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20화 (21/165)

20화

“에?! 지, 진짜예요, 대표님?!”

하준의 얘길 듣고 난 김지혜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하, 진짜 이런 천하의 개자식을 봤나!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애들한테 그런 쓰레기 같은 짓을 해?! 난 그것도 모르고 팀장님, 팀장님 하면서 전화 오는 거 다 받아주고 앉았었네. 후…… 이런 분리수거도 안 될 쓰레기 같은 놈이 진짜.”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김지혜가 불끈 쥔 주먹을 책상 위로 쾅 내리쳤다.

처음 보는 김지혜의 그런 모습에 하준도 다소 놀란 듯 눈동자를 키웠다.

“그래서! 그 개자식이 애들 몰래 받았던 돈들은 다 돌려준 거 맞아요?! 혹시라도 아직 안 돌려줬으면 제가 당장에 가서……!”

당장에라도 사무실을 뛰쳐 나갈 것 같은 기세의 김지혜를 하준이 붙잡았다.

“진정해. 돌려준 거 확인 다 했으니까.”

“후, 진짜죠? 확실한 거 맞죠 대표님?” “그래, 그렇다니까.”

오늘 새벽, 하준은 멤버들로부터 뜬금없는 문자 폭탄을 받았다.

문자의 내용을 보니 아무래도 멤버들이 진상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모양이었다.

물론 하나같이 다 장문들뿐이었던 터라 대충 처음과 끝만 읽긴 했지만 요지는 얼추 다 비슷했다.

감사하다, 성공해서 반드시 보답하겠다, 평생 함께 해달라 등등.

그중, 강준의 메시지에선 성공에 대한 의지가 더욱더 크게 느껴지는 듯했고.

냉수를 들이켜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됐는지 김지혜가 길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후우. 아무래도 앞으로는 인생에 대한 강의를 애들한테 틈틈이 해줘야겠어요! 세상이 얼마나 험한 곳인데 이러다 나중에는 더 크게 당할지도 모른다니까요?”

“마음먹고 노리면 누구든 당할 수 있는 거지 뭐.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하준이 왼쪽 손목을 들어 올리고는 덧붙였다.

“지금쯤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때마침 사무실 문이 열리며 뉴 페이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오늘부로 팔도의 새 식구로 합류하게 된 김예슬과 정진웅.

그들이 나타나자, 하준과 김지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지혜 언니도 같이 가시는 거예요?”

“응! 오늘 애들 첫 촬영 날이니까 대표님이 나도 같이 가자 하시던데? 호호, 여기 들어오고 난생처음 하는 외근이라니까?”

“정말요? 와, 축하드려요 언니! 호호.”

멤버들의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맡게 될 김예슬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김지혜와 죽이 잘 맞고 있었다.

하준이 정진웅에게 차 키를 건네며 말했다.

“제가 사무실 문 닫고 갈 테니, 세분은 먼저 내려가 계세요. 진웅 씨, 차는 건물 앞에 주차돼 있습니다.”

“아, 그러실래요? 그럼 저희 먼저 내려가 있을게요, 대표님!”

김지혜가 뉴 페이스들을 데리고는 곧장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키를 건네받을 때의 정진웅의 표정이 조금 이상해 보이긴 했지만, 하준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잠시 후, 1층으로 내려온 하준은 시동이 켜진 밴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조수석에 탑승하기 위해 문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문이 열림과 동시에 이미 조수석을 채우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에 하준은 의아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운전석에서 핸들을 잡고 있는 이는 정진웅이 아닌 김예슬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하준은 다소 황당하다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뭐…… 합니까?”

* * *

멤버들의 숙소로 향하는 차 안.

조금 전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차 안의 기류는 꽤나 묘하게 흐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움직이고 있는 하준의 얼굴은 좀처럼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고.

