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282화 (282/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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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광노지혈(狂奴之血) (4)

“막속이 가문의 기병이 출격했습니다!”

척후가 쏜살같이 호표기 진영 중앙으로 들어와 9왕의 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철진에 대한 목려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구나.”

9왕이 담담히 웃으며 손을 내둘렀다.

“그래, 알았다.”

삭북부 기병이 빠른 속도로 꽝꽝 얼어붙은 태납륵강을 건넜다. 하지만 건장한 설령가 종 군마는 전속력으로 질주할 수 없었다. 그들은 태납륵강 동쪽 기슭에 발을 내딛는 즉시 가로막혔다.

막 강을 건넌 삭북 무사들은 군도를 들었다. 전신에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며 지옥 같은 살인 현장에 뛰어들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앞으로 만 필이 넘는 군마가 말 머리와 엉덩이를 서로 바짝 붙인 채 한데 모여 있었다. 그들에게는 애당초 전진할 기회가 없었다. 전방의 사람들도 계속 후퇴해 왔다.

고작 3천 명이었지만 청양의 노예 무사들은 진지에 박힌 쇠못처럼 삭북 철기병의 발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 자리에 박아버렸다.

제대로 전쟁에 뛰어든 삭북 무사는 최전방의 2~3천 명이 다였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군마를 채찍질하고 군도를 휘두르며 눈구덩이에서 튀어나온 고약한 노예들을 죽였다. ‘패알륵’을 능가하는 철갑과 괴력의 설령가 종 군마를 보유한 삭북 무사들의 눈에 보병 무사들은 한 번에 밟아 죽일 수 있는 개미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개미들은 군마의 앞뒤 좌우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순식간에 칼을 휘둘러 말 다리를 베거나 사람의 다리를 베었다. 하나같이 승냥이처럼 사나웠고 귀매처럼 거침없었다. 삭북 무사들의 조급하고 분노에 찬 공격은 대체로 허탕을 쳤다. 처음의 오만함은 차츰 두려움으로 변해갔다. 세상이 뒤집혀 원래 사냥꾼이던 그들이 이제 사냥감이 되었다는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새카만 우전이었다. 양익에서 끊임없이 쏘아지는데 거의 모든 화살이 말의 목이 아니면 사람의 가슴에 명중했다. 삭북부 무사들도 바로 화살을 쏘았다. 큰 수리를 쏠 수 있을 정도의 명사수도 조금 있었지만 말이 빠르게 달리면서 말 등이 격렬하게 오르락내리락 해 정확하게 조준하지 못했다. 지금 삭북 무사들은 그저 활시위를 가득 당겨 전방으로 화살을 쏘며 쏘아낸 화살에 힘이 실리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반면 검은 옷을 입은 궁수들에게는 모든 화살이 귀했다. 그들은 직접 이 화살을 깎아 만들었는데 화살을 만들 때 반달 천신에게 축복을 빌며 바람의 힘이 화살에 실리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그리고 이 모든 화살은 적의 피를 맛보는 데 쓰였다.

검은 옷을 입은 궁수 1천 명이 두 무리로 나뉘어 눈먼지를 밟으며 고속 질주해 왔다. 그들은 각각 긴 호선(弧線)의 대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삭북군의 양익으로 기다란 칼이 날아오는 것 같았다. 삭북 무사들이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그들은 벌써 흔들리는 말 위에서 활에 화살을 얹었다. 새카만 우전 500대가 거의 동시에 활시위를 떠났다.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세례에 100명 이상이 말에서 떨어졌다. 뒤편의 삭북 무사들이 소가죽을 덮은 작은 방패를 들어 화살을 막으려 하자 검은 옷의 궁수들은 활을 하늘로 향했다. 이번 화살은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더 높이, 더 멀리 거대한 호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은 삭북군 중앙에 떨어졌다. 또 백 명 넘는 군사가 말에서 떨어졌다. 검은 우전이 뒤덮는 범위는 매우 집중되어 있었다. 직경 50보 남짓한 원에 불과했지만 화살의 밀도가 높아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삭북부 정예병이 나와 이 궁수들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흩날리는 눈먼지만 남겨둔 채 눈밭에서 커다란 호선을 그리며 신속하게 전장을 벗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옷을 입은 궁수들이 다시 양익에 나타나 또 한 차례 치명적인 화살을 쏟아부었다. 그들의 습격은 짐승처럼 흉포한 노예 무사들보다 더 위험했다. 더 많은 삭북 무사가 곡도가 아닌 화살에 죽어나갔다.

“귀궁이다! 귀궁!”

삭북 백부장이 목청이 터져라 부르짖었다.

“방패를 들어라! 전원 방패를 들어!”

