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Call me oh, Feel me up!”
연습실을 가득 매우고 있는 음악 소리에 맞춰 다섯 아이들이 안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안무 트레이너와 김진성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좀처럼 사라지질 않고 있었다.
“형, 암만 생각해도 얘네 진짜 물건인데요? 정말 트레이닝 한 번도 안 받은 애들 맞아요?”
“크큭.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평소엔 그렇게 얌전하던 애들이 음악만 나오면 아주 눈빛이 확 바뀐다니까.”
“아 그러니까요! 합들은 또 어찌나 좋은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짜 데뷔 몇 년차는 된 줄 알겠다니까요?”
“크크큭.”
그간 숱한 연습생들을 코칭해왔던 동생의 칭찬이 이어지자, 김진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무엇보다 자신 또한 이 일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기분 좋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력에 인성들까지. 괜히 유 대표가 이 녀석들을 선택한 게 아니었어. 역시 명성대로구만.’
하준의 과거 이력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그.
두 눈으로 아이들의 실력을 직접 확인한 이후로는 하준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더욱더 올라간 상태였다.
흐트러짐 없는 대형을 유지한 채 안무가 계속 진행되고 있던 그때, 연습실 입구 쪽의 문이 천천히 열려오기 시작했다.
그곳엔, 오늘도 역시나 완벽한 포머드 헤어를 갖추고 있는 ‘유 대표’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안무를 이어가던 아이들의 시선이 하준에게로 옮겨졌고, 하준은 멈추지 말고 계속하라는 짧은 제스처를 보냈다.
다가오는 하준을 바라보며 김진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공사가 다망하신 유 대표님 아니십니까?”
김진성의 얘기에 하준이 웃어 보이며 들고 온 커피와 간식들을 건넸다.
“애들은 잘하고 있나요?”
“네, 뭐. 스킬 같은 부분이야 보완해야 할 것들이 좀 있긴 하지만 기본기들은 아주 탄탄해요. 저런 건 하루아침에 생길 수가 없는 건데.”
김진성의 얘기에 안무 트레이너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하준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유 대표님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애들만 홀라당 맡겨놓고는 며칠 동안 얼굴도 안 비추시고. 이제 계약서에 도장 다 찍었다 이거지요?”
“하하. 그럴 리가요. 이래저래 처리할 일들이 있어서 좀 바빴습니다.”
앉아 있는 김진성을 내려다보며 하준이 말을 덧붙였다.
“뭐 솔직한 마음으로는 선배님이 애들을 맡아주고 있단 생각에 덜 신경 써도 되겠다 싶기도 했고요.”
“하, 참. 누가 보면 내가 어린이집 교사라도 되는 줄 알겠네.”
반가운 마음에 괜히 투정을 부려본 김진성은 빨대를 쭉쭉 빨아대며 하준에게 말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애들 합이 너무 좋아요. 안무를 할 때도 그게 전혀 기계적으로 느껴지지가 않는단 말이죠. 뭐랄까, 오로지 데뷔만을 위해서 뽑아놓은 애들한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깊은 유대감 같은 게 보인다고나 할까?”
아이들을 바라보는 김진성의 표정은 매우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만큼 서로 간에 벽이나 허물 같은 게 전혀 없다는 뜻이겠죠.”
평소 김진성이 무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하준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김진성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 당장 데뷔를 준비해도 무리가 없는 수준일까요?”
“흠…… 뭐 욕심을 부리자면 당연히 끝이 없겠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래도 충분할 것 같단 판단이에요.”
답을 마친 김진성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참. 이런 녀석들이 여태 데뷔도 못 하고 그 고생을 하고 있었으니. 이러니 이 바닥이 아이러니하다는 겁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그것 못지않게 따라줘야 하니까요.”
“음, 그렇죠.”
김진성이 다시 한번 표정을 바꾸며 하준을 쳐다봤다.
“하하. 뭐 그래도 저 녀석들은 이제 날아오를 일만 남았으니 그거면 된 거 아니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 대표님한테 선택받은 아이들인데요.”
하준의 능력을 백 프로 신뢰한다는 눈빛으로 김진성이 덧붙였다.
“그나저나, 저랑 하신 약속도 꼭 지키셔야 합니다. 유 대표님. 아시겠죠?”
