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14화 (15/165)

14화

오전 시간, NTV 사장실.

보고를 마친 세련이 소파에 앉아 문서를 정리하고 있었고, 구세희는 자신의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계속 시끄럽던데.”

“인터넷 방송.”

“인터넷 방송? 뭐, 너튜브?”

“아니, 파프리카 TV.”

“응? 네가 그런 것도 봐? 웬일이래.”

낯선 구세희의 모습에 세련도 문서를 놓고는 모니터 쪽으로 다가왔다.

“뭐야. 떼로 나와서는 무슨 짜장면을 저렇게들 먹어댄대니? 어휴, 저게 대체 몇 그릇이야?”

모니터 속 흘러나오는 영상들을 좀 더 지켜보고는 세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 근데 얘네 엄청 순딩순딩하네? 누가 보면 BJ가 아니라 아이돌 애들인 줄 알겠다 얘.”

“아이돌 맞아.”

“응? 진짜? 처음보는 애들인데? 이름이 뭔데?”

“”

“? 그런 애들도 있었어? 내가 웬만한 아이돌 애들은 다 아는데.”

방송 관련 경험에 있어서만큼은 구세희보다도 더 오래된 세련이었기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구세희가 옅은 한숨을 내뱉고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다.

“아직 데뷔 전인 애들이야. 유하준이 키우고 있는 애들이기도 하고.”

“뭐? 하준이가? 걔 엔터 사업한다던 게 진짜였어?”

대답 대신 구세희가 커피잔으로 손을 옮겼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와, 유하준 진짜 의외네. 이런 쪽이랑은 완전 거리가 먼 줄 알았더니. 근데, 넌 저 영상을 어떻게 알고 보고 있었던 거야? 아직 데뷔도 안 한 애들인데.”

“엊그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왔길래. 소속사 이름이 유하준 회사랑 같더라고.”

“대박. 아직 데뷔도 안 한 애들이 실시간 검색어 1위까지 올랐다고? 그것도 인터넷 방송으로?”

이미 영상을 수차례 돌려봤던 구세희의 반응은 담담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이 하준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구세희는 마지막 남은 커피를 입안으로 털어 넘기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그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야.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아니, 그거 말고. 유하준 말이야.”

“유하준? 유하준이 왜?”

등받이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는 구세희가 말했다.

“언니, 유하준이 미국으로 간 게 군대 제대하고 바로였던 거 알지?”

“알지. 네가 그때 마지막으로 같이 찍은 사진이라며 보여줬을 때, 걔 머리가 빡빡이었으니까. 근데 그건 왜?”

“걔가 그러고 갔으니까 분명 돈이 하나도 없었을 거란 말야? 근데 아빠가 생활비 하라고 준 카드를 단 한 번을 안 썼대. 그것도 7년 동안이나.”

“음, 뭐 알바하거나 그랬던 거 아닐까? 설마 거기서 갱스터 짓을 했을 리는 없을 거니까.”

“근데 그러고 한국으로 와서는 바로 회사를 차렸단 말이지. 게다가 차도 고급 세단을 타고 있었고.”

“세단? 무슨 차였는데?”

구세희에게 차종을 들은 세련이 입을 쩌억 벌렸다.

“헐…… 미쳤다 얘. 그거 3억도 훨씬 넘는 차 아니니? 걔 진짜 미국에서 무슨 로또라도 당첨된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7년 만의 만난 하준은 분명 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외모뿐 아니라 풍기는 분위기들까지.

처음엔 단순히 오랜만에 만나 그럴 거라 여겼지만, 생각을 곱씹을수록 이유를 알 수 없는 의아한 마음이 자꾸만 피어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하준의 행보들로 인해 더더욱 그러했고.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구세희와 달리, 세련은 모니터 속 아이들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근데 세희야. 얘네 이렇게 인터넷 방송까지 나올 정도면 곧 데뷔도 하겠네? 그치?”

