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5장. 신들의 군림 (7)
“나무 풍경?”
우연은 방울을 쥐고 있는 원숭이에게 매료되었다.
“난 처음 들어보는데요?”
나무 풍경을 파는 상인은 잠시 침묵하더니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예를 행했다.
“존귀한 분이시여. 손님도 우족 출신이지요? 제 상품을 과장해서 설명한 점, 양해해 주십시오. 청주의 특산품이라고까진 할 수 없지만, 제 고향 숲의 자그마한 물건입니다. 저희 고향은 흑단 나무가 너무 늙어 자연스럽게 말라 죽으면 그 뿌리를 파내 이런 풍경을 만들지요. 이런 나무는 목질이 쇠처럼 단단하거든요. 풍경 벽면을 극도로 얇게 갈면 듣기 좋은 소리가 난답니다.”
그는 우연을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 주름이 살짝 펴지자 겸손하고 따뜻해 보였다.
“왜 전부 원숭이죠?”
우연은 타향에서 만난 동족이 마음에 들었다.
“그냥 풍경으로는 완주 같은 큰 도시에서 장사가 잘 안 되거든요.”
우족 상인은 약간 난처한 듯했다.
“이곳엔 희한한 물건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전 이런 간단한 장난감밖에 못 만들고요.”
그는 원숭이 한 마리를 들고 우연에게 시범을 보여 주었다. 원숭이의 구부러진 긴 꼬리를 다른 원숭이의 목에 걸면서 한 마리, 또 한 마리 계속 걸었다. 그러자 한 무더기의 원숭이가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이어진 채 장대에 기어오르는 모양이 되었다. 우연은 푸흡 웃음을 터뜨렸다.
“저건 엄청 뚱뚱하네요!”
우연은 가장 뚱뚱한 원숭이를 가리켰다.
“볼을 불룩하게 내민 것도 있죠.”
상인은 우연이 맨 처음 맘에 들어 했던 말썽꾸러기 원숭이를 들고 자랑하듯 흔들었다.
“한 마리 사서 창문 앞에 걸어두세요.”
“저거, 저거……! 저건 엄청 무섭게 생겼네요! 저거로 할래요!”
우연은 구석에 눈을 부릅뜬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보았다.
“물소! 물소랑 똑같아요!”
우연은 신이 나 그 원숭이를 마구 흔들었다.
상인은 우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원숭이가 어떻게 물소를 닮을 수 있담? 그러나 그저 미소를 지으며 발랄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볼 빵빵한 애도 주세요.”
“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상인은 공손하게 다른 풍경 하나를 떼어내 우연에게 건넸다.
“이건 나 닮았네.”
우연이 싱긋 웃었다.
“그럼 하나 더 사서 아소륵에게 선물해야겠어요. 안 그럼 서운해할 거예요.”
“친구입니까?”
“네.”
우연은 나무 풍경을 고르며 말했다.
“사실 걔도 되게 답답한 애예요. 기분이 안 좋아도 말을 안 해요. 항상 남이 알아보고 달래줘야 괜찮아지죠.”
우연은 결국 눈이 가장 큰 원숭이 하나를 고르더니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닮았네! 눈이 나보다 더 커요! 사장님, 한 개에 얼마예요?”
상인은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영세한 가게라 하나 팔아 수공비만 법니다. 한 개에 은화 한 냥입니다.”
우연은 허리춤을 더듬어보더니 약간 난감한 낯빛을 띠고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더듬거렸다.
“아가씨, 돈이 부족하세요?”
상인은 눈치가 매우 빨랐다.
우연은 손에 든 원숭이 세 마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남은 은화가 두 냥뿐이었다. 방금 양매 한 봉지를 괜히 샀다고 생각했다. 안 그랬다면 딱 마침 은화가 석 냥 있었을 텐데. 우연은 또 속으로 아소륵을 원망했다. 항상 돈을 내야 하는 물주가 신나서 희야와 함께 출정하는 바람에 그녀만 곤란해졌다. 아소륵에게 선물할 풍경을 안 사면 돈이 모자랄 일도 없었다.
“그냥 다 안 살게요.”
우연은 못내 아쉬워하며 나무 풍경 세 개를 모두 장대에 도로 걸었다.
