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29화 (30/165)

29화

“헉…….”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녀의 등장에 자리에 앉아 있던 김지혜가 입까지 벌리고는 놀란 소리를 내뱉었다.

그녀와 마주하고 있는 하준 또한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의아한 마음이 들 수밖엔 없었고.

윤채경이 소파 쪽을 힐긋거리며 말했다.

“갑자기 찾아온 거긴 해도 손님인데. 계속 이렇게 세워두실 거예요?”

윤채경의 말에 김지혜가 정신을 차리고는 곧바로 소파 쪽으로 달려갔다.

“아, 여기요! 여기 앉으시면 돼요! 어머나…… 실물로 보니까 훨씬 더 예쁘세요. 저 언니 완전 팬이거든요!”

“어머, 그래요? 아침부터 예쁘단 소리 들으니까 기분 좋은데요? 앞으로도 계속 제 팬 해줄 거죠?”

“그럼요! 당연하죠! 오늘 나온 기사 보고 완전 더더더 팬 됐는걸요?! 우와…… 스타를 여기서 보게 되다니…….”

아까 기사를 접할 때와는 달리, 윤채경의 실물을 직접 본 김지혜는 넋까지 놓은 채 눈을 떼지 못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하준이 낮은 목소리로 김지혜를 불렀다.

“지혜 씨.”

“……아, 내 정신 좀 봐! 바로 차 준비해 드릴게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김지혜는 곧장 탕비실 방향으로 사라졌고, 하준도 윤채경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지난번 만남 때와는 달리 꽤나 편안해 보이는 듯한 윤채경의 얼굴.

내내 짓고 있던 미소를 유지하며, 윤채경이 먼저 입을 열어왔다.

“지난번에 뵀을 때 제가 술값 계산해드린다고 했는데. 계산하려고 가 보니 먼저 계산을 하셨더라고요? 결제 취소도 못 하게끔 직원한테 당부 말까지 남기시고?”

“원래 제가 하기로 하고 간 자리였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실례를 범한 자리라 그냥 계산할 수 있게 놔두셨으면 좋았을 텐데. 원래 남한테 대접받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신가 보네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분께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이유도 없는 것 같았고요.”

“흐음. 그러시구나.”

다소 냉담한 하준의 답변에도 윤채경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 팔짱을 낀 채 다시 입을 열어왔다.

“그럼 전혀 일면식도 없는 저를 왜 도와주려고 하신 걸까요?”

윤채경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마침 차를 내오던 김지혜의 눈동자가 살짝 키워졌다.

“그럼 편안히들 대화 나누세요오.”

테이블 위로 차를 올려두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김지혜.

윤채경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최 기자님께 다 들었어요. 대표님께서 박 대표 녹음 파일을 들려준 덕에 마음을 바꾸게 됐다고. 게다가, 제 인터뷰를 부탁하신 것도 바로 대표님이라고.”

말을 내뱉는 윤채경의 얼굴 위론 여러 가지의 감정들이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마움과 의아함, 그리고 궁금증까지.

하준은 대답 대신 찻잔을 들어 올렸고, 곧 한 모금을 넘기고는 입을 열어왔다.

“좀 와전이 된 것 같네요. 전 부탁드린 게 아니라 그저 제안을 드려본 것뿐입니다. 해당 인터뷰는 최 기자님께도 분명 나쁠 게 없는 일일 것 같아서요.”

하준 또한 그날 밤 자신의 행동들에 대해선 쉬이 납득이 가질 않고 있었기에, 이렇게밖에 내뱉을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 윤채경이 이렇게 직접 자신을 찾아와 그날 밤 일을 다시 꺼낼 거라곤 조금도 예상치 못했기에.

하준의 얘기에 윤채경은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선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러고는 이내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그 말이 정말 사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대표님이 어떤 분인지는 어느 정도 알 것도 같네요.”

말을 내뱉고는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윤채경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이내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응, 내가 얘기한 거 가지고 올라와.”

그녀가 통화를 종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그의 매니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윤채경에게 다가와 서류봉투 하나를 건넸다.

