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338화 (338/360)

338

3장. 형제의 난 (13)

윤 성제 6년, 1월 이레. 밤.

북도성 밖, 호도로한은 말을 몰아 거대한 늑대에 탄 누염의 뒤를 바짝 쫓았다. 매일 저녁 식사 후에 누염은 늑대를 타고 산책했다. 가끔 밤을 새우고 돌아오곤 했는데 어디를 다녀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따금 산벽공이 동행했고, 호도로한이 제 아버지와 함께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오늘은 그가 애원해 얻은 기회였다.

“아버지, 여응양은 위험한 놈입니다. 꼭두각시의 줄을 바짝 죄어야 합니다!”

호도로한은 내내 아버지에게 이 문제를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소식에 따르면 청양 대군 여수우는 이미 처결되었고 여응양에게 귀순한 3대 귀족이 정세를 장악했으며 다들 귀족 가문의 가주들이 삭북부를 설득할 좋은 방법을 생각해내 회담이 성사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응양은 상황이 아직 혼란스러워 민심을 모을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서 당분간 성문을 열 수 없다고 서신을 보내왔다.

누염은 이 일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 늑대를 타고 말없이 유유자적하며 북도성 주위를 빙빙 돌기만 했다.

“이건 반역입니다!”

호도로한이 재차 이야기했다.

누염이 타고 있던 늑대의 머리를 탁 치고 걸음을 멈추었다. 커다란 늑대가 고개를 돌려 호도로한을 쳐다보았다. 호도로한의 설령가 종 군마는 겁을 먹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바람에 늑대의 3척이나 되는 긴 털이 휘날리고 털 주위로 달빛이 무리졌다. 이 늑대는 제 주인 누염과 똑같이 싸늘한 눈빛으로 중생을 내려다보았다. 호도로한은 감히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호도로한, 더 침착하고 더 인내해야 한다. 경솔한 사람, 전과(戰果)를 지나치게 탐하는 사람은 권력을 오래 장악할 수 없다.”

누염은 여전히 전방을 쳐다보고 있었다.

호도로한의 등에 슬며시 땀이 배어나왔다. ‘권력 장악’,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제가 마음이 급했습니다.”

호도로한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누염이 형식적인 사죄를 싫어한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우리가 마주한 것은 함정이다. 저 안에는 굶주린 야수 떼가 살고 있지. 우리는 함정에 미끼 하나를 던졌고 놈들은 이 미끼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치고 박고 싸울 것이다. 이제 겨우 여수우 하나 죽었다. 이 싸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야.”

누염이 담담하게 말했다.

“여응양은 아주 똑똑하다. 자기가 야수들을 싸움 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야수 중 하나라는 것을 안다. 녀석은 가장 강한 야수가 되어 우리와 거래를 하러 올 것이다.”

“여응양이 통제가 안 될까봐 걱정입니다. 게다가 저들이 목숨 걸고 싸워 전부 상해를 입게 되면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인력이 얼마 남지 않습니다. 텅 비어버린 죽은 성을 함락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누염이 빙그레 웃었다.

“아들아,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잊지 않겠느냐?”

호도로한은 멍해졌다.

“내가 여기 온 목적은 너나 산벽공과 다르다. 너는 더 큰 권력을 원하지만…….”

누염이 고개를 돌렸다. 조소로 가득한 눈빛이었다.

“나는 그저 내가 빠졌던 함정에 복수를 하러 돌아온 것이다!”

“네!”

호도로한이 손을 가슴에 얹고 고개를 숙였다.

“얼마나 좋으냐. 자신의 원수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을 보는 게. 운명의 저주를 받은 성에서 저들은 귀족의 교만과 초원 주인의 위엄을 버리고 짐승 따위로 전락했다.”

누염이 후련하게 웃었다.

“가장 통쾌한 복수가 아니겠느냐?”

“맞습니다!”

