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318화 (318/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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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요궁(妖弓)의 화살 (13)

아소륵이 소리 없이 말했다.

아소륵은 영월을 휙 뽑아 비스듬히 전방의 하늘을 가리켰다.

“전진! 저들을 짓밟아라! 오늘은 청양의 치욕을 씻는 날이다!”

“죽여라! 퇴로는 없다!”

좌봉의 9왕이 포효하며 머리 위에서 군도 두 자루를 부딪쳤고 귀를 찌르는 굉음이 일었다.

우봉의 목해양도 그에 맞춰 속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진의 좌봉과 우봉은 최고의 정예 기병이었다.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군으로 모여들었다. 군마들은 거의 바짝 붙어 달리며 무엇이든 부술 수 있는 날카로운 화살을 이루었다. 곧 적진의 심장을 꿰뚫을 ‘천심’ 전술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들의 적은 삭북 기병대 후방에 서 있는 황금창랑기 아래의 호도로한과 그보다 더 멀리에 있는 백야창랑기 아래의 누염, 둘뿐이었다.

독수리 두 마리를 꿰뚫을 날카로운 화살은 이미 활시위를 떠났고, 떠난 화살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삭북 기병진의 중간이 빠르게 얇아지고 좌우 양익으로 가장 빠른 군마와 최정예 기병이 집중되었다. 이들은 활짝 펼쳤다가 다시 모아지는 학의 날개처럼 좌우의 용맹한 청양 기병 군단을 피해 중군 가운데로 불쑥 끼어들었다.

청양 전군(前軍)의 최전방이 삭북부 진영을 뚫고 들어감과 거의 동시에 삭북부의 양익이 교차해 가로지르며 이 ‘화살’의 ‘화살대’ 중간을 끊었다. 새로 합류한 군사들은 얼마간 대항하다가 적군에 의해 흩어졌다. ‘화살’이 부러지면서 전방과 후방은 각각 포위되었다. 후군에 남아있던 기민한 철진이 막속이 가문의 철기병을 이끌고 앞으로 뚫고 나오며 신병의 위치를 대체하고 삭북부와 격전을 벌였다. 철진은 최소한 반 시진을 버텨야 했다. 이는 아소륵이 요구한 시간이었다. 전군 역시 똑같이 포위되었다. 머릿수에서 우세한 삭북인이 사방팔방에서 에워싸며 밀어닥쳤다.

같은 시각 좌우 양봉도 삭북부 기병과 부딪쳤다. 사내들은 흩날리는 눈먼지 속에서 포효하며 군도를 휘둘렀다.

아소륵은 북쪽을 바라보며 자신과 황금창랑기, 백야창랑기까지의 거리를 확인했다. 아소륵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삭북 기병 1만 5천 명이었다. 이들을 뚫어야 했다. 아소륵은 불화랄에게 황금창랑기를 잘라 버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리하면 백랑단이 돌격할 것이었다. 칼을 쥔 손이 뜨거워지고 대군의 포효성 속에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호도로한의 황금창랑기까지 남은 거리는 2리 반이었다.

여수우는 귀족들을 이끌고 북도성 성벽 위로 달려갔다. 구체적인 출전 시간을 몰랐기에 새벽녘 잠결에 성 밖의 요란한 함성에 놀라 잠에서 깼다.

태납륵강 가의 전투와는 달랐다. 양측은 상대방의 병력과 장비를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는 어떤 탐색도 필요하지 않았기에 시작부터 전군이 공격해 들어갔다.

“적군에 의해 반으로 나뉘다니?”

탈극륵 가문 가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용병술의 금기가 아닌가.”

“의도한 것 같군.”

알적근 가문의 가주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후군은 적군 대대를 지연시킬 뿐이네. 전군에 우세한 병력인 9왕과 목해양, 대군의 친병(親兵)이 집중되어 있어. 삭북부가 인원은 많으나 우위를 점하지 못했고 우리 군은 아직 여력이 있네.”

“아소륵이 동륙에서 정말 대단한 것을 배웠군!”

