투로 되물었다.

“이준이 네 생각은 어떤데? 각 곡마다 느꼈던 점들이 있을 거 아냐.”

하준의 물음에 이준이 차분히 대답해왔다.

“음…… 첫 번째 곡에선 도입부부터 흘러나오는 서정적이면서도 동양적인 사운드가 개인적으론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전반적으로 파워풀한 느낌이 강한 곡인데, 도입부를 이런 식으로 들어가니까 나중에 무대에서 퍼포먼스할 때 훨씬 더 강렬한 느낌이 부각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두 번째 곡은?”

“사실 두 번째 곡은 완전 다른 스타일이라 더 선택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첫 번째 곡이 파워풀한 느낌이 강했다면, 이건 오히려 리드미컬한 신스 팝에 가까워서…… 그래서 남성미보단 청량한 콘셉트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고.”

꽤나 진지하게 내뱉는 이준의 말들에, 지현성의 입가로 흐뭇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역시 5년 전에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네. 가이드 버전만 듣고도 콘셉트랑 퍼포먼스를 다 떠올릴 줄도 알고. 이제 아주 정식으로 작곡가 전향해도 되겠는데?”

말을 내뱉고는 하준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지현성.

“그렇죠, 대표님?”

지현성의 미소가 의미하는 바를 모를 리 없는 하준은 미소로 짧게 답하고는 멤버들을 바라봤다.

“제3자가 결정한 대로 따르는 것보단, 너희들이 직접 논의하고 고민해서 결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야 결과가 어떻든 후회도 없을 거고.”

“그거야 그렇지만…….”

걱정이 담겨 있는 얼굴로 은호가 입을 열어왔다.

“저희가 상의해서 결정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행여나 저희 선택으로 인해 대표님한테 피해가 가는 상황이 생길까 봐 그게 걱정돼서요…… 이건 그만큼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니까.”

멤버들이 걱정하는 게 어떤 건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이돌 그룹 하나를 론칭하는 데 드는 비용이란 결코 가볍게 여길 만한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게다가, 그렇게 데뷔한 그룹이 첫 데뷔곡부터 망해 버린다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적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거고.

그럼에도 하준의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처음 프로그램 섭외가 왔을 때, 내가 너희들한테 결정을 맡겼던 거 기억하지? 이번 역시 내 생각은 마찬가지야. 너희가 직접 결정하고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그만한 결과도 따르는 법이니까. 바로 어제자 방송처럼.”

하준의 얘기에 녹음실 내부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하준의 말뜻을 이해한 멤버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들을 이어갔고.

잠시 후, 이준이 고개를 들고는 입을 열어왔다.

“저, 대표님. 그럼 저희가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실 수 있으실까요? 충분히 들어보고 저희가 더 잘 소화할 수 있는 곡으로 결정해서 말씀드릴게요.”

이준의 얘기에 하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후후, 이거 벌써부터 궁금해지는데? 과연 어떤 곡이 데뷔곡으로 선택을 받을지? 뭐 나야 뭐가 됐든 상관없긴 하지만.”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지현성이 톤을 높이며 말했다.

그러자, 멤버들도 그제야 긴장을 풀고는 웃음들을 지어 보였다.

“저, 근데요 카인 형. 정말 저희 딱 한 곡만 골라야 하는 거예요? 아니…… 둘 다 너무 좋은데 아쉬워서요. 하나는 타이틀곡, 하나는 후속곡으로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여전히 미련이 남는 듯, 아까의 질문을 또다시 해오는 지호.

그러자, 지현성이 하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음, 대표님? 아무래도 얘네들의 현명한 결정을 위해선 거기에 대해 미리 말씀해 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이미 무언갈 알고 있는 듯, 하준을 채근해 오는 지현성.

하준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살짝 주억거리고는 입을 열어왔다.

“후속곡은 다른 작곡가가 작업한 곡으로 활동하게 될 거야. 아마도 공동 작업이 될 거고.”

“공동 작업이요?”

공동 작업이란 단어가 생소할 수밖에 없는 멤버들은 의아한 듯 하준을 바라봤다.

단, 이준만을 제외하고.

“응. 두 명의 작곡가가 함께 작업하게 되는 거지. 물론 이미 한 명은 섭외가 된 상태고.”

“아.”

그제야 의미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멤버들.

지현성은 여전히 오묘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리고 같이 작업하게 될 다른 한 명은.”

말을 내뱉으며 이준에게로 시선을 고정시키는 하준.

곧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덧붙여왔다.

“이준이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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