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카페 내 테이블 두 개를 붙이고 앉은 아이들. 저마다 빨대를 물고는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때마침 하준이 주문한 아메리카노도 테이블 위로 올려졌다.
“대표님, 저 곧 끝나니까 금방 올게요.”
앞치마를 둘러맨 이준이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서두를 거 없으니까 천천히 마무리하고 와. 네 것도 계산해 뒀으니까 올 때 마실 거 챙겨 오고.”
“아, 감사합니다, 대표님!”
이준이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고, 아이들은 여전히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준이 아메리카노를 입으로 옮기며 말했다.
“검색어 내려온 지 한참 됐는데, 뭘 그렇게들 봐?”
“헤헤, 전 실시간 올라있을 때 바로 캡처해뒀거든요. 나중에 부모님이랑 친구들한테 자랑하려고!”
“야야, 나도 보내줘 얼른.”
은호가 지호를 채근해 댔고, 하늘도 입술을 뗐다.
“뭔가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서요. 혹시 꿈을 꾼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런 건 정말 유명한 사람들만 올라가는 건 줄 알았는데.”
“맞아, 맞아. 게다가 레티 형 말 대로 기사도 두 개나 떴잖아.”
고작 10분도 채 유지하지 못했던 실시간 검색어 1위.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마치 모든 걸 다 이룬 듯 기뻐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니 전혀 이해 못 할 반응들도 아니었다.
말없이 스마트폰만 바라보던 강준이 고개를 들고는 하준을 바라봤다.
“저, 근데요, 대표님.”
“응.”
“가 뭐예요? 어제 레티 형 얘기론 대표님이 그룹명이라며 키워드 요청하셨다고 하던데.”
강준의 물음에 아이들도 알고 싶었다는 듯 고갤 들어 하준을 바라봤다.
“그럼 저희 정말 그룹명이 정해진 거예요? 로?”
“VIP는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 는 뭐지.”
하준이 되물었다.
“왜, 별론 것 같아? 생각해둔 더 좋은 이름들이 있으면 그걸로 해도 상관은 없는데.”
“아, 아뇨, 아뇨! 그냥 무슨 뜻인가 그게 궁금해서요. 대표님이 정해주신 건데 당연히 좋죠, 저희는!”
일제히 고갤 끄덕이는 아이들에게 하준이 웃어 보였다.
“음, VIP 약자가 뭔지는 알지?”
“아…… 그게. 뭐였더라…….”
“아, 나 진짜 알고 있었는데!”
기억을 쥐어짜내려는 듯한 얼굴들 사이로 은호가 답을 해왔다.
“Very Important Person.”
하준이 고갤 끄덕였다.
“그렇지.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아, 맞아! 그거였어!”
“시험에도 나왔었던 건데! 으으으.”
하준이 귀엽다는 표정을 한번 지어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는 그냥 거기에 V 하나만 더 붙인 거야. 그리고 보통 상위 1%를 그렇게들 부르곤 하는데, 너희가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도 지어 본 거고.”
“아…… 와, 그럼 이중적인 의미네요? 저희가 대표님한테 매우 중요한 사람이기도 하면서, 상위 1%의 그룹이 되길 바라는!”
“뭔가 엄청 뭉클해지는 기분이에요.”
“왠지 과분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저마다 다른 감정들을 느끼고 있는 사이로, 하나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름에 걸맞은 그룹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대표님.”
아르바이트를 끝마치고 돌아온 이준이었다.
“어? 형 벌써 끝났어요? 아직 좀 남은 줄 알았는데!”
“그랬는데, 사장님이 ‘조건부’로 조기 퇴근시켜 주셨어.”
“조건부요?”
지호의 물음에 이준이 하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저, 그. 사장님께서 대표님 여자 친구 있는지 좀 여쭤봐 달라고…….”
이준의 갑작스러운 얘기에 하준이 눈썹을 살짝 올렸고, 상황을 파악한 아이들은 입을 막으며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죄송해요. 물어만 봐주면 한 시간 일찍 퇴근시켜 주겠다고 하셔서…… 저도 다들 기다리게 하기가 좀 그래서.”
은호가 웃음을 참아내며 낮은 목소리로 거들었다.
“크큭. 얘네 사장님 완전 ‘얼빠’시거든요. 서이준도 얼굴 하나 때문에 뽑혀서 남들보다 시급까지 더 받고 있다니까요?”
“아.”
하준이 카운터 쪽으로 잠깐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하준과 눈이 마주친 여사장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헹주를 집어 든다.
하준이 이준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다행이네.”
“네?”
“난 또 사장님이 남자면 어떻게 해야 하나 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아.”
진지한 얼굴로 내뱉는 하준의 얘기에 이준이 잠시 할 말을 잃었고, 아이들은 또다시 숨죽여 웃음소리들을 내어왔다.
하준이 표정을 풀며 이준에게 말했다.
“사장님껜 죄송하지만, 결혼해서 애가 둘, 아니, 셋이나 있다고 얘기해 드려. 혹시 그렇다고 해서 너한테 피해 가거나 그런 건 없겠지?”
“아, 그럼요. 저도 이번 주까지만 알바하기로 돼 있어서.”
말을 마친 이준이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 다시 한번 조심스러운 어투로 물어왔다.
“저 근데…… 그거 사실이에요?”
하준이 아메리카노를 입으로 가져다대며 웃어 보였다.
