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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형제의 난 (11)
아소륵은 눈밭을 미친 듯이 내달렸다. 북도성 거리는 새해 명절 때처럼 사람이 득시글했다. 이들은 전부 금장궁 앞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아소륵은 인파를 따라가며 한 사람, 또 한 사람 제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기고 소리가 멀리서 울려 퍼졌다. 소리는 점점 더 묵직해졌고, 장단은 점점 빨라졌다. 곧 있을 여수우의 처형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한 번씩 북이 내려칠 때마다 아소륵의 가슴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형장에 도착했을 때 시체 한 구를 마주하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아소륵은 입을 크게 벌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고 그 한기로 버텼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깊이 잠들어 있던 동안 온 세상이 뒤집어진 것 같았다. 비막간이 배신자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비막간은 그의 형이고 소마의 남편이었다. 파소이 가문의 존엄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사내였다. 기쁜 마음으로 아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역적이란 말인가? 용감한 사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자기 아내를 사랑했던 남자가 어떻게 자신과 아내의 미래를 걸고 배신자가 된단 말인가?
비막간은 황금 옥좌에 앉아 있던, 청양부의 존귀한 대군이다!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순 없어!’
아소륵의 마음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크게 외쳤다.
비막간이 죽으면 소마는 어쩐단 말인가? 그런 결말을 아소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기고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아소륵은 폐가 다 찢어질 것 같았다.
여수우는 어둠에 뒤덮여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알았다. 빗방울처럼 빼곡하게 떨어지는 기고 소리가 그의 생이 얼마 안 남았음을 알려주었다.
철두철미하게 꾸며진 음모임을 알지만 지금 큰 소리로 외친들 그를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무 어리석었다. 자기 자신만, 제 아내만 생각하느라 귀족들까지 경계하지 못했다. 몹시도 후회가 되었다. 그의 벗 낙자언이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그의 손을 꼭 붙잡고 경고했었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벗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적을 경계하기보다는 벗을 경계하는 데 더 신경 쓰라 했다. 벗의 배신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라면서. 여수우는 낙자언이 누구를 암시하는지 알면서도 그 말대로라면 낙자언 당신을 제일 경계해야 하지 않느냐며 농을 던졌더랬다.
낙자언은 씁쓸하게 웃으며 떠나갔다.
그 동륙인은 믿을 만한 친구였다. 언젠가는 낙자언도 배신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럴 기회도 없었다. 여수우는 곧 죽을 것이기에.
낙자언은 봄이 되어 날이 풀리면 돌아온다 했다. 하지만 여수우는 낙자언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낙자언이 정말 돌아온다면 북도성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여수우는 마침내 아버지가 줄곧 양위를 망설인 이유를 알았다. 아버지는 여수우가 더 강하고, 더 교활하고, 더 기민하고, 더 악독해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 사람만이 북도성 주인의 책무를 짊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여수우는 아버지의 엄격한 질책을 무시했다. 너무 자만했다. 자신은 충분히 용감하고 동륙인의 통치술도 알기에 아버지보다 더 좋은 대군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아버지는 죽기 전까지 여수우가 성장하기를 기다렸으리라. 하지만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급하게 북도성을 물려줄 수밖에 없었다.
반찰렬은 어찌 되었을까. 우전에 어깻죽지가 관통당해 기절하기 전, 외팔의 반찰렬은 다리의 부상을 꾹 참고 버티며 일어나 이미 죽은 군마의 등에서 방패 하나를 떼어내 여수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또 우전 한 대가 반찰렬의 다리에 명중했다. 반찰렬은 두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으로 방패 가장자리를 꽉 붙잡고 세워들 수밖에 없었다.
아소륵은 어떤지도 알 수 없었다. 이제야 후회가 되었다. 좀 더 일찍 혼절한 아우를 보러 갔어야 했다. 승리를 가져다주지는 못했지만 온화한 아이는 결국 광기 어린 피에 굴복해 포효하며 전장의 사람을 마구 죽였다. 아소륵은 이미 최선을 다했다.
여수우는 곧 죽을 것이기에, 애써 더 많은 일을 생각하려 했다. 영혼이 흩어지면 기억도 더는 남지 않을 테니까.
여수우는 소마를 떠올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성문 밖에서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던 소리를 들었다. 여수우는 그것이 소마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여인이 어떻게 북도성 성문을 두드려 열 수 있겠는가? 왜 한 번이라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을까? 그녀는 두 사람의 아이를 품은 채 떠났어야 했다. 자신은 수도 없이 그녀의 말에 따라주었는데, 마지막까지도 소마는 여수우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를 버릴 수 없어서?
그런 거라면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을까? 소마가 탄 마차 뒤를 천천히 따라가면서 소마가 마차에서 내려 자신에게로 달려와 주기를 수도 없이 바랐다. 성문까지 배웅하지도 못했다. 작별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기도 하고, 반찰렬 앞에서 여인처럼 눈물을 흘릴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 까닭이었다.
여수우의 마음에는 내내 응어리가 하나 맺혀 있었다. 소마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신이 소마를 훨씬 더 사랑하는 것 같았다. 이런 불공평한 혼인에도 그는 미련을 두었다. 소마가 냉담하게 순종할 때면 더 많은 여인을 총애해 복수해주겠노라고 수도 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그리한다고 해도 소마는 여전히 차분하게, 일말의 동요도 없이 그를 보필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수우는 심호흡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를 뒤덮은 말가죽 자루는 공기가 통하지 않았다. 한나절만 자신의 생을 잘 돌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그때, 북소리가 멈췄다.
구경하던 인파도 동시에 조용해졌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숨을 죽였다.
