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266화 (266/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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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창랑기 (4)

“누염이 백랑단을 이끌고 북황에서 돌아왔다고 하더군. 장군의 척후는 아직 늑대왕을 직접 보지는 못한 것이 맞소?”

여수우가 또 물었다.

“척후는 백랑단도, 늑대왕도 보지 못했습니다. 삭북인의 영지에는 기병뿐이었습니다.”

여수우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뗐다.

“대략 10년 전 하당국이 탁발산월이 북도에 사절로 왔을 때 아버지께서 그와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사륜보 부근에 사냥을 나갔소. 그때 늑대 떼를 만났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지. 당시 나는 하얀 늑대를 보고 불안해 아버지께 삭북인이 늑대 떼를 끌어들인 것은 아니겠느냐고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내 말을 무시하셨소.”

여수우가 주위 사람들을 훑어보고는 말을 이었다.

“백랑단의 전설은 초원에 퍼진 지 오래되었소. 누염의 이름을 들은 아이들은 밤에 울지도 못한다지. 우리는 어쩌면 이런 적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오. 한데 이 안에 백랑단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되지?”

여수우는 먼저 여응양과 여하를 쳐다보았다. 두 형제는 고개를 저었다. 여수우는 또 대귀족 가주들을 쳐다보았다. 그들도 고개를 저었다. 그는 9왕과 철진을 쳐다보았다. 이 둘도 고개를 저었다. 여수우는 고개를 들고 금장국 구석의 대합살과 목려를 쳐다보았다. 대합살은 여전히 왔다갔다 걷고 있었고 목려는 고개를 숙인 채 혼자 칼을 뽑았다가 넣었다가 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여수우의 말을 못 들은 듯했다. 여수우는 속으로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수우가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꺼냈다.

“요 며칠 성안에서 백랑단이 어떻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분분한 것을 알고 있소. 백랑단의 이름을 듣는 걸 악귀를 보는 것보다 더 무서워한다지. 하지만 내내 의문이 드는구려. 북황 쪽은 언 땅과 얼음층뿐이며 풀 한 포기 없이 이끼 종류만 자라오. 짐승은 말할 것도 없겠지. 듣자니 모우를 타고서도 살아서는 갈 수 없는 곳이라더군. 한데 백랑단이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겠소? 수천 마리의 치랑1)으로 이루어진 늑대 떼라면 보통 거대한 무리가 아닐 텐데 그들을 기르려면 먹이는 또 얼마나 필요하겠소?”

모두가 또 다시 침묵했다. 여수우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백랑단은 절대 다수에게 하나의 전설에 가까웠기에 살짝 부풀려진 면이 있었다. 왜냐하면 백랑단은 항상 일부러 자신들의 행적을 숨겼고 삭북인도 이 위험한 군대를 사람들 앞에 두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지난 30년간 백랑단이 북도에 접근했다는 소문이 몇 번 돌았고 호표기 전체가 경계했지만 진짜 치랑 한 마리도 본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북부 초원에서 백랑단은 자신들이 지나간 곳에는 산 사람을 남겨두지 않아서 이 군대의 진면목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삭북부 세자 호도로한도 한 번은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자기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자기도 모른다고, 어쩌면 벌써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또한 늑대 기병이 하는 일은 삭북부와 상관이 없으며 그자들은 그저 짐승이라고 했다.

“대군, 주제산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9왕이 침묵을 깨뜨렸다.

“어릴 적에 들어보았습니다. 주제산은 북황 끄트머리에 자리한 매우 큰 설산으로 그 산을 보면 자기가 얼마나 하찮은지, 그것에 비하면 다른 설산은 난쟁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지요. 하지만 소문처럼 들리더이다. 살아서 그곳까지 간 사람이 없으니까요.”

“맞습니다. 소문에 주제산에 가려면 오랜 세월 녹지 않는 동토와 얼음층을 넘어 반년을 걸어야 한답니다. 가는 길에는 사람이나 동물은커녕 아무것도 없고요.”

