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거실에 모여 앉아 있는 멤버들을 향해 메인 작가가 질문을 건네왔다.
“이제 다음 주면 새 식구가 들어오게 될 텐데, 긴장되거나 떨리진 않으세요?”
멤버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준에게로 향했다.
“아무래도 걱정이 앞설 수밖엔 없는 것 같아요. 남자 다섯이서 육아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절대 아닐 테니까.”
“이준 씨는 베이비시터 경험도 있어서 그래도 다른 멤버들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아닌가요?”
이준이 살짝 웃어 보이고는 답했다.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땐 시간제로 잠깐씩 했던 거지만, 이건 24시간 내내 보는 거니까. 게다가, 멤버들이랑 다 같이 육아를 하는 모습이 전혀 상상이 안 되기도 하고요.”
“음, 혹시 제일 걱정되는 멤버가 있을까요?”
메인 작가의 물음에 이준이 멤버들을 하나씩 훑어나갔다.
멤버들도 대답이 궁금한 듯 이준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은호가.”
“어? 나? 왜?”
은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거리자, 이준이 메인 작가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희가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는데 멤버들 중에서도 은호가 가장 지극정성이거든요. 근데, 그게 과할 때가 많아서.”
이준의 말에 멤버들이 공감한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강준이 곧바로 말을 이어받았다.
“강아지가 낮잠 좀 자려고 하면 왜 이렇게 기운이 없냐면서 당장 병원 데리고 가야겠다고 호들갑 떨고, 밤에 잠을 안 자면 또 어디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냐고 호들갑 떨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걸 반복하거든요.”
“오죽하면 강아지가 귀찮아한다니까요.”
“크큭, 보기보다 마음이 여린 형이라서 그래요.”
멤버들의 연이은 말들에 당사자인 은호는 입술만 달싹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반박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듯싶었다.
“풉, 은호 씨한테 그런 모습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요? 그나저나, 정식 데뷔 전에 예능프로그램으로 먼저 얼굴을 알리게 됐는데, 다들 소감이 어떠세요? 듣기론 데뷔도 곧 앞두고 있다고 하던데.”
이번 질문엔 강준이 답을 해왔다.
“음. 사실 처음 섭외 얘길 들었을 땐 믿기지가 않았던 것 같아요.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저희한테 이렇게나 큰 프로그램 제안이 들어온 게 너무 신기했거든요. 게다가, 개인적으로 너무 팬이었던 PD님의 프로그램이라 더더욱 그랬던 것 같고요.”
강준의 말에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지난 몇 년간 반지하방에서 꿈만 쫓으며 버텨온 만큼,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에요. 무엇보다, 평생 기억에 남을 저희의 첫 데뷔작이기도 하니까요.”
멤버들에게 다음 질문이 건네지는 동안, 윤정유가 하준에게 다가왔다.
“대표님, 오늘 촬영은 인터뷰 영상까지만 찍고 끝내도록 할게요! 아마 다음 주 촬영 전에 멤버들 소개 영상으로 한두 번 정도 더 촬영이 있을 것 같은데, 괜찮으시죠?”
“네, 그럼요. 따로 필요한 것 있으시면 말씀주세요. 바로 준비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풉, 대표님이 그렇게 얘기하시면 왠지 정말로 바로 준비하실 것 같다니까요? 저번에 개인 스태프 말씀드렸더니, 그 뒤로 바로 꾸리셨던데요?”
“마침 필요하다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말을 내뱉는 하준의 시야에 정진웅이 들어왔다.
하준은 윤정유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PD님. 혹시나 급하게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당분간은 저한테 말씀 주시면 됩니다. 특히나 운전이 필요한 일이라면.”
“응? 로드매니저도 새로 뽑으셨던데 굳이 왜요?”
“뭐, 그럴 일이 좀 있어서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한 표정의 윤정유였지만, 이내 알겠다는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왔다.
그리고 앞쪽에선 멤버들을 향한 마지막 질문이 건네졌다.
