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230화 (230/360)

230

2장. 매의 죽음 (3)

호마는 대군이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 어느 무당이 현명(玄明)의 뼈를 발라 반달 천신께 복을 기원하더니 겨울이 지나면 대군의 병이 나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호마는 믿지 않았다. 청양부에 신의 뜻을 완벽히 통찰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합살뿐이었다. 대합살은 몇 번 대군을 살펴보러 왔다. 한번은 호마에게 사실 신의 뜻은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신께 비호를 청할 필요 없다고 했다. 죽지 않는 영웅은 못 들어봤다면서 말이다.

“늑마, 너무 덥구나…….”

대군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서서히 한쪽으로 틀었다. 곧 잠들 것 같았다.

번득 정신이 든 호마가 다급히 대군의 잠옷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대군의 가슴이 델 것처럼 뜨거웠다.

“열이 납니다!”

깜짝 놀란 호마가 황급히 치마를 추어올리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누구냐?”

비몽사몽 하던 철익이 벌떡 일어났다. 손에 칼자루를 쥔 모습은 힘이 바짝 들어간 표범 같았다.

호마는 철익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접니다. 어서 대군께 드릴 양젖 얼음을 좀 가져오세요. 대군의 몸에서 열이 납니다.”

한데 철익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는 호마를 쳐다보지도 않고 장막 휘장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두꺼운 양가죽 휘장이 바람에 펄럭이며 나무틀을 툭툭 치는 소리가 났다. 묵직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납니다. 아버지께 드릴 약을 직접 가져왔습니다.”

“1왕자…….”

철익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휘장이 젖히고 여수우가 슥 안을 훑어보더니 철익과 호마에게 각각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심복 몇 명도 따라 들어왔다. 손에는 옻나무로 만든 약상자를 들고 있었다. 호마는 안도했다. 혼사를 치른 1왕자는 전과 달리 일처리가 신중해졌다. 낮에는 금장궁에 앉아 대군 대신 정무를 처리했고 밤에는 약을 챙겨 동륙의 의원과 함께 대군을 살피러 왔다. 몇 해 전 왕자들끼리 심하게 싸웠다. 분노한 대군은 3왕자와 4왕자의 잘못을 끄집어내 남쪽 초목장으로 보내 버렸다. 2왕자는 술과 여인을 좋아하고 성정이 경박했다. 아버지께 문안을 와서도 잠깐 흘깃 쳐다볼 뿐이었다. 세심한 이는 1왕자 여수우뿐이었다. 그는 매번 대군의 최근 상태를 살뜰하게 물었다.

여관들은 여수우를 미래의 대군으로 여겼다. 다른 후보도 없었다. 북도성에 남은 왕자는 둘뿐이었고 2왕자 여복은 충심으로 여수우를 지지했으며 대군 또한 동륙에 인질로 보내진 자식에게 대군의 자리를 물려줄 수는 없었다.

“1왕자, 마침 잘 오셨습니다. 대군께서 열이 납니다. 얼른 가서 얼린 양젖을 좀 가져오겠습니다.”

“서둘 것 없다.”

여수우가 호마의 팔을 붙잡았다.

“의원에게 먼저 보라 해라.”

“의원이 왔습니까?”

여수우는 제 뒤의 심복들을 쳐다보았다.

“저들 중에 두 사람이 약초를 조금 안다. 내 먼저 들어가 아버지를 뵈어야겠다.”

여수우가 안쪽 장막의 휘장을 젖히고 들어갔다. 철익은 바깥 쪽 장막 휘장을 쳐다보고는 살짝 경계하며 말했다.

“1왕자, 밖에…….”

여수우는 더 말할 필요 없다는 뜻으로 손을 내두르고는 철익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측연지께 인사드립니다.”

여수우가 가슴을 누르며 먼저 여인에게 안부 인사를 하고는 천천히 침상 옆으로 다가갔다.

“아버지.”

“비막간1), 내 아들아. 너이냐?”

대군은 여전히 장막 천장을 곧게 응시했다.

“네, 접니다. 오늘 몇 가지 매우 급한 일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와병 중이시니 귀찮게 해서는 안 되나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청양의 화가 될 수도 있어 깊은 밤 이리 찾아뵈었습니다.”

여수우는 눈꺼풀을 내리고 땅바닥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든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나는 피곤하구나.”

“한 번 봐주실 수 있습니까? 한 번만 봐주시면 됩니다.”

“무엇인데 그러느냐?”

대군은 애써 고개를 돌리려 했다.

약상자를 든 심복들이 뚜껑을 열었다. 상자에서 새빨간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호마는 꺅 비명을 지르며 비틀비틀 뒷걸음질 쳤다. 철익이 버럭 화를 내려는데 움직임이 민첩한 심복들이 달려가 그의 목에 칼을 대고 장막 벽으로 바짝 밀어냈다.

