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193화 (193/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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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호랑이의 전쟁 (3)

풍호 기병이 예의바르게 말했다.

“서적을 돌려드리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합니다.”

“무슨?”

“류 재상은 들으십시오!”

풍호 기병이 뒤편을 향해 손짓을 하며 돌연 도도한 표정을 지었다.

류문지는 정신을 집중하더니 낯빛이 급변했다. 그는 수많은 말발굽이 지면을 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조수처럼 밀려와 금세 진영의 모든 군사를 놀라게 했다. 군영 앞 경보를 알리는 동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군사들은 무기를 들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전방 방어선이 있는 곳에서 당직을 서던 군사 중 누군가가 목청껏 무어라 외쳤지만 뭐라 하는지 잘 들리지가 않았다.

지면이 서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기병대와의 거리는 3리 안이었다.

“화엽 장군께서 재상께 이리 전하라 하셨습니다. 양군의 결전이 바로 오늘 시작될 것이며 더는 사시에 진 앞에서 만날 필요가 없다고요!”

풍호가 늠연하게 말했다.

류문지는 놀라 한 걸음 물러나며 길게 한숨을 뱉었다.

“결국 피할 수 없구나!”

“류 재상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귀국이 상양관에 함정을 설치하고 사현 군단의 1만 적려가 되돌아갔습니다. 연합군의 존망이 걸린 고비입니다. 화엽 장군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백 대장군의 생존이 우리 장군께서 전쟁을 하지 않는 전제 조건이라고요.”

풍호 기병이 큰 소리로 외쳤다.

“결국 우리는 전쟁을 피할 수 없단 말이로군?”

류문지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슬프고도 두려운 표정이었다. 그는 돌연 너털웃음을 짓더니 풍호 기병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가보게!”

“저를 잡아두지 않으십니까?”

풍호 기병은 당당하고 두려움이 없었다.

“자네는 사절이네. 내 군영을 벗어난 후에는 적이 될 것이야!”

류문지의 두 눈에 번득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

“자네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곳에 왔지. 나라고 보내주지 못할 이유가 뭐겠는가? 이름이 무엇인가?”

“풍호철기 2여단 3대대 원학입니다!”

풍호 기병이 힘차게 군례를 행하고는 뒤돌아 미친 듯이 내달렸다.

전 군영은 맹호가 깨어난 것 같았다. 점점 더 많은 군사들이 적색 가죽 갑옷을 입고 네모난 만도를 들고 포진했다. 벌써 풍호철기 깃발이 보이고 하늘을 가릴 듯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전방의 방어선은 이런 갑작스러운 공격을 감당할 수 없었고 퇴각한 군사들은 이미 군영으로 돌아왔다.

“말에 오르게 부축해라!”

류문지가 고함을 쳤다.

“재상! 이곳에서 전쟁은 안 됩니다! 적군의 기세가 너무 빠르니 후퇴해 진을 친 뒤 다시 전쟁을 해야 합니다!”

근위병 하나가 류문지의 군마를 잡아당기며 말렸다.

“멍청한 것!”

류문지가 고개를 돌려 외쳤다.

“화엽이 왕역을 넘기로 굳게 마음먹은 지금,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다. 2만 적려가 2만 5천 철기병을 막을 수 있겠느냐?”

근위병은 아연해졌다.

“나는 여기에서 그저 화엽이 황제의 윤허 없이 왕역을 통과할 수 있을지 없을지 도박을 걸었을 뿐이다. 저 늙은 호랑이가 마음을 먹었으니 이제 무슨 말도 소용이 없다!”

류문지가 호령했다.

“제1여단은 나와 함께 출격한다! 나머지 인원은 퇴각해라. 화엽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모두 흩어져 무기를 버리고 산길을 이용해 리국으로 퇴각해라! 두 다리로 걸어서 돌아갈 수 있다. 꼭 이런 곳에서 죽을 필요는 없다!”

그가 또 명령을 내렸다.

“말에 오르게 부축해라! 나는 늙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쓸모가 있다!”

류문지는 말안장에 올라탔다. 점점 가까워지는 기병 군단이 똑똑히 보였다. 그들의 연강 갑옷과 마갑에 아침 햇살이 녹아들며 삼엄한 진회색 빛을 띠었다. 앞장 선 청년은 상반신을 벌거벗은 채 둔중하고 날이 넓은 거대한 칼을 휘두르며 퇴각하는 적려 보병들을 쫓아가 죽였다. 그의 앳된 얼굴은 살인 본성에 일그러졌고, 누구도 그의 돌격을 막을 수 없었다.

