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서울 북부 구치소 내의 한 수용거실.
4평 남짓한 방 안엔 여섯 명의 미결 수용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고.
복도에선 덜그덕거리는 바퀴 소리를 내며 소지들이 밥을 배식하고 있었다.
“소지! 밥 좀 많이 줘!”
“정량 배식이라 안 돼요.”
단칼에 거절하고는 밥과 반찬이 담긴 통을 소구멍으로 밀어 버리는 소지.
“썅. 이건 뭐 개밥도 아니고.”
“정량 배식 같은 소리 하네. 지들 챙겨 주는 방엔 산처럼 쌓아 주는 거 다 알고 있구만.”
재범들만 모여 있는 방이 보통 그렇듯, 소지와 거래할 만한 여유가 없는 상황에선 늘상 있는 일이었다.
불만 섞인 말들을 한마디씩 내뱉은 이들은 각자의 식판 위로 밥과 반찬들을 분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남자가 구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씨는 진짜 안 먹게? 나중에 배고플 텐데 조금이라도 먹지?”
“안 먹습니다. 많이들 드세요.”
남자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거절하는 그.
다른 수용자가 밥통을 대신 건네받으며 말했다.
“재판이 2주밖에 안 남았는데 지금 밥이 넘어가겠어요? 까딱하면 이전에 집행유예 받았던 것까지 다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자신의 얘기에도 여전히 그는 책으로만 시선을 고정했고, 다른 수용자들은 화제를 계속 이어나갔다.
“흠. 이번이 항소심이지? 아무런 변동사항이 없으면 기각될 확률이 높을 텐데 말야.”
“아무래도 그렇겠죠. 게다가 집행유예 기간에 또 일이 생긴 거니까 쌍집행유예 받을 확률도 희박하고. 뭐, 무조건 벌금형이 나오기를 기대해 봐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선 합의가 돼야지.”
‘합의’라는 단어에 다들 공감한다는 듯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잠잠했던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참, 어떻게 보면 억울한 경우이기도 해서 합의만 보면 쉽게 풀릴 텐데. 안 그래요? 쯧. 근데 정작 중요한 합의가 안 되고 있으니.”
“안 되고 있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는 거지.”
매일같이 붙어 있는 수용거실이다 보니, 말하지 않아도 대충 눈치로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이곳 구치소에 수감된 이후로 국선변호사를 제외한 그 누구의 접견도 없었던 그.
당연스럽게 영치금이 들어온 횟수 또한 ‘제로’.
평소, 같은 방 사람들과 거의 어울리려 하지 않는 그였기에 자세한 사연까지는 알지 못해도, 합의를 할 만한 여력이 안 되고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짧았던 대화는 거기서 더 이어지지 않았고, 수용자들은 식사에만 집중했다.
그때, 거실 내 설치 인터폰에서 알림 소리와 함께 교도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11방 지현성 씨. 접견 나오세요.”
순간 일제히 숟가락의 움직임을 멈춘 수용자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지현성에게로 옮겨졌다.
“지금 접견이라고 한 거 맞지? 변호인 접견 아니고?”
“그런 것 같은데요? 형씨, 접견올 사람이 있었던 거야?”
수용자들이 물어왔지만 지현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곳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를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지현성은 책을 덮고는 인터폰에 대고 입을 열었다.
“혹시 접견자 이름 알 수 있습니까?”
“아, 잠깐만요.”
교도관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지현성의 머릿속엔 그 누구도 떠오르질 않았다.
인터폰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유하준 씨입니다. 바로 나오세요.”
* * *
띠잉-
접견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와 함께 두 사람 사이의 타이머가 움직임을 시작했다.
투명 대화구 너머의 상대를 응시하며 지현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누구시죠? 저는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하준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유하준이라고 합니다. 물론 저도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고요.”
유독 돋보이고 있는 그의 왼쪽 손목의 시계를 잠시 쳐다본 지현성.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느껴졌던 낯설음은 직접 얼굴을 마주한 지금까지도 여전한 상태였다.
지현성이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선 물었다.
“혹시 피해자 쪽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사건 모두와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니 편하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말을 마친 하준은 타이머의 남은 시간을 확인했고, 곧바로 이어 말했다.
“우선 시간이 10분밖에 안 주어져서 바로 본론부터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지현성 씨.”
하준이 살짝 미소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아니, 카인 씨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갑자기 흘러나온 자신의 예명에 지현성의 눈동자가 커졌다.
하준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제가 여기에 온 이유는 지현성 씨를 저희 회사에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영입하고 싶어서입니다. 물론 ‘카인’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최고의 대우는 당연히 해드릴 거고요.”
카인, 본명 지현성.
이름 외에 별다른 정보가 알려져 있지 않은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형 기획사인 TGM의 전속 프로듀서였다.
세기도 힘들 정도의 수많은 히트곡은 물론이거니와, 지금껏 숱한 가수들을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장본인이기도 한 그.
소속 연습생들에겐 ‘데뷔 끝판왕’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현성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그 순간이, 곧 연습생 생활의 끝을 알리는 또 다른 신호라는 의미였다.