“그렇겠지. 그러려고 나온 걸 테니까.”

“그럼 하준이한테 얘기해서 얘네 첫 데뷔무대는 우리 방송국에서 하라고 하면 안 되려나? 벌써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면 얘네 뭔가 대박 기미가 보일 것 같기도 한데?”

세련의 제안에 구세희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됐어. 지가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그런 건 소속사에서 먼저 와서 부탁해야 하는 거지, 방송국이 뭐가 아쉬워서 먼저 그런 얘길 꺼내?”

구세희의 까칠한 반응에 세련이 말꼬리를 흐렸다.

“아니, 뭐 나는, 얘네가 잘 되면 첫방 무대가 계속 회자되고 할 테니까 그랬지이…….”

더 불똥이 튀기 전에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다시 문서를 정리하기 시작하는 세련.

아니나 다를까, 구세희가 뾰족한 목소리로 세련에게 물어왔다.

“그나저나 윤 PD는 대체 언제 기획안 올릴 거래? 그거 편성 날짜 정해진 거나 다름없는 건 알고 있지?”

“아. 안 그래도 이번 주 내로 올린다고 하더라. 윤 PD도 얼마나 부담이 크겠니? 종편으로 이적하고 첫 프로그램인데. 믿고 기다려 보자, 내가 계속 챙겨볼게.”

“그래, 나도 약속한 게 있으니까 요구하는 거 있으면 웬만하면 다 맞춰줘.”

“오케이! 그럼 나 나가본다? 수고해.”

세련이 사장실을 빠져나가고 나자 다시 조용해진 사무실.

구세희의 시선이 책상 위에 놓인 탁상형 달력으로 옮겨졌다.

한동안 어느 한 날짜에 시선이 머무는 구세희. 이내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

날짜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하준 모친의 기일이었다.

* * *

같은 시각, NTV 1층 로비에 위치한 커피 전문점.

하준과 윤정유가 한 편에 자릴 잡고는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캐주얼한 복장 위로 사원증을 걸고 있는 윤정유가 미소와 함께 먼저 입을 열었다.

“방송에서 하도 칭찬을 해대길래 왜 저렇게 오바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제 눈으로 직접 뵙고 나니까, 정말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단 생각이 드네요. 처음엔 대표 대신 소속 연예인이 나온 줄 알았다니까요? 훗.”

“하하, 첫 만남부터 너무 과찬이신데요.”

“응? 지나가는 사람 100명한테 물어보세요. 제 말이 맞나 틀렸나.”

앞에 놓인 라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윤정유가 말을 이었다.

“우선 제가 이렇게 뵙자고 한 이유는, 저희 새 프로그램에 대표님 소속 가수들을 섭외하고 싶어서예요.”

“네, 전화로 말씀하셨던 것처럼요.”

“그렇죠.”

윤정유가 말을 잇기 위해 입술을 달싹이던 때, 하준이 먼저 윤정유에게 질문을 건네왔다.

“우선 자세한 설명을 듣기 전에, 왜 저희 아이들을 섭외하고 싶으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무엇보다 아직 데뷔도 전인 애들을.”

처음 윤정유의 전화를 받고 나서 하준 또한 꽤 놀라운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이미 지상파에선 스타 PD로 분류되던 그녀의 이름이 흘러나왔기 때문에.

게다가, 그녀의 목적이 다름 아닌 아이들의 섭외 때문이라는 사실로 인해 더더욱.

예상치 못한 희소식임에는 분명했지만, 아직까진 윤정유의 속내를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였기에 먼저 질문을 건넨 것이었다.

윤정유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의아해하실 만한 부분이기는 하죠. 시청률을 생각하면 미친 짓이나 다름없는 거니까. 게다가, 게스트도 아닌 고정으로.”

