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224화 (224/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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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그 이후 (3)

꿈에서 소마와 아버지를 만났다. 또 자기 또래의 아버지도 만났다. 미친 사자 같은 노인의 말안장 앞에 타고서 함께 말을 달리며 사냥을 했다. 그의 꿈속에서 동운산은 전체가 안개에 뒤덮였고 산꼭대기만 신성한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여귀진은 고향이 그리웠구나 싶었다. 어쩌면 돌아갈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윤 성제 3년 11월. 남회성 밖의 산골짜기 옆. 검은색 도포를 입은 중년 남자와 새하얀 도포를 입은 우족 노인, 다람쥐 가죽으로 만든 짧은 옷을 입은 하락인이 나란히 바위에 앉아 낚싯대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발아래로는 물이 졸졸졸 흘렀다.

식연은 담배를 빨아들이고 연기를 내뿜었다.

“선생은 정말 괴상한 우인입니다. 우족 귀족은 육식을 잘 안 하고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신다고 들었는데, 선생은 백해무익한 것들은 골고루 다 하시네요. 게다가 낚시도 할 줄 아시고요.”

“나도 내가 우인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간 내가 숲에서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머문 시간이 훨씬 많거든. 허구한 날 한데서 먹고 자고 하는데 낚시와 사냥을 못 하면 일찌감치 굶어 죽지 않았겠나?”

익천첨도 담뱃대를 물고 느긋하게 지렁이를 낚싯바늘에 꿰었다. 낚싯바늘은 아름다운 원을 그리며 물방울 하나 튀지 않고 물속으로 쏙 들어갔다.

마로강조는 벌써 인내심을 잃고 계속해서 낚싯대를 들어 물고기가 걸렸나 안 걸렸나 보았다. 하지만 그는 매번 크게 실망했다.

“허허, 영감쟁이. 그래서는 고기 못 낚아. 관건은 조용히 기다리는 걸세. 하락인은 역시 천축서(天竺鼠)1)나 키울 줄 아는 종족이군.”

익천첨이 늙은 하락인을 흘긋 쳐다보았다.

식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일리가 있군요. 낚시는 한가로운 일입니다. 신선한 민물고기를 먹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지요. 이곳에 희귀한 홍린(紅鱗)이 있다는데 여러 번 와보았지만 한 번도 낚지 못했습니다.”

“꼭 낚시를 해야 하나? 물살을 조종하는 수문을 하나 설계하든가 그물을 만들면 안 되는 거야?”

마로강조가 심하게 투덜거렸다.

“어떤 방법이든 실과 갈고리를 묶은 대나무 장대로 물고기를 낚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겠구먼. 사람이든 우인이든 머리를 쓸 생각은 않고 시간이나 낭비한다니까! 그리고 천축서가 뭐 어때서? 구웠을 때 그 향기는 물고기와 비교도 안 돼! 차이가 나도 한참 난다고!”

“홍린?”

익천첨은 마로강조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의 머리 너머로 시선을 던지며 식원에게 물었다.

“일종의 잉어입니다. 봉황지에서 자라고, 궁의 관상용 비단잉어와 야생 잉어의 교잡종이라더군요. 온몸의 비늘이 붉으며 탕으로 끓이기에 가장 좋다 합니다. 끓이면 붉은색은 가시고 하얀 물고기만 남는데 살짝 투명한 감이 있답니다.”

“대체 내 말은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겐가?”

마로강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익천첨은 고개를 숙이고 마로강조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불룩 튀어나온 뒤통수에 닿았다. 익천첨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확실히 자네의 뒤통수에 비하면 나와 식연의 머리는 큰 편이 아니군.”

마로강조는 화가 나 눈을 부릅뜨고 익천첨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은 사람이나 우인보다 훨씬 더 커 보였다. 이렇게 노려보면 눈알이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만하십시오.”

식연이 오랜 벗인 두 사람을 중재하려 했다.

“천구 셋이 나란히 이곳에 앉아 있는데 좀 더 단합된 모습으로, 좀 더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않겠습니까?”

“종주는 자네 둘이지! 나는 그냥 쇠나 만지는 불쌍한 하락인이라고!”

마로강조는 여전히 눈을 부릅뜬 채로 정말 진지하게 말했다. 익천첨이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며 웃더니 물었다.

“그냥 낚시나 하자고 우리 둘을 불러낸 건 아니겠지?”