“그럴 리가.”
“아.”
이준까지 합류해 다섯이 된 아이들. 하준이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다들 어제 생방 해본 소감들은 어때?”
역시나 지호가 가장 먼저 입을 열어왔다.
“진짜 대박이었어요! 제가 인터넷 방송에 나갈 거라곤 정말 하나도 생각 못 했었거든요. 그것도 완전 초초초 메이저 BJ 방송에! 휴, 부모님한테 얼른 이걸 알려 드려야 하는데.”
“저도 지호 형이랑 같아요! 전 오늘 학교에 갔더니 방송 본 애들이 엄청 놀라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막 꼬치꼬치 캐묻더라구요. 제가 데뷔 준비하는 거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었거든요. 헤헤.”
하늘이가 말을 마치자 은호도 목소리를 내어왔다.
“처음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던데, 시청자가 막 8만을 넘어섰다고 하니까 그제야 막 실감이 나더라고요. 채팅창 반응들도 너무 신기하고.”
“실시간 검색에 올랐을 땐 완전 벙쪘고요.”
“맞아, 맞아!”
다들 격하게 공감한다는 듯 고개들을 세차게 끄덕였다.
“이준이는?”
“인터넷 방송 파급력이 그렇게나 큰 줄 몰랐어요. 오늘 알바하는 동안에도 먼저 알아보시고 같이 사진 찍자고 하시는 분들이 몇 분이나 계셨거든요. 아직 데뷔도 안 한 상태라 더 얼떨떨한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이준의 얘기에 은호가 눈동자를 키우며 되물어왔다.
“야, 진짜? 진짜 너 알아보고 막 사진 찍어 달라 하고 그랬어? 언제? 누가? 얼마나?!”
동갑내기인 은호는 이준이 굉장히 부러운 듯한 얼굴을 하고선 계속해서 채근해댔다.
후일담 및 소감들이 한동안 이어지는 동안, 하준은 온화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지켜봤다.
자신의 계획대로 흘러갔던 어제의 생방송. 결과물은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무려 8만이라는 사람들 앞에 아이들을 노출시킨 것은 물론, 방송 말미의 반응은 더할 나위 없이 호감적이었기 때문에.
첫 방송 경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녹아 내린 아이들, 그간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판을 깔아준 BJ 레티의 합이 잘 맞아떨어진 덕분이었다.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른 덕에 여러 커뮤니티에선 아이들이 언급되었고.
그 게시물들은 자연스럽게 ‘V.V.I.P.’라는 키워드의 결과물로 남았다.
거기에 김지혜가 미리 작업해 둔 블로그 및 몇몇 홍보 게시물들까지.
짧은 시간 안에 이처럼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었던 건, 모두 하준이 사전에 잘 짜두었던 전략 때문이었다.
-지이이잉.
그때, 하준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일기 시작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하준은 곧바로 통화를 연결했다.
“네, 유하준입니다.”
하준의 통화에 아이들의 대화도 잠시 멈추었다.
“아, 거의 다 오셨네요. 그럼 곧 뵙겠습니다.”
하준이 통화를 종료하자, 하늘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누가 또 오시는 거예요?”
“응. 그것 때문에 오늘 모인 거라.”
눈을 뻐끔거리고 있는 아이들을 순차적으로 바라보는 하준. 곧 다시 입을 열었다.
“트레이닝들 받아 보니까 어때? 선배님 말처럼 정말 바로 데뷔해도 무리 없는 수준들인 것 같아?”
“아, 그게.”
갑작스러운 물음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던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이준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시선을 느낀 이준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연습은 매번 최선을 다해서 해왔던 거라 다들 거기에 대한 자신감들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부족한 부분들은 선생님들이 코칭해 주시니까 개선도 빠르고요.”
침착한 어투로 이준이 계속 이어나갔다.
“근데, 이게 저희 곡이 아니다 보니까 정말 잘하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그냥 원곡자들을 흉내 내는 커버 영상 같은 것밖에는 안 되는 거니까.”
이준의 얘기에 아이들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하준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럼 결국 거기에 대한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겠네. 만의 곡을 만들어내는 거.”
그때, 하준의 귓바퀴 사이로 카페 자동문 열리는 소리가 옅게 들려왔고, 이내 누군가의 발소리가 가까워져왔다.
“후우. 이거 제가 너무 늦은 건 아니겠죠? 오랜만에 운전하려니 어디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어서. 하하.”
의문의 남자의 등장에 아이들은 일제히 물음표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고, 하준만이 일어나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여기서 이렇게 보니 신수가 또 달라 보이네요. 일단 앉으시죠.”
“하하, 그런가요? 다 대표님 덕분이죠 뭐.”
빈 의자 위로 착석하며 지현성이 하준에게 물었다.
“말씀하신 아이들이 이 아이들인가요?”
“네.”
“음, 이렇게 보니까 보내주셨던 영상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긴 하네요.”
말을 마친 지현성이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를 유심히 훑었다.
여전히 아이들은 남자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지현성이 입꼬리를 올리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다들 그런 얼굴로 쳐다들 보니까 이거 괜히 내가 민망해지는 기분인데? 얼른 내 소개부터 해야겠네.”
지현성의 얘기에 하준이 긍정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앞으로 향후 너희들의 모든 앨범을 맡게 될.”
아이들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이는 지현성.
“카인이라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