호도로한이 재차 대답했다. 호도로한은 뭐라고 설득해도 소용없을 것임을 깨달았다. 누염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여응양은 걱정되지 않는다. 심지어 녀석이 다른 짐승 전부를 물어 죽이고 성을 나와서 나와 결전을 치를 것이 기대가 되는구나. 아주 훌륭해. 누염의 외손자라면 마땅히 그래야지.”

누염이 다시 거대한 늑대의 머리를 툭툭 쳤다. 늑대는 긴 털을 부르르 털고는 느릿느릿 눈보라 속으로 멀어져갔다. 스산하고 차가운 달빛이 사람 하나와 늑대 하나를 비추며 등 뒤로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웠다. 호도로한은 쫓아가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의 말이 빨라도 아버지의 걸음은 영원히 쫓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로운 저 사내는 한 걸음씩 달빛을 밟고 하늘로 올라가는 듯했다.

그 시각, 북도성 안. 금장궁은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오래도록 적막했던 장막은 전 주인이 죽은 뒤 돌연 활기가 돌았다. 죽어도 금장궁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던 대귀족, 알적근 가문과 탈극륵 가문 가주는 여응양의 초청으로 성대한 연회 자리에 참석했다.

식량이 극도로 부족한 북도성에서 이런 성대한 연회는 자기 장막에 웅크린 채 귀리와 풀뿌리로 배를 채우는 가난한 목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쇠꼬치에는 향긋한 양 한 마리가 끼워져 있고 술 단지에는 짙은 향기가 나는 술이 가득했다. 상반신을 드러낸 노예들이 불 옆에서 쇠꼬치를 뒤적이며 익어가는 양고기에 독주를 한 국자씩 뿌렸고 술은 화염을 만나 순식간에 푸른 연기로 증발했다. 노예들은 잘 구워진 양을 날카로운 칼로 얇게 저며 은쟁반에 차곡차곡 놓았다. 그 위에 붉은색 고추장을 끼얹고 들깨가루를 뿌린 다음 향긋한 참기름을 몇 방울을 뿌려 손님 앞에 올렸다. 지글지글 기름에 튀긴 한타고기와 유백색 건락(乾酪)1)과 말린 연어도 함께 올라갔다. 이 연어는 무더운 여름철에 남쪽 천리 밖의 천척해협에서 잡은 것으로 어떤 향료나 소금도 바르지 않고 바닷바람에 말린 뒤 북도로 보내졌다. 바닷가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대군에게 바치는 진상품이었다.

아리따운 소녀들이 양을 굽는 불더미를 둘러싸고 춤을 추었다. 소녀들은 값비싼 비단 치마와 새끼 양 가죽으로 만든 배자를 입었다. 얇은 소매는 반투명하여 푸른 덩굴처럼 유연한 팔과 매끈한 어깨가 비쳤다.

성대한 연회는 반역자의 죽음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고 그 반역자의 이름은 여수우 비막간 파소이였다.

술에 잔뜩 취한 알적근 가문 가주는 붉어진 얼굴로 느른하게 양가죽 등받이에 기댄 채 대놓고 춤추는 소녀들의 굴곡진 몸매를 감상했다. 이전까지 그는 한 번도 태연하고 거리낌 없이 소녀들을 쳐다보지 못했다. 이 소녀들은 어릴 적부터 금장국에서 자란 여관(女官)이었다. 소녀들의 고운 손은 양을 치고 마초를 자르는 보통 만족 여인과 달랐다. 그녀들은 오로지 만족의 주인, 대군을 모시기만을 기다렸다.

주석(主席)에 앉은 여응양도 흥에 겨워 계속 술을 권했다. 톡 쏘는 향의 고이심 독주는 사내들의 손에 한 단지, 또 한 단지 비워져갔다.

“과연 초원의 왕다운 향락이로구나!”

탈극륵 가문 가주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보게, 술을 말하는 건가 미끈한 팔을 가진 여인들을 말하는 겐가?”

알적근 가문 가주는 뻔히 알면서 굳이 물었다.

