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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광노지혈(狂奴之血) (18)
아소륵은 이런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다. 칼자루가 갑자기 빨갛게 달궈진 쇠처럼 변했다. 힘의 각축전에서 아소륵은 상도로합음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아소륵은 연달아 다섯 보 물러났다. 밀어내는 기세를 저지할 방도가 없었다. 아소륵은 두 손으로 칼자루를 비틀어 돌렸다. 영월도의 날카로운 칼날이 방패의 구리 비늘을 으스러뜨렸다. 마침내 상대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된 아소륵은 칼을 끌고 재빨리 한쪽으로 피했다. 상도로합음은 힘을 거두어 들였다. 몸을 돌려 아소륵을 마주한 상도로합은은 양손의 검날을 들어 올리며 한 걸음 나아갔다.
“영월은 혼이 새겨진 무기로 주인의 피에 소환된다. 칼에 기생하는 영혼이 네 의식에 침투한 것이다.”
산벽공이 나직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는 과부다. 네 건장한 몸과 마음은 원혼(冤魂)의 잠식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내 너에게 창생(創生)의 힘을 하사하였으니 이제 저자의 무기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
상도로합음이 재차 한 걸음 나아가며 세찬 천둥 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양손을 교차해 잡으며 방패의 동검을 십자 모양으로 놓았다. 아소륵은 산처럼 묵직한 십자 모양이 제 머리로 내리쳐지는 것을 보았다. 영월로 막을 자신이 없었던 그는 몸을 젖히며 재빨리 피했다. 상도로합음의 양손 주먹이 허탕을 치고 지면을 내리쳤다. 동검 한 쌍은 동시에 눈밭에 파묻혔다. 상도로합음의 쌍검이 타들어가는 숯처럼 순식간에 얼음과 눈을 녹이며 그 아래 시커먼 흙이 드러났다.
아소륵은 목려의 옷깃을 붙잡고 칼을 가로놓아 방어하며 천천히 후퇴했다.
상도로합음이 두 팔을 천천히 펼쳤다. 지극히 경건한 눈빛으로 하늘을 보자 쌍검의 날에 불처럼 빨간 빛깔이 감돌았다. 상도로합음이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검날의 붉은 빛깔이 점점 더 눈부셔졌다. 하락의 용광로 속 쇳물처럼 온도가 끊임없이 올라갔다. 회전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차츰 아소륵은 그의 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상도로합음의 검날에서 휙휙 스산한 소리가 났다. 그가 거대한 팽이처럼 아소륵을 향해 밀려왔다. 상도로합음이 지나는 곳마다 얼음과 눈이 녹고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삭북 무사들은 기적을 목격한 것처럼 두려움에 벌벌 떨며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아소륵은 상도로합음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 과부 무사의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힘에 산벽공의 비술이 더해지자 전혀 방어가 불가능했다. 아소륵은 상도로합음의 움직임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치명적인 고온의 열기가 벌써 몇 걸음 거리에서 아소륵을 덮쳐왔다.
그때 또 한 마리의 말발굽 소리가 강기슭을 따라 거슬러 올라왔다. 겨우 한 마리였지만 발굽 소리는 뇌성처럼 요란했다.
상도로합음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그는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누가 오든 사람도 말도 함께 뭉개버리고 숯더미처럼 불살라버릴 수 있었다. 가까워져오던 말은 제 앞을 가로막으려던 삭북 기병 하나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삭북 기병은 말안장에서 떨어졌고 천근이 넘게 나가는 설령가도 하늘로 날아오르며 새빨간 피를 토했다. 삭북 기병을 들이받은 상대는 멈추지 않고 상도로합음의 등 한복판으로 긴 창을 내질렀다. 새카만 창은 길이가 1장 2척에 달했다. 거대한 창머리에 엮인 쇠고리가 쩌렁쩌렁 진동했다.