“동륙에서 가장 비싼 군대로구나.”

류문지가 길게 탄식했다.

“우리 리국에 이런 갑옷과 군마가 있었다면 이리 많은 자제들의 피를 흘리지 않고도 일찌감치 동륙의 주인이 되었을 터인데!”

풍호 철기의 선봉에 선 청년은 멀찍이 선 노인을 보았다. 그의 뒤편에 세워진 전기(戰旗)도 보였다. 그는 커다란 칼을 말안장에 거두고 큰 활을 꺼내 화살을 쏘았다. 그의 활은 거대했고 화살도 일반 우전보다 1척이나 길었으며 화살촉도 보통 검보다 넓었다. 류문지가 화살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가슴이 꿰뚫린 후였다.

류문지가 말에서 고꾸라졌다. 근위병이 그를 받아들자 류문지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근위병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명을 전해라! 제1여단이 제일 마지막에 간다. 나머지는 모두 귀국해라! 왕야가 아직 리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저리 값비싼 군 장비가 없어도 우리는 여전히 동륙을 군림할 수 있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서야 그의 눈빛은 흐트러졌고 서서히 근위병의 팔을 붙잡았던 손에서도 힘이 빠졌다.

리국 좌상 류문지는 당양곡 어귀의 전장에서 죽음을 맞았다. 리국 우상 리동이 별세하고 14년이 흐른 뒤였다. 이들 노신은 모두 리국 왕위 계승을 둘러싼 싸움에서 17공자였던 영무예를 선택했으며 최후에도 목숨을 희생하며 패주를 위해 길을 닦았다. 그들의 정적이 저주한 것처럼 두 사람은 영무예를 지지한 탓에 천수를 다하지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일말의 후회는 없었다.

사성과 2천 우림군이 평야를 전진했다. 그의 주위에는 비슷한 규모의 군단이 9개가 더 있었다. 정교한 장비를 갖춘 우림군 1만 명과 처음 출정하는 금오위 1만 명 모두 새카만 천기노와 화살 30대를 들고 있었다. 화살 60만 대가 연달아 발사되면 철의 흐름이 장관을 이룰 것이었다.

금오위들은 우림군보다 더 고조되어 있었다. 명문가 출신의 청년들은 비싸고 무거운 갑옷을 걸치고 가슴에는 가문의 표식을 새겼다. 그들은 행군하면서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빨리 노의 시위를 당겨보고 싶어 안달이었다.

사성의 눈에 드넓은 당양곡 어귀가 보였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고 교전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척후가 말을 달려 돌아왔다. 그는 전방을 가리키며 외쳤다.

“전방으로 2리만 더 가면 왕역의 경계입니다! 순국 화엽 장군이 리국 좌상 류문지와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풍호 기군이 벌써 우위를 점했으며 리국 패잔병들은 이쪽으로 퇴각해오고 있습니다!”

뒤편의 전령관도 회오리바람처럼 달려왔다.

“전령관 서문, 우림상장군의 명을 전합니다. 삼군은 전속력으로 행군하라. 지체해서는 안 된다! 명을 어기는 자는 참할 것이다!”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사성이 담담하게 물었다.

“명을 위반할 시에는 참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전령관이 눈을 부릅뜨고 위협했다.

“알겠네!”

사성은 휙 손을 흔들었다.

“전속력으로 행군하라! 낙오자는 군곤으로 벌할 것이다!”

전 군대가 행군 속도를 올렸다. 속도가 엇비슷하던 금오위 군단은 이내 뒤처지고 말았다.

금오위 군단의 우두머리가 큰 소리로 호령하며 온실 속에서 화초처럼 자란 명문가 자제들의 걸음을 강제로 재촉했다.

사성은 비틀거리며 앞으로 내몰리는 청년들을 싸늘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아까의 의기양양함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방진에는 무거운 헐떡거림만이 남았다.

화엽은 높은 곳에 말을 세우고 풍호군이 소규모로 나뉘어 흩어진 적려 보병을 추격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리국의 정예 보병이라고 해도 통수를 잃으니 쉽게 흔들렸다. 풍호군은 이미 승리를 확정지었고 이제 전쟁의 성과를 늘리는 일만 남았다. 묵직한 칼을 들고 화엽의 등 뒤에 말을 세운 화명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거대한 칼에 묻은 핏자국이 아직 굳지도 않았다.

