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244화 (244/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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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비취 팔찌 (13)

“늑대?”

순간 의아했던 여수우의 낯빛이 변했다.

“흰색 늑대, 8척 키에 꼬리를 빼고도 몸길이가 1장이나 되지요.”

낙자언이 여수우의 눈을 응시했다.

“대군,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인간이 발을 들일 수 없다고 알려진 북극의 땅에서 벌써 늑대 한 무리가 30년을 기다려왔습니다!”

“뭐요?”

여수우와 낙자언의 안색이 어두웠다. 여복은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들어도 끔찍한 수수께끼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삭북의 백랑, 누염 목륵화아 알이한의 백랑단. 벌써 십수 년 전에 죽은 줄 알았는데.”

여수우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철유, 기억하느냐? 8년 전쯤 아버지께서 하당의 사절단과 사륜보에서 사냥을 하다가 갑자기 늑대 떼를 만났지. 당시 아소륵이 단칼에 죽였던 흰색 늑대가 바로 삭북의 늑대였다.”

“삭북인이 늑대를 기른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습니다만…… 설마 무리 지어 키우는 겁니까?”

여복의 안색이 살짝 안 좋아졌다.

“수천 마리를 무리 지어 키운다. 게다가 우리가 보았던 흰 늑대는 백랑단 안에 풀어놓으면 가장 작은 늑대 축에 속하지. 진짜로 거대한 늑대는 말처럼 크며 누염의 무사들은 늑대의 등에 타고 공격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붉은 뼈의 용사’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그들이 사람 고기를 먹고 사람 피를 마셔서 그 피에 뼈가 붉게 물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사람처럼 생겼지만 늑대의 심장을 갖고 있어서 늑대 떼와 함께 사냥을 할 수 있으며 먹거리가 없으면 늑대를 잡아먹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백랑단은 북도성에 가까이 오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거대한 늑대들이 더위에 약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 30년 전 삭북부가 북도성 아래까지 왔을 때 기병 중에 백랑단이 섞여 있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그때 아버지께서 매복을 설치해 그들을 거의 전멸시켰다고 했지.”

여복이 물었다.

“놈들은 몇 명입니까?”

“30년 전에는 2천 명이라고 들었다.”

여복이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천이면 많지 않네요. 늑대를 몬다고 해도 어차피 2천 명뿐이죠. 설마 우리의 칼과 쇠 화살이 무섭지 않답니까? 우리 청양에는 말에 몰아 전쟁에 나갈 사내가 10만이나 있습니다.”

“나도 2천 명을 신경 쓰지는 않지만.”

여수우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말을 이었다.

“누염이 신경 쓰이는구나…… 그자가 아직 살아있다면 2천 명의 늑대를 모는 사내들을 다 합한 것보다도 무시무시할 것이다!”

“제 정보가 틀리지 않는다면 누염은 그야말로 악귀입니다.”

낙자언이 조용히 말을 얹었다.

“그렇소, 악귀요.”

여수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낙자언에게로 몸을 틀었다.

“그럼 산벽공과 뇌벽성, 상양관에서 되살아난 죽은 자, 그리고 누염까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오?”

