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191화 (191/360)

191

3장. 호랑이의 전쟁 (1)

“젊은이, 죽고 싶은가? 이번이 세 번째네. 뼈가 세 번이나 부러지면 다시 잘 붙기는 쉽지 않아.”

의관이 희야의 팔에 붕대를 칭칭 감았다. 그는 막 붕대를 풀고 희야의 상처를 살핀 참이었다.

“무슨 잔말이 그리 많습니까?”

희야는 고통에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잘 붙을 거다, 아니다만 말해주면 될 것을요.”

의관은 세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대체로는 잘 붙을 걸세. 몸이 아주 튼튼한 편인 데다가 운 좋게도 내 접골 기술까지 만났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묵은 상