“내 너를 출정시켜서는 안 되었다…….”

화엽이 고개를 저었다.

“추격할 필요 없다 전해라. 적군은 이미 투지를 잃었다. 지금 저들을 추격하는 것은 우리 진형을 흩트리는 일일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일이다. 우리의 급선무는 상양관 아래에 당도해 백의의 군대를 지원하는 것이다.”

“네!”

화엽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화엽은 말을 몰아 떠나기 전, 부친이 손에 꽉 움켜쥐고 있던 고서 몇 권을 보았다. 그 고서에는 리국 좌상 류문지의 선혈이 묻어 있었다. 화명은 단 한 발의 화살로 류문지를 쏘아 죽였고 리국의 사기는 즉시 무너졌다. 본디 돌파하기 힘들었을 방어선이 알아서 후퇴하자 풍호군은 승기를 잡고 추격했다. 말을 달려 리군 진영으로 들어간 화엽은 바닥에 누워 있는 류문지를 보았다. 리군은 그의 시체를 가져갈 겨를도 없었다. 그는 화엽이 사람을 시켜 돌려준 고서 세 권을 아직 손에 쥐고 있었다. 잠시 말없이 서 있던 화엽은 다가가 고서 세 권을 챙기고 자신의 군기(軍旗)로 류문지의 시체를 덮어준 뒤 말을 몰아 떠나갔다.

화명은 높은 곳으로 말을 달렸다. 심란했지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아버지를 따라 전장에 나왔으니 끝까지 사투를 벌일 것이다.

원학이 군도를 휘두르며 최전방에서 돌격했다. 같은 부대 장수들의 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그의 말은 번개처럼 빠르게 달렸다. 초목이 누렇게 시든 늦가을의 들판이 원학의 말발굽 아래 빠르게 뒤로 이동했다. 그는 전신의 맥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맹렬한 질주와 전투는 오래도록 잠잠히 지내왔던 풍호군에게 너무나도 반가운 일이었다. 그는 적려 패잔병 대오 하나를 쫓았다. 그들은 뇌열지화의 깃발을 들고 있었다. 그는 그 깃발을 빼앗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성은 쌍방의 교전을 똑똑히 보았다. 시력이 매우 좋은 그는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불과 2리 밖이었다. 그의 맞은편으로 오는 이들은 뇌열지화의 깃발을 든 적려였다. 그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퇴각했고 한 무리의 풍호 정예병이 뒤에서 쫓아왔다. 전체 전장은 이미 궤멸되었고 패한 리국 군대는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멈춰! 대열을 정렬해라!”

사성이 크게 외쳤다.

그는 선봉군단의 통령으로 금오위도 그의 통제를 받았다. 맨 앞의 4개 군단이 천천히 펼쳐지더니 사각형의 방진이 긴 장진으로 변했다. 양 날개가 펼쳐진 모양이 한 마리의 거대한 매 같았다. 이것은 궁중에서 전수되는 진형으로 천기노는 이렇게 펼쳐진 대열에서 최대한으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주머니처럼 진형의 가운데를 살짝 오목하게 파고 적을 붙잡을 때를 기다렸다. 적려는 이미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그들은 함정 중심까지 가까워졌다.

사성은 실눈을 뜨고서 들판에 우뚝 서 있는 검은색 돌비석을 보았다. 700년째 그 자리에 서 있는 왕역의 경계비(境界碑)였다.

화엽은 그 군대 및 그들이 들고 있는 화염 장미 깃발을 보았다. 동륙에서는 황실 군대만 이 깃발을 들 수 있었다.

화엽의 낯빛이 변했다.

“영전(令箭)을 쏴라! 최전방에 누가 있지? 철수하라 명해라!”

살짝 어리둥절해진 화엽의 근위병은 순간적으로 대답하지 못했다. 화엽은 그의 손에서 활을 가져와 하늘에 대고 향전(響箭)을 쏘았다. 화살이 낭랑하게 울리며 하늘로 올라갔다. 전장의 모두가 그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신속하게 후퇴하라는 신호였다.

“원 도위! 철수하십시오! 퇴각 영전입니다!”

풍호군 하나가 말을 타고 달려와 원학의 귓가에 큰 소리로 외쳤다.

“퇴각?”

원학은 이해가 되지 않아 돌아보았다. 그와 맞은편 우림천군은 적려에 대한 포위를 이미 마쳤다. 좀 더 추격하면 적려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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