“끝으로, 앞으로 프로그램에 임하는 각오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네! 신인이라는 생각보단 정말 한 아이를 잘 보살펴보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육아에 전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서툴고 부족하겠지만 노력하는 모습 예쁘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표로 입을 연 지호가 각오를 내뱉고는 앞쪽을 응시했다.
그러자, 시선이 닿는 곳을 확인한 메인 작가가 곧바로 추가 질문을 건네왔다.
“혹시,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을까요?”
지호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네! 저희를 위해 밤낮없이 애써주시는 저희 대표님께 꼭 성공해서 호강시켜 드리겠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대표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지호의 말과 함께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준에게로 달라붙었다.
모두가 지호와 같은 마음인 듯한 표정.
꽤나 부담스러운 시선들에 하준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잠시 고개를 윤정유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하준의 얼굴을 확인한 윤정유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에게만 보이고 있는 하준의 얼굴이 남모르게 붉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한 주가 지나고, 드디어 정식 육아 촬영이 시작되는 날.
어느덧 어엿한 숙소다운 모습을 갖춘 멤버들의 집 안으로 촬영 장비들이 하나씩 채워지고 있었다.
약 서른 대도 넘는 거치 카메라들이 집안 곳곳에 설치되었고, 또 다른 한편에선 매직 미러 세팅을 위한 스태프들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가장 먼저 메이크업을 끝낸 은호가 매직 미러 쪽으로 다가오더니 신기한 듯 말했다.
“우와, 감독님. 이건 뭐예요? 한쪽은 거울이고 또 한쪽은 유리네요?”
“허허, 이런 거 처음 봐? 하긴. 관찰 예능은 처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카메라 감독은 은호가 귀엽다는 듯 흔쾌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게 매직 미러라는 건데, 겉에서 보기엔 그냥 거울처럼 보이지만 안쪽에선 바깥이 훤히 다 보이는 유리로 되어 있지. 우린 이 안쪽에서 카메라로 출연자들을 찍는 거고.”
“우와, 신기하네요?”
“크큭, 신기해? 요즘 관찰 예능에선 다들 이렇게 해. 거치 카메라만으로는 표정이나 리액션 같은 걸 정확히 찍어내기가 어려우니까.”
“아! 그렇구나!”
입까지 벌리며 신기해하는 은호의 모습에 카메라 감독은 씩 웃어 보이고는 다시 세팅을 이어나갔다.
여전히 은호가 매직 미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지호가 다가왔다.
“형,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은호가 곧바로 표정을 바꾸고는 지호에게 되물었다.
“야, 김지호. 너 이게 뭔 줄 알아?”
“뭐, 이 거울요?”
“쯔쯧, 관찰 예능 한다는 놈이 거울이 뭐냐? 거울이.”
은호는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는 지호에게 매직 미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매직 미러라는 건데 말야? 요즘 관찰 예능에선 아주 필수…….”
“어? 대표님 오셨다!”
하지만, 은호가 설명을 채 시작하기도 전에 하준을 발견한 지호가 현관문 쪽으로 빠르게 멀어져 갔다.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은호도 곧 다시 어깨에 힘을 풀고는 하준에게로 다가갔다.
“대표님!”
“다들 준비 잘하고 있지?”
“그럼요! 어제도 다들 새벽 늦게까지 육아 공부하다가 잠들었어요. 휴, 막상 시작한다고 하니까 엄청 떨리는 거 있죠?”
“어쨌든 이것도 예능 프로그램이니까 너무 완벽하게 잘하려고 할 필욘 없어. 괜히 진지하게만 임했다가 정작 방송엔 내보낼 게 하나도 없으면 안 되니까.”
“헤헤, 그런가?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나저나 뭘 이렇게 많이 사오셨어요?”
하준과 정진웅이 들고 있는 각종 간식거리들을 보고는 지호가 물어왔다.
그러자, 하준이 멤버들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이거 스태프분들에게 직접 나눠 드리면서 앞으로 촬영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 한 번씩 드려. 앞으로 몇 개월간 너희를 위해서 수고해 주실 분들이니까.”
“아!”
