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15화 (16/165)

15화

상공 위를 달리고 있는 비행기.

전용기의 유리창 너머론, 층적운이 안개처럼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안쪽으론, 저마다의 시트에 몸을 기댄 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다섯이 비쳐지고 있었다.

분명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감각들이었지만, 하준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장면들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미래 예지에서 이어지고 있는 ‘꿈’이라는 것을.

“은호 형! 형 혹시 불어도 할 줄 알아요?”

“당근이지.”

지호의 물음에 헤드폰을 목에 걸고 있는 은호가 입술을 잔뜩 오므렸다.

“봉쥬르? 엄, 패리스 버게트?”

“에이, 그게 뭐야. 그런 건 나도 하겠다!”

지호가 곧장 은호의 표정을 흉내 냈다.

“엄, 뚤헤쥬르?”

“크크큭. 지호가 더 잘하는 것 같은데?”

옆자리의 강준과 하늘이 킬킬거리자 지호가 우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참나. 그럼 이번 투어에서 통역담당은 김지호 네가 해라? 아주 도와달라고 하기만 해봐라.”

“아이참, 형 왜 또 삐지고 그래요옹.”

“됐어, 인마. 절루 가.”

둘을 지켜보는 나머지 얼굴들은 꽤나 평온해 보였다.

하늘이 들뜬 얼굴을 하고선 입을 열어왔다.

“그나저나 형들, 다들 떨리진 않아요? 우리 이번 파리 공연이 마지막인 데다가, 공연장도 지금까지 섰던 곳 중에 제일 크다던데!”

말을 마친 하늘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그쵸, 대표님?”

“응.”

낯익은 목소리, 바로 미래의 하준이었다.

“후우, 벌써 마지막이라니. 뭔가 시원섭섭하네.”

“그쵸? 형도 그렇죠? 저도 집이 엄청 그립다가도, 해외 팬들이랑 언제 또 보겠나 싶은 마음에 막 아쉽기도 하고 그런다니까요.”

은호와 지호의 얘기에 하늘과 강준도 저마다 말을 보탠다.

“저는 집에 가면 이번 투어 때 찍어둔 영상들 맨날 돌려볼 것 같아요. 특히 첫 투어! 그때 무대 위에서 들었던 그 환호성은 정말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미 투. 나도 그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 그 넓은 스타디움이 꽉 찰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큭. 불과 1년 반 전의 우리 모습을 생각하면 진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그치?”

“네, 진짜요.”

각자의 소감을 얘기하던 아이들의 시선이 이번엔 이준에게로 향했다.

“이준 형. 형은 기분 어때요?”

“나?”

대화에 끼고 있지 않던 이준은 지호의 물음에도 여전히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넌 뭘 그렇게 보고 있냐? 뭐 재밌는 거라도 있어?”

은호가 궁금하다는 듯 이준의 휴대폰으로 고개를 불쑥 밀어 넣었다.

“어? 루다랑 루리네?”

은호의 반응에 다른 멤버들도 몰려들었다.

“우와, 대박! 얘네가 벌써 이렇게나 컸어요?”

“진짜 애기들 크는 건 순식간이라더니. 와, 조금만 더 크면 아예 못 알아보겠는데?”

“에이, 그래도 전 알아볼 것 같은데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쌍둥이들이니까!”

“맞아, 맞아! 나도, 나도!”

휴대폰 속 영상을 바라보며 이준이 말했다.

“루다네 어머님께서 보내주셨더라고. 애들한테 우리 영상 보여줬더니 알아보는 것 같다면서.”

“크크큭, 진짜? 그럼 여기서 엄마, 엄마 하는 게 설마 서이준 너 보고 그러는 거야?”

“어떡해, 너무 귀여워!”

어느새 멤버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 번져 있다.

은호가 다시 시트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하아,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엄청 추억 돋네. 저때는 진짜 정신없었는데.”

“그러니까요. 안 그래도 첫 데뷔 방송이 육아 프로그램이라 엄청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쌍둥이가 등장할 줄이야.”

“처음엔 내 눈이 어떻게 된 줄 알았어. 똑같이 생긴 애가 눈앞에 둘이나 보이길래. 나도 쌍둥이 보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

“크큭, 맞아. 그땐 천하의 서이준도 당황하는 표정을 숨기질 못하더라니까.”

미래 예지 속 멤버들이 추억에 잠긴 듯 저마다 얘기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이준이 휴대폰을 받침대에 올려두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 프로그램 덕분에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거지. 그렇게 잘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 했는데.”

은호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그땐 다들 망할 거라고만 하니까 우리도 주눅 들 수밖에 없었고.”

옆에서 듣고 있던 지호가 손을 저으며 끼어들었다.

“에이, 아니에요. 그래도 딱 두 분만큼은 우리 무조건 잘될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러고는 띄어져 있는 자리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표님이랑 윤 PD님!”

멤버들의 시선이 미래의 하준에게로 향했고, 강준도 말을 보탰다.

“생각해 보면 다 대표님 덕분이긴 하지. 채경 누나를 데려온 것도 대표님이었으니까.”

강준의 얘기에 일제히 고개를 주억거리는 멤버들.

그때, 이준이 하준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어왔다.

“근데요, 대표님.”

그와 동시에 일순간 흐릿해지는 하준의 시야.

이준의 마지막 말이 어렴풋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채경 누나는 어떻게 저희 회사로 들어오게 된 거예요?”

