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며칠간의 중공사를 끝마친 팔도 기획의 사무실은 어느새 완연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사무실 곳곳을 걸레로 닦아내던 김지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다 쓰러져 갈 것만 같던 사무실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다니…… 진짜 대표님 너무 대단하신 것 같아요!”
낡아빠진 철제 책상이 있던 자리에 새롭게 공간을 마련한 하준이 커피를 마시며 무심하게 답했다.
“뭐, 제가 직접 한 건 아니니까.”
“치. 어쨌든 그 돈도 결국 다 대표님 능력이거든요?”
걸레질을 잠시 멈춘 김지혜가 하준의 책상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음음, 근데요, 대표님. 대체 언제까지 저한테 그렇게 존댓말 하실 거예요? 저 굉장히 불편하단 말이에요오.”
“존댓말이 불편할 게 있나요? 전 제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는 건데.”
“어어어어엄청 불편하거든요?! 꼭 언제라도 내칠 사람처럼 선 긋는 것 같단 말이에요!”
“흠.”
커피잔을 내려놓은 하준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는 김지혜를 바라봤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 한번 얘기하려고 했었는데. 고마워요 지혜 씨.”
“응? 갑자기 뭐가요?”
“지혜 씨가 계속 사무실에 있어준 덕분에 아이들도 계속 버티고 남아 있을 수 있었어요. 그게 아니었다면 제 계획들도 꽤 많이 틀어졌을 수 있었는데.”
“……제 덕분에요?”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지혜에게 하준은 살짝 끄덕였다.
“물론 지혜 씨는 모르겠지만, 매일 사무실 문밖에서 아이들이 불이 켜져 있는 걸 확인하고 돌아갔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하루도 빠짐없이 청소하던 지혜 씨 모습까지도.”
“아…….”
“아마 하루라도 불이 꺼져 있었다면 아이들의 희망도 거기서 꺾여 버렸을지 모르죠. 모두 지혜 씨 덕분이에요.”
전혀 예상치 못한 얘길 들은 김지혜는 순간 괜히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치…… 왔으면 인사라도 하고 갔어야지. 멍충이들.”
“그러니 지혜 씨를 제 쪽에서 먼저 내치는 일 같은 건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만 해주세요.”
“힝, 대표님…….”
오늘도 어김없이 빛이 나고 있는 하준의 외모였지만, 조금 전 들은 얘기들로 인해 그 멋짐이 더욱더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하준이 커피잔을 다시 들어 올리며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네!”
“정 불편하다면 말은 편하게 하도록 할게.”
“헤헤…… 네 대표님! 감사합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김지혜는 다시 하던 일을 이어갔고, 하준도 커피잔을 입술로 옮겼다.
팔도 기획의 새 출발을 위해 필요한 사무적인 준비들은 얼추 끝마친 상태.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계획들이었기에 하준은 신중하면서도 빠르게 그것들을 실행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습관적으로 왼쪽 손목을 올려 시간을 확인하는 하준.
가운데 마련된 짙은 회색 계열의 소파를 닦아내던 김지혜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대표님. 그럼 애들 숙소는 이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거예요?”
“응. 애초부터 다섯이 살기엔 무리인 곳이었으니까.”
“휴, 정말 잘됐다. 안 그래도 그 좁은 곳에서 잠도 자고 연습도 했다길래 너무 안 됐다 싶었는데.”
옅은 한숨을 내뱉은 김지혜가 곧 조심스러운 어투로 다시 입을 열어왔다.
“저, 근데요. 대표님…….”
“응.”
“애들 정말 괜찮을까요……?”
김지혜의 물음에 하준이 고갤 들어 쳐다보자 김지혜가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 그러니까 제 말은! 음…… 애들이 트레이닝도 제대로 못 받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몇 년이나 지내왔는데 괜찮을까 해서요. 그 시간 동안 다른 기획사 애들은 엄청 체계적으로 준비해 왔을 텐데.”
말없이 듣고 있는 하준에게 김지혜는 조금 더 덧붙였다.
“제 친구 중에 TGM에서 일하는 애가 있는데, 거긴 워낙 대형 기획사라 그런지 연습생들 간에 경쟁도 엄청 치열하고 데뷔조로 확정되고 나면 그때부턴 전문가들이 수십 명씩 달라붙어서 코칭하고 한다더라구요. 근데 그에 비해 우리 애들은…….”