백부장은 청양에 존재하는 이 비밀 군대가 떠올랐다. 이 군대가 전쟁 초반에 투입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큰 수리를 쏘아 떨어뜨리는 화살이 이렇게 강력한 힘을 지녔을 줄은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말안장에서 방패를 떼어내자마자 검은색 우전 한 대가 정면으로 날아왔다. 그는 민첩하게 방패를 들어 제 목을 보호했다. 날카로운 무기가 썩은 나무를 관통한 듯, 둔탁한 소리가 작게 울렸다. 이어 백부장은 목구멍에서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선혈에 시야가 흐릿해지고 그는 눈밭에 고꾸라졌다.

화살은 방패를 뚫고 백부장의 목까지 관통했다. 늑대 이빨로 만든 화살촉이 백부장의 뒷목에 손가락 마디 하나 만큼 드러나 있었다.

더 많은 인원이 말에서 떨어졌다. 드넓은 설원 위, 귀궁은 양익에서 장도(長刀) 진형을 이루고서 혼란에 빠진 삭북 대군에게 거듭 공격을 가했다.

불화랄은 곡도를 눈밭에 꽂고 칼자루에 기대 숨을 몰아쉬었다. 양쪽에 있던 노예 무사들이 곧장 달려와 그의 빈 자리를 메웠다. 크게 숨을 들이켠 불화랄은 격렬하게 기침했다. 그는 귀궁의 우두머리였다. 이런 결정적 순간에 쉴 수 없었다. 벌써 얼마나 많은 노예 무사가 말발굽에 짓밟혀 눈밭 깊이 파묻혔는지 몰랐다. 어느 방향으로든 한 걸음만 내디뎌도 적 아니면 동료의 시체가 밟혔다. 불화랄은 속으로 외쳤다.

‘지금은 싸워야 할 때다. 쉴 수 없다. 절대!’

하지만 불화랄은 자신이 근접 격투에서 목려가 직접 훈련시킨 노예 무사에 한참 못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청년들은 고통도, 두려움도 모르는 듯 동료가 쓰러져도 구하러 가지 않고 다음 적에게 달려들었다. 부상을 당해도 울부짖지 않았다. 팔이 잘린 젊은 노예 하나는 피를 흩뿌리며 눈밭에 쓰러졌다. 그는 사정없이 눈을 한 움큼 입에 집어넣고 제 허리춤의 소가죽 띠를 끌러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도록 잘린 팔 부분을 동여맸다. 입에 눈을 머금은 채 다시 일어선 무사는 말없는 표범처럼 다음 적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삭북 기병 둘을 또 베었다. 창에 가슴이 꿰뚫리고서야 그는 입에 머금고 있던 눈과 새빨간 피를 공중에 토해내며 힘없이 눈밭에 쓰러졌다.

불화랄은 고개를 숙이고 칼날에 이가 다 빠진 곡도를 보았다. 젊은 노예 무사들도 사실 불화랄처럼 체력이 거의 다 소모되었고 군도도 거의 다 망가졌다. 이는 목숨을 건 전술이었다. 지금이야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기력은 고갈되게 마련. 그때가 되면 후방에 억류되어 있던 기병 대대가 돌격해 순식간에 나약한 보병들을 집어삼킬 것이다.

삭북 무사가 얼마나 남았지? 얼마나 더 칼을 휘두를 수 있을까? 오만한 청양 기병들이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노예들을 구하러 올까? 이런 어수선한 생각에 불화랄은 난데없이 전율이 일었다. 불화랄이 휙 고개를 들었다. 장도 한 자루가 귀신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내며 위에서 내리쳐졌다. 불화랄의 우측에 있던 노예 무사가 한 걸음 나와 칼을 가로놓으며 적군의 칼을 막았다. 그러나 두 칼이 맞부딪치는 순간 노예 무사의 곡도가 살짝 떨리더니 그대로 부러져버렸다. 삭북 무사는 군마를 곧게 일으켜 세웠다. 군마의 말발굽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는 그 힘을 받아 재차 칼을 휘둘렀고 단칼에 노예 무사의 머리 정중앙을 반으로 갈랐다.

짐승 같은 외침과 격한 분노가 불화랄의 마음을 뒤덮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눈을 한 움큼 입에 머금고 칼날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칼이 불화랄의 어깨를 베는 순간 그는 손을 휙 내둘러 삭북 무사가 장도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망가진 곡도로 공중에 스산한 호선을 그리며 칼을 쥔 삭북 무사의 손을 잘라 버렸다. 불화랄은 다시 한 걸음 내디디며 전력을 다해 곡도로 삭북 무사의 아랫배를 꿰뚫었다.