다른 심복 하나가 앞으로 몇 걸음 나와 측연지의 옷깃을 잡고 대군의 침상 가에서 끌어냈다.

“1왕자!”

철익이 분노해 소리쳤다.

“장군과 그대의 형님은 내내 내가 이리하지 못하도록 막았지요. 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여수우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형세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상자에 들어 있던 것은 약재가 아니라 사람 머리였다. 호마는 태과이, 소합, 격늑… 세 칸의 얼굴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죽기 전까지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던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백부들께서 무사와 노예를 소집해 난을 일으키고 아버지를 밀어내려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아버지와 상의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하여 즉시 군사들을 이끌고 백부들의 영채로 쳐들어갔습니다. 백부들은 노예들을 소집해 저항했고 저도 어쩔 수 없이 백부들을 죽이라 명령했습니다. 독단적으로 권력을 행사한 점,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청양의 미래를 위해서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문책하신다 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여수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대군은 눈을 부릅뜨고 그들과 시선을 맞추기라도 하듯이 머리 세 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대군의 입술이 격렬하게 떨렸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흐리멍덩한 눈에서 어떤 감정이 솟아났다. 두려움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었다. 끌려간 측연지는 엉엉 소리치며 심복의 손을 마구 때렸다. 여수우는 제 아버지를 쳐다보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고 대군이 몸을 돌려 똑바로 누웠다. 누가 뼈를 뽑아버린 듯 축 늘어졌다.

“내…… 착한 아들아. 결국 죽였구나. 내 욱달한을 쫓아 보낸 것은 네가 욱달한보다 마음이 넓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 형제와 숙부를 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네 적이라도 말이다.”

대군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혼잣말을 하듯 나직이 말했다.

“하지만 결국 죽였구나. 내 착한 아들아……, 이 아비에게 뭘 더 바라는 게냐?”

“아버지께서는 연세가 많이 드셨습니다. 날이 풀리면 남쪽으로 가 요양하십시오. 북도성의 일은 제가 아버지 대신 맡겠습니다. 욱달한은 쫓겨났고 아소륵도 멀리 있으니 표범 꼬리와 구미대독을 제게 물려준다고 직접 문서를 하나 써주십시오.”

여수우가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백부들과 함께 반역을 일으키려던 놈들은 이미 밖에 잡아다 두었습니다. 귀족과 장군들도 제가 모두 불렀습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사람 앞에서 선포만 해주시면 나머지 일은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절대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실망시키지 않는다라……. 날…… 실망시키지 않겠다…….”

대군이 나직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들아, 너는 이 아비의 장막에 쳐들어와 네 어머니 같은 분을 난폭하게 대하고 네게 충성하는 장군은 칼로 협박했지. 퍽도 실망을 안 시키는구나.”

대군의 목소리가 점점 아스라해졌다.

“아버지, 파소이 가문의 운명은 정말 대대로 반복되나 봅니다…….”

그는 잠시 조용했다가 나직이 말을 꺼냈다.

“이리 와라. 얼굴 좀 보자.”

여수우가 걸음을 떼었다가 도로 물렸다.

“아버지, 저를 원망하십니까?”

“원망한들 어쩌겠느냐? 표범 꼬리를 가져가라. 내 손목에 있으니 직접 떼어가려무나. 네가 줄곧 원하던 것이 아니냐?”

여수우는 뒤돌아 심복들을 쳐다보았다. 반찰렬이 힘껏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심복들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여수우는 낙자언이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결국 풍염 황제는 자기 아버지인 황제의 침궁에 쳐들어갔고 인 황제는 ‘백청우’, 아들의 이름을 써둔 유서를 말없이 건네주었다. 낙자언이 맞았다. 이 세상의 권력은 원래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지만, 누구나 갖기를 원했다. 누가 전력을 다해 쟁취하느냐에 달린 문제였다. 여수우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성큼성큼 다가가 침상 옆에 앉았다. 그는 몸을 내밀어 표범 꼬리를 묶은 아버지의 손을 잡으려 했다. 부친 위로 몸을 가로지르던 그는 무심코 아버지의 눈을 보았다. 그의 두 눈이 여수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똑똑히 보이는구나……. 참으로 가소로운 얼굴이야.”

대군이 낮게 말했다.

여수우는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렸다.

대군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와병 중이던 사람이 갑자기 사자와도 같은 힘을 회복했다. 대군은 한 손으로 여수우의 멱살을 세게 틀어쥐고 다른 손으로는 평생 지니고 다녔던 중검을 뽑아 아들의 목에 겨누었다. 대군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에 모두가 무릎을 꿇어야 할 것 같았다. 여수우는 몸부림치려고 했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목이 졸린 새 같았다.