삐비빅- 삐비빅-

귓바퀴로 들려오는 휴대폰 알람소리.

눈을 뜬 하준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곧장 몸을 일으켜 헤더에 몸을 기대고는 눈을 지그시 눌렀다.

“후우.”

꽤 오랜만에 나타난 미래 예지.

오늘도 어김없이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었다.

* * *

“네?! 육아 프로그램이요?!”

사무실 소파에 둘러앉아 있는 아이들.

하준의 입에서 내뱉어진 얘기에 일제히 입을 벙긋거리고 있었다.

“응. 너희가 인터넷 방송 나온 걸 봤다면서 먼저 제안이 들어왔어. 신규 프로그램을 기획 중인데 너희를 섭외하고 싶다고.”

하준이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아, 정확히는. 너희를 먼저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네.”

“기, 기획이요? 그럼 저희가 고정으로 나가는 거예요?”

하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더욱더 멍한 표정들을 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지혜가 손뼉을 마주치며 박수 소리를 내왔다.

“이야! 실시간 검색어 1위도 모자라서 이젠 정규 방송까지 나가는 거야? 그것도 고정으로? 오, 니네 완전 출세했다?”

김지혜가 하준에게 물었다.

“대표님, 그래서 무슨 방송국인데요오?”

“NTV. 연출은 이번에 TBC에서 이적해 온 윤정유 PD가 맡을 거고.”

“헐, 대박! 그 PD님 엄청 유명하신 분이잖아요?!”

김지혜가 입을 벌린 채로 아이들을 쳐다봤다.

“니네 정말 대표님한테 평생 절하며 살아야겠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전혀 상상도 못 했을 일들인데.”

하준이 상석 소파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일단 이런 제안이 들어오긴 했지만 아직 확답을 준 건 아니야. 무엇보다 너희 의견이 가장 중요하니까.”

“아…….”

다들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준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혹시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지 알 수 있을까요? 저희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뭐든 다 열심히 하고 싶지만, 대표님 의견은 또 다르실 수도 있으니까.”

이준의 얘기에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주억거린다.

하준이 팔짱을 끼며 입술을 뗐다.

“음, 내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긍정적이야. 아직 구체적인 기획안이 나온 건 아니지만, 콘셉트 자체는 신선하게 느껴졌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제안을 해온 게 윤정유 PD라 더욱더 신뢰가 가기도 하고.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아, 네.”

“흔치 않는 기회인 건 분명해. 엄청난 운이 따라준 것도 맞고. 중요한 건 너희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느냐인데.”

하준의 시선이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너희가 만약 예능으로의 데뷔가 아니라, 정식 무대로 데뷔하기를 원한다면 아쉽더라도 이 제안은 거절하는 게 맞겠지. 내키지 않는 걸 억지로 하게 되면 결국엔 다 티가 나는 법이거든. 물론 그에 따른 결과는 안 봐도 뻔할 거고.”

간밤의 미래 예지를 통해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상황.

그럼에도 하준이 이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의 결정에 그저 순순히 따르기만 하는 선택보단, 자신들 스스로가 생각하고 결정하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 가길 바라는 마음.

이미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하준이었기에, 지금부터 이 다섯 아이들에게 그걸 심어주고 싶은 것이었다.

하준의 말이 끝나자 잠깐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아이들은 저마다 무언가를 깊이 고민하고 있는 듯한 얼굴들이었고.

그러다 이내 고개를 들고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아이들.

가장 먼저 입을 열어온 건 강준이었다.

“전 하고 싶어요. 아니, 무조건 해야만 된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가수가 되겠다고 자존심만 내세우다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어요. 이번 기회까지 놓친다면…… 또 상황이 어떻게 달라져 버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꽤 진지한 강준의 얘기에 은호도 입을 열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정식 무대면 어떻고, 또 예능이면 어떻겠어요. 저희를 알리는 게 가장 중요한 건데.”

지호와 하늘도 잇따라 말을 보태왔다.

“저도 평생 연습생으로만 남고 싶지는 않아요. 아무도 몰라주는.”

“정말 열심히 할게요, 대표님. 저 자신 있어요!”

하준의 시선이 마지막 이준에게로 옮겨졌다.

이준은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앞에서 애들이 다 해버렸네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대표님.”

이준의 미소 짓는 얼굴에 하준도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좋아. 너희들이 만장일치로 결정한 거니까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자. 미팅 날짜 잡아보도록 할게.”

“헤헤, 네 대표님!”

언제 그랬냐는 듯 일제히 들뜬 표정으로 바뀐 아이들이 한마디씩을 내뱉기 시작했다.

“우와, 육아 프로그램이라니. 지금부터라도 공부 엄청 해야겠는데요?”

“그러게. 아, 엄마한테도 물어봐야겠다!”

“난 오늘부터 육아 블로그만 판다.”

“참나, 야야. 우리한텐 서이준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얘 키즈 카페에 베이비시터 경력까지. 거의 육아박사나 마찬가지일걸?”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준에게로 달라붙었다.

“아! 맞아!”

“그리고 우리 다섯이서 애 하나를 못 볼까 봐? 오히려 너무 쉽게 해서 방송 재미없어지지 않도록 거기에 대한 고민들이나 하자고. 오케이?”

“아, 그런가? 네! 오케이!”

들뜸과 자신감이 공존하고 있는 아이들의 반응.

이미 미래를 알고 있는 하준은 그 모습들에 웃음이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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