긴 창과 상도로합음의 작열하는 검날이 맞부딪쳤다. 쇠로 만든 창머리가 튕겨져 나갔다. 그러나 상도로합음의 검날은 멈추지 않고 달려드는 말의 가슴에 명중했다. 상도로합음은 온몸이 고통스러웠다. 온 힘을 다해 철벽을 내리쳤는데 도로 튕겨져 나온 느낌이었다. 불가사의하게도 상도로합음의 검날은 말의 배를 가르지 못했다. 금속 마갑이 완전히 상도로합음의 힘을 흡수해버렸다. 말 등에 탄 기병이 맨 창을 찔러 넣었다. 상도로합음은 그제야 창 전체가 쇠로 만들어져 창머리가 제거되어도 여전히 날카롭다는 것을 알아챘다.
상도로합음은 한 손으로 쇠창의 창대를 단단히 움켜잡았다. 상대 기병의 사나운 말이 그를 떠받치며 뒤로 밀어냈다. 상도로합음은 쌓인 눈 아래의 땅을 딛고 온힘을 다해 밀려나는 기세를 멈추려 하면서 다른 손에 든 동검을 재차 내리쳤다.
또 2척 길이의 쇠 창대가 날아갔다. 하지만 상대 기병은 여전히 남은 8척의 쇠창을 찔러 넣었다.
상도로합음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갑옷도 입고 있지 않았다. 입었다고 해도 말의 힘과 함께 찌르고 들어오는 창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상도로합음은 다시 한번 창대를 움켜잡고 동검을 베었다.
쇠창의 남은 길이는 7척. 상대방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상도로합음이 포효를 내지르며 도리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어깨로 말의 목을 떠받친 채 이를 악물고 밀려나지 않았다. 상도로합음은 창대를 움켜잡고 그대로 창 중앙을 베었다.
상대측 무사의 손에는 4척 길이의 창대만 남았다. 그자는 갑자기 창대를 뽑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리더니 온 힘을 다해 상도로합음의 정수리를 후려쳤다. 상도로합음은 팔을 들어 막았다. 한 차례의 공방에서 양측은 전력을 다해 힘이 빠진 상태였다. 정수리를 치면서 청양 무사는 군마를 끌고 후퇴했으며 상도로합음도 느릿하게 뒤로 걸음을 옮겼다. 상도로합음이 뒤로 한 걸음 껑충 뛰었다. 상대측 기병도 군마를 단단히 붙들어 매며 더 이상 전진하지 않았다. 양측은 승부를 가르지 못한 채 숨을 헐떡였다.
상도로합음은 그제야 상대를 똑똑히 보았다. 그에게 달려든 준마와 무사는 피부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새카만 강철 갑옷으로 온몸을 뒤덮었다. 흑철을 통째로 단조해 만든 것 같았다. 아까 말의 가슴에 명중한 상도로합음의 검날은 갑옷 중앙을 안쪽으로 동그랗게 부서뜨렸을 뿐, 가르지는 못했다. 상도로합음은 이런 금속이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본디 그의 검은 주먹 두께의 철판도 매끄럽게 반으로 가를 수 있었다. 이 준마에 부딪쳐 날아간 설령가 준마는 눈밭에 쓰러져 숨이 간들간들했다.
“철익.”
아소륵은 위엄 있는 철가면 아래 누가 있는지 알았다.
철익은 반 토막 난 쇠창을 던져 버리고 천천히 칼을 뽑으며 말했다.
“대나안, 철수하시죠. 삭북의 늙은 늑대가 돌아오는 건 원치 않습니다.”
“철부도. 과연 유일무이한 갑주로군.”
산벽공이 감탄했다.
“어서요!”
철익이 나직이 호통쳤다.
아소륵은 몸을 웅크려 목려의 왜소한 몸을 제 등에 업었다. 문득 자신이 목려보다 키가 더 자랐다는 사실을 알았다. 목려를 업고 려롱구 옆으로 간 아소륵은 그를 말 등에 태우고 본인도 말에 올라탔다. 철익이 말을 몰아 아소륵의 곁으로 다가갔다. 말 두 필이 나란히 후퇴했다. 네 개의 눈은 상도로합음과 산벽공을 주시했고 철익의 칼과 영월도가 양익을 엄호했다.
“가도 된다. 우리에게는 다른 결전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산벽공이 살며시 손을 흔들었다.
산벽공은 그렇게 말하면서 시선은 내내 멀리 강기슭을 향했다. 철익과 똑같은 장비를 갖춘 기병 100여 명이 호표기가 사용했던 일자진을 펼치고서 후미에 있는 삭북 기병 수백 명을 향해 쇠창의 창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가시죠!”