대군이 침상에서 일어나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여수우의 심복들에게 호통쳤다.

“저들을 놓아주어라! 안 그러면 네놈들의 주인을 죽일 것이다!”

심복들은 대군의 위엄에 맞서지 못하고 잇달아 칼을 내던지며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철익은 그 틈에 칼을 뽑고 여수우의 심복들을 발로 차 한쪽으로 모았다. 그리고 칼로 그들의 뒷목을 겨눈 채 말했다.

“대군, 이제 어떡할까요?”

대군은 대답하지 않고 여수우를 똑바로 응시했다.

“아들아, 내 어리석은 아들아! 너는 이 초원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모질게 먼저 공격하면 초원의 대군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느냐? 그럼 왜 모조리 죽이지 않았느냐? 그러면 너와 권력을 다툴 사람이 더는 없을 터인데! 외부에서 잔혹한 무리들이 너의 북도성을 주시하고 있다. 그들은 성을 공격해 와 네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파내 그것을 네 백부들의 머리와 함께 둘 것이다! 너는 모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네 영광을 지켜보라며 모든 사람을 모아놓았겠지. 좋다! 내 너에게 보여주마!”

대군이 고개를 돌리고 철익에게 명했다.

“그들을 풀어주고 저 머리를 가지고 나를 따라오라 해라!”

대군은 여수우를 끌고 성큼성큼 장막을 나갔다. 장년의 여수우는 대군의 손아귀에서 가볍디가벼운 종이 인형 같았다. 철익은 여수우의 심복들을 붙들고 뒤따라갔다. 장막 휘장이 젖혀지자 삭풍과 눈보라가 한데 휘몰아쳐 들어와 묵직한 망치처럼 대군의 맨 가슴을 쳤다. 대군의 도포가 펄럭였다. 산발한 머리카락도 휘날렸다. 분노한 사자의 모습이었다. 호마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곽륵이2)…… 곽륵이……. 곽륵이…….”

늑마는 멍하니 대군의 이름을 읊더니 갑자기 품의 아기를 내던지고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곽륵이!”

늑마가 대군을 따라 달려 나가려 했으나 호마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늑마는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자 온 힘을 다해 대군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를 붙잡고, 만류하려는 것 같았다.

눈물이 호마의 손에 떨어졌다. 호마는 심장이 철렁했다. 십수 년간 측연지는 줄곧 웃기만 했지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린 적이 없었다. 그런 측연지가 오늘, 울었다. 어린 아이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을 잃어버린 것처럼 큰 소리로 통곡했다.

불이 붙여진 무수한 화로가 눈밭을 환하게 밝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장막을 에워싸고 있는 것인지 인영이 수도 없이 겹쳐졌다. 이 광경을 목도한 모두가 두려움에 무릎을 꿇었다. 철익도 무릎을 꿇었다. 오직 나이든 대군만이 당당하게 인파 한가운데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제 아들을 붙잡고, 다른 한 손에는 중검을 든 채로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사위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여수우는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 마음속에는 절망만이 남았다. 그는 자기가 곧 죽을 것임을 알았다. 아버지가 아직 서 계시는 한 전체 북도성은 그의 것이었다. 이 성은 그의 아버지가 평생 지켜온 것으로 여수우의 심복일지라도 이런 상황에 감히 대군 앞에서 칼을 뽑아들 수는 없었다. 지금 여수우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 여인의 모습뿐이었다. 귓가에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매달린 방울소리가 울렸다. 여수우는 불현듯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자신도 낙자언처럼 다 이해한 줄 알았다. 권력을 쥘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는 오로지 그 여인과 방목하며 살 수 있는 초원을 원할 뿐이었다.

대군이 차디찬 공기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등 뒤의 머리들을 가리키며 쩌렁쩌렁하게 고함을 쳤다.

“너희 모두가 아는 이들이다! 내 형제들이지! 그들은 이제 죽었다. 내 아들 비막간이 그들을 죽였어…….”

대군은 무겁게 숨을 고르고는 재차 깊게 공기를 들이마셨다.

“비막간, 아주 잘했다! 난을 일으키는 자! 선조를 배신하는 자! 이들은 우리 청양인이 아니다! 초원에 그들이 묻힐 땅은 없다!”

여수우는 귀가 먹을 것 같았다. 그는 두려워하며 고개를 들고 제 아버지를 보았다. 대군은 그를 다짜고짜 잡아끌며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 * *

1) 비막간은 여수우의 만족 아명. - 저자 주

2) 곽륵이는 대군 여숭의 만족 이름이다. - 저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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