여수우가 감탄했다. 전군의 좌봉과 우봉이 삭북인의 무거운 압박에도 여전히 밀고 나가고 있었다. 설욕에 급급한 호표기는 정예 중의 정예병이 출전했고 다들 사나운 호랑이처럼 기세가 등등했다. 이 거만한 철기병들은 정말 전장에서의 죽음을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진짜 신경 쓰는 것은 자신의 명예였다. 저번에 백랑단에 놀라 후퇴한 일로 이 용맹한 사내들은 가족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희망이 있군요. 대군께서 통수(統帥)를 제대로 고르셨습니다!”

알적근 가문 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용기와 힘은 있으나 삭북부에 비해 병력이 좀 모자라지 않겠습니까?”

“존경하는 알적근 가문 가주, 그 얘기는 늑대왕의 목을 벤 후에 합시다.”

“늑대왕의 목을 벤다고요?”

알적근 가문 가주는 깜짝 놀랐다. 초원에서 삭북의 대군을 어떻게 무찌를지 생각해 본 사람은 있었다. 그러나 저 마귀 같은 사내의 목을 베는 것은 신을 죽이는 일에 가까운 두려움을 불러일으켰기에 어느 누구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소. 아소륵이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하려 하오!”

여수우가 눈을 가늘이며 말을 이었다.

“예상대로 첩자가 정말 존재한다면 우리들 사이에 있소. 이제 첩자는 우리의 목표를 알고 있지만 누염에게 말할 기회는 없소!”

모두가 침묵에 잠긴 채 시선을 맞추며 서로를 의심했다.

“형님, 아소륵이 정말 보통이 아니네요!”

여하가 허리춤의 ‘사자아’ 칼자루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몹시도 전장으로 돌격하고 싶은 눈빛이었다.

“그래.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니 예전과 조금 달라졌구나.”

여응양은 담담히 말을 하고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여하는 제 형의 불편한 심기를 알아차리고 그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형님이 군을 이끌었어도 멋지게 싸우셨을 겁니다. 아니…… 더 멋졌을 겁니다!”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다.”

여응양이 여하의 손을 떼어내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삭북의 피가 흐르는 우리는 기껏해야 구경꾼밖에 하지 못하지.”

“하지만 아소륵도 삭북의 피가 흐르잖아요.”

여하가 반박했다.

“아소륵의 전쟁 경험이 어떻게 형님에 비할 수 있겠어요. 형님은 서쪽에서 과부 군대를 무찔렀잖아요!”

“하지만 아소륵은 아주 단순하다. 내면이 단순한 아이야.”

여응양이 나직이 말했다.

“아소륵의 눈만 보아도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걱정하는지, 무엇이 두려운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비막간이 아소륵을 믿는 것이다.”

여응양이 여하를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너는 내 눈에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낼 수 있느냐?”

여하는 순간 아연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넌 못 알아낼 것이다.”

여응양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가끔 거울을 봐도 나 역시 알 수가 없는걸.”

성 밖의 우렁찬 교전 소리가 여응양의 한숨 소리를 집어삼켰다.

기병 가운데에 낀 아소륵은 눈으로 자신과 황금창랑기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남은 거리는 1리 반이었다.

삽매곡 어귀에서 리국 뇌기와 마주쳤던 전투를 회상했다. 동륙 명장과 기병 패주 간의 전설적인 전투였다. ‘2단 돌격’으로 유명한 뇌기군은 500보 거리에서 맹공을 개시했고 적조는 파죽지세로 우르르 밀려왔다. 이 전투는 아소륵이 경험한 유일한 실전이었다. 아소륵은 거리를 재며 언제 ‘파전(破箭)’을 시작할지 망설였다. 파전은 ‘쇄전진(碎箭陣)’의 2단계로 아소륵이 직접 군을 이끌 것이었다.

호표기 한 명이 말을 몰아 아소륵에게로 미친 듯이 달려왔다.