봉투를 건네받은 윤채경은 곧바로 그것을 하준의 테이블 앞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이건 제 계약 조건이에요. 물론 회사 규모나 대표님의 사정은 어느 정도 고려해서 적은 거니까 크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닐 거예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윤채경의 말에 하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계약 조건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뭐겠어요? 제가 대표님, 아니, 이 팔도 엔터테인먼트랑 전속계약을 체결하겠다는 거지.”

그 순간, 자신의 자리에 앉아 오렌지 주스를 마시던 김지혜가 그대로 입안의 액체를 내뿜었다.

“컥…….”

갑자기 사무실에 나타난 것도 모자라 그녀의 입에서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말이 내뱉어진 탓이었다.

사무실 내엔 일순간 정적이 찾아왔고.

김지혜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연신 입만 벙긋거렸다.

서류봉투를 바라보고 있는 하준의 표정 또한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상태.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윤채경은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으며 하준을 바라봤다.

“많이 놀라셨나 보네요? 하긴, 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셨을 테니까.”

팔짱을 낀 채로 윤채경이 사무실을 한번 스윽 훑으며 말을 이어왔다.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제가 전 소속사랑 계약이 다 끝난 상태거든요. 말 그대로 FA 상태죠. 물론 뭐, 여기저기서 괜찮은 제안들은 꽤 많이 들어오고 있긴 하지만?”

자신의 긴 생머리를 쓸어 넘기며 윤채경이 하준을 바라봤다.

“사실 저 같은 여배우가 아직 소속 연예인도 하나 없는 이런 신생 기획사랑 계약을 한다는 게 좀 믿기 힘든 일이긴 하죠. 근데, 그래도 대표님 같은 분이라면 한번 믿고 가볼 만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다른 건 몰라도 제 약점을 가지고 뒤통수치실 만한 분은 절대 아닐 것 같으니까.”

전 소속사와의 일 때문인지, 마지막 말을 내뱉는 윤채경의 표정과 어투엔 다분히 힘이 실린 듯한 느낌이었다.

잠시 바뀌었던 표정을 다시 풀고는 윤채경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튼, 제 생각은 그렇고. 계약 조건 관련해서는 우선 여기에 적힌 것부터 보시고, 어렵다 싶은 내용 있으시면 저도 최대한 맞춰 드리는 쪽으로 해볼게요. 저도 양심이 있는데 회사 사정도 생각지 않고 제 몸값 그대로 다 받아내기야 하겠어요? 훗.”

말을 내뱉고 하준을 향해 싱긋 미소를 보내오는 그녀.

마치 하준의 다음 반응을 예상하고 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뒤편에 앉아 있는 김지혜의 얼굴은 이미 엄청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사무실 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모두가 하준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죄송하지만, 전 윤채경 씨랑 계약 할 생각이 없습니다.”

자신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하준의 말.

윤채경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말까지 더듬으며 되물었다.

“뭐…… 뭐라고 하셨어요, 지금? 뭐가 없다고요……?”

“윤채경 씨랑 계약할 마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요.”

“……하.”

할 말을 잃어버린 듯한 얼굴로 윤채경이 입만 벙긋거리고 있자, 하준이 다시 입을 열어왔다.

“물론 윤채경 씨가 대단한 여배우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회사의 방향과는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거니 다른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회사의 방향요? 대체 그 방향이라는 게 뭔데요?”

“지금 케어하고 있는 아이들을 제외하곤, 그 누구의 영입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물론 앞으로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을 것 같고요.”

꽤나 단호한 하준의 말에 윤채경은 멍한 표정만을 지은 채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고는 여전히 황당한 기분을 떨치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하,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러니까 지금. 엔터 사업을 하시겠다는 분이 아직 데뷔도 안 한 연습생들에게 올인하겠다 이 말씀이신 거예요?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를 마다하고?”

윤채경의 말에 김지혜도 공감한다는 듯 눈에 힘을 잔뜩 주고는 하준을 바라봤다.

당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선.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상황은 결코 일반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그것이었기 때문에.

다소 격앙된 어투로 물어오는 윤채경의 질문에도, 하준은 담담한 표정만을 유지한 채 왼쪽 손목을 들어 올렸다.