“하하, 그럼요.”
트레이너가 아닌 ‘가수 김진성’으로서 다시 무대에 복귀하길 원하는 김진성.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울 것을 약속한 하준.
겉보기엔 꽤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 거래였지만, 남들은 알지 못하는 하준의 화려한 이력들을 김진성은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물론, 그 기대에 부흥할 만한 ‘정답지’ 또한 하준은 알고 있었고.
김진성이 아이들 쪽을 쳐다보며 화제를 돌렸다.
“흠. 그나저나 데뷔를 하려면 가장 중요한 데뷔곡이 있어야 하는데. 혹시 생각하고 계신 작곡가가 있으십니까?”
하준 또한 안무를 이어가고 있는 아이들에 시선을 두며 답했다.
“네.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만나고 오는 길이에요.”
“오, 그래요? 하하. 이번엔 유 대표님이 또 어떤 인물을 선택했을지 굉장히 궁금해지는데요?”
“카인이라고 아시죠?”
“아, 그 친구요? 알다마다요. 근데 그 친구 몇 년 전부터 이쪽 일은 전혀 안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뭐 좀 복잡한 문제들 때문에 TGM과도 계약이 해지됐다고 들었고.”
“네, 그랬죠.”
하준은 지현성과 있었던 일들을 요약해서 전달했고, 얘길 들은 김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랬군요. 평소에도 능력 있는 친구라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런 일들이 있었을 줄이야. 허, 참. 그런데도 기사 하나 안 난 게 신기하네요.”
“유명하다고는 해도 그동안 매스컴에 얼굴을 비춘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본인이 직접 밝히지 않으면 일반 사람들은 모를 수밖에.”
담담하게 내뱉는 하준의 모습에 김진성이 웃음소리를 내었다.
“하하, 참. 일부러 노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째 유 대표님이랑 일하는 사람들은 죄다 사연 있는 사람들로만 모인 것 같습니다?”
“뭐, 원래 누구든 사연 하나씩은 가슴에 품고 사는 법이니까요.”
하준과 김진성이 마주 보며 웃고 있던 그때, 연습실을 채우고 있던 음악 소리가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다섯 아이들이 하준에게로 달려왔다.
“대표님!”
며칠 만에 보는 아이들의 모습에 하준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연습들은 잘 하고 있지?”
“그럼요! 맨날 집이나 공터에서만 하다가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하니까 완전 딴 세상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게다가, 선생님들이 하나하나 다 지적해 주고 가르쳐 주시니까 뭔가 진짜 발전되는 느낌도 들고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조금 전 안무를 할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아이들의 모습에 하준은 미소가 지어졌다.
지호가 은호와 강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 중에서도 제일 신난 건 은호 형이랑 강준이 형이에요. 은호 형은 거의 안무 연습실에서 살다시피하고, 강준이 형은 진성 선생님한테 코칭 받으니까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는 느낌이래요!”
“그래?”
하준이 은호와 강준 쪽을 쳐다보자 옆에 있던 이준이 대신 설명해 왔다.
“저희끼리 연습할 땐 은호가 메인댄서, 강준이가 메인보컬이었거든요.”
미국 이민자 출신인 은호의 댄스 실력, 원래 솔로 가수를 준비했었던 강준의 보컬 실력에 대해선 하준도 이미 잘 알고 있던 터였다.
대화를 지켜보던 김진성이 입을 열어왔다.
“분명 둘이 특출하긴 하지만 나머지 애들도 기본 이상이에요. 덕분에 포지션 정하는 게 꽤 머리 아플 것 같지만. 하하.”
아직까진 미래에 대한 부분적인 정보들만 가지고 있는 하준이었기에, 새롭게 알아가는 사실 하나하나가 꽤 재밌고 흥미롭게 느껴졌다.
하준은 가지고 온 간식과 음료들을 아이들에게 건네며 말했다.
“다들 할 땐 하더라도 끼니는 제때들 챙겨 먹도록 해. 지금 니네 몰골로 카메라 앞에 서는 건 도저히 무리니까.”
하준의 말에 김진성이 킬킬거리며 동의했다.
“크큭. 그래, 니들은 살들 좀 찌워야 돼.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이건 뭐 아이돌이 아니라 그냥 앵벌이 뛰는 불쌍한 애들로 볼지도 모르니까.”