“산벽공과 뇌벽성이 동일인은 아니지만 두 사람은 한 조직에 속해 있습니다. 당초 이 조직이 천계성의 동륙 황제를 설득한 겁니다. 제후들이 불충한 마음을 품었으니 대외적으로 만족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말이지요. 당시 재위 중이던 희 황제는 매우 분노했을 겁니다. 리국의 제후가 강대해져 천계성을 공격했는데 나머지 제후들이 저마다 다른 꿍꿍이를 품어 황실 구원에 힘을 모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황제는 황실의 통치가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가 외적인 만족이 약해지자 제후들이 내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희 황제는 선조인 풍염 황제를 매우 숭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풍염 황제가 제후들을 통합해 두 차례나 북벌할 수 있었던 이유가 당시 만족의 세력이 강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요. 외적(外敵)의 존재를 알아차린 제후들은 단결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 희 황제는 산벽공을 사절로 파견했고 자신에게 가장 충성하는 하당국에게 몰래 만족과 동맹을 맺게 했습니다. 만족이 동륙을 공격해오면 그 기회에 제후들을 통합하려고요. 선조가 남긴 땅을 만족에게 나누어줄지언정 계속 제후들의 손아귀에 잡혀 있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낙자언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하지만 희 황제가 죽으면서 이 조직의 계획은 실패했습니다.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그들은 계급이 더 높은 사람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지요. 바로 뇌벽성입니다. 하지만 뇌벽성이 상양관에서 꾸민 일전은 비술의 걸작이라 할 만하겠으나 일부 사람들에 의해 무너졌고 결국에는 제후 연합군이 작으나마 승리를 거두게 되었지요. 동륙의 정세는 벌써 일 년 째 조용합니다. 난세의 씨앗인 리국공 영무예도 급하게 전쟁을 하면 누군가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계속 자국에서 군사를 기르고 있습니다. 이 조직은 두 번째 좌절을 맛보았지요. 이들은 세 번째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산벽공을 다시 기용하고 한주 북극에 보내 삭북부와 연락하도록 했지요. 이 일은 대군의 아버지께서 야기한 일입니다. 대군의 아버지는 너무 똑똑했습니다. 일찌감치 동륙과의 동맹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하당과 약속했던 순국 공격을 적극적으로 준비하지 않았으니까요…….”

“양국의 맹약이 하당은 선박과 무기를 지원하고 우리는 기병을 보내 순국을 공격하는 것임을 순국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군. 맞소?”

여수우의 물음에 낙자언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추후께서는 묵묵히 10년을 참으며 줄곧 대군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요. 또한 강경한 수단을 쓰지 않은 이유는 대군의 아버지께서 순국 공격을 서두르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당국에서 지원한 무기와 갑옷으로 초원의 기병을 상대할 군대를 무장시켰지요. 순국 기병의 전술은 초원의 기병과 다릅니다. 대군 아버지의 목표는 순국이 아니라 삭북부였던 게지요. 그분은 줄곧 삭북부의 복수에 대비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조직은 대군의 아버지라는 패를 버릴 수밖에 없었고, 더 흉악하고 동륙에 더 큰 야심을 가진 우두머리를 찾아 지지하기로 방향을 튼 겁니다. 이 점에서 삭북부는 청양부보다 더 적합한 대상임에 틀림없지요. 누염이든 호도로한이든 땅과 권력을 위해 죽음도 불사할 자들이니까요.”

“삭북부가 남하하면 첫 번째 목표는 북도성 점령일 거요!”

여수우는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반드시 북도성을 칠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낙자언이 냉소하며 말을 이었다.

“대군, 이 판에 하당국이 있다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하당국은 처음부터 확고하게 이 조직과 한편에 서 있었습니다. 하당국 국주 백리경홍은 전말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대군과 적대하지 않고 당초 대군의 아버지와 맺었던 맹약을 이어가며 대군께 더 많은 이익을 주려 하지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수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방심하게 만들려는 것이군.”

“맞습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당국의 수중에 또 한 사람, 대군의 막내아우 여귀진 아소륵 파소이가 있습니다. 그는 막내아들이고, 초원의 규칙에 따르면 가문은 응당 그가 이어받아야 하지요. 대군에게 더 안 좋은 점은 막내아우의 어머니가 삭북인으로 누염 몽륵화아 알이한이 가장 아끼는 딸이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대군의 아우가 대군보다 훨씬 대군 자리에 적합한 인물입니다. 그는 청양과 삭북이라는 양대 부락의 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있으며 명분도 정당하니까요.”

낙자언이 여수우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에 칼처럼 날카로운 살기가 어렸다.

“그러니 고리격대회가 정말 열린다면 대군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삭북부, 하당국, 다른 아우들인 여응양과 여하도 막내아우를 대군으로 추대할 겁니다. 대군에게 불만을 가진 자들이 갑자기 배신할 수도 있어요!”

“삭북의 늑대 새끼가 아소륵을 지지한다면 훨씬 수월하게 북도성을 손에 넣겠군!”