철익이 아소륵의 말고삐를 홱 잡아당기고는 뒤돌아 질주했다.
아소륵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붉은 눈밭을 질주하고 있었다. 눈 속은 온통 시체로 가득했다. 청양부 최후의 ‘패알륵’이 전부 태납륵강 서쪽 전장에서 전사했다. 이 청년들은 죽을 때까지 자유를 되찾지 못했다.
“보았느냐? 저 청년의 눈에 깃든 증오를…….”
산벽공이 철부도의 호위를 받으며 떠나가는 아소륵을 보고 나직이 말했다.
“상도로합음, 우리가 하려는 일로 온 세상이 우리를 증오하겠지?”
“어떤 일이 있어도 저는 스승님의 뒤를 따를 겁니다.”
상도로합음이 똑바로 서서 고개를 쳐들었다.
산벽공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의 넓은 어깨를 토닥였다.
“너희는 나를 스승이라 모시지만, 이 여정에서 너희가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벌써 죽었을 게다.”
산벽공이 말머리를 돌려 떠나갔다. 상도로합음도 성큼성큼 건장한 말을 쫓아 달려갔다.
철부도의 빠른 말이 북도성 성문에 접근했다. 철익은 깃발을 들지 않았다. 삭북군이 쫓아오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아소륵은 오는 내내 목려의 옷 속에 손을 넣고 더듬어 심장이 뛰는지 확인했다. 아소륵은 서서히 마음이 놓였다. 목려는 많이 약해졌지만 심장 박동은 여전히 안정적이고 힘이 있었다. 청양군 진영까지 수십 보 남은 거리에서 아소륵은 려롱구의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속도를 줄였다. 군마는 곧장 구미대독이 세워진 곳으로 달려갔다. 아소륵은 심장이 철렁했다. 여수우가 반찰렬의 부축을 받으며 한 손으로 말안장을 괸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소륵을 보는 순간 여수우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살며시 고개를 틀었다.
아소륵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참패한 군대는 절망에 빠져 침체된 분위기였다. 호표기는 과거의 오만함을 잃었고 다른 기병대도 전사한 무사들을 애도하며 전기(戰旗)를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한나절 전만 해도 이 군대는 북륙 초원을 휩쓸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넋이 나간 것 같았다. 눈빛에 생기도 없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부상을 당해 죽기 직전인 군마들이 슬피 울부짖었다. 눈은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아소륵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를 환영해주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누구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애를 써도 미소조차 지을 수 없었다.
“의원을 불러라!”
아소륵이 고개를 돌려 철부도 무사에게 명령했다.
손 하나가 아소륵의 손목을 붙잡았다. 고개를 숙인 아소륵은 그제야 목려가 깨어났음을 알았다. 다만 목려의 눈빛은 여전히 공허했다. 지난날 사납기 그지없던 눈에는 누르스름한 눈동자만 남아 있었다.
합로정 가문 쪽에서 갑자기 곡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지 짐작이 된 아소륵은 속으로 움찔했다. 그쪽으로 가보았다. 청년 귀족 하나가 노인의 몸에 엎드려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그를 따라 모든 합로정 가문의 기병들이 무릎을 꿇었다. 곡소리에 지면이 뒤흔들렸다. 아소륵은 액일돈달뢰라 부르는 청년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어렴풋이 합로정 가문 가주의 얼굴은 기억했다. 지금 그 노인이 눈밭의 담요에 누워 있었다. 가슴에는 화살 한 대가 꽂혀 있고 상처 부근의 핏자국은 이미 메말라 있었다.
합로정 가문 가주의 죽음으로 이번 참패의 심각성은 더욱 커졌다. 여수우는 아등바등 몸을 일으켰지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안장을 붙잡은 채 천천히 땅에 주저앉았다.
액일돈달뢰는 통곡하며 두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이제부터 그가 합로정 가문의 새 주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께 출전을 권했던 일이 뼈저리게 후회되었다. 제 아버지를 해친 자신의 젊음과 충동을 증오했다. 늑대 같은 삭북인들은 더욱 증오스러웠다. 젊은 액일돈달뢰는 이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지금에서야 제 아버지가 음험하고 잔인한 사람이지만 자신에게만큼은 늘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제 영원히 보답할 길이 없었다.