9왕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주제산은 지극히 거대한 화산으로 자주 폭발한답니다. 암장이 주제산 아래 땅을 태워 그곳은 눈이 쌓이지 않으며 사방 천리 초목이 무성한 초원이라지요. 그곳을 가보았고 또 살아서 돌아온 사람이 말하기를 그 초원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들이 있다 합니다. 말처럼 커다란 사슴, 키가 사람 어깨 높이만 한 야생마, 온몸이 금빛인 푸른 양 떼가 평화롭게 수백 보 거리를 떨어져 풀을 뜯는 모습이 천국처럼 아름답다 합니다. 그 사람들이 눈밭에서 얼어 죽기 직전에 본 환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백랑단이 그 일대에 숨어 있다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곳은 삭북부의 수백 년 된 성지로 알이한 가문 최대의 비밀이라 합니다. 한때 이름도 있었다지요. 답아간모 초원, 맛좋은 술이 흐르는 초원이라는 뜻이며 어떻게 북황을 넘어 그곳에 도달하는지 아는 사람은 알이한 가문 사람뿐이랍니다.”

“빙야에 녹지라.”

여수우가 잠시 침묵했다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확실히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거군요. 삭북부에 치랑 기병 수천 명으로 조직된 군대가 있으며 그것은 삭북인이 우리를 위협하려고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이겁니까?”

“주제산이니 답아간모 초원이니 하는 것들이 소문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백랑단의 소문이 이리도 많은 것을 보면 지어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수우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도로한의 기병만 상대한다면 싸움은 많이 수월할 겁니다.”

탈극륵 가문의 가주가 몇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대군, 병력을 비교할 때가 아닙니다. 누염이 살아있든 죽었든, 삭북에 늑대 기병이 있든 없든 거래를 시도해봐야 합니다. 선대 대군이 막 돌아가시어 민심이 흉흉한데 고리격대회도 아직 열리지 않은 지금 삭북과 전쟁을 한다면 아무리 작은 패배도 청양의 명성에 흠이 될 것입니다. 그리 되면 각 부락의 주군들을 어찌 설득해 고리격 대회에 참가시키고 정식으로 대군을 초원의 주인으로 인정하라 하겠습니까? 삭북인은 성격이 흉악하고 난폭하니 우리 병력이 우세하다 해도 반드시 쉽게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누염은 몰라도 호도로한은 거래를 시도해볼만합니다. 호도로한은 기껏해야 약간의 영토를 요구할 겁니다. 설마 대군 자리까지 탐내겠습니까?”

알이한 가문의 가주도 거들었다.

“거래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요. 만일 누염이 아직 살아 있고 우리가 삭북과 격전을 치르게 된다면 피해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손해를 좀 보더라도 소와 양을 주고 물러가게 함이 어떨는지요.”

“말은 번지르르하군. 삭북부와 격전을 치르면 피해가 막심할 거요. 오늘날 청양부에서 누가 누염의 늑대에 맞설 수 있겠소? 누염 앞에 서는 것도 치욕이 될 텐데.”

쉰 목소리 하나가 툭 튀어나오더니 싸늘하게 비웃었다.

“대군, 요행을 바라지 마십시오. 치랑 수천 마리로 이루어진 백랑단은 정말 있습니다. 30년 전 대군께서 강보에 쌓여 있을 때, 백랑단이 북도를 공격해 금장궁 앞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모습을 제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목려가 칼을 만지작거리던 소리가 돌연 끊겼다. 목려는 고개를 들고 누르께한 두 눈으로 여수우를 응시했다.

여수우는 순간 놀라 숨을 들이키고는 말을 툭 뱉었다.

“백랑단이? 이곳에서 사람을 잡아먹었단 겁니까?”

“목려! 그딴 근거 없는 말로 누구를 겁주려는 거요?”

망가살이 가문의 가주가 걸어 나왔다. 허리둘레에 살집이 두둑한 노인의 말투는 매우 단호했다.

“대군은 젊지만 나는 많이 늙었소. 당시 치열한 격전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 나는 치랑이 금장궁 앞까지 공격해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소.”

