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315화 (315/360)

315

2장. 요궁(妖弓)의 화살 (10)

아소륵은 좌측 끝을 가리켰다.

“진짜 뱀의 혀는 좌봉 아래에 숨어 있을 겁니다. 불화랄 장군은 귀궁 1천 명과 함께 9왕의 호표기 뒤에 숨어 계십시오. 1만 정예 기병이 적군의 진 중앙을 관통하는 순간 백랑단은 반드시 출격할 겁니다. 태납륵강에서처럼요. 저들은 항상 측면으로 움직입니다. 측면에서 우리의 진 중앙으로 곧장 끼어들죠. 군마가 치랑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들이니 매우 자신만만하게 올 겁니다. 수비는 고려하지 않은 채 덮어놓고 진격할 거예요! 저들은 9왕 쪽을 선택할 겁니다. ‘청양의 활’이 패해 물러나면 전체 전장의 형세가 역전될 테니까요. 그리고 늑대왕이 직접 백랑단을 이끌 겁니다. 그때 환약을 받지 못한 호표기가 후퇴하며 좌봉이 갈라지면 불화랄 장군의 궁수 1천 명만 남게 됩니다. 장군은 최후의 공격을 개시하세요. 전원을 통솔해 늑대왕에게 질주하며 화살을 쏘는 겁니다. 그때 삭북의 기병은 진의 뒷부분을 포위 공격하거나 우리 1만 정예병과 고전을 펼치고 있을 터라 백랑단과 떨어지게 됩니다. 장군께는 궁술에 능한 사내들이 1천 명 있고 그들은 늑대도 무서워하지 않지요. 늑대왕은 장군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겁니다. 장군에게는 늑대왕을 죽일 충분한 기회가 있습니다. 천 명이 매 순간 화살 1천 대를 쏠 수 있으니 그 화살을 전부 늑대왕에게 겨누십시오. 한 발만 명중하면 됩니다!”

불화랄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돌연 박수를 쳤다.

“알겠습니다! 저들이 우리를 산산이 부숴 버리려고 할 때 역으로 저들을 부숴버리는 전략이군요!”

“맞습니다. 제 스승이신 식연 장군께 배웠습니다. 장군께서는 이 진형을 ‘쇄전(碎箭)’이라 부르셨죠. 우리 화살이 적에게 부서지면서 그 파편이 역으로 적의 군대를 쳐부수는 겁니다. 우리가 병마를 합리적으로 배치하기만 하면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로 이루어진 화살 진형이 ‘천심’ 공격을 개시하지만, 전진하면서 흩어지는 방식으로 적군 기병을 혼전의 늪으로 끌어들일 겁니다. 화살 속에 숨어 있는 바늘인 장군은 화살이 부서지면 터져 나와 적의 눈을 찌르는 겁니다!”

“반드시 사명을 완수하겠습니다!”

불화랄이 반 무릎을 꿇었다.

한 사람의 박수 소리가 이들의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느리지만 힘찬 박수 소리였다. 이어 많은 박수 소리가 잇달아 울려 퍼졌다. 아소륵과 불화랄이 고개를 돌렸다. 여수우가 한 무리의 수하들을 이끌고 막 성벽에 오른 참이었다.

“아소륵, 동륙에서 정말 대단한 것을 배웠구나!”

여수우가 감탄했다.

불화랄 곁으로 걸어온 여수우가 자신의 화살집에서 화살 한 대를 꺼내 불화랄에게 던졌다.

“쓸 수 있는지 봐라.”

화살 한 대가 불화랄의 손에 툭 떨어졌다. 불화랄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구리로 만든 화살촉이군요. 날이 가늘고 길어서 철갑도 충분히 뚫겠습니다. 등 부분도 두껍게 만들어 보통 낭아전보다 무겁고 더 멀리 날아가며 힘도 더 강하겠네요. 갈고리가 달려 있어 살에 맞으면 바로 뽑아내지도 못하겠고요. 구리가 부식되면 독성도 생기겠습니다.”

불화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정말 흉악하고 위험한 무기입니다. 어디서 나셨습니까?”

“태과이 칸이 준비했던 것이다. 동륙 진북국의 파갑전(破甲箭) ‘송침(松針)’을 모방한 것으로 무척 값비싼 것이라더군. 원래 내게 꽂힐 화살이었다. 모든 귀궁에게 이 화살로 바꾸라 해라. 대략 5만 대가 있으니 각자 화살집 두 개를 꽉 채울 수 있다.”

