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멤버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엄마와 아빠 품에 각각 안겨 있는 완벽히 똑같은 두 아기.
물론, 하나가 아닌 둘의 등장이라는 것 때문에도 그랬고.
분명 촬영이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멤버들.
하지만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얼굴 위론 당황함만이 가득 남아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두 아기를 번갈아 쳐다보며 지호와 하늘이 나지막이 내뱉었다.
“어…… 왜 아기가 둘이나…….”
“그, 그것보다 너무 똑같이 생겼는데요……?”
옆에 있던 다른 멤버들도 입만 벙긋거린 채 가만히 서 있자, 아기 엄마 쪽에서 먼저 소개를 해왔다.
“안녕하세요, 호호. 얘는 루리고 얘는 루다예요. 이루리, 이루다. 아직 생후 7개월밖에 안 된 일란성 쌍둥이들이라 여러모로 고생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싱긋 웃어 보이는 아기 엄마.
뒤이어 아빠도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인사를 건네 왔다.
“이렇게나 멋지고 잘생긴 분들이 저희 아가들을 돌봐주신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하하. 아무쪼록 저희 아이들한테 평생의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기 아빠가 악수를 건네 오자, 맨 앞에 있던 은호가 곧바로 팔을 뻗어서는 손을 맞잡았다.
“아, 네. 그럼요! 아기들은 저희가 아주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도록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두 분은 맘 편히 둘만의 오붓한 시간 보내고 오세요. 하하, 하하.”
과장된 웃음과 함께 자신 있게 말을 내뱉은 은호는 한 발자국 앞으로 가 아기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긴장된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키고는 아기를 아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네가 루리지? 어이구, 순해라. 앞으로 몇 달 동안 형들하고 아주 재밌게 잘 지내 보자아?”
그런데 은호의 말이 내뱉어짐과 동시에, 주변에 있던 스태프들 사이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이어 쌍둥이네 엄마도 웃음소리와 함께 입을 열어왔다.
“어머, 얘네 여자애들인데! 호호. 머리가 짧아서 오해하실까 봐 일부러 머리핀까지 꽂은 건데 잘 표가 안 났나 보네요?”
“아……!”
은호가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자, 쌍둥이 엄마가 괜찮다는 듯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그렇게 많이들 오해하니까. 이이가 괜히 집에서 머리 잘라준다고 나섰다가 아주 애들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어놨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 정리하고 다시 기르는 중이라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호호호.”
뒤에서 지켜보던 멤버들이 은호를 장난스럽게 놀려대기 시작했다.
“에이, 이건 은호 형이 완전 잘못했네! 난 한눈에 보고도 바로 알겠던데.”
“누가 아니래. 머리핀만 봐도 딱 알겠구만.”
“크큭. 은호 형 오늘 이불킥 좀 차겠는데요?”
“나중에 루리랑 루다 크면 꼭 얘기해줘야겠네. 은호 오빠가 아니라 은호 형이라고 부르라고.”
멤버들의 연이은 말들에 은호의 얼굴은 더욱더 홍당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럼 저흰 이만 가볼게요. 아무쪼록 우리 아가들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은호와 이준의 품에 아기들을 안기고는 쌍둥이네 부모가 숙소를 빠져나갔다.
한동안 당황스러워하던 멤버들도 은호로 인해 꽤 누그러진 듯, 곧바로 쌍둥이 곁으로 다가왔다.
“우와, 어쩜 이렇게 똑같이 생길 수가 있지? 눈, 코, 입 다 똑같아.”
“그거야 일란성 쌍둥이니까 당연하죠! 얘가 루리고, 얘가 루다였던가? 정말 머리핀으로 구별하는 거 아니면 아예 못 알아보겠는데?”
“그러게. 행여나 머리핀 빠지지 않도록 항상 예의주시하자. 한번 놓치면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지도 모르겠어.”
“에이, 뭘 또 그렇게까지!”
멤버들은 쌍둥이의 얼굴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하늘이 신기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어왔다.
“그나저나 얘네 진짜 순하다. 엄마랑 아빠 품에서 떨어졌는데도 전혀 울지도 않고.”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 쌍둥이들은 원래 이렇게 순한 건가?”
하늘이와 지호의 얘기에 어느새 얼굴에 안정을 되찾은 은호가 루리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그건 쌍둥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나랑 이준이 품이 그만큼 안락하다는 뜻이지. 마치 엄마의 품처럼 말야. 크큭.”
“에이, 이준 형은 그렇다 쳐도 형은 좀.”
“좀? 좀 뭐?”