“얼마 있으십니까?”
희망을 감지한 우연은 간사하게 시선을 들었다. 그녀는 상인을 보면서 손가락 두 개를 뺨 옆에 세우고 흔들어 보였다.
“친구들에게 선물하려는 거죠?”
상인이 나직이 말했다.
“그럼 손님 맘에 든 그 원숭이는 제 선물인 셈 치십시오. 풍경 세 개에 은화 두 냥입니다. 풍경에 이름도 새겨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소장 가치가 생기지요. 가장 친한 벗끼리 영원히 서로를 기억할 겁니다.”
“네!”
우연은 웃기 시작했다. 너무 기쁜 나머지 하얗고 귀여운 앞니를 드러내며 시원하게 웃었다.
상인은 품에서 조각칼을 꺼내 첫 번째 원숭이의 등에 ‘물소’ 두 글자를 새겼다. 칼솜씨가 매우 침착하고 힘이 있었다. 두 글자가 금세 새겨지고 나무 가루를 후 불자 깔끔한 동륙 글자가 나타났다.
“두 번째는 거북이라고 새겨주세요. 헤엄치는 그 거북이요.”
상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이 커다란 원숭이의 등에 ‘거북이’ 세 글자를 새겼다.
“손님은요?”
우연은 흠칫 놀랐다. 자기 이름을 말해도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성은 우, 가장 고귀한 성씨였다. 그녀의 성은 청주 숲에서 존귀함과 권력을 의미했다.
“아명을 새기세요. 거북이, 물소랑 어울리게요. 신사문 아명이 어떻게 되십니까?”
“살서마이. 살서마이로 새겨주세요.”
우연의 말에 상인이 미소를 지었다.
“아주 특별한 이름이군요. 이런 이름은 많이 못 봤습니다. 우인인 저에게도 낯선 이름이네요.”
“꽃이에요. 동륙엔 더 많죠. 근화(槿花)라고 해요. 살서마이·근화!”
우연은 이 이름이 정말 듣기 좋았다. 들으면 나무 가득 걸린 화사한 비단 같은 붉은색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해버렸다.
상인은 조각칼로 원숭이 등에 우연이 말한 이름을 새겼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르고 이 소녀는 자신의 일기와 서신 말미에 이 이름을 썼다. 그녀는 이 이름을 특별히 아꼈다. 그녀와 다른 두 사람만이 아는 비밀이기 때문이었다. 애석하게도 후세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몰랐다. 그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대윤 말기의 서적들 속에서 전설 속 이 여인의 이름을 찾을 때 계속 ‘살서마이·근화’라는 괴상한 이름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 서명이 들어간 글은 마치 글자 미로처럼 의미가 모호하고 좀처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여성의 필적은 분명했지만, 그녀가 뭘 서술한 것인지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누군가는 대귀족 가문의 학덕이 높은 부인일 거라고 추측했다. 삼엄한 저택에서 외로움에 사무쳐 깊은 밤 책을 뒤적이다가 비현실적인 상상에 빠져든 것이라고 말이다. 결국 이 수준 낮은 글은 오래된 책 더미 속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마지막 남은 은화 두 냥을 지불한 우연은 나무 풍경 세 개를 받아 들고 신나서 저 멀리 뛰어갔다.
우연의 뒤에서 그 우족 상인은 폴짝폴짝 뛰어가는 우연의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완전히 인파 속으로 사라지자 나무 풍경을 전부 흐르는 물에 던져버렸다. 귀여운 원숭이들이 동반 투신이라도 하듯 후두둑 다리 위에서 추락했다. 흑단 나무는 많이 무거워서 그대로 강물 깊이 가라앉았다.
주위 사람들이 물소리를 알아챘을 때, 우족 상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10월 열엿새. 반달이 서서히 구름층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상양관 안, 식원이 고개를 들고 하늘의 얼룩얼룩한 구름을 보고 있었다. 반달은 엷은 구름 뒤에서 사방으로 부드러운 빛무리를 내뿜었다.
“날이 어둑하니, 비가 올 것 같네.”
식원이 중얼거렸다.