불화랄은 고개를 돌려 눈밭에 쓰러진 노예 무사를 쳐다보았다. 앳된 얼굴은 반으로 갈라졌고 부릅뜬 눈에는 더 이상 일말의 생기도 없었다. 흘긋 쳐다볼 정도의 여유밖에 없었다. 불화랄의 등 뒤에서 밀물처럼 삭북 무사들이 다시 돌격해 왔다. 그는 최선을 다해 이 순간 저 노예 무사의 얼굴을 기억하려 했다. 하지만 어리석은 바람이라는 걸, 그도 알았다. 불화랄은 묵묵히 웃으며 휙 몸을 돌리고 전방으로 달려갔다. 불화랄은 노예들과 함께 칼을 휘두르고 포효하며 돌격했다.

불화랄은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어깨 부상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몸에 묻은 피가 제 것인지 적의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더 이상 이 군대의 힘이 언제 다 소모될지 생각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한 계속 칼을 휘두른다.’ 이것이 바로 노예 무사들의 생존 법칙이라고 생각했다. 제 아버지가 가르쳐 주었던 것과 하나 다르지 않아 불화랄은 내심 기쁘기까지 했다. 노예 무사들이 왜 부상자를 구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들의 생명은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방금 그 노예 무사가 제 목숨으로 불화랄의 목숨을 맞바꾼 이유도 다른 게 아니라 그저 적을 죽일 최대의 힘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최후의 한 사람이 살아있는 한 이 군대는 죽지 않았다. 누군가가 불화랄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몸을 돌려 벗어나려던 불화랄은 얼굴의 반이 선혈에 뒤덮인 목려를 보았다.

“그만 돌진하게. 철진의 기병이 오고 있네. 그들이 도착하면 우리는 양쪽으로 흩어지고 철진의 기병대가 정면으로 적진에 돌진할 걸세.”

“철진 장군이 옵니까?”

불화랄의 살기가 살짝 누그러졌다. 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 흐물흐물 주저앉을 것 같았다.

목려가 낭봉도의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귀족 중에서 철진 파혁 막속이는 믿네.”

최전방의 노예 무사들 사이에서 갑자기 동요가 일었다. 삭북 기병대를 압박해 계속 후퇴하게 만들던 강렬한 공세가 돌연 멎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불화랄은 나직한 으르렁거림을 들었다. 먼 산꼭대기에 둔중한 번개가 내리치는 것 같았다.

불화랄은 곧바로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키가 작은 목려의 시선은 사람들 머리 위를 넘어서지 못했다. 옆에 있던 노예 무사가 즉시 웅크리고 앉아 제 어깨를 내주었다. 목려와 불화랄은 동시에 숨을 헉 들이켰다. 전방의 노예 무사들도 서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맞은편의 삭북 기병 대대는 추격해 오지 않고 천천히 흩어지며 드넓은 길을 열었다.

포효하는 거대한 짐승 한 마리가 삭북부 기병 대대에 나타났다. 세 사람 키 정도 높이의 짐승은 갈색 소가죽에 검은색 쇠못으로 이루어진 갑옷을 전신에 휘감았다. 머리에는 끄트머리가 전부 무쇠로 감싸진 광이 나는 뿔 여섯 개가 있었다. 놈은 이 거대한 철면갑을 머리에 덮어쓰고 불타는 숯처럼 새빨간 눈만 드러냈다. 짐승은 쇠사슬에 얽매여 있었다. 건장한 삭북 무사 12명이 각 방향에서 쇠사슬을 잡아당기며 짐승을 통제했다. 그러나 이미 흥분하기 시작한 짐승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흔들고 네 발을 구르며 격렬하게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후퇴한다! 후퇴!”

목려가 칼을 들고 큰 소리로 명령했다.

노예 무사들은 신속하게 후퇴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삭북 무사 12명이 쇠사슬을 놓았다. 마침내 가쇄의 속박에서 벗어난 짐승은 미친 듯이 포효를 내지르고는 고개를 숙여 뾰족한 뿔 여섯 개를 앞으로 두고 노예 무사들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해왔다. 삭북 무사들은 전원 후퇴했다. 쇠사슬을 잡아당기던 무사 한 명만 제때 피하지 못했다. 그는 발이 쇠사슬에 감겨 몇십 보를 끌려가다가 겨우 벗어났고 온몸에 얼음과 눈을 묻힌 채 뒤돌아 내달렸다.

이 짐승이 등장하자 전장의 모든 사람과 모든 군마가 보잘 것 없고 약해 보였다. 놈이 내달리자 쇠가시를 가득 실은 대형 전차가 달리듯 대지가 진동하며 눈먼지가 두 사람 키 높이만큼 일어났다. 불화랄은 생각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닥쳤음을 금세 깨달았다. 질주하는 짐승의 속도는 준마를 능가했다. 대략 만근에 달하는 체중은 누구든 부딪치면 뭉개질 것이었다. 게다가 긴 창 같은 뿔과 갑옷에 난 2척 길이의 쇠침까지 있었다.

“‘전추(戰錘)’라네. 미친 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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