뒷좌석에 앉은 김지혜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매니저를 지원하는데 운전면허증도 없이 지원을 했다고요? 그게 말이 돼요……?”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 힘든 듯, 김지혜가 조수석을 향해 계속 말을 내뱉었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진웅 씨는 다른 회사에서 일 년씩이나 매니저로 근무했잖아요. 설마 그럼, 거기서도 운전면허증 없이 일했던 거예요?”

옆자리에 앉은 김예슬도 입을 벙긋거린 채로 고개를 내저었다.

“진웅 씨 설마 음주운전 같은 걸로 면허 취소되고 그랬던 건 아니죠……?”

김예슬의 물음에 정진웅이 양손을 격하게 흔들었다.

“아, 아뇨! 저는 절대,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태어나서 면허증을 소유해 본 적 자체가 한 번도 없는 겁니다.”

“……하, 참. 자랑이네요.”

뒷자리에 있던 두 사람이 입까지 벌리며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정진웅이 운전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대표님. 저는 면접 때 별다른 말씀 없으시길래 이미 알고 계신 줄 알고…… 죄송합니다.”

하준은 딱히 뭐라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지원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 제일 컸으니까.

게다가, 조건까지 내걸며 바로 합격 통보를 내린 것 또한 자신이었고.

운전면허증도 없이 매니저를 지원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그것도 이미 매니저 경력이 있는 지원자가.

하준은 한숨을 섞어 말했다.

“……아닙니다. 미처 확인 못 한 제 잘못입니다. 앞으로 면허 딸 계획은 당연히 있는 거겠죠?”

“아, 네! 물론입니다 대표님! 이미 도로주행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행이네요. 더 바빠지기 전에 얼른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세요. 금방 딸 겁니다.”

하준의 얘기에 김지혜와 김예슬도 한마디씩을 보태왔다.

“맞아요, 면허 그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도 한 방에 턱 붙었다니까요?”

“아마 진웅 씨한텐 껌일 거예요. 우리보단 운동신경이 훨씬 더 좋을 테니까!”

연이은 응원의 말들에 정진웅이 대답 대신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다 김지혜가 의문 섞인 어투로 질문을 건네왔다.

“근데, 그 회사도 참 이상하네요. 일 년 동안이나 면허가 없는데 압박 같은 건 없었어요? 면허증 따라고?”

“아, 아뇨. 물론 있었죠.”

짧게 답한 정진웅이 곧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근데 계속 떨어지는 바람에…….”

“에? 떨어졌다고요? 대체 얼마나 떨어졌길래요?”

김지혜의 물음에 정진웅이 운전석 쪽을 힐긋거리며 하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한참이나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어왔다.

“필기만 열다섯 번…….”

“……헐.”

또 한 번 모두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 * *

촬영팀 일부가 반지하방의 숙소를 찍는 동안, 하준은 멤버들을 태우고 새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서초구에 위치한 하준의 아파트.

전 일찍부터 이삿짐센터를 부른 덕에 이미 멤버들의 짐은 모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미리 도착해 있던 윤정유가 하준과 멤버들을 발견하고는 활짝 미소를 지어왔다.

“와, 신인 그룹치고는 집이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대표님? 게다가, 대표님도 여기 사신다면서요?”

“네, 마침 공실이 생겼다길래 가까운 곳에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어서요.”

“어머, 대표님 부자셨구나?! 그나저나 멤버들은 좋겠네요? 전에 살던 집 잠깐 보고 왔는데, 여기랑 너무 극과 극이던데요?”

윤정유의 얘기에 하늘이 현관문 쪽을 빼꼼거리며 말했다.

“사실 저희도 아직 새집은 못 봐서 엄청 궁금하기는 해요. 헤헤.”

“그래도 조금만 참아요. 카메라 준비만 되면 바로 촬영 들어갈 거니까. 그때 가서 리얼 찐반응들 마구 쏟아내도록 하고!”

“헤헤. 네, PD님!”