말끝을 흐린 김지혜가 조심스럽게 하준의 눈치를 살폈다.
하준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짧게 내뱉고는 남은 커피잔의 커피를 모두 입안으로 옮기는 하준.
“전문가의 손이 닿는 것과 안 닿는 것의 차이는 클 테니까.”
커피잔을 내려놓은 하준이 왼쪽 손목을 들어 올려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했고, 이내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다녀오시게요, 대표님?”
“응.”
짧게 답한 하준이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덧붙였다.
“마침 우리한테도 딱 맞을 것 같은 전문가가 떠올라서 말이야.”
* * *
단독주택으로 이루어진 논현동 소재의 한 건물.
1층으로는 안무 연습실과 보컬 트레이닝실이, 2층 전체는 스튜디오 녹음실로 이루어진 꽤 큰 규모의 공간이었다.
“We love, We love 내 손을 놓지마.”
“We love, We love 밤새워 너와 will Love.”
격한 안무에 맞춰 라이브를 소화해내고 있는 일곱 명의 멤버들.
앞쪽에 놓인 두 개의 의자에는 안무 코칭을 담당하고 있는 트레이너와 매서운 시선으로 멤버들을 지켜보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yo, 뜨거운 사막 위에 놓여진 너와 나, 바람 하나 없는 이곳은 for once in my life.”
이 으리으리한 단독주택의 주인이기도 한 남자의 정체.
바로, 한때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손꼽히는 실력파 가수 중 하나로 인정받았던 김진성이었다.
무릎 위에 놓인 파일 위로 무언가를 계속 체크해 나가고 있는 그의 미간은 꽤나 주름이 잡혀 있었다.
“이렇게 우리 둘이, We love.”
약 3분여간 진행되었던 무대가 끝을 맺자, 7명의 멤버들은 그제야 거친 숨들을 몰아쉬었다.
“음악 꺼.”
김진성의 얘기에 음악이 꺼졌고, 숨을 몰아쉬던 아이들도 그의 생기 없는 음성에 숨소리를 죽이고는 다시 대열을 갖추었다.
여전히 미간이 구겨진 상태로 김진성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얘기해 봐. 니들 사이 안 좋지?”
“……아닙니다!”
“근데 왜 이렇게 합들이 안 맞아? 그냥 딱딱 동선 지키면서 자기 할 것만 하면 완벽해 보이는 줄 알아?”
“…….”
“잘 들어. 니네가 1집은 그런 식으로 해서 어떻게 잘 끝냈을지 모르겠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하다간 그나마 있던 팬들도 다 떠나 버릴 거다. 노래든 춤이든 기계적으로만 하려 하지 말고 영혼을 좀 담아내란 말이야.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에휴. 내가 백날 얘기해 봤자 뭐 하겠냐. 회사 시스템들이 그 모양인데.”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젓고는 김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앉았던 자리에 체크리스트를 그대로 던지듯 내려놓으며 멤버들을 쳐다봤다.
“라이브 실력에 대해서는 내가 굳이 얘기 안 해도 알겠지? 평생 콘서트 안 할 생각 아니라면 진짜 연습들 좀 하자. 응?”
“네!”
잔뜩 얼어 있는 아이들을 일별하곤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김진성.
안무 연습실을 빠져나오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하여튼 대형 기획사라고 다를 거 하나 없구만. 스토리가 없으면 영혼들이라도 있어야지, 자식들이.”
이젠 가수라는 타이틀에서 트레이너로 전향한 게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해진 기억.
급격히 바뀌어 버린 가요계의 판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지만, 하루도 즐거움을 느껴본 적이 없는 나날들이었다.
얼굴을 스쳐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꺼내 무는 김진성.
라이터의 부싯돌을 붙이려던 그때,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에서 진동이 일기 시작했다.
“네, 여보세요.”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걸려온 수화기 너머에서 낯선 남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남자의 얘기를 듣고 난 김진성은 담배를 문 채로 되물었다.
“……어디라고요? 팔, 뭐요?”
* * *
김진성의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커피 전문점.
이제 막 테이블 위로 전달된 두 개의 음료 잔을 사이에 두고, 하준과 김진성이 마주 앉았다.
김진성이 레몬에이드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여기까지 직접 오시겠다고 해서 뭐 일단 수락하긴 했는데. 그 ‘팔도 기획’이라는 곳이 정확히 뭐 하는 곳이죠?”
