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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스타 메이커-3화 (4/165)

3화

-끼잉, 끼잉

-월! 월!

서울 모처의 한 애견 분양샵.

그리 넓지 않은 규모의 매장 안으로 각양각색의 강아지들이 투명한 통 안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물을 먹고 있는 아이, 소변을 보고 있는 아이, 눈을 끔뻑이며 졸린 눈을 하고 있는 아이들까지.

대부분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새끼 견들이었다.

강아지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는 이들과, 설문지를 작성하며 분양 상담을 받고 있는 이들을 훑어보던 이미숙의 눈에 낯익은 얼굴 하나가 들어왔다.

매장 안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슬퍼 보이는 얼굴.

이미숙은 발걸음을 옮겨 그에게 다가갔다.

“이준이, 오늘도 왔니?”

“아, 네. 사장님…….”

서이준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함께한 이미숙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네가 없을 때는 아무것도 안 먹으려고 해서 정말 큰일이구나. 간식을 넣어줘도 소용이 없고.”

“…….”

“에휴. 새 주인을 만나서도 이러면 안 될 텐데.”

이미숙의 말처럼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에, 서이준의 눈시울은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보리야, 왜 자꾸 아무것도 안 먹고 그래…… 형 없어도 잘 먹고 잘 지내야지…….”

서이준의 얘기에도 낑낑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신 플라스틱 통만 발바닥으로 차 내리는 강아지.

마치 당장에라도 서이준의 품으로 안기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

서이준이 이미숙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사장님. 혹시 보리한테 관심을 보였던 분들은 아직 없을까요?”

간절함이 깃든 서이준의 물음에 이미숙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아직까지는 그렇네. 이준이 너도 며칠 봐서 알겠지만 대부분 갓 태어난 애들이나 선호하는 품종들이 확고하잖니. 아무래도 그런 애들 위주로만 입양이 되기도 하고.”

이미숙이 통 안으로 잠깐 시선을 옮기며 이어 말했다.

“근데 보리는 믹스견인 데다가 태어난 지 꽤 되기도 했고…….”

말꼬리를 흐리는 이미숙의 모습에 서이준이 낮은 음성으로 대신 말을 맺어주었다.

“유기견이었기도 하구요…….”

“에휴…… 내가 다 마음이 아프네, 정말.”

서이준이 분양을 결정하기까지의 속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이미숙은 괜히 속상한 마음에 잠시 고개를 돌렸다.

서이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미숙에게 물었다.

“저, 사장님. 혹시 잠깐 보리랑 산책 좀 다녀와도 될까요? 아무래도 오늘은 좀 힘들 것 같은데.”

매장의 분위기를 살핀 이미숙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그렇게 하렴.”

이미숙의 허락이 떨어지자, 서이준은 곧바로 플라스틱 투명 통의 입구문을 열었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강아지가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보리야, 형이랑 산책 갈까?”

산책이라는 단어에 늘 그렇듯 격하게 반응하기 시작하는 강아지.

그런 강아지를 바라보며 서이준은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산책 갈 채비를 시작했다.

그때, 매장 입구로 또 다른 고객이 들어섰다.

이미숙은 응대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며 밝은 톤으로 목소리를 내었다.

“어서 오세요! 입양 때문에 오셨나요?”

물음에 바로 답하기보단 매장 안부터 훑기 시작하는 남자.

잠시 후, 그의 눈동자가 어느 한쪽에서 움직임을 멈추더니 이내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 바로 입양했으면 하는데.”

“아, 그러시구나! 혹시 저희 샵 방문이 처음이시면 먼저 한번 둘러보시겠어요? 애들이 다 얼마나 순하고 착한지 몰라요, 호호. 괜찮으시면 먼저 보신 다음에 상담 한번 도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네, 그러죠.”

대답을 마친 깔끔한 포머드 헤어의 남자는 줄곧 시선이 머물고 있던 그곳으로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안 가 그의 움직임이 멈춘 그곳엔, 눈 아래가 촉촉하게 젖어 꼭 닮은 ‘두 형제’가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 * *

“고객님, 혹시…….”

하준의 발걸음이 뜻밖의 곳에 멈추고 다시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미숙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하준은 자신의 시선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는 서이준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강아지를 꼬옥 끌어안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애처롭기도 함과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대했던 만큼 반가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 고객님……?”