“존귀한 망가살이 가문 가주는 당시 어디 계셨소?”

목려가 눈꼬리를 치키며 싸늘하게 나이든 귀족을 쳐다보았다.

“그때 가주는 가족들을 데리고 남쪽 등가아 초원에 피난을 갔었지. 한데 직접 북도의 전쟁을 보았단 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내 60평생에 백랑단이 금장궁 앞에서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소!”

합로정 가문의 가주도 참지 못하고 나와 한때 노예였던 목려를 질책했다.

“합로정 가문의 가주께서는 당시 란마부 달덕리 칸의 비호 아래 계셨지요. 북도성에선 800리나 떨어져 있었단 말입니다!”

목려가 싸늘한 눈초리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합로정 가문의 가주는 가슴이 부들부들 떨렸다. 목려의 두 눈에는 경멸과 조소가 가득했다. 아찔할 만큼 분노가 치미는 동시에 가슴에 섬뜩한 한기가 솟구쳤다. 결국 한기가 분노를 잠재웠고 합로정 가문 가주는 목려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다물었다. 막 화를 내려던 나머지 가주들도 목려와 정면으로 시선이 부딪쳤다.

“탈극륵 가문 가주도 진안부에 있었소.”

목려가 존귀한 대귀족들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알적근 가문 가주도 마찬가지였고.”

목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모든 귀족의 얼굴에 잠깐씩 멈추었다. 외로운 늑대의 오만과 잔악함을 띤 눈빛이었다.

“다들 말할 자격 없소. 당시 여러분은 등가아 초원에서 사자왕 용격진황 백로합 고살이의 보호를 받았거나 란마부에 피난을 갔거나 아이였으니까.”

모두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목려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수십 년이 지나고 청양과 삭북의 전쟁을 되짚어보았을 때, 이 전쟁은 여숭 곽륵이 파소이와 누염 몽륵화아 알이한의 전쟁이지 그들의 전쟁이 아니었다. 그들은 누구 하나 북도성에서 직접 전쟁을 겪지 않았다. 당시 여숭은 막 즉위한 참이었다. 누염은 북도성에 흠달한왕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곧장 군대를 지휘해 남하했다. 아무도 젊은 여숭이 삭북의 늑대왕에 대항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귀족들은 도망을 선택했고 삭북 대군이 북도에 가까이 오기도 전에 북도성 안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귀족들은 큰 수레 수만 대와 말 수십만 필에 모든 식솔을 태워 안전한 남쪽으로 철수했다. 그들은 백만 마리가 넘는 소와 양도 가져갔다. 북도성을 지킨 사람은 여숭과 그에게 충성하는 일부 무사들이었다. 딱 누염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누염은 자신이 천천히 행군해 북도에 도착했을 때, 대문이 활짝 열린 텅 빈 성이 새로운 초원의 패주를 맞이하기를 기대했다.

멀리 피난 갔던 귀족들은 이후의 일은 알지 못했다. 몇 달이 지나고 전쟁은 끝났다는 여숭의 서신이 전해졌다. 삭북부와 청양부는 동맹을 맺었고 누염이 자신의 아리따운 딸을 여숭의 아내로 바쳤다고 했다. 그 말인즉 여숭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의미였다. 귀족들은 믿기지가 않았다. 그들이 내보낸 심복이 북도에서 돌아와 삭북 대군이 이미 북으로 철수했다는 소식을 전하고서야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여숭은 조용히 귀족들을 다시 북도에 받아주었지만 누염을 물리친 자세한 내막은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했는지는 여숭과 그에게 충성하는 무사들만의 비밀이 되었다. 그 무사들 대부분이 이듬해 사지부의 반란을 평정하는 전쟁 중에 전사하면서 이 비밀은 완벽히 세월에 묻히게 되었다.

* * *

1) 늑대의 한 종류. 성질이 잔혹하고 사나우며 추운 초원에서 떼 지어 출몰한다. 머리가 좋으며 놀라운 기억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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