“전부 누염에게 쏘는 게지요?”

불화랄은 깨달았다.

“5만 대다. 반드시 네 눈으로 그중 한 대가 누염 몽륵화아 알이한의 살점에 박히는 것을 보고 돌아와라!”

불화랄은 화살을 제 화살집에 넣으며 말했다.

“저희는 대군이 풀어준 사냥매입니다. 먹잇감의 눈을 파내지 못하고 무슨 낯으로 금장궁에 돌아오겠습니까?”

“좋다. 사냥매들에게 마음껏 날아오르라 해라!”

여수우가 아소륵과 불화랄의 어깨를 꾹 잡았다.

“시간 빼앗지 않으마. 출전하기 전에 할 일이 많을 테니.”

여수우가 뒤돌아 떠나갔다. 뒤따르던 노예들이 파갑전을 한 묶음씩 짊어지고 성 아래에 가져다 놓았다. 그들은 자칫 위험한 화살촉에 베일까봐 어깨에 두꺼운 담요를 깔고 있었다.

“대나안, 저는 가서 화살 수를 세어보겠습니다.”

불화랄은 허리 숙여 인사한 후 여수우를 따라 성 아래로 내려갔다. 몇 걸음 가던 그가 돌아보며 물었다.

“공격 시간은 언제입니까?”

“모레 새벽입니다. 날이 밝기 전, 기고 소리가 들리면 병사들과 성 아래로 모이십시오.”

“기고 소리를 기다리겠습니다.”

모두가 떠나고 아소륵 혼자 성벽 위에 남았다. 아소륵은 먼 곳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천천히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사 하나가 소리 없이 다가와 아소륵의 뒤에 섰다.

“대나안,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합륵찰?”

아소륵이 고개를 돌리고 그를 흘끗 보았다.

“너였구나……. 마음이 진정이 안 돼서. ‘쇄전’은 가장 정교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전술이야. 한 번도 실제로 써본 적 없으면서 수만 명에게 나를 따라 목숨을 걸라고 하는 거잖아. 전에 장군께서 군숙(軍塾)을 열면 나와 희야는 수시로 수업을 빼먹었어. 장군께서는 전장에 나가기 전에 충분히 학문을 닦아두어야 한다며 우리를 혼내셨지. 언젠가 수만 명을 지휘하게 될 텐데, 적군이 코앞까지 쳐들어왔는데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오면 미리미리 병서를 읽어두지 않은 걸 후회할 거라고 하셨어. 그때는 잔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후회가 되네.”

“대나안도 상양관 전장에 나갔던 영웅 아닙니까. 10만 명이 싸운 동륙 전쟁터도 경험하셨으니 이곳에서도 충분히 해내실 겁니다!”

“하지만 그때는 희야와 식원도 있고 장군들도 계셨는걸.”

아소륵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 정말로 그들이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까.”

“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나안은 군을 이끄는 큰 인물이십니다. 그런 불길한 소리 마십시오.”

호방하면서도 경망스러운 목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철익이 제 두 아들을 데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합륵찰을 흘끔 보고는 아소륵의 어깨를 덥석 끌어안으며 힘껏 가슴을 쳤다. 그 힘에 아소륵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처음 군을 이끌면 두려움에 조심스러워지게 마련이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기병 2천 명을 이끄는데 이것저것 따지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형님께 한바탕 혼쭐이 났더랬지요.”

철익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걱정 마십시오. 형님보다 전략은 부족하지만 저도 막속이 가문 사람입니다. 저희 집에는 파로와 파찰1) 두 녀석도 있고요. 저희가 함께 전쟁에 나가겠습니다. 동륙에서는 울타리 하나에도 말뚝이 세 개는 있어야 한다고 말하죠. 저희가 대나안의 말뚝 세 개가 되겠습니다!”

“저도 두려운 건 아니에요…… 다만 좀 보고 싶어서요.”

아소륵은 조용히 말하고는 남쪽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매가 검은색 번개처럼 구름을 헤치며 비스듬히 하늘을 뚫고 들어갔다.

인적 없는 이슥한 밤. 북도성 밖의 고지대 위. 누염이 거대한 늑대에 앉아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산벽공은 누염의 눈을 보았다. 저 멀리 하늘 아래의 성이 비친 핏빛 눈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이곳에 서 계신 지 오래 되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이상한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소.”