“다시 천구를 소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식연의 얼굴에서 느긋하던 기색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다시 소집한다고?”

익천첨과 마로강조는 약속한 듯 몸을 흠칫 떨었다.

식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진월은 첫 시도를 했을 뿐입니다. 전쟁에는 실패했지만, 성과는 거두었지요. 그들은 제후 세력에 큰 타격을 입혔고 동륙 세력의 판도를 바꾸었습니다. 전쟁의 구도도 이미 어지러워졌고요. 그 첫 시도에서 우리는 겨우 놈들의 병졸 하나를 죽였을 뿐입니다. 제 생각에 그 시무사의 지위가 낮은 편은 아니지만, 높아 봐야 ‘숨겨진’ 부대의 우두머리일 뿐입니다. 우리는 심지어 뇌벽성도 진정으로 위협하지 못했으니 진짜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2차 공격이 있으려나?”

마로강조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소리는 극도로 신중했다.

“그게 놈들의 방식이지. 도중에 그만두는 자들이 아니야. 근데 더 알아낸 소식이 있나?”

“없습니다. 걱정인 건 뇌벽성의 거취입니다. 상양관 전쟁 후, 우리 척후병은 그가 리국으로 돌아간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어디로 갔겠습니까? 저는 그에게서 강렬한 공격 의도를 느꼈습니다. 이번에 그는 숨어 있지 않을 겁니다. 일전에 상양관에는 잠시 들렀을 뿐이며 그는 곡현의 밤을 가장 중요한 기회로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더 유리한 패를 쥐고 있다는 소리겠지요.”

“그자가 진월교에서는 어떤 지위겠는가?”

익천첨이 물었다.

“최소 대교장은 될 겁니다. 그가 펼쳐 보인 힘을 보면…… 교종일 가능성도 있지요.”

식연은 낚싯줄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자를 마주하면 누구든 압도될 겁니다. 신이 빙의한 것처럼요! 뇌벽성 정도의 힘이라면 역대 교종 중에서도 그를 능가할 사람은 몇 안 될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그의 배후에 더 높은 존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째서?”

“뇌벽성은 속세에 너무 개입해 있습니다. 고륜아 이후 진월의 교종들은 두터운 흑막 뒤에 스스로를 은폐하는 법을 배웠지요. 그들이 앞에 내놓는 것은 언제나 병졸들일 뿐입니다.

익천첨과 마로강조가 시선을 맞추었다.

“제후들에게 막심한 피해를 입히고 백의까지도 간발의 차로 죽일 뻔했지. 그렇다면 다음에는 무엇을 하려나? 다음 목표는 뭘까?”

익천첨의 물음에 식연이 고개를 저었다.

“누가 그 물음에 답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사자들은 바라는 게 없습니다. 그저 신이 정한 규칙에 따라 일을 행하지요. 하지만 신의 규칙이란 무엇입니까? 지금껏 그 누구도 확실하게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진월은 전쟁을 너무 좋아합니다. 지금 시국도 그들의 필요에 딱 부합합니다. 강대한 통치자가 동륙을 지배하지 않는 한 제후들은 계속 다툴 것이니, 진월이 가장 좋아하는 상황임에 틀림없지요.”

“황제와 영무예도 안정을 유지할 수 없는 인물인가?”

마로강조가 물었다.

“황제는 잊으십시오. 대윤 왕조는 이미 흩어진 모래알입니다. 이 국면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둑판과 같습니다. 상황은 이미 막판에 들어섰어요. 전체 판을 흩트리지 않는다면 살아날 기회는 없습니다. 바둑판을 뒤집을 야수의 손바닥이 필요하며, 영무예가 바로 그 인물입니다. 하지만 영무예가 이 국면을 타개한 후, 누가 이 난세를 끝낼 수 있겠습니까?”

“영무예도 못 끝내나?”

마로강조가 캐물었다.

“어쩌면요. 하지만 저와 겨룬 이후로 너무 조급해할까 봐 걱정입니다.”

식연이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세 사람은 말이 없어졌고 계곡물이 튀는 소리만 들렸다. 흩뿌려지는 옥구슬처럼 물보라가 반질반질한 돌 위를 흘러내렸고 따사로운 햇살이 굴절되어 비쳤다. 그러나 세 사람은 무언가에 압도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을 짓누르는 무거운 그림자가 마음속에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식연, 자네가 15년 전 유장길을 만났다면 그의 편에 섰겠지?”