‘고정’이라는 단어에 하준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

“아, 제가 전화로 거기까진 말씀 안 드렸나 보네요? 호호. 뭐 그거야 이제부터 하나씩 얘기해 가면 되는 거니까.”

윤정유가 말을 이어나갔다.

“우선 섭외를 결정하게 된 건 의 과거 이력들 때문이었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알바 경력들이 가장 흥미로웠구요.”

“음, 네.”

“거기에 2년 동안이나 방치된 채로 자급자족했던 아이들의 사연까지 더해지니까, 이거 뭔가 재밌는 그림이 나오겠다 싶더라고요? 아이디어들도 막 샘솟기 시작하고?”

얘길 내뱉고 있는 윤정유의 얼굴은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하준은 다음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고, 윤정유는 여유롭게 잔을 입으로 옮겼다.

“혹시 그게 전부인가요?”

“그럼 뭐 더 필요한 게 있어야 하나요? 혹시 듣고 싶었던 얘기라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생각 외로 너무 심플한 답변에 오히려 당황한 쪽은 하준이었다.

그런 하준의 표정을 읽고는 윤정유가 다시 입을 열어왔다.

“대표님, 혹시 제가 그동안 해왔던 프로그램들 본 적 있으실까요?”

“아, 네. 물론 다 챙겨보진 못했지만 대략적인 정보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역시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솔직하시네. 그럼 대략적으론 알고 계시다고 하니까 제가 그동안 어떤 부류의 출연자들로 프로그램을 꾸려왔는지도 잘 알고 계시죠?”

하준은 윤정유가 건넨 질문의 의도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전 무조건적인 시청률보단, 제가 재밌을 것 같은 프로그램만 만들어요. 그게 소재든, 콘셉트이든, 출연자든 간에. 그게 잘 먹히면 시청률은 알아서 따라오는 거고요.”

그간의 프로그램들로 손수 증명해 왔던 그녀였기에 내뱉을 수 있는 얘기들이었다.

하준 또한 그녀가 진심을 얘기한다는 것쯤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고.

하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저희 아이들 모두를 고정으로 출연시키고 싶으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그것도 단독으로.”

윤정유가 짧은 단발머리를 쓸어넘기고는 말을 이었다.

“프로그램 콘셉트부터 기획까지, 모두 아이들에게 맞춰서 짜볼 생각이에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라는 그룹을 대놓고 홍보하는 프로그램이 되게 하진 않을 거고요.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뭐든 자연스러운 게 중요하니까. 그렇죠?”

“풉. 눈치도 수준급이신데요? 맞아요. 주객이 전도되어선 안 되니까.”

“음.”

윤정유의 얘길 듣고 나자 하준의 입장에선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는 듯 보였다.

무엇보다, 성사만 된다면 인터넷 방송과는 그 파급력에서부터가 차이가 클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단순히 인지도를 조금 올리기 위해 시도해 보았던 인터넷 방송이 생각도 못 했던 큰 수확을 가져오고 있었다.

이번엔 윤정유가 질문을 건네왔다.

“혹시 구체적인 데뷔 일정들은 나와 있는 상태일까요? 저희 프로그램 시기랑 얼마나 겹칠지 미리 좀 알고 있으려고 하는데.”

“음, 이제 막 앨범 제작에 들어간 상태라 최소 몇 달은 걸리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스케줄상으로는 충분할 것 같고. 완전 딱이겠는데요?”

말을 마친 윤정유는 이미 섭외를 끝낸 듯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립밤을 꺼내 입술에 바르기 시작하는 윤정유.

그런 윤정유를 바라보며 하준이 질문을 건넸다.

“혹시 프로그램 콘셉트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안은 무척 감사하지만, 저도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프로그램일지 아닐지에 대해 판단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오, 그럼요! 물론이죠.”

주황빛으로 물든 입술을 뻐끔거리며 윤정유가 하준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고는 이내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입을 열어왔다.

“육아 프로그램이에요. 다섯 아이들이 함께 돌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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