누염이 나직이 대답했다.

“늑대왕께서 말씀하시는 이상한 일이 무엇인지요?

“내 평생 북도성으로 들어가는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소. 북도성은 초원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여인이며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내에게만 속할 수 있지. 가까워졌다고 느낀 적이 두 번 있었소. 손을 내밀면 닿을 것 같았지.”

누염이 지평선 끝 불빛이 희미한 성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기나긴 거리를 뛰어넘어 성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고 그녀의 체온을 느끼고, 그녀가 머리를 숙이고 흐느끼는 소리를 들어야…… 내 마음속 갈증이 조금이나마 가라앉을 것 같소.”

누염은 커다란 손을 공중에서 천천히 뒤치더니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정말 가깝군…….”

“동륙인은 덕이 있는 자만이 천하를 차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초원인은 가장 용감한 자의 손에 보도(寶刀)가 쥐어져야 한다고 말하지요. 북도성은 늑대왕의 것이 될 운명입니다. 하여 저도 오로지 늑대왕의 종복(從僕)이 되기 위해 먼 길도 마다않고 북황까지 왔고요.”

“내 것이면 뭐가 달라지나?”

누염이 물었다.

산벽공은 살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30년 전 여숭에게 패한 나는 늑대 떼를 이끌고 황야로 떠나 30년을 지냈소. 어느 날 내가 죽으면 나의 늑대는 내 시체를 먹을 것이고 내 육신 덕분에 더 먼 황야로 갈 수 있을 것이오. 나와 나의 무사들은 멈출 수가 없소. 우리는 그 성이 우리의 것이라 해도 머물 수 없소. 그 때문에 나는 가끔 여숭과 아감제라 불리는 사내를 증오했지. 저들은 얼마나 많은 전투를 치르든 결국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 자기 여인 곁에 잠들며 잠시나마 쉼을 얻을 테니까.

그러나 나는 달라질 수 없소. 이것이 내 인생이니!”

“늑대왕 같은 영웅도 자기 인생을 후회합니까?”

산벽공이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뗐다.

“반년을 고생하며 북황에서 이곳으로 돌아왔지요. 북도성을 코앞에 둔 지금, 포기할 뜻을 비치시는 겁니까?”

“아니, 난 여전히 북도성을 차지할 거요……. 이유는 없소. 차지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내 마음속 갈망이 느껴진다오. 수십 년 전처럼, 불같이 뜨거운 마음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소. 나는 북도성을 차지할 거요! 안 그러면 편히 눈감을 수 없소.”

“늑대에 올라 탄 용사 누염 몽륵화아 알이한, 그의 월에는 수천 명의 피가 묻었다고 전해지지요. 그런 늑대왕도 깊은 밤 곧 자기 것이 될 성지 앞에 서서 사색에 잠긴다니, 많은 이가 믿지 못하겠지요?”

“최북단에서 혼자 오랜 세월을 지내면 생각할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소.”

누염이 고개를 돌려 산벽공을 흘끔 보았다.

“산벽공, 당신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시오? 당신은 멸망을 파는 상인이오 아니면 세상을 구하는 신의 사자요?”

“때로 그 둘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산벽공이 담담히 말했다.

“재미있군. 말을 아주 흥미롭게 하는구려.”

누염은 냉담하게 말하고는 재차 먼 곳의 북도성을 보았다.

“벌써 사흘이 지났군. 청양부가 성문을 열겠소?”

산벽공도 먼 곳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파소이 가문의 자손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습니다. 여숭 곽륵이 파소이의 용기가 여전히 그들을 격려할 것이고 저들은 도성 안의 부족민이 도살될 위험을 무릅쓰고 공격을 감행할 것입니다. 저들은 반드시 공격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안에는 수십만 명이 있고, 식량은 금세 바닥날 테니까요.”

“저들이 목려 같은 전술을 쓰겠소?”

“아니요, 목려의 패배를 보았으니 같은 방법을 반복하진 않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공격할 것 같소?”

“모르겠습니다.”

산벽공이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는 교묘한 전술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것으로도 이길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절대적인 힘입니다.”

* * *

1) 파로와 파찰은 아소륵의 심복인 철안과 철엽의 만족 이름. – 저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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