촬영이라는 말에 멤버들의 얼굴 위로 약간의 긴장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심호흡을 내뱉는 동안, 김예슬이 멤버들의 의상과 메이크업을 고쳐주고 있었다.

공식적인 첫 촬영인 만큼 멤버들뿐 아니라 제작진도 꽤나 꼼꼼히 준비들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 그럼, 준비 다 됐으면 촬영 들어가도록 할게요! 카메라팀 워킹 준비해 주시고요!”

“슬레이트 치겠습니다! 하나, 둘, 셋!”

조연출의 뒤를 이어 FD가 슬레이트를 치며 첫 촬영이 시작됐다.

긴장감과 기대감, 그리고 설레임이 가득 섞인 표정으로 멤버들이 새 숙소의 문을 열었다.

“와…….”

“말도 안 돼…….”

더 이상 삐걱거리는 소리도,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던 반지하 특유의 냄새도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한 내부.

누구 하나 빠짐없이 입을 벌린 채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나갔다.

“새 숙소에 들어온 소감이 어때요?”

멤버들의 반응을 지켜보던 윤정유가 물어왔다.

“……원래 살던 곳이랑 너무 달라서 실감이 안 나는 것 같아요. 여기 정말 저희 숙소 맞아요……?”

“다른 것보다 방이 너무 많아서 신기해요. 맨날 거실에서 다 같이 부둥켜 자고 그랬었는데…….”

“혹시 이거 몰래카메라 같은 건 아니죠……?”

순간 촬영이라는 것도 잊은 듯, 멤버들은 속마음을 그대로 내뱉고 있었다.

그건 강아지도 마찬가지였는지 꼬리를 격하게 흔들어 대며 이곳저곳을 마구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방 네 개에 화장실 두 개.

게다가, 스태프들이 다 들어와도 전혀 비좁지 않은 넓은 거실까지.

멤버들의 숙소 반응을 찍는 동안,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부러움 가득한 말들이 뱉어지고 있었다.

“에휴. 나는 언제 이런 집에서 살아보냐.”

“꿈 깨라, 꿈 깨. 서울 집값이 얼만데.”

다른 건 몰라도 숙소만큼은 대형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그것.

지난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준 멤버들을 위한 하준의 선물이었다.

“자 그럼, 숙소 촬영은 이쯤 하는 걸로 하고 멤버들 인터뷰 진행할게요! 바로 준비들 해주세요.”

윤정유의 말과 함께 스태프들이 다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가진들이 인터뷰 준비를 하는 동안, 멤버들의 의상과 메이크업을 매만지는 김예슬의 손도 바쁘게 움직였다.

“아이참, 자꾸 그렇게 울면 화장 다 번진다니까요. 다들 좀 참아봐요.”

옆에서 들려오는 김예슬 난감한 어투에 하준이 멤버들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맏형 은호와 지호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휴, 대표님. 이분들 좀 어떻게 해보세요. 완전 수도꼭지예요. 좀 있으면 촬영 들어가야 하는데.”

“흑, 죄송합니다…….”

하준과 눈이 마주친 은호가 황급히 눈물을 훔쳤다.

“숙소가 이렇게까지 좋을 줄은 몰랐어요…… 게다가 멤버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괜히 제가 울컥해서…….”

말을 하는 동안에도 은호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가고 있었다.

그런 은호의 모습에 옆에 있던 지호도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지호 너는 왜…….”

“흑, 저는 은호 형이 우는 거 처음 봐서요…….”

“…….”

고작 숙소 하나에도 이러는 걸 보니, 나중엔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그려지는 듯했다.

다행히 다른 멤버들은 빠르게 다음 촬영 준비를 이어갔고, 은호와 지호도 겨우 진정하고는 준비를 끝마쳤다.

“그럼 인터뷰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하나, 둘, 셋!”

FD의 슬레이트 치는 소리와 함께 다섯 명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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