익천첨이 불쑥 입을 열었다. 냉혹하고 매서운 목소리였다.

“큰 새…….”

화들짝 놀란 마로강조가 일어나 익천첨을 말리려 했다.

그러나 익천첨은 그의 키 작은 친구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체구가 너무 컸다. 마로강조가 껑충껑충 뛰어올라도 칼처럼 식연에게 내리꽂힌 시선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식연은 쏘아보는 익천첨의 시선에도 반응하지 않고 조용히 햇빛 속에 앉아 튀어 오르는 물보라를 바라보았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식연이 나직하게 말을 꺼냈다.

“모르겠습니다. 줄곧 유장길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모르겠더군요.”

“15년 전 자네가 그러했다면, 나는 유장길을 죽이라 명을 내릴 때 자네에게도 주살령을 내렸을 것이네.”

익천첨이 나직하게 말했다.

“이보게!”

마로강조는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애가 탔다.

그러나 익천첨의 얼굴에서 살벌한 표정이 가셨다. 그는 조금 지친 듯 묵묵히 자리에 도로 앉아 낚싯대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늙었네. 정말 늙었어. 요즘 유장길과 당시 내가 내린 주살령을 생각한다네. 그는 내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 간청했지만 나는 그를 무시했지. 어쩌면 내가 틀렸을지도 몰라. 15년 전 내가 그 젊은이를 지지했더라면 아마도 천구의 미래는 달랐을까?”

식연은 놀라 멍해졌다.

“큰 새…….”

마로강조가 나직하고 거친 목소리로 말을 이으며 천천히 바위에 앉았다.

“그동안 자네는 계속 그 생각을 해왔지.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건 자네 잘못이라고 할 수 없어.”

익천첨은 마로강조를 향해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세 사람은 또 다시 침묵했다. 낚싯대 세 자루는 정지해 있고 낚싯줄 세 개가 미풍 속에 흔들렸다.

“낚였어요, 낚였어!”

식연이 큰 소리로 외치며 낚싯대를 들었다. 낚싯줄에 실한 홍린 한 마리가 걸려 펄떡거렸다. 흩뿌리는 물방울이 석양 속에서 눈부신 금빛으로 빛났다.

“잡게 도와주세요. 빠져나가지 못하게요!”

식연이 외쳤다.

늙은 하락인은 번득 정신을 차렸다. 황급히 돌멩이 하나로 제 낚싯대를 눌러놓고는 앞 옷자락을 펼치고 달려가 홍린을 품에 감싸 안았다. 늙은 우인은 항아리를 안고 깊지 않은 물속으로 뛰어들어 희귀한 대어를 받아 안에 넣었다. 세 사람은 다시 시선을 맞추었다. 가라앉았던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세 사람은 청년처럼 얼른 홍린을 맛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익천첨이 큰 소리로 말했다.

“불을 붙여야지! 구워 먹세!”

식연은 반대했다.

“굽는 건 별로예요. 맹물에 끓여 먹는 게 낫습니다. 생선 배에 향료를 채워 꿰매고 겉에는 가는 소금만 살짝 뿌리자고요.”

“끓이면 맛이 하나도 없어!”

익천첨은 단지를 끌어안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구운 생선을 못 먹어봐서 그래. 향료 따위 필요 없지. 자연스럽게 신선한 향이 배어난다네.”

익천첨은 코를 킁킁거렸다. 벌써 생선을 굽는 따뜻한 탄내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건 보통 생선일 때 아닙니까? 이런 물고기는 끓여야 살에서 담백한 단맛이 납니다. 구우면 낭비예요.”

식연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바보 같은 짓 말게, 큰 새!”

늙은 하락인이 끼어들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생선은, 신선한 것이네! 원래도 생선은 어탕으로 끓이는 게 최고인 법이네! 하물며 이렇게 야들야들하고 신선한 홍린은 말해 무엇할까!

하락인이 갑자기 튀어나와 저와 생선을 놓고 언쟁을 벌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익천첨은 놀라 눈썹을 찌푸렸다. 식연은 슬며시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익천첨을 흘끗 쳐다보고는 마로강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 하락인이 큰 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다 끓으면 살을 건져내고 양질의 교백을 넣어 천천히 고다가 마지막에 천축서의 몸에서 가장 맛난 꼬리 고기를 넣고 끓여야 해!”

* * *

1) 기니피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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