하준의 말뜻을 이해한 멤버들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간식들을 건네받았다.
정진웅과 멤버들이 스태프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던 그때, 윤정유가 촬영장으로 들어왔다.
“대표님 벌써 와 계셨네요?”
“네, 조금 전에요.”
하준은 미소로 화답하고는 윤정유에게 커피를 건넸다.
“아이참, 뭘 이런 걸 또. 후훗, 그럼 거절하지 않고 잘 마실게요?”
곧바로 빨대로 입을 가져다대며 윤정유가 촬영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아, 드디어 본격적으로 육아가 시작되는 날이네요. 이제부턴 전적으로 멤버들 손에 달려 있는 거 아시죠?”
“다들 나름대로 준비 많이 했으니 잘 해낼 거라 믿고 있습니다. 물론 PD님께서도 잘 이끌어주실 거고요.”
“치, 그거야 제 프로그램인데 당연한 거고요. 그래도 리얼버라이어티인 만큼 출연자들이 어떻게 해주느냐가 정말 중요해요. 자칫 잘못하면 욕만 먹고 조기에 끝날지도 모르니까요. 특히나 이런 육아 프로그램은 더더욱 그런 요소들이 많기도 하고.”
경험 많은 윤정유도 육아프로그램은 처음인지라 걱정이 아예 없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윤정유가 눈으로 촬영장을 계속 훑어가던 그때, 메인 작가가 다가왔다.
“PD님, 수민이랑 수민 어머님 30분 뒤쯤이면 도착한다고 하는데 일단 차에서 대기시키도록 할까요?” “응, 그래야지. 일단 멤버들 촬영부터 들어가고 그 다음에 등장시켜야 하니까. 수민이랑 어머님 필요한 거 없는지 물어보고 최대한 편하게 대기하실 수 있게 해드려.”
“네, PD님!”
옆에서 윤정유와 메인 작가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하준은 순간 의아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준은 곧바로 윤정유에게 물었다.
“PD님, 수민이랑 수민이 어머님이라면.”
“아 참? 대표님이 옆에 계셨었지? 난 또 그것도 모르고 막 떠들어댔네. 호호. 하긴 뭐, 일단은 멤버들만 모르게 하면 되는 거니까. 음, 수민이는 앞으로 멤버들이 육아하게 될 아이 이름이에요. 아직 생후 12개월도 되지 않은 아이라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후훗.”
“…….”
윤정유의 얘길 듣자마자, 하준의 머릿속은 일순간 뒤엉키기 시작했다.
분명 하준이 기억하는 미래 예지의 정보와는 전혀 다른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준이 여전히 당혹스러운 마음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윤정유가 다시 입을 열어왔다.
“실은, 섭외 과정에서 약간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기는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대표님 만나면 말씀드리려고 했던 건데 저희 편성 날짜가 2주 정도 앞당겨졌거든요. 앞에 하던 프로그램이 조기종영으로 결정 나는 바람에.”
윤정유가 멤버들 쪽을 잠시 힐긋하고는 한층 낮아진 톤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원래는 쌍둥이를 데려오려고 했었거든요? 아무래도 멤버들이 방송은 처음이다 보니까 아예 정신을 쏙 빼놓는 상황으로 몰아넣어야겠다 싶더라구요. 그럼 재밌는 장면들도 자연스럽게 더 많이 연출될 테니까. 근데 뭐, 편성 날짜가 앞당겨지는 바람에 아쉽게 무산돼 버렸죠. 그쪽에서 사정상 그 날짜엔 어렵다고 하니까.”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하준은 좀처럼 판단이 서질 않고 있었다.
이 변수 하나가 이전의 미래 예지와는 어떻게 다른 결과를 발생시킬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
“아이참. 그 쌍둥이들이 정말 딱이긴 했는데!”
그런데, 그때였다.
무척이나 아쉽다는 표정의 윤정유를 바라보고 있던 때, 갑자기 하준의 눈앞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곧 정체를 알 수 없는 강한 기시감이 느껴지더니.
하준의 시야가 일순간 뒤집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