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7화 (8/165)

7화

“대박…….”

약속된 시간에 맞춰 숙소 앞으로 나온 아이들이 일제히 입을 벌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눈앞에 세워져 있는 검은색 하이 리무진의 정체 때문이었다.

평소와 달리 캐주얼한 차림의 하준을 바라보며 지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 대표님…… 설마 저희 이거 타고 가는 거예요?”

“응. 내 차는 5인승이라.”

짧게 답한 하준이 왼쪽 손목을 들어 올려 시간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자세한 얘기는 가면서 하는 걸로 하고. 일단 늦기 전에 출발부터 할까?”

“아, 네! 대표님!”

하지만, 씩씩한 대답과는 달리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차량 내부의 전경에 누구 하나 쉽사리 올라타지 못하고 있었다.

한동안 망설임이 이어지고 있던 때, 맏형 은호가 비장한 표정을 짓고선 갑자기 운동화 끈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양쪽 신발을 모두 벗어 버리더니, 이내 양말 차림으로 조심스럽게 차량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머지 아이들 또한 ‘역시 은호 형!’이라는 표정과 함께 일제히 같은 행동들을 취해댔다.

“……참.”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에, 하준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와, 이렇게 좋은 차는 태어나서 처음 타봐요!”

“여기가 우리 숙소보다 훨씬 좋은 것 같은데?”

“이런 건 연예인들이나 타는 건 줄 알았는데…….”

양쪽 손마다 신발을 끼워 넣고 있는 아이들의 감탄은 그칠 줄을 몰랐다.

운전석에서 안전벨트를 마친 하준이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타고 다닐 ‘너희들의 차’니까 그만들 신기해해도 돼. 우선 그 신발들부터 좀 신고.”

“아…… 헤헤. 넵!”

하준의 얘기에 그제야 신발들을 신기 시작하는 아이들.

하준은 백미러로 그 모습을 확인하곤 천천히 액셀을 밟아나갔다.

“근데요, 대표님. 저희 오늘 어디 가는 거예요?”

하준의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은호가 물어왔다.

아이들에겐 오늘 일정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던 터라 다들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하준은 내비게이션에 찍힌 남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아직 너희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해 본 적이 없더라고. 그래서 오늘 테스트를 한번 진행해볼까 해.”

하준의 얘기에 아이들이 눈동자를 키우기 시작했다.

말없는 눈빛만 서로 오고 가던 때, 이준이 물어왔다.

“혹시 그럼 오늘 테스트에 합격하지 못하면…….”

“뭐, 최악엔 탈락자가 생길 수도 있겠지. 잘 알겠지만 아직 우리가 정식 계약서를 쓴 건 아니니까.”

이전과는 사뭇 다른 하준의 냉정한 음성에 차량 뒷공간의 분위기는 일순간 긴장감으로 바뀌었다.

뒤이어 별다른 설명 없이 하준은 계속 차를 몰았고, 곧 내비게이션의 도착 알림과 함께 움직임이 멈추었다.

눈앞의 단독 주택 전경을 훑고는 하준이 뒷자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고 그렇게 긴장들 하고 있을 건 없어. 그동안 너희들이 얼마나 연습해 왔는지를 보고 싶은 거니까.”

대답 대신 비장한 얼굴을 한 다섯 개의 얼굴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곧 하준과 아이들이 차량에서 내렸고, 동시에 하준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웅장하게 열려오는 단독주택의 커다란 대문.

지잉-

잔디로 가득 메워진 마당을 걸어가는 동안에도, 아이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줄곧 유지되고 있었다.

잠시 후, 2층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한 남자.

1층으로 내려온 남자가 하준의 일행에게로 다가오자, 그의 정체를 확인한 아이들의 눈동자는 일제히 팽창되었다.

“얘기하신 보이그룹이 얘네들입니까?”

“네, 맞습니다.”

“흠. 겉보기엔 그냥 평범해 보이네요.”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김진성이 하준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 아님. 대표님 외모가 워낙 출중한 탓에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건가?”

첫 만남과는 사뭇 달라진 태도의 김진성을 보며 하준도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뭐, 내 소개는 굳이 안 해도 잘 알 거고. 오늘 여기에 왜 왔는지는 다들 알고 있지?”

잠시 당황한 아이들.

뭐라 답하기도 전에 김진성이 곧바로 안무 연습실을 가리켰다.

“테스트는 20분 뒤에 시작할 예정이니까 들어가서 바로 몸들 풀고 있어.”

김진성의 얘기에 아이들이 하준 쪽을 힐긋 쳐다봤다.

하준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곧바로 대답과 함께 김진성이 가리켰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자, 김진성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며 말했다.

“그때도 말씀드렸듯이 일단 테스트만 해보는 겁니다. 아무리 제안이 끌린다고는 해도 애초에 실력도 없는 애들을 맡고 싶은 생각은 1도 없으니까요.”