“대나안, 양측 군단이 벌써 절반 넘게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기로 버티던 좌봉과 우봉은 과반이 손실을 입은 후로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아소륵은 제 말 뒤의 철안과 철엽, 합륵찰을 보았다. 세 사람은 동시에 아소륵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좌봉과 우봉에 ‘파전(破箭)’을 준비하라 명해라!”

아소륵이 호표기에게 명령했다. 동시에 소매에서 여수우가 준 비호(飛虎) 무늬의 황금 영부를 꺼내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비호부! 돌격 준비!”

아소륵 뒤의 군대가 바로 비호부였다. 청양의 아홉 기병대 중에서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된 이 부대를 여수우가 되살려 직접 훈련시키고 친병(親兵)으로 삼았다. 현재 이들 사내 1만 명은 동륙제 철갑옷을 입고 순국에서 만든 절철도(折鐵刀)를 쥐고 있었다. 아소륵은 새로 투입된 비호부를 줄곧 조심스럽게 좌우 양봉 뒤에 배치해 보호하고 있었다.

북도성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장은 이러했다. 청양군 앞부분의 ‘화살촉’이 돌연 갈라지더니 9왕과 목해양의 기병들이 양쪽으로 삭북 기병을 밀어내며 수십 장 폭의 길을 열었다. ‘파전(破箭)’이었다. 화살이 부서지자 비호부가 오랫동안 쌓아온 살기를 뿜어내며 전진했다. 대나안 아소륵 파소이가 선봉에 섰고 붉은 전포를 걸친 사내 1만 명이 그를 따라 마구 소리를 지르며 달려나갔다.

삭북 기병들은 안색이 돌변했다.

동륙 리국의 ‘2단 돌격’이 초원에서 재현되었다. 1만 명은 5천 명씩 전군과 후군으로 나뉘었다. 이들은 수백 보 거리의 황금창랑기가 있는 곳으로 곧장 달려갔다.

황금창랑기 아래에 말을 세우고 있던 호도로한은 근처의 붉은색 옷을 입은 청양군이 빠른 속도로 삭북군 진형을 가르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호도로한이 살짝 눈썹을 구겼다. 병력은 자신이 우세하지만, 대부분 적의 후군을 토벌하거나 전투력이 없는 중군을 죽이고 있었다. 후방의 막속이 가문 기병이 피투성이가 된 채 사투를 벌이는 까닭에 삭북군은 그들을 삽시간에 섬멸하지 못하고 발이 묶여 제때 회군하지 못했다. 적군을 포위한 전군 부대는 극심한 중압감에 시달렸다. 적진의 좌우 양봉은 굉장한 정예 기병이었다. 그리고 청양 군대를 통솔하는 자는 이들 뒤에 신예 부대를 감추어두었다가 지금 내보내며 한순간에 정면 병력의 우위를 차지했다.

“세자, 위험합니다! 적군이 전방을 뚫었습니다!”

호위 무사가 호도로한을 일깨웠다.

“나부터 죽이려는 건가?”

호도로한이 나직이 말하며 고개를 들어 자신의 황금 깃발을 보았다.

“아니면 내 깃발이 너무 눈부셔서 등불처럼 나방을 불러 모으나?”

“세자, 2리만 후퇴하시지요! 적군이 앞까지 돌진한 후에 깃발을 뽑고 후퇴하려면 많이 촉박할 겁니다. 정말 깃발을 빼앗기기라도 하면 무슨 망신입니까. 적군은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뿐입니다. 우리 대군이 적의 후군을 해결하고 돌아오면 우리가 승리합니다.”

“나는 잠시 후퇴할 수 있지만 내 깃발은 안 된다.”

호도로한이 깃대를 툭툭 쳤다.

“오늘 이 전쟁을 시작으로 매 일전 나는 내 깃발을 남쪽으로 꽂아나갈 것이다. 동륙의 최남단까지!”

“하지만…… 적군이 곧 쳐들어옵니다.”

호위 무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자에게 맡겨라.”

호도로한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 강하고 힘이 있는 자라니 그에게 내 깃발을 지키라 해. 우리는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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