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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스타 메이커-4화 (5/165)

4화

어두컴컴함과 습함이 공존했던 ‘B101’의 분위기는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이미 수일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던 천장 아래의 형광등은 새 것으로 교체되었고.

마트에서 사온 각종 탈취제들은 집안 곳곳에서 각자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굽히고 있는 삼겹살을 바라보며 지호가 꼴깍 침을 삼켰다.

“와…… 우리 숙소에서 이런 냄새를 맡을 줄이야…….”

가장 맏형들이자 동갑내기인 이준과 은호, 한 살 아래의 강준을 비롯해 막내 하늘까지.

젓가락을 든 채 둥글게 둘러 앉아 있는 네 명의 표정 또한 지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헥, 헥.”

하준의 무릎 위에 올라타 전혀 내려올 생각을 않고 있는 보리까지.

조금 전 갈아입은 바지 탓에 무척이나 매칭이 되질 않고 있는 하준의 상하의를 바라보며 이준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평소 배변만큼은 절대 실수하는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보리가 너무 흥분을 했나 봐요.”

이준이 빌려준 트레이닝복 바지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보리를 번갈아 쳐다보며 하준이 답했다.

“괜찮아. 편하고 좋은데 뭘.”

잠깐의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다섯 명의 얼굴을 무사히 모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스러운 마음이 드는 하준이었다.

무엇보다,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여태껏 버티고 있어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크기도 했고.

하준이 잠시 시선을 다섯 아이들에게로 고정시켰다.

가진 재능과 실력이랑은 상관없이 수년간 방치되어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던 아이들.

물론 매년 크고 작은 기획사들에서 100팀도 넘는 아이돌 연습생들이 데뷔 준비를 하고 있고, 그중 대부분이 실패로 끝난다는 현실을 고려해 본다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사연이기는 했다.

이 바닥에서의 성공이란, 재능과 실력 외에도 무수히 많은 요인들을 수반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무려 7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하준이 이곳까지 온 이유.

지금은 고작 삼겹살 하나에도 눈빛을 반짝이고 있는 이 다섯 아이들이, 그리 머지않은 미래엔 완벽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까지.

“야!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그걸 입으로 쑤셔 넣냐?!”

“돼지고기는 원래 덜 익혀서 먹는 거랬거든요? 와, 존맛탱.”

물론, 하준이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엔 분명한 이유가 존재했다.

“대표님, 이거 드세요. 고기 두 개나 넣었어요! 헤헤.”

바로, 오직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정답지’의 존재.

하준의 진지한 표정 앞으로 상추쌈 하나가 불쑥 다가왔다.

고개를 돌리니 막내 하늘이가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준은 상추쌈을 건네받으며 되물었다.

“대표님?”

오자마자 일련의 사건부터 해결하느라 아직 하준 자신에 대한 그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앞으로의 계획들에 대해 얘기해 준 적 또한 없었으니 대표님이라는 호칭은 더더욱 시기적절하지 않았고.

하준의 물음에 덜 익은 삼겹살을 뒤적거리던 은호가 대신 답을 해왔다.

“실은, 아까 나가셨을 때 지혜 누나가 잠깐 찾아오셨거든요. 회사가 인수되면서 대표님이 대표님으로 바뀌었다고.”

그러고는 동갑내기인 이준을 잠깐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리고?”

“마음에 준비들도 하고 있으라고요.”

당시 자리에 없었던 이준은 조금 전 은호의 얘기를 듣고는 마치 뭔가를 이해했다는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은호는 담담한 어투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저희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어요. 회사에선 이미 저희를 포기한 지 오래인데, 이렇게 버티고 있다 해서 딱히 희망이 있거나 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젓가락을 든 채 묵묵히 듣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표정 또한 은호, 이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냥 저희는…….”

은호가 짧게 내뱉고는 말을 멈췄다.

“이게 최선이었어요.”

그리고, 이준이 대신 말을 맺어주었다.

“…….”

두 맏형들의 얘기에 일순간 가라앉아 버린 분위기.

불판 위의 고기는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고, 하준에게로 고개를 돌린 아이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마치 선고가 내려지기를 기다린다는 듯이.

“흠…….”

자신이 이곳에 온 의도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 하준은 어떤 말로 화제를 전환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잠깐의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이내 하준이 입을 열었다.

“우선, 회사 지원이 끊긴 지가 오래라 꽤 힘들었을 텐데. 생활들은 어떻게 해왔던 거지?”

이미 팔도 기획의 짧은 연혁에 대해선 파악을 하고 온 상황.

팔도 기획이 차려졌던 초창기엔 신생의 기획사들이 그러하듯, 꽤나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지망생들을 모집했다.

이후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보이그룹과 걸그룹 멤버들이 각각 확정되었고.

당시만 해도 남부럽지 않았을 지원 속에서, 이 다섯 아이들의 상황 또한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돈에 대한 욕심만 가지고 시작한 엔터 사업은 얼마 못 가 재정적인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고, 각 그룹에 대한 지원들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국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이곳에 남은 다섯 아이들과 사무실의 김지혜를 제외하곤 모두가 떠나 버린 상태.