“이 아이로 하겠습니다.”

“……네?”

샵에 들어온 지 불과 몇 분도 채 되지 않은 데다, 다른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곧장 결정을 내린 하준의 선택에 이미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 이미 입양이 정해진 아이인가요?”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이미숙은 대답과 동시에 서이준과 눈을 마주쳤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서이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그럼 이 아이로 확실히 결정을 하신 거죠, 고객님?”

“네, 바로 입양 절차 진행하겠습니다.”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입양 희망자는 이미숙조차 당황시킬 정도로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서이준은 그런 그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 네네! 그럼 이쪽으로.”

하지만,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미처 파악할 새도 없이 입양에 필요한 절차들을 밟기 위해 곧장 상담실로 향하는 하준과 이미숙.

서이준은 그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모든 생각들이 일제히 멈춰 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끼잉, 끼잉.”

그때, 자신의 양다리를 툭툭 건드리는 느낌에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그곳엔 목줄을 한 채 산책을 조르고 있는 강아지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그 모습을 보자마자 일순간 시야가 흐릿해져 버리는 서이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참아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술을 열었다.

“어떡하지, 보리야?”

“끼잉, 끼잉.”

“아무래도 산책은 다른 사람이랑 해야 할 것 같은데…….”

잠시 후, 입양 절차를 모두 끝내고 나온 하준의 차량 뒷자리는 샵에서 구매한 애견용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서이준은 시동이 켜진 차량 앞에서 강아지와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눴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린 탓에 얼굴은 이미 엉망인 상태.

“흐윽…… 보리야. 가서 진짜 잘 살아야 돼. 알겠지? 흐윽…… 형이 많이 부족해서 먹을 것도 잘 못 챙겨주고 맨날 배고프게만 해서 너무너무 미안해…….”

그동안 함께했던 모든 시간들 중, 미안한 것들만 계속 떠올라 도저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곧이어 그가 흐릿한 시야로 하준을 바라보며 간곡히 부탁했다.

“우리 보리 꼭 행복하게 키워주세요…… 먹을 걸 워낙 좋아하는 애라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여주시면…….”

목구멍이 막히는 느낌에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이미숙이 등을 토닥였다.

“믿고 맡길 만한 분이라는 건 꼼꼼히 확인했으니까 우리 이제 보리 행복하게 잘 살라고 얼른 보내주자, 이준아. 응?”

“흐윽…… 네…….”

이미숙의 말과 함께 강아지를 넣은 케이지가 하준의 차량 안으로 실려졌고, 하준은 짧은 인사를 남기고는 운전석으로 탑승했다.

차마 차량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할 것 같아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려 버리는 서이준.

곧 액셀을 밟는 소리와 함께 차량의 엔진음이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흐윽…… 흐윽…….”

완전히 떠난 것을 확인하고 나자, 더 나올 것도 없을 것 같은 눈물은 수도꼭지가 터져 버린 것처럼 더욱 세차게 두 뺨 위로 흘러내렸다.

눈물은 이내 이준의 회색 후드티까지 적시기 시작했다.

체력을 모두 잃어버린 듯 바닥으로 주저앉아 버리고 마는 서이준.

길을 지나가는 주변의 시선들이 그에게로 잠깐씩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그때.

멀어져 가던 차량의 엔진음이 다시 가까워지는 듯싶더니.

잠시 후, 샵 앞에서 후진을 멈춘 차량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이준 군?”

“……?”

“아무래도 걱정이 많이 되는 모양인데. 괜찮다면 앞으로 보리가 지낼 곳이 어딘지 같이 가서 직접 확인해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

뜻밖의 제안에 곧바로 대답이 튀어나오질 않고 있는 서이준.

하지만,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말없이 운전대를 잡으며 액셀을 밟아나가고 있는 하준과 조수석에 앉아 무릎 위의 케이지만 바라보고 있는 서이준.

어느 한 골목길에 진입하고 나자 하준이 먼저 입을 열어왔다.

“사장님께 들은 얘기론, 유기견을 데려와 보살펴왔다고 하던데.”

“아, 네…… 집 앞 분리수거 하는 곳에서.”

