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16화 (17/165)

16화

“대박…… 방송국이 이렇게 생긴 곳이었구나.”

방송국 로비를 걷는 지호와 하늘의 입이 내내 닫히지 않고 있었다.

그 옆에 이준, 은호, 강준 또한 소리만 내고 있지 않을 뿐, 막내 라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들.

삐빅.

데스크에서 발급받은 출입증을 찍고 나자, 지호가 신기하다는 듯 하준에게 물어왔다.

“대표님! 이 출입증만 있으면 언제든 여기에 들어올 수 있는 거였어요? 아무 때나 상관없이?”

“뭐, 방문 목적이 확실하다면야 그렇겠지? 오늘 우리가 여기에 온 것처럼.”

“아하.”

이번엔 하준이 멤버들의 얼굴을 훑으며 물었다.

“앞으로는 이런 출입증 없이도 언제든지 올 수 있을 텐데. 그렇게들 신기해?”

“당연하죠! 저희끼리 숙소에서 맨날 하던 얘기가 ‘데뷔는 못 하더라도 방송국에 발이라도 한번 내딛어봤으면 좋겠다’였거든요! 저희한텐 그야말로 꿈의 입성이라구요.”

지호의 말에 강준도 곧바로 덧붙여왔다.

“게다가, 지금은 그냥 구경만 하러 온 게 아니라 일 때문에 온 거니까요.”

“그치, 그치.”

두 사람의 얘기에 멤버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쓸데없이 결연한 눈빛들에 하준은 짧게 웃어 보였다.

“아무튼, 오늘은 사전 미팅 겸 가볍게 인사 정도만 하는 자리니까 너무 긴장들 하고 있을 건 없어. 너희들의 평소 모습을 보여줘야 프로그램 콘셉트 짜는 데도 수월할 거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 넵! 대표님!”

멤버들의 씩씩한 대답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오늘은 제작진과 멤버들의 첫 미팅자리.

프로그램 참여에 대한 멤버들의 확고한 의지를 전달하자, 윤정유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미팅 날짜를 전달해왔다.

이미 편성 날짜가 정해진 상황이라 서둘렀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윤정유의 네임밸류와 NTV의 규모, 그리고 아직 데뷔 일정도 잡히지 않은 그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무척이나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랬기에 하준 또한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었던 거고.

6층에 도착하자, 곧바로 윤정유 팀의 회의실이 눈에 들어왔다.

하준이 짧은 노크와 함께 문을 열자, 윤정유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가운 얼굴로 멤버들을 맞이해왔다.

“어머,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오셨네요? 훗, 다들 반가워요. 저는 연출을 맡은 윤정유라고 해요.”

윤정유가 자신을 소개하자, 멤버들이 곧바로 각 잡힌 자세와 함께 90도로 몸을 숙여왔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입니다!”

갑작스레 터져 나온 우렁찬 목소리들에 윤정유를 비롯한 작가진들이 흠칫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곧 윤정유가 웃음을 터뜨렸다.

“풉, 대표님. 누가 보면 군인들이라도 온 줄 알겠는데요? 다들 왜 이렇게 기합이 바짝 들어 있어요?”

윤정유가 멤버들에게 시선을 옮기고는 물었다.

“혹시 대표님이 괴롭히거나 그런 건 아니죠?”

마침 윤정유와 눈이 마주친 은호가 여전히 자세는 유지한 채로 손을 격하게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저희 대표님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친절하고 따뜻하신 분입니다! 그런 건 전혀! 일절 없습니다!”

은호의 격한 부정에, 늘상 그렇듯 나머지 멤버들 또한 일제히 고개를 끄덕여왔다.

그 모습을 지켜본 하준이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너희들이 계속 그러면 내가 더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천하의 악덕 대표로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그냥 평소처럼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

그제야 회의실 내 분위기를 파악한 은호가 굳은 몸을 풀고는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헤헤, 죄송해요.”

하준이 윤정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이런 일이 처음이라 긴장을 조금 한 것 같네요.”

“조금이 아니라 꽤 많이 한 것 같은데요? 뭐 신인들한텐 늘 있는 일이니까요. 그럼 일단 자리에 앉아서 좀 더 편하게 대화를 나눠보도록 할까요?”

하준과 멤버들, 그리고 윤정유와 작가진들이 회의실 내 테이블로 모여앉았다.

여전히 긴장이 남아 있는 듯한 멤버들의 얼굴을 작가진들이 유심히 훑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인터넷 방송에서 짜장면 먹을 때랑은 많이 달라 보이는데요? 다들 실물이 훨씬 나은데?”

“그쵸?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그땐 뭔가 촌스러운 느낌도 들면서 아이돌스럽다는 느낌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눈앞에서 보니까 완전 미소년들이 따로 없는데요?”

“뭔가 외적으로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코앞에서 내뱉어지는 작가진들의 칭찬에 멤버들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고 있었다.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지 몰라 다들 서로의 얼굴만 힐긋거린 채로.

“실은, 다들 손을 좀 댔습니다.”

하준의 얘기에 작가진들의 눈동자와 입이 동시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윤정유 또한 사뭇 놀란 표정으로 하준을 쳐다봤다.

“어머. 그, 그랬구나…… 하긴, 요즘 성형 안 하고 데뷔하는 경우가 더 드물긴 하죠! 하하.”