여응양이 손을 내두르자 춤을 추던 소녀 하나가 사뿐사뿐 탈극륵 가문 가주 옆으로 걸어가 술을 따랐다. 탈극륵 가문 가주는 취해 몽롱한 눈으로 연분홍빛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두 팔을 내밀어 곰처럼 소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소녀는 반항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그의 품에 움츠리고 있었다. 금장궁 안의 사내들이 흥겹게 웃어젖혔다.

“늙어서 아내 몇 더 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알적근 가문 가주가 웃었다.

“맞소.”

여응양도 웃으며 대꾸했다.

“그 아이를 데려가 탈극륵 가문의 아름다운 여주인들에 비할 만한지 살펴보시오.”

“그래도 됩니까?”

탈극륵 가문 가주가 여응양을 곁눈질로 힐끗 쳐다보았다.

“안 될 게 뭐 있소?”

여응양이 양손을 펼쳐보였다.

“내 용맹한 탈극륵 가문 가주께 시집보낼 어여쁜 여동생이 없어 한스러울 뿐이오.”

탈극륵 가문 가주는 일순 멍해졌다가 호탕하게 웃었다.

“제가 파소이 가문의 여인을 취할 수 있습니까? 우린 신분이 다르지 않던가요?”

여응양은 더 말을 얹지 않고 은 술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탈극륵 가문 가주는 소녀의 허리를 바짝 끌어안고 잔에 가득 찬 독주를 시원하게 비웠다.

알적근 가문 가주가 미소를 머금고 그들을 보았다. 뻔뻔할 정도로 겸손한 여응양의 태도에 흡족한 그는 상당히 기분이 좋아졌다. 동시에 가슴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그를 일깨웠다. 이 겸손한 사내는 미덥지 못하다고, 그자의 예의바른 행동은 언제든 공격의 전조로 변할 수 있다고.

여응양은 술잔을 내려놓고 살짝 허리 숙여 인사했다.

“존경하는 알적근 가문 가주, 오늘까지 두 가문에서 각각 여섯 대의 마차 행렬이 북도성을 떠났소. 도합 수천 명이 삭북부의 붉은 깃발을 지나 남쪽으로 향했는데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았지.”

“3왕자께서 약속을 충실히 지켜주시어 무척 기쁩니다.”

알적근 가문 가주가 술잔을 들었다.

“파소이 가문의 젊고 유능한 새 주인을 위해 한 잔 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일제히 술잔을 들었으나 여응양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지으며 알적근 가문 가주를 쳐다보았다. 금장궁 안이 돌연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멋쩍게 술잔을 든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3왕자, 긴히 할 말이 있으십니까?”

알적근 가문 가주가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3왕자께서는 빨리 북도성의 신임 대군이 되고 싶으시지요? 그러나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도와드릴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나는 그저 한 가지가 궁금할 뿐이오. 두 분 가주께서 재산을 챙겨 북도성을 떠나도록 늑대왕을 대신해 허락해주었는데 그동안 두 분은 아내와 가족들만 끊임없이 내보내고 정작 본인들은 안 떠났지. 걱정되지 않소? 삭북부가 성문을 뚫고 들어오면 사람 가려가며 죽이지 않을 거요. 그때는 나도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소.”

적나라한 위협이었다. 탈극륵 가문 가주가 눈썹을 구기며 곁의 소녀를 밀쳐내고 여응양을 노려보았다. 그의 등 뒤에 있는 무사 수십 명이 술잔을 내려놓고 얼굴을 굳혔다. 알적근 가문 가주는 손을 내둘러 자신의 시위 무사들이 어떤 움직임도 취하지 않도록 제지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쏟아졌다.

“3왕자께서 무능한 사람이라면 우리도 일찌감치 가족들과 도망쳤을 겁니다.”

알적근 가문 가주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한데 그동안 3왕자의 모습을 보고 우리 늙은이들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여숭도 능가하는 영웅이라 할 수 있겠더군요. 그래서 북도성에 남으면 더 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북도성에 남는다?”

여응양은 깜짝 놀랐다.

“문득 이런 짐작이 들더군요.”

알적근 가문 가주가 여응양의 눈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 * *

1)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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