“물론입니다. 저도 냉정하게 판단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에 테스트를 부탁드린 거니까요.”

김진성이 담뱃불을 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단 말이죠.”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하준을 쳐다봤다.

“이미 미국에서 그렇게나 큰 성공을 거두고 오신 분이, 굳이 왜 여기까지 와서 저런 애들을 맡으려고 하시는 건지.”

이미 지난번 만남을 통해 하준의 화려한 이력들에 대해 알게 된 김진성.

처음 얘길 들었을 당시만 해도 그의 머릿속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사기꾼’.

아무리 얼굴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라고는 해도, 이미 숱한 매스컴 보도를 통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 ‘닉네임’이 하준의 입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앞에 놓인 레몬에이드를 끼얹을 뻔한 상황.

하지만 곧 하준이 증명해 온 자료들을 보고 나자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뒤로 하준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 바뀌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럼에도, 하준의 지금 행보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고 있어 꺼낸 얘기였다.

하준이 안무 연습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짧게 답했다.

“음, 글쎄요.”

그러고는 다섯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마 테스트가 끝나고 나면 선배님께서도 그 이유를 알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 * *

김진성과 안무 담당 코치, 그리고 전속 댄스팀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습실 중앙엔 다섯 아이들이 대열을 갖췄다.

건네받은 파일을 보며 김진성이 물었다.

“흠. 많고 많은 곡 중에 굳이 왜 이런 난이도가 높은 곡을 고른 거지? 잘못하면 헬파티가 나기 십상일 텐데.”

김진성의 물음에 센터에 서 있던 이준이 답했다.

“아, 가장 자신 있는 곡으로 선택하라고 하셔서.”

김진성이 숨을 한번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직접 보면 알게 되겠지. 그럼 바로 가볼까?”

김진성의 얘기에 아이들이 심호흡을 내뱉었고, 이내 음악이 시작되었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노래는 ‘Emergency’.

현재 국내 아이돌 그룹 중 단연 최고라 불리우는 레드엑스의 최고 히트곡이자, 대형 소속사인 TGM의 안무 팀이 작정하고 만든 것으로 소문난 고난이도의 곡이었다.

각 멤버들의 연습생 포함 활동 기간이 전원 10년을 넘어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 데뷔도 못 한 아이들이 소화해 내기란 결코 쉽지 않아보였다.

-삐이이이이이잉.

반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대열을 흐트러뜨리는 아이들.

소심했던 모습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짓고 있는 표정부터 동작의 움직임까지 곧바로 곡 자체에 빠져드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호. 일단 시작은 그럴싸한데요?”

안무 트레이너의 얘기에 김진성 또한 일단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입부부터 시작되는 빠른 템포와 칼군무가 3분여 동안 줄곧 이어진다는 것이 이 곡의 특징.

체력뿐 아니라 대형을 끊임없이 변형시키며 움직여야 하기에 멤버 전원의 합이 굉장히 중요시된다.

물론 그렇기에, 원곡자인 레드엑스조차도 거의 반 립싱크나 마찬가지인 AR 형태로만 라이브 무대를 소화해 왔었고.

‘흉내 내기만 급급하겠군.’

그래도 하준이 선택한 아이들이라 뭔가를 보여줄 거라 기대했던 김진성.

하지만 초이스된 곡만으로도 그는 이미 결론을 내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So special, So special. This is emergency.”

첫 파트 담당이었던 이준이 육성으로 음을 내오기 시작하자, 김진성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가늘어졌다.

이 곡을 선택했을 때부터 당연히 안무만 진행할 거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라이브를 하겠다고?’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 앞에서 라이브를 선택한 아이들.

고난이도의 곡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금이 테스트 상황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대담함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안무만이라도 엇비슷한 느낌을 낼 줄 알면 그걸로 다행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It’s so nice day.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so special feeling.”

“머릿속을 파고드는 뉴런들의 움직임.”

뒤이어 나오는 파트 또한 격한 안무 속에서도 줄곧 라이브를 유지해 나간다.

초반부를 지나 중반부로 들어서자 김진성의 눈빛은 처음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하, 이것들 봐라.’

“숨 쉴 틈 없는 이곳은 너와 나의 emergency room!”

강준이 3옥타브를 넘어서는 음역대까지 무리 없이 소화해 냈을 땐,

와-!

우어어어어!

지켜보던 다른 이들의 감탄 소리가 연습실을 가득 메웠다.

“와, 형. 얘네 뭐예요?”

옆에서 지켜보던 안무 담당 동생의 물음.

입까지 벌리며 뱉은 그 말은 질문인지 감탄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점점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무대.

그에 맞춰 아이들의 동작 또한 더욱더 거칠며 타이트해지고 있었다.