말가죽 자루를 진 군마가 금장궁 앞 눈밭 중앙으로 질주해 들어와 가죽 끈을 풀고 말가죽 자루를 눈밭에 내던졌다. 한쪽에서 소뿔 모자를 쓴 무당이 축문(祝文)을 읊자 무사 8명이 죄었던 말고삐를 풀었다. 군마 8마리가 나란히 열을 지어 내달리며 빗살이 8개인 빗처럼 눈밭에 흩적을 남겼다. 처음에 군마들은 눈밭의 가죽 자루를 피해갔다. 두 번째, 그중 말 한 마리가 자루를 짓밟으며 지나갔고 가죽 자루는 심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말린 대하처럼 몸이 휘어졌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가죽 자루 안의 죄인은 이미 입이 틀어막혔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한때 초원에 유행하던 낭형이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반역죄를 저지르면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넣고 사나운 말로 돌아가며 짓밟아 죽였다. 가장 잔혹한 형벌 중 하나였다. 자루 안의 사람은 소리를 낼 수 없었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둠뿐이었다. 그들은 언제 말에 짓밟힐지 영영 알지 못한 채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말을 모는 무사들은 신중하게 박자를 조절했다. 처음에는 군마의 편자를 박은 발굽으로 걷어차기만 했다. 그러면 죄인은 뼈만 부러져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을 느꼈다. 차츰 그들은 군마에게 밟도록 명령하고 그럼 죄인의 등과 내장이 망가졌다. 마지막으로 군마가 왔다 갔다 질주하면서 번갈아 짓밟았다. 형벌의 과정은 꽤 오래 이어졌다. 끝나고 가죽 자루를 열면 안에는 분간이 어려운 뼛조각과 피범벅이 된 살점만 남았다.
말 한 마리가 쇠발굽으로 가죽 자루를 세게 걷어찼고 걷어차인 가죽 자루는 눈밭을 데굴데굴 굴렀다. 원색의 가죽 자루에 핏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죄인의 뼈 어디가 부러졌는지 아무도 몰랐지만 인파 속에서는 한바탕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죄인이 당하는 고통을 보고 싶어 했다. 죽어간 가족의 목숨값 대신이었다.
군마들은 가죽 자루 주위를 둥글게 에워싸고 돌아가며 자루를 걷어찼다. 동륙인이 축국(蹴鞠)1)을 하듯 했다. 자루 안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온힘을 다해 눈밭을 구르며 피하는 것뿐이었다. 보이지 않으니 생존 본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든 방향에 말이 한 필씩 기다리고 있는 까닭에 피할 수도 없었다.
그의 몸부림은 한때 높이 군림하던 사람이 노예만도 못한 처지로 전락한 모습으로 비쳤다. 고양이 손안의 생쥐처럼, 무의미한 발악이었다. 그의 발버둥은 구경꾼들에게 놀리는 기쁨과 복수의 쾌감을 더해줄 뿐이었다.
흰색 여우 갖옷을 입은 인영 하나가 일체 아랑곳하지 않고 형장으로 달려들었다. 그녀는 가죽 자루로 달려가 어버버 거리면서 애절하게 흐느꼈다.
형을 집행하던 무사들은 깜짝 놀라 재빨리 피했다. 그 여인은 과거의 대연지였다. 죄인의 아내이지만 형 집행 명단에는 없었다. 무사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형장 가에 있는 알적근 가문 가주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구경꾼들은 이렇게 가까이에서 존귀한 대군의 아내를 볼 기회가 없었기에 세심한 눈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옛날에 노예였던 그녀는 세상 모든 여인을 능가하는 미모를 지녔다고 소문이 났었다. 대군도 그녀 앞에서 넋을 잃었고, 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 아우에게서 빼앗아왔다고 했다. 사내들은 술에 취해 몰래 대군의 여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흠모의 마음을 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실망했다. 아름다운 여인은 맞지만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어린아이 같은 얼굴에 창백하고 여윈 소녀였다. 불룩 솟아오른 아랫배와 아이 같은 얼굴은 몹시도 안 어울렸다.
“우라질! 잘 지켜보라 하지 않았느냐?”
탈극륵 가문 가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좋지 않소?”
여응양이 그윽하게 말했다.
“비막간이 제 여인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죽는 것보다 열 배는 더 고통스럽지 않겠소?”
여응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게 탄식했다.
“사내의 일생에서 온힘을 다해 이루려던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무슨 수를 써서든 지키려던 사람이 죽는 것보다 더한 슬픔이 또 있겠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자비를 좀 베푸는 게 좋겠군요.”
알적근 가문 가주가 담담하고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수우는 과거 우리의 주인이었으니 바라던 대로 아내와 함께 죽게 해줍시다.”
그는 눈짓으로 형을 집행하는 무사에게 명령했다.
우두머리 무사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다른 무사들에게 시범을 보여야 했다. 말고삐를 홱 잡아당겨 군마의 앞발을 들어 올렸다. 쇠발굽이 앳된 얼굴의 여인을 밟으려 했다.
“안 돼!”
아소륵이 포효하며 제 앞을 가로막은 자를 밀쳐내고 형장 가운데로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러나 너무 늦어버렸다. 아소륵이 형장에 있었을 때, 희야는 장도 12자루를 들고 형장 가에서 그를 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막간이 형장 가운데 던져졌을 때 아소륵은 헐떡거리며 달려오는 중이었다. 비막간도 마지막 순간 누군가가 나타나 구해주기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를 구하려는 이는 없었다. 한때 대군이었던 비막간 파소이, 지난날 그렇게도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있던 그는 이렇게 외로이 죽어갔다. 줄곧 사랑하면서도 잃을까봐 노심초사했던 여인만이 그에게 달려들어 무력하게 흐느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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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 장정들이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차던 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