“죄송하지만, 이 얘길 하시러 오신 거라면 먼저 좀 일어나 봐도 될까요? 제가 마침 나가던 길이었어서.”

“……하. 무슨 이런.”

황당해하는 윤채경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하준.

그러자, 김지혜가 곧바로 뛰쳐나와 하준을 붙잡았다.

“대, 대표님. 여기 이분 윤채경 씨에요.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 윤채경! 서, 설마 누군지 모르시는 건 아니죠……?”

윤채경의 눈치를 연신 살피며 작게 속삭이는 김지혜에게 하준이 짧게 답했다.

“알아. 그러니까 혹여나 서운해하지 않으시도록 나 대신 배웅 잘해 드리고.”

“아니, 지금 누가 서운해하게 만들었는데……!”

하준과 김지혜의 대화를 귓바퀴로 듣고 있던 윤채경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마음속 깊은 곳부터 끌어나오는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후우. 최 기자님한테 듣기론 미국에서 꽤 오래 지내다 오셨다던데. 그래서 아직 한국 엔터 시장에 대해선 잘 모르시나 보네요.”

감정을 꾹 눌러낸 듯한 말을 남기고는 출입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윤채경.

문 앞에 다다르자, 다시 하준 쪽으로 몸을 돌리며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두고 보세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조만간 제대로 알게 해드릴 테니까.”

* * *

“장비 들어갑니다! 잠시만 비켜주세요!”

첫방 전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멤버들의 숙소에선 분주한 움직임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흠. 다들 날이 갈수록 외모가 눈에 띄게 좋아진단 말이지. 점점 레벨 업 하는 느낌이랄까?”

“그쵸? 역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었어! 갈수록 다들 얼굴선이 막막 굵어지는 것 같다니까요? 대체 비결이 뭘까아.”

거실에 앉아 의상과 헤어를 다듬는 멤버들을 보며 작가진들이 한마디씩을 내뱉어왔다.

하준이 대답 대신 미소만 짓고 있자, 이번엔 윤정유가 말을 건네왔다.

“알고 보면 대표님이 엄청 빡세게 관리해 주고 계시는 거 아니에요? 우리한텐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시면서? 수상해.”

“하하. 수상할 게 뭐 있나요. 이제 방송에도 나오고 하니까 각자가 조금씩 관리들을 시작하는 거죠. 물론 새로 온 저희 스타일리스트가 일을 아주 잘하기도 하고.”

“아! 그래서 그런가? 원래 청담동에서 일하던 분이시랬죠? 어쩐지. 장비부터가 다르더라니.”

작가진들의 대화 주제는 오늘도 역시나 멤버들의 외모로 시작됐다.

첫 미팅 때만 해도 촌스러운 느낌이 묻어났던 멤버들.

촬영이 거듭될수록 점차 아이돌스러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그건 비단 외모뿐만이 아닌 촬영에 임하는 모습들까지도 포함이었다.

그런 멤버들을 엄마의 마음으로 흐뭇하게 바라보는 윤정유와 작가진들이었고.

-깍깍, 깍깍.

“응? 갑자기 웬 까치가 이렇게 울어댄대? 이따 촬영 들어가면 창문들 좀 다 닫아야겠다. 오디오 안 들어가게.”

“그러게요. 갑자기 나타날 반가운 손님도 없는데.”

윤정유와 메인 작가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바깥에선 까치의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마치 모두가 알고 있는 길조처럼 누군가의 등장을 끊임없이 알려주려는 듯.

그런데, 정말 그것을 방증이라도 하듯 윤정유와 작가진들이 서 있던 현관문 입구 쪽으로 낯서디낯선 손님이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그때였다.

“어머, 안녕하세요? 윤정유 PD님 맞으시죠?”

그 손님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윤정유를 비롯한 작가진들의 얼굴은 그대로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유, 윤채경 씨? 윤채경 씨가 여긴 어쩐 일로…….”

여전히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듯한 윤정유가 겨우 입을 떼고선 묻자, 윤채경은 대답 대신 그 옆에 서 있는 하준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윤정유를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 유 대표님이 시간 날 때 한번 들르라고 하셔서요~ 뭐 저도 같은 회사 식구한테 도움 될 게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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