대체 숨을 언제 쉬는 건가 싶은 의문이 들 정도의 완벽한 라이브 또한 전혀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었고.

‘하, 참.’

김진성은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감의 원천이 이거였었나.’

이 곡을 선택했던 아이들을 향한 생각임과 동시에, 자신의 옆에서 팔짱을 낀 채로 서 있는 하준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마치 이미 이 테스트를 요청했을 때부터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태도.

왜 이 아이들을 선택했냐는 자신의 질문에 곧 알게 될 거라던 대답.

짧은 시간 동안 김진성의 머릿속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가고 있었다.

“Emergency, Emergency, Emergency.”

원형을 그리며 느리게 걷는 것으로 끝을 맺은 3분여간의 무대.

“와!”

“와!!!!”

짝짝짝짝짝짝짝짝-

음악이 꺼짐과 동시에, 지켜보던 댄스 팀에서 환호성과 함께 박수 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그제야 아이들도 참아왔던 숨들을 거칠게 몰아쉬며 다시 원래의 눈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와, 형. 이건 뭐 더 볼 것도 없겠는데요?”

같이 테스트를 진행하던 동생이 체크리스트를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 활동하는 애들 중에서 이 정도의 곡을 이렇게까지 소화해 낼 수 있는 애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심지에 얘네는 이걸 생라이브로 했잖아요!”

입까지 벌리며 연신 감탄을 내뱉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와, 정말 이해가 안 되네…… 이 정도면 진작 데뷔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별다른 코멘트를 하진 않았지만, 김진성 또한 이견은 없었다.

무엇보다, 어떠한 준비도 없이 갑자기 이뤄진 테스트 자리였음에도 이 정도 실력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그를 놀라게 했고.

다섯 아이들을 바라보며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진성.

여전히 뭔가가 쉬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분명 몇 년이나 방치돼 있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이들의 과거에 대해선 하준을 통해 짧게나마 전해 들은 상태.

그 어떠한 전문적인 코칭조차 받지 못했던 아이들이 이렇게나 완벽한 합을 보여줬다는 사실이 쉽사리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김진성이 곧 결정을 내린 듯 안무 트레이너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그러고는 다섯 아이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

김진성의 진지한 음성에 휴식을 멈추고는 일열로 맞추는 아이들.

“방금 했던 무대, 똑같이 다시 한번 해볼 수 있지?”

“아…… 네!”

의미를 알 수 없는 그의 표정에, 아이들은 흐르는 땀들을 급하게 닦고는 다시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안무 트레이너가 아이들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건넨 건 바로 그때였다.

“대신 이번엔, 그 안대를 한번 끼고 해봤으면 하는데.”

안대를 건네받은 아이들의 얼굴 위론 당황한 기색들이 떠올랐다.

“갑자기 저런 걸 왜 시키는 거야?”

“응? 안대를 끼고 춤을 어떻게 춰? 뭐가 보여야 하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변 댄스팀 사이에서도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하지만, 김진성의 표정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잠깐의 눈빛을 주고받던 아이들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 위를 덮었고, 그에 맞춰 음악도 재생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재연되는 무대.

난생처음 보는 낯선 장면들에 모두가 숨죽이며 아이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들 때문에.

하지만, 모두의 생각을 일순간 깨버린 건, 첫 소절이 내뱉어진 것과 거의 같은 타이밍이었다.

“뭐야……? 저거 투명 안대 아니지?”

“헐,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분명 어둠 속을 헤매고 있어야 할 열 개의 눈들.

하지만, 마치 모두를 비웃기라도 하듯 본래의 역할들을 완벽히 해내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이전의 무대와 조금의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들의 침묵은 감탄으로 바뀌어갔고, 입에서 내뱉어지는 말들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는 욕설이 가득 섞인 칭찬, 또 다른 이는 마치 믿는 종교의 누군가를 본 듯한 반응들로.

다시 3분여간의 무대가 끝을 맺었을 땐, 이전과는 데시벨부터가 확연히 차이나는 환호성이 연습실이 가득 채웠다.

“호오오오오오!! 찢었다 진짜!”

“와, 소름이다. 소름!!”

“니네가 다 해먹어라!!”

그와 동시에, 줄곧 굳어 있던 김진성의 표정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제야 물음표로 떠 있던 의문들이 해소되었다는 듯이.

그칠 줄 모르는 환호성들 사이로, 김진성이 하준을 쳐다봤다.

하준 또한 기다렸다는 듯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평소라면 사무실로 출근했어야 할 오전 시간이었지만, 하준이 차를 몰고 온 곳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도착한 장소는 ‘서울 북부구치소’.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린 하준이 왼쪽 손목을 들어 올려 시간을 확인했다.

늦지 않게 도착했음을 확인하고는 곧장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는 하준.

잠시 후 그가 도착한 곳은.

수용자들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접견 대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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