거기에, 이젠 사장까지 자취를 감춰 버렸으니 이 다섯 아이들 또한 당연히 떠났을 거라 확신한 김지혜의 생각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물론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하준 또한 꽤 놀란 부분이기도 했고.

하준의 물음에 이준이 짧게 답해왔다.

“아르바이트요.”

“아르바이트?”

“회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저희도 알고 있었어요. 은호 얘기처럼 언젠간 이렇게 마지막 순간이 올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불과 몇 시간 전 보았던 분양샵에서의 여린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의 이준.

이번엔 반대로 은호가 이준의 말을 이어받았다.

“일이란 일은 가리지 않고 다 하며 지냈어요. 회사가 완전히 없어져서 강제로 끝내지기 전까지는 절대 흩어지지 않기로 약속했거든요.”

얘길 들은 하준은 멤버들 중 가장 어린 지호와 하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도?”

하준의 물음에 강준이 대신 답을 해왔다.

“아뇨. 얘네는 아직 학생이라.”

다시 은호가 강준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래도 주객이 전도돼선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는 딱 필요한 정도만 하고 나머지 시간엔 연습에만 매진해 왔고요.”

형들이 담담하게 말을 내뱉는 동안 지호와 하늘의 표정엔 미안함이 가득 배어나 있었다.

막내 하늘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저희 때문에 이준 형은 장비들까지 다 팔고…….”

“장비?”

하준의 되물음에 묵묵히 듣고만 있던 지호가 낮게 목소리를 냈다.

“이준 형이 곡 작업할 때 쓰는 장비들이 있었거든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우리 꼭 다 같이 무대에서 부르는 날이 올 거라며 형이 밤낮없이 작업하던 거였는데…… 이게 다 저 때문이에요. 제가 학생만 아니었어도…….”

말끝을 흐린 지호가 이내 고개를 떨구었고, 막내 하늘이의 눈시울 또한 붉어진 상태였다.

아무래도 형들에게만 짐을 지운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큰 듯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이준이 입을 열어왔다.

“니네 때문에 그런 거 아니니까 그런 표정들 짓지 마. 사실 쪽팔려서 말은 안 했는데, 내가 만들었던 곡들 너튜브에 올렸다가 엄청 까였었어. 그래서 소질도 없는 거 계속하느니 보리 사료나 사주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팔아 버린 거고.”

그 순간, 잠시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준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이준이 조금 전 내뱉은 얘기들은 그저 동생들의 미안한 마음을 덜어내기 위해 한 소리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소질이 없긴. 앞으로 전무후무한 기록들을 남기게 될 텐데.’

작곡, 작사 등 저작권 관련 부분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앨범 차트와 앨범 판매량까지.

이준이 미래에 달성하게 될 업적들을 잠시 상기시켜 본 하준은 팔짱을 끼며 다섯의 얼굴들을 천천히 훑기 시작했다.

더 듣지 않더라도 이 아이들이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또 어떻게 생활해 왔을지는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막내 라인 둘을 제외하곤 이미 성인이 돼 버린 나이.

아이돌을 준비하는 나이치곤 결코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미 수차례 다른 회사들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모였을 테니,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마음들로 버텨왔을 거고.

얘길 듣고 나자 대견하단 생각과 함께 또 한편으론 짠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때,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하늘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저, 대표님…… 저희 이제 정말로 끝인 거예요? 그럼 이제 여기서 더는 형들이랑 같이 살 수도 없는 거고요……?”

슬픔이 가득 묻어 있는 막내 하늘이의 눈빛.

다른 넷의 표정 또한 그것과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체념을 끝낸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몇 초간의 침묵을 유지한 하준이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은데.”

하준의 담담한 음성이 내뱉어지자, 이미 예상한 답변인 듯 일제히 고개를 떨구는 아이들.

질문의 당사자였던 하늘이만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어왔다.

“그럼 저흰 언제까지예요……? 설마 오늘이 마지막인 건가요……?”

하늘의 질문에 하준은 최대한 아이들의 얼굴과 어울리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턱을 매만졌다.

“글쎄.”

하준의 무거운 분위기에 그제야 다른 형들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떨구는 하늘.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 몇 초간의 적막감이 흘렀고, 반지하 방의 분위기는 더욱더 어둡게만 느껴졌다.

하준이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연 건 바로 그때였다.

“아직 다음 숙소 계약이 덜 된 상태라 확답을 못 주겠네.”

하준의 입에서 나온 뜻 모를 얘기에, 떨구었던 고개들을 하나씩 들어 올리는 아이들.

가장 먼저 하늘이 눈동자를 키우며 되물었다.

“……네?”

“여기서 계속 사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서 다른 숙소를 알아보는 중이거든. 물론 뭐, 여기에 추억이 많은 너희들에겐 좀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말을 마침과 동시에 씩 웃어 보이는 하준.

하지만 그런 하준의 표정과는 달리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럼 이젠 정식으로 내 소개를 해야겠네.”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는 포머드 헤어를 짧게 쓸어 넘긴 하준.

“나는 앞으로 팔도 기획을 책임질 대표이자.”

앞으로의 미래를 떠올리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의 ‘로드’가 될 유하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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