액일돈달뢰가 고개를 돌렸다. 아소륵의 말안장에 탄 목려를 본 그는 순간 아연해졌다. 액일돈달뢰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호위 무사의 허리에서 칼을 뽑아 성큼성큼 목려에게로 다가갔다. 아소륵은 깜짝 놀랐다. 자연스럽게 영월도를 칼집에서 뽑아 자신과 목려 앞에 가로놓았다. 칼에 묻은 핏자국이 아직 마르지 않았고 영월도에서는 사악하고 기이한 광채가 감돌았다.
“가주! 가주!”
합로정 가문의 무사 몇 명이 액일돈달뢰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나 미친 소 같은 제 주인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알적근과 탈극륵 가문의 작은 주인들은 액일돈달뢰의 벗이었다. 그들도 음침한 얼굴로 칼을 뽑아 액일돈달뢰의 옆에 섰다. 두 가문의 가주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는 아들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사나운 청년 셋을 마주한 아소륵은 천천히 말을 몰아 물러났다. 액일돈달뢰와 그의 벗은 아소륵이 누군지 몰랐다.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목려만 보였다. 누구든 그들을 막으면 그자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었다. 철익이 말을 몰아 아소륵에게 다가오며 손으로 슬그머니 칼자루를 더듬었다.
“세자, 명심하십시오! 사내는 승부욕이 있어야 합니다!”
목려가 갑자기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아소륵에게 말했다.
“위축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목려는 아소륵을 뿌리치며 말 등에서 뛰어내리더니 전방으로 손을 뻗었다. 목려의 동작에 엄청난 힘이 실려 있었다. 슬픔과 분노에 찬 액일돈달뢰도 그런 목려에게 압도되어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목려의 누르께한 눈동자에 다시 맹렬하고 사나운, 심지어 광망한 기색이 어렸다.
늙은 목려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외로이 섰다. 그는 북도성 성문 앞에 서서 성난 눈으로 쏘아보는 귀족들, 지친 대군, 그리고 살아남은 청양 무사 수만 명을 마주했다. 목을 쳐 부러뜨린다고 해도 눈을 뒤집어 하늘을 쳐다볼 듯 완고했다. 목려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노예 때부터 장군이 되어서도 그의 목은 늘 이렇게 부러뜨리고 싶을 만큼 뻣뻣했다.
사위가 고요했다. 수많은 눈송이가 떨어져 천천히 쌓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목려가 갑자기 발끝으로 눈밭에 떨어진 칼을 걷어 올렸다. 그리고 칼을 높이 들어 제 뒷목을 내리쳤다.
“목려 장군!”
아소륵이 소리쳤다. 말 등에서 뛰어내려 목려를 향해 미친 듯이 내달렸다.
아소륵은 목려가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았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목려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것은 칼로 뒤에서 제 목을 베기 위함이었다. 늙은 노예의 머리가 눈밭에 굴렀다. 샘솟는 피는 찬란하면서도 슬프게 하늘로 솟구쳤다. 아소륵과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불화랄이 동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노쇠하고 깡마른, 머리 없는 몸통이 천천히 쓰러졌다.
아소륵은 내면에서부터 솟구쳐나오는 고통을 느꼈다. 피가 서서히 식어갔다. 아소륵은 서 있을 수가 없어 발을 질질 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소륵은 목려의 시체 옆에 무릎을 꿇고 묵묵히 그를 품에 안아 들었다. 애써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눈물은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아소륵은 주위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뭐라 소리쳐야 할지 몰랐다. 그저 그가 죽었다고, 왜 죽어야 하느냐고 외치고 싶었다.
액일돈달뢰와 나머지 두 사람은 제자리에서 말없이 지켜보다가 칼을 던지고 뒤돌아 떠나갔다. 다른 사람들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이 고개를 돌리고 자리를 피했다. 여수우는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떨어져나갈 듯 무거웠다. 아소륵은 저들의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인파 속에서 익숙한 인영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아소륵의 기억 속 수많은 사람이 이미 죽고 없었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영원히 그를 떠났다. 10년 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아소륵은 목려의 시체를 꼭 끌어안고 눈밭에 벌러덩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