돌연 이해가 된 여복이 언성을 높였다.

“하당이 우리와 동맹을 맺으려는 이유가 사실은 내통하기 위해서였어!”

낙자언이 빙그레 웃으며 한 걸음 물러나 여수우를 향해 절을 올렸다.

“이것이 8개월 전 대군께 알려드리려던 정보입니다. 이제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당국 사절이 적으로 오든 친구로서 오든 대군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셔야 합니다. 직접 결정하십시오.”

여수우는 낙자언을 응시하며 입술을 꼭 말아 물었다. 낙자언은 담담하게 여수우와 눈을 맞추었다. 금장궁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여복은 긴장이 극에 달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악기 줄이 언제라도 끊어질 듯 팽팽히 당겨진 느낌이었다.

여복이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형님, 낙 형제는 아주 분명하게 말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당의 나쁜 놈들 뜻대로 되게 둘 수는 없잖습니까!”

여수우는 손을 내밀어 여복을 제지했다. 눈은 여전히 낙자언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한참 뒤 여수우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낙 형제는 8개월 전에 이 소식을 듣고 내게 알려주려 동사의 위험까지 무릅쓰고 북도성에 달려왔으면서 왜 이제야 말하는 거요?”

“당시 선대 대군께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대군께 자리를 물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대군께서 북도성을 차지했으니 일시적으로 그 위기가 해소된 것이지요.”

낙자언의 목소리는 극도로 침착했다.

“저와 양추후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리지 않는 한 그 조직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장 큰 비밀이니까요.”

“그 조직은 이름이 뭐요?”

여수우는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캐물었다.

“진월입니다.”

낙자언은 천천히 조직의 이름을 말했다.

“진월의 목표는 뭐요? 동륙의 황제가 되는 것이오?”

여수우의 눈빛은 서슬이 시퍼렜다.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전쟁을 일으키려 합니다. 진월은 하나의 종교 문파로 전쟁을 위해 존재하지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스워 보이시겠지만 지난 수백 년간 전쟁의 배후에 진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는 것을 대군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구주의 역사는 제왕의 권력 다툼의 역사가 아니라 진월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힘은 죽은 자도 부활시킬 만큼 불가사의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수많은 시체가 쌓이고 피가 바다를 이룹니다!”

낙자언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저와 양추후는 이 조직을 벌써 10년 넘게 조사해 왔습니다.”

“순국과 진월은 적이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여수우가 불쑥 물었다.

“아닙니다. 우리는 진월이 우리의 큰 계획을 망치게 둘 수 없을 뿐입니다…….”

낙자언이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맞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적입니다! 우리의 계획에 방해되는 자들은 전부 적입니다!”

“순국의 큰 계획이 뭐요?”

여수우가 큰 소리로 물었다.

“우리는…… 동륙의 황제가 될 것입니다!”

낙자언은 느리지만 극히 엄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수우는 길게 한숨을 내뱉고는 지친 듯 뒤로 물러나 천천히 황금 옥좌에 앉았다. 고개를 숙인 채 오래도록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깊이 생각에 잠겼다.

한참이 지나고 여수우가 고개를 들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낙 형제, 나는 그대가 큰일을 도모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소. 그대와 양추후의 바둑판에서 나 비막간은 하나의 바둑돌일 뿐이지. 동륙의 황제가 되려는 그대들이 내게 말해줄 생각이 없는 일들은 물어도 소용이 없겠지. 하지만 이제 나의 청양이 생사의 기로에 놓였소. 내가 내리는 결정에 청양의 수십만 부족인의 미래가 달렸다오. 나는 아직 그대가 내 형제라 믿소. 하나만 묻지……. 나의 형제 낙자언, 우리의 우정을 걸고 그대가 말한 모든 것이 사실임을 보장할 수 있소?”

낙자언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한 걸음 나아가 제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대답했다.

“나의 형제 비막간이여, 우리의 우정과 내 목숨을 걸고 보장합니다. 추호의 거짓도 없습니다!”

여수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하당의 사절을 어찌 맞아야 할지 판단이 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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