작곡 및 편곡 등을 통해 각종 차트를 씹어 먹은 것은 물론, 저작권료 순위에서도 항상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던 지현성, 아니, 카인.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자신의 천재성과는 전혀 무관한 사업들로 손을 뻗기 시작하더니,
결국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엄청난 빚을 떠안는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떠안은 빚들로 인해 결국 사기죄라는 죄명으로 형사고발까지 당하게 된 것.
물론 여러 가지 참작 사유들로 인해 집행유예라는 처분을 받게 되긴 했지만, 그간 쌓인 수많은 채무들은 여전히 그의 목을 옥죄어 오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채권자들로 인해 결국 TGM과의 계약 파기라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내몰렸고.
그런 희망 없는 나날들 속에 매일을 술에 의지하며 살던 중, 취객들과의 시비로 인해 이번 폭행 사건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미 집행유예 기간이었던 그는 무리한 액수를 요구해 오는 피해자들과의 합의에 결국 이르지 못했고, 결국 1심 법정에서 법정구속을 당하며 수감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준이 내뱉은 얘기에 귀를 의심하는 듯 지현성이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
“아뇨. 본인이 지현성, 아니, 카인이 맞다면 제가 맞게 찾아온 것 맞습니다.”
“…….”
하준의 확신 섞인 어투에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린 지현성.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옷자락을 집었다.
“혹시 농담하시는 건 아니시죠? 지금 제 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십니까?”
그러고는 하준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무래도 괜히 헛걸음하신 것 같네요. 이만 먼저 일어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는 지현성.
그런 지현성의 행동에도 하준은 침착한 음성을 유지하며 말했다.
“2주 뒤에 있을 항소심 재판. 충분히 가능성 있다더군요.”
“…….”
하준이 내뱉은 발언에 일어나려던 지현성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눈이 가늘어진 지현성을 바라보며 하준이 말을 이었다.
“유명 로펌에 물어보니, 집행유예 기간에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사건 자체가 경미하기도 하고 충분한 참작 사유도 있어서 벌금형으로 선고될 가능성이 아주 높을 거라 하더군요.”
“…….”
“물론, 합의가 된다는 가정하에서지만요.”
앞선 사건의 판결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만약 이번 사건까지 실형을 선고받게 된다면, 집행유예 기간에 벌어진 일이기에 해당 징역형까지 더해져 수감 생활을 하게 될 상황이었다.
일어섰던 자리에 다시 앉는 지현성을 바라보며 하준은 계속 이어갔다.
“물론 피해자 측에서 상당한 액수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고, 지현성 씨에겐 그만한 여력이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이미 저작권료에까지 압류가 들어가 있는 상태일 테니까요.”
이곳에 수감되어 있다는 것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조사하고 온 듯한 하준의 이야기들.
지현성은 꽤나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건의 변호사 선임을 비롯한 피해자와의 합의 문제까지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항소심까진 아직 2주의 시간이 남은 상태니 시간적으론 충분할 거고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재판 날짜만을 기다렸던 지현성.
그런 그에게 조금 전 하준이 내뱉은 얘기들은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 그것이었다.
간신히 입을 떼고는 지현성이 물었다.
“왜…… 굳이 저한테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저보다 더 잘나가는 작곡가들은 많을 텐데요.”
“음…… 글쎄요.”
턱을 매만지던 하준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뭐 일단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 같은 것 정도로 해둘까요?”
“…….”
앞에 놓인 타이머의 남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하준이 말했다.
“물론 저도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호의를 베푸는 건 결코 아닙니다. 그러니 그런 표정 지으실 필요도 없고요. 저한텐 카인의 천재적인 능력이 필요하고 거기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는 것뿐이니까요.”
띠잉-
하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지막 1분이 남았다는 알림음이 접견실 내부로 울려 퍼졌다.
하준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지현성의 눈을 마주했다.
“그럼 이제 지현성 씨의 대답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감옥에서 보낼지, 아니면 그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해 다시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지.”
말을 마친 하준이 앞으로 당겼던 몸을 다시 등받이에 기댔다.
“…….”
타이머의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지현성의 머릿속엔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있었다.
힘들던 시기에 믿었던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렸던 일,
안간힘을 다해 버티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수렁으로 빠져들던 나날들,
결국엔 모든 걸 놓을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
앞으로의 인생에 희망이라곤 두 번 다시없을 거라 생각했다.
분명, 분명 그랬는데.
지금 이 순간, 오늘 처음 마주한 맞은편의 남자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오고 있었다.
동시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생각들이 자신을 강하게 휘몰아치고 있다.
왠지 지금 이 손을 잡지 않으면, 다시는 그 어떠한 기회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점점 줄어드는 타이머.
이젠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지현성.
어느새 타이머의 시간은 2초밖에 남지 않은 상태가 되었고, 그 숫자가 다시 한 칸 아래로 떨어졌을 때.
지현성이 하준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띠잉-!
접견 종료를 알리는 커다란 알림음.
두 사람의 ‘동행’을 알리는 신호이자, 팔도 기획에 또 다른 ‘가족’이 합류됐음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