“그럼, 그럼! 게다가 요즘은 의술이 어찌나 좋은지 티도 안 나게 자연스럽더라니까? 호호. 다들 정말 티 하나도 안 나고 자연스럽게 잘 된 것 같은데요오?”

작가진들의 과장된 반응에 하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라 다들 스타일적으로 조금씩 손을 봤다는 얘기였습니다. 뭣보다 살을 좀 찌우기도 했고요.”

“……아!”

“어쩐지!”

이번에도 역시나 일제히 같은 반응을 보이는 작가진.

“휴우, 그럼 그렇지. 저희가 그쪽으로는 아주 빠삭한데 어쩐지 전혀 모르겠더라니까요? 에잇, 괜히 놀랐잖아요, 대표님!”

“어머, 어머, 어쩜. 다들 예뻐지기 위해 죽어라 살 빼는 게 보통인데. 여긴 살을 더 찌워야 더 멋있어지나보네요?”

작가진들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회의실 내로 울려 퍼지자, 그제야 멤버들도 제법 편안해진 모습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작진과 멤버들 간의 이런저런 대화들이 오고 가는 동안, 윤정유는 이따금씩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 내고 있었다.

잠시 후, 대화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윤정유가 펜을 놓고는 멤버들을 바라봤다.

“음, 이준 씨는 베이비시터 경험이 있다고 했고. 그럼 나머지 분들은 육아 경험 같은 건 전혀 없으신 거죠?”

“아, 네 PD님.”

“훗, 좋네요. 그럼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테니까. 음, 그럼.”

이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는 윤정유가 말을 이었다.

“전체적인 엄마 역할은 이준 씨가 맡는 걸로 할까요? 요즘은 시청자들이 워낙 까다로워서 예능을 그냥 예능으로만 보지 못하거든요. 다른 멤버들이 허둥대고 있을 때, 이준 씨 같은 경험자가 능숙한 모습을 보여주면 시청자들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윤정유의 얘기에 메인 작가도 곧바로 말을 보태왔다.

“물론 그렇게 되면 다른 멤버들의 부족한 모습들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거구요.”

자신에게 부여된 ‘엄마’라는 역할에 이준은 민망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만큼은 환영한다는 듯 저마다 입을 열어왔다.

“그런 거라면 얘가 정말 찰떡이긴 하죠. 저희 숙소에서도 사실상 엄마나 다름없거든요. 잔소리가 어찌나 심한지.”

“헤헤, 맞아요. 생활비 관리하는 것부터 해서 장 보고 요리하는 것까지. 이준 형이 저희한테는 정말로 엄마 같은 존재거든요.”

“아마 이준 형이 없었다면 진작 돼지우리가 됐을지도 몰라요.”

멤버들의 제보가 이어지자, 윤정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 그래요? 그럼 딱이네! 그럼 이준 씨만 믿고 그렇게 가는 걸로 할게요? 후훗.”

“아,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지난번 미래 예지를 통해 이미 프로그램의 대략적인 방향에 대해선 알고 있는 하준.

게다가, 그 결과까지도.

그렇기에 굳이 지금의 회의 과정에 자신이 개입할 필요는 없었다.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이 프로그램이 잘될 거라는 건 누구보다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준은 잠시 등받이에 기대 미팅에 임하고 있는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폈다.

늘 그렇듯, 책임감 가득한 얼굴로 제작진과 의견을 나누고 있는 이준.

그런 이준과는 매번 상반된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그만큼 친근한 맏형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은호.

늘상 말이 많거나 특별히 튀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아도 꿈에 대한 열정만큼은 멤버들 중 가장 돋보이는 강준.

그리고, 이젠 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팀 내 분위기 메이커 지호와 하늘까지.

아직 이 아이들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만큼 앞으로의 변수 또한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 변수에 따라 그동안의 미래 예지 또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었고.

부디 그런 일만은 생기지 않아야 하기에, 하준은 매순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머, 우리 첫 미팅부터 너무 쉬지도 않고 빡빡하게 달린 것 같네. 그럼 이쯤에서 잠깐 쉬었다 갈까요? 다들 말도 많이 했으니까 커피도 한 잔씩 하면서?”

윤정유가 쉬는 시간을 알려오자,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기저기서 기지개를 켜며 스트레칭을 시작했고, 멤버들 중 일부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럼 지금 제가 내려가서 커피 좀 사올게요! 다들 드시고 싶은 거 있으시면 말씀 좀 부탁드려요오.”

막내 작가의 얘기에 하준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는 제가 사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쉬는 시간만 기다리고 있던 참이라.”

“어머,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뱉은 말과는 달리 막내 작가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하준도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곧장 메뉴가 적힌 쪽지를 받아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한 회사의 대표임과 동시에, 지금은 멤버들을 케어해야 할 유일한 로드이기도 한 하준.

앞으로도 이런 일쯤은 숱하게 있을 일이었다.

회의실을 빠져나온 하준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나갔다.

아직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예능국 복도는 꽤나 한산한 분위기였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 곧장 하강 버튼을 누르는 하준.

그러고는 습관적으로 왼쪽 손목을 들어 올려 시간을 확인했다.

조용한 복도 사이를 뚫고 낯선 여자의 뾰족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내뱉는 누군가의 이름에 하준의 시선은 곧바로 그쪽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