그동안 굶는 게 일상이었을 다섯 아이들의 얼굴엔 볼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아이들은 하준의 얘기에 씩씩하게 답하고는 간식들을 허겁지겁 먹어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다 하준이 입을 열었다.
“혹시 너희, 그동안 공연이나 무대에 섰던 경험 같은 건 있어?”
하준의 질문에 이준이 답했다.
“아뇨, 따로 그런 건.”
“그럼 카메라 앞에 서봤던 적은?”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던 은호가 되물어왔다.
“혹시 그 카메라가 휴대폰 카메라는 아닌 거죠, 대표님?”
이준이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대신 답했다.
“저희 다 팔도 기획에 온 이후로는 전혀 그런 경험은 없었어요. 다른 회사에 있었을 때 월말 평가나 백댄서 같은 걸로 서봤던 적은 있었지만.”
“흠.”
은호가 다시 하준에게 질문을 건네왔다.
“우욱, 근데 그건 왜요 대표님?”
하준은 빵빵해진 은호의 볼을 보며 미소와 함께 말했다.
“아냐, 일단 먹어.”
그러고는 김진성에게 물었다.
“선배님. 조금 있다 애들 데리고 잠깐 나갔다 오려고 하는데. 가능할까요?”
“허허, 대표님이 뭘 그런 걸 직원한테 물으십니까? 당연한 걸.”
이내 김진성이 궁금하다는 듯 하준에게 물어왔다.
“그나저나 어딜 다녀오시려고요?”
“음, 그래도 방송에 처음 얼굴 내보내는 건데 이 상태로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하준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샌드위치를 들고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준에게로 달라붙었다.
눈동자를 잔뜩 키우고 있는 아이들에게 하준이 말했다.
“선배님한테 듣기론 당장 데뷔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 같다던데.”
아이들이 침을 꼴깍 삼켰고, 하준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럼 우리, 정식 데뷔 전에 미리 인지도 좀 쌓아볼까?”
* * *
국내 최대 규모의 인터넷 방송 플랫폼, 파프리카 TV.
메이저 BJ들의 주요 방송 시간대인 밤 10시가 되자 하나 둘 방송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빠르게 시청자 수가 차고 있는 한 BJ의 방송.
게스트 합방 및 콘텐츠 위주의 방송을 주로 하는 그는 고정 팬층이 두터운 메이저 BJ 중 하나였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 시작을 알리는 BGM과 함께 대기화면 아래로는 수많은 채팅들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자, 반갑습니다 형님들! 추천 및 즐찾 한 번씩 부탁드릴게요!”
-응 안 해.
-저희 할머니가 물어보세요. 오늘 콘텐츠 뭐냐고.
-ㅋㅋㅋㅋㅋㅋ게스트 ㄴㄱ?
-24시간 방송 가즈아!
-빨리 게스트 불러라 ㄱㄱㄱ
“이것들은 방송 켜자마자 콘텐츠랑 게스트부터 찾네. 풍이나 쏘고 얘기해, 레게 놈들아!”
오늘도 역시 평화로운 파프리카 TV.
인터넷 방송 문화답게 BJ와 팬들 사이엔 다소 거친 대화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그런데.
-??? 헐
-와 뭐임?
-와, 미쳤다.
-대박. ㄴㄱ임?
-큰 손인가?
-ㅋㅋㅋ레티 계 탔네 오늘 ㅋㅋㅋ
-쩐다. 통 큰 팬 가입.
산만하던 채팅창의 분위기가 어느 순간 갑자기 단합되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와아아!!! 달풍선 3만 개!!!! 감사합니다, 형님!!!! 우리 팔도 형님 어서 오세요!!”
방송을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은 시점.
갑작스럽게 터진 거액의 달풍선에 BJ와 시청자 모두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격앙된 톤의 BJ가 리액션 전용 BGM을 틀고는 화면을 바라보며 입을 열어왔다.
“존경하는 팔도 형님! 원하시는 소원이나 리액션 있으시면 매니저 채팅으로 바로 말씀 주세요! 뭐든지 바로 갑니다!”
그로부터 몇 초 후, 매니저 전용 채팅창으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