질문을 건네고는 빨대를 물며 혼잣말을 짧게 중얼거렸다.
“설마 뭐, 라면 회사는 아닐 거고.”
김진성의 얘기에 하준이 살짝 웃어보이고는 답했다.
“하하, 네. 물론 그런 쪽은 아닙니다. 신생 엔터 회사다 보니 생소하신 게 당연하고요.”
“음, 그렇군요.”
크게 관심 없는 듯한 얼굴로 레몬에이드를 계속 빨아대던 김진성이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럼 대표님이신가? 외모만 보면 직접 필드를 뛰어도 되실 만한 비주얼인 것 같은데. 그나저나 저한텐 무슨 용건으로?”
크게 바쁠 만한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진 않은 게 김진성의 속마음이었다.
그런 김진성의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하준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저희 팔도 기획의 트레이닝 코치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곧 데뷔 20주년을 맞는 김진성.
발라드가 대세를 이루던 시대에 해성처럼 나타나 수많은 히트곡들을 남긴 인물.
물론 지금도 그 실력이 크게 줄어든 것인 아니었지만, 아이돌 위주의 시장으로 급변해 가는 가요계 속에서 점차 설 수 있는 무대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벌써 수년째 대형 및 중소 기획사들의 아이돌 그룹들을 코칭하며 완전히 트레이너로서 전향한 그.
하지만 애초에 흥미가 있어 시작한 일도 아니거니와, 실력파 보컬이었던 그에게 아이돌 연습생들의 실력이 만족스러울 리 만무했다.
그렇기에 조금 전 하준이 건네온 제안은 전혀 끌리지 않는 그것이었고.
무엇보다 대형, 중소도 아닌 이름부터 촌스러움을 가득 자아내고 있는 신생 기획사였기에 더더욱.
“흠. 지금 준비하고 계신 그룹이 보이그룹인가요? 아니면 걸그룹?”
“보이그룹입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던져본 질문이었던 터라 김진성은 그저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들고 있던 레몬에이드를 내려놓으며 김진성이 말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현재 맡고 있는 애들만으로도 도저히 여유가 생기질 않아서.”
만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나온 김진성의 거절.
하지만 마주 보고 있는 하준의 표정은 여전히 온화한 상태였다.
“그 이유가 전부이신가요?”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김진성이 눈썹을 살짝 올리자 하준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치는 아이들을 코칭한다는 게 썩 즐거운 일이 아닐 거라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게다가 그게 신생 기획사 쪽이라면 더더욱 그러실 거고요.”
다소 직설적인 하준의 발언에 테이블로 뻗으려던 김진성의 손이 잠시 허공에서 멈추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속마음을 이미 꿰뚫고 있다는 듯한 그의 여유로운 태도 때문에.
‘뭐지, 이 인간은?’
허공에서 멈추었던 손을 거두고는 몸을 등받이에 붙여 팔짱을 끼는 김진성.
시선은 여전히 하준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좀 더 흥미를 느끼실 만한 제안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은 채 하준이 덧붙여 말했다.
“물론, 지금의 김진성 씨에겐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일이 될 거라 확신하고요.”
설립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생 기획사 대표의 태도라고 하기엔 믿기 힘든 여유로움과 자신감.
평소 김진성의 성격이라면 괜히 허세나 부리는 것 정도로 치부해 버렸을 일이었지만, 웬일인지 그의 두 번째 제안에 대해 들어보고 싶단 생각이 불쑥 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미 거절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에서 몇 분 정도 더 할애하는 게 큰 노고는 아니었으니까.
“그 흥미로운 제안이라는 게 어떤 겁니까?”
김진성의 물음에 하준이 곧바로 입을 열어왔다.
“트레이너가 아닌, 가수로서 다시 무대에 서게 해드리겠습니다.”
“…….”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답변이 돌아오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린 김진성.
제안의 내용 그 자체에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이 말을 내뱉은 상대가 듣도 보도 못한 신생 기획사의 대표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단순한 허세라고 보기엔 도를 크게 지나친 상황.
김진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뭘 하게 해준다고요?”
김진성의 날카로운 음성에 하준이 몸을 앞으로 당겼다.
“우선 그 전에.”
그러고는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사뭇 달라진 분위기로 입을 열었다.
“저에 대한 소개가 먼저일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