벌써 몇 년이 지난 기억이었지만 여전히 그때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했다.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이었는데 빈 박스 안에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열어봤더니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저를 애처롭게…… 순간 버려졌다는 느낌 때문에 도저히 발이 떨어지질 않았어요. 그 뒤론 쭉 지금까지 제가 보살펴 왔던 거구요.”

“흠, 그럼 애정이 꽤 컸을 것 같은데.”

“……그렇죠. 두 번 다시는 그런 상황은 절대 생기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자신의 무릎 위에 놓인 케이지를 바라보며 서이준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하준은 어느새 시야에 들어오고 있는 목적지를 향해 계속해서 액셀을 밟아나갔다.

잠시 후, 하준이 운전석의 문을 열며 말했다.

“자, 그럼 내려볼까?”

하준의 얘기에 케이지를 가슴에 품고는 차에서 내리는 서이준.

하지만, 이내 시야에 들어오는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에 의아한 표정이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긴…….”

그런 그의 반응에 하준은 말없이 미소만 지어 보이며 발걸음을 옮겼고, 서이준은 천천히 하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두 사람이 멈춰 선 곳.

바로, ‘B101’이 적힌 낡은 현관문 앞이었다.

“왜…….”

“왜 여기로 왔냐고?”

서이준의 물음표 같은 표정과 하준의 알 수 없는 미소가 공존하던 사이.

낡은 현관문이 삐그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안쪽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 형! 왜 이렇게 늦었어요?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네!”

“야, 서이준. 앞으로 어디 갈 거면 보리는 놔두고 너 혼자 나가, 인마. 애 밥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났구만.”

“우구구, 우리 보리! 얼른 들어가서 밥이랑 간식 먹자아?”

서이준의 멍한 표정은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곧바로 케이지를 뺏어서는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아이들.

막내 정하늘만이 서이준의 팔을 이끌며 말했다.

“헤헤, 형. 얼른 들어가요. 아, 그 전에. 눈물주의!”

정하늘의 팔에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온 서이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넋을 잃은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합치면 앞으로 보리 일 년 치 식량은 걱정 안 해도 되니까 두 번 다시는 그런 생각하지 마, 인마. 우리도 엄청 반성했으니까.”

오랜 기간 방치된 탓에 나날이 힘들어져만 갔던 연습생 생활.

꿈 하나만을 바라보며 힘겨운 생활고 속에서도 버티고 버텨온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한계는 찾아오는 법.

자신의 배고픔 정도는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었지만, 자식 같은 강아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해져 도저히 버텨내기 힘든 수준까지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불과 몇 시간 전 눈물과 콧물을 다 빼놓은 생이별의 아픔을 겪었는데.

도대체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서이준의 머리로는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대체 이것들이 다 어떻게…….”

마치 뇌가 정지된 듯한 표정인 서이준의 물음에, 이은호는 세상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서이준의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네 뒤에 계신 분 보이지? 이 모든 게 다 저분의 업적이시다. 앞으로 평생 절하며 살도록 해.”

뒤를 돌아본 그곳엔, 이곳까지 자신을 데리고 온 하준이 서 있었다.

서이준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하준에게 물었다.

“분명 아까 보리를 입양하신다고…….”

하준이 턱을 매만지며 답했다.

“아, 그거? 정말 그럴까도 잠깐 진지하게 고민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혼자 사는 게 낫겠더라고.”

“그럼 아까 입양 절차는…….”

“물론 하지 않았지. 사장님께 연기 좀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오케이하시던데?”

하준의 대답에 서이준을 제외한 네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서이준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아…….”

김지호가 유일한 방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나저나 우리 보리는 좋겠네에? 보리 방 안에 간식들도 가득 차 있는데!”

김지호의 입에서 나온 ‘간식’이라는 단어에 꼬리를 격하게 흔들어대며 방방 뛰기 시작하는 보리.

그러다 갑자기 하준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가더니 이내 주변을 뱅뱅 돌기 시작했다.

“어이구. 우리 보리 신났네, 신났어 아주~?”

형들의 얘기에 더욱더 발동작을 세차게 움직여 대던 보리는 곧 힘이 부쳤는지 헥헥거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데.

“어?”

“어어!”

“어어어??!!”

“보, 보리야! 안 돼!!”

다시 집으로 돌아온 행복이 너무 컸던 탓일까.

신날 대로 신이 난 상태의 보리는, 오늘 처음 본 손님에게 기꺼이 자신의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따뜻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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