“워워. 애들 보는데 온화한 표정 지으셔야죠, 은호 형?”
지호와 은호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이준이 거실 바닥에 깔아놓은 모포로 걸음을 옮겨갔다.
“일단 애들 여기에 잠시 눕혀놓고, 우린 각자 역할부터 좀 나눠보자. 한 명이면 몰라도 쌍둥이가 왔으니까 그만큼 역할 분담도 잘돼야 할 것 같아.”
“아, 그렇겠다! 당장에 아기 용품들부터 다 두 개씩은 있어야 할 거고.”
“좋아요, 좋아요! 그럼 이준 형이 구매 목록들 좀 적어주시면 저랑 지호 형이 지금 바로 마트 가서 아기 용품들부터 사 올게요! 그건 아무래도 당장 필요한 것들일 테니까.”
“나도 같이 가. 너희 둘이서 사 오기엔 품목이 꽤 많을 것 같은데.”
지호와 하늘, 그리고 강준이 적극적으로 나서자, 이준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 볼 목록들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휴대폰 메모장에 그것들을 받아 적으며 하늘이 말했다.
“근데 저희 셋 다 한꺼번에 가도 괜찮을까요? 형들 둘이서만 보려면 많이 힘드실 것 같은데.”
형들을 걱정하는 하늘의 말에 은호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힘들 게 뭐 있냐? 아가들이 이렇게나 순한데.”
그러고는 이준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그러지 말고 이준이 너도 같이 다녀와. 얘네만 보냈다가 괜히 이상한 것들만 잔뜩 사 올라. 그동안 애들은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에? 이준 형까지 가면 형 혼자서 어떻게 애들을 다 보려고요? 절대 감당 안 될 것 같은데.”
말도 안 된다는 지호의 얘기에 은호가 한껏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하. 우리 지호가 쓸데없는 걱정이 참 많구나? 감당이 되나 안 되나는 일단 다녀오고 나서 판단해도 될 것 같은데 말야?”
그러고는 무척이나 온화한 얼굴로 아가들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우리 아가들, 오빠랑 오순도순 편하게 쉬고 있자아?”
* * *
입이 방정이었다.
은호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카메라 팀과 함께 숙소를 빠져나가자, 상황이 곧바로 달라져 버린 것.
세상 순하게 누워 있던 루리와 루다는 일순간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벌써 십 분도 넘는 시간 동안 도무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어, 그래, 그래. 우리 루리, 루다 착하지이? 곧 있으면 엄마, 아빠 올 거니까 그만 뚝 그치자아아?”
아까의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땀까지 흘려가며 아기들을 달래는 데 여념이 없는 은호.
아직 마트 팀이 오기 전이라 말로 시선을 끄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물론 아기들이 그 말을 알아들을 리는 만무했지만.
“우루루! 까꿍! 우우에에엑! 까까까꿍! 까꿍!”
장난감도, 쌍둥이들에게 먹일 분유도 전혀 없는 상황.
얼굴까지 빨개진 은호는 머릿속이 새하얄 수밖에 없었다.
“으아…… 제발 그만 좀 울자, 아가들아…… 오빠가 이렇게 부탁 좀 할게. 응?”
은호의 두 무릎이 바닥에 딱 붙어서는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있자, 지켜보던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웃음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은호의 애절한 부탁에도 쌍둥이들은 도무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
똑 닮은 쌍둥이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은호 또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절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양손으로 머리를 거칠게 쥐어뜯던 은호가 갑자기 뭔가 떠오르기라도 한 듯 입을 벙긋거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급하게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곳곳에 설치된 거치 카메라로 인해 스태프들은 방 안의 상황을 전혀 볼 수 없는 상태.
모두가 물음표 같은 얼굴을 한 채 은호가 다시 나타나기만을 숨죽여 기다렸다.
그렇게 약 3분여의 시간이 지났을 쯤.
드디어 은호가 들어간 방의 문이 서서히 틈을 벌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틈 사이로 드러나는 은호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확연히 다른 외관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 달라진 은호의 모습에, 거실에 있던 스태프들은 일제히 입을 틀어막았다.
“깡총! 깡총!”
꼬리까지 달린 토끼 복장을 하고선 그 큰 덩치로 두 발을 폴짝폴짝 내딛는 은호.
머리 위로 크게 달린 귀까지 펄럭이며 쌍둥이를 향해 열심히 뛰어오고 있었다.
“깡총! 깡총! 으악!”
바닥이 미끄러운 탓에 거실까지 뛰어오는 동안 몇 번이나 자빠짐을 반복하던 은호.