그는 돌연 제 고향의 속설이 떠올랐다. 지금 날이 어두운 이유가 구름이 태양을 가려서가 아니라 밤이 깊었기 때문임에도 말이다. 나흘째 밤이었다. 나흘 밤까지 그는 희야도, 여귀진도 보지 못했다. 숙부도 백의도 보지 못했다. 이 거점을 지키기로 명을 받았으니 한순간도 떠나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두 사람 키 높이만 한 거대한 나무 더미가 하나 있었는데 단단한 각목을 가로세로로 교차한 것이 네모반듯한 집 같았다. 안에는 등유에 흠뻑 적신 건초가 쌓여 있었다. 식원은 이것의 용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 거목 더미에 불을 붙이면 저 멀리 봉화대의 봉화나 다름없지 않나?
그러나 그는 군령에 복종해야 하는 군인이었다. 그에게 명을 내릴 때 식연의 태도는 이상하리만치 엄숙했다. 식원은 숙부가 그렇게 말하는 건 처음 들어보았다. 식연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어쩌면 가장 끔찍한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곳을 떠나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내 검을 항상 지니고 있어라. 검자루에서 손을 떼서는 안 된다!”
식원은 생각했다.
‘가장 끔찍한 일? 행시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을라고?’
이 거점에는 식원 외에 500명이 더 있었다. 모두 초위, 하당, 진북 세 나라의 정예병 중에서 심혈을 기울여 선발한 이들이었고, 선별 기준은 아무도 몰랐다. 건장한 군사 500명은 두 배의 식량을 받고서 이런 무의미한 거점에 배치되었다. 500명은 절대 적은 수가 아니었다. 전 왕조에서는 500명의 사내가 군대를 결성하면 나라를 세울 수도 있었다. 게다가 분명 성 안의 7개 거점에 전부 500명이 배치되었을 것이다. 그럼 정예병만 총 3천500명이었다.
이들이 성 꼭대기에서 일제히 화살을 쏜다면 행시 수백 명은 땅에 못 박아 죽였을 것이다.
식원은 제 거점의 500명으로 이루어진 방진을 보았다. 그들은 거목 더미 앞에 줄지어 있었다. 꼭 거대한 나무더미를 지키는 것 같았다. 이들 정예병은 땅바닥에 앉아 자루가 긴 극을 무릎 위에 가로로 놓고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잠들면 안 되었기에 매 일각이 지나면 서로 깨워주었다. 벌써 나흘 밤낮 동안 이렇게 잠깐 눈을 붙이고 바로 깨어났다.
식원은 서서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에 잠보다 더 안락한 일은 없을 것 같았고 베개보다 더 부드러운 물건은 없을 것 같았다.
식원은 자기 손가락을 깨물며 억지로 정신을 차렸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꽤 쓸모가 있던 방법이 이제는 효과가 없었다. 손가락은 하도 깨물어서 핏자국이 가득했지만, 통증도 못 느낄 정도로 무뎌졌다. 식원은 저 행시들이 계속해서 쳐들어오지 않는다면 자신은 세상 희귀하게도 졸려서 미쳐버린 사람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자자.”
식원은 스스로에게 말하며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살짝 고개를 숙이고 졸았다.
졸려서 환각이 보이는 것인지 거목 더미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큰 불이 화르르 타올랐고 바람은 거세게 불어왔다. 식원은 생각했다.
‘말도 안 돼. 저 군사들이 저런 멍청한 실수를 할 리 없잖아.’
그래도 걱정이 된 그는 일어나 살펴보려 했다. 하지만 정말 너무 피곤했다. 몇 번이고 힘을 내보았지만 무시무시한 수마(睡魔)를 이길 수가 없었다.
‘잘못 들었겠지. 정말 실수로 불이 났다면 불을 끄려고 바쁘지 않겠어? 이렇게 조용할 리 없어.’
그랬다. 무척 조용했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날이 어둑하니, 비가 올 것 같았다.
“네 이름이 식원이냐?”
누군가가 식원의 앞에서 물었다.
오싹해진 식원은 단번에 잠에서 깨어났다. 거미줄에 걸린 벌레가 자유를 얻은 것 같았다. 그는 무심결에 대답했다.
“네!”
“나와 가자.”
그자의 말에 식원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숙부, 식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