간신히 쌍둥이들 곁으로 와서도 입은 연신 ‘깡총’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토끼를 표현하는 방법이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은 모양.
수많은 스태프들이 자신의 앞에서 웃음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지만, 은호는 부끄러운 기색 없이 연신 쌍둥이들을 달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까아아앙총? 깡총?!”
이런 은호의 노력이 통했는지, 드디어 쌍둥이들의 울음이 잦아들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에…… 아아?”
“에에?”
거대한 토끼를 봐서일까?
토끼 같은 눈으로 은호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루리와 루다.
그런 쌍둥이들의 모습에 탄력받은 은호는 더욱더 세차게 귀와 꼬리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깡총! 깡깡총! 깡깡깡총총총!”
도무지 그칠 줄 모르는 은호의 원맨쇼에 윤정유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내고선 뒤쪽으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한참을 피식거리다가 하준에게 말을 건넸다.
“풉, 대표님. 은호 원래 저런 캐릭터였어요? 아니, 대체 저 토끼 잠옷은 어디 가면 구할 수 있는 거예요? 미치겠다, 정말. 크큭.”
윤정유의 반응에 하준도 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 저 정도는 아니긴 해도 평소에 대충 비슷한 모습이긴 했던 것 같네요.”
“푸하, 그래요? 전혀 예상치도 못 했던 타이밍에 완전 빵 터져 버렸네.”
쌍둥이 앞에서 여전히 재롱을 멈추지 않고 있는 은호를 바라보며 윤정유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거 아무래도 첫방의 주인공은 은호가 좀 돼줘야 할 것 같은데요? 뭐 물론, 본인에겐 평생 지우지 못할 박제 영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큭.”
말을 내뱉고는 조연출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윤정유.
아무래도 편집 방향에 대한 얘기를 하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하준 또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프로그램의 연출자인 윤정유가 이렇게까지 만족스러워한다는 건, 그만큼 결과물 또한 기대해 볼 만하다는 뜻이기 때문에.
수많은 스태프들 앞에서 땀까지 흘려가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은호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고.
촬영장의 분위기가 다시 평온을 찾을 때쯤, 윤정유가 다시 하준에게로 다가왔다.
“아 참, 대표님. 조만간 프로그램 홍보 관련해서 기사가 나갈 건데. 가급적이면 멤버들한테 댓글 같은 건 보지 않게끔 하세요. 아무래도 전혀 인지도가 없는 그룹이다 보니, 초반엔 악플이나 무시하는 댓글들이 대부분일 거거든요. 그럼 괜히 상처만 받고 자신감만 잃게 될 거고.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멤버들을 생각하는 윤정유의 말에 하준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프로그램의 재미, 시청률과는 상관없이 초반의 관심과 악플들은 인지도가 전혀 없는 멤버들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 부분은 하준 또한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고.
그걸 뒤집는 것 또한 앞으로 멤버들이 해내야만 할 몫이었다.
그때,
하준의 머릿속에 문득 일전의 미래 예지가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다 대표님 덕분이긴 하지. 채경 누나를 데려온 것도 대표님이었으니까.”
‘채경’이라는 인물이 멤버들에게 있어 어떤 도움이 된 듯싶었던 대화의 뉘앙스.
대화의 분위기상 그 도움이란 프로그램과 관련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채경이라는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정확히 어떤 도움을 준다는 건지에 대한 명확한 내용도 알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에선 섣불리 어떠한 행동을 취할 수가 없었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그때, 하준의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의 진동이 길게 울려왔다.
발신자를 확인한 하준은 카메라가 없는 베란다로 빠져나와 통화를 연결했다.
“네, 최 기자님.”
-아이고, 우리 유 대표님! 끄억. 혹시 바쁘신 시간에 제가 전화한 건 아니죠?
“아뇨, 잠시 통화할 시간은 됩니다. 무슨 일로.”
-아, 무슨 일이겠습니까. 하하하. 지난번 일도 있고 해서 유 대표님이랑 술이나 한잔할까 해서 연락드렸죠! 끄윽. 어떻게, 조금 있다 시간 되실까요?
아직 초저녁이라 부르기에도 이른 시간.
해가 지지도 않은 이 시점에, 최윤섭의 목소리는 이미 거하게 취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평소 같았다면 단칼에 거절했을 하준.
하지만, 최윤섭이 지난번 일을 먼저 꺼내온 만큼 마냥 그럴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잠시 이마를 매만지던 하준은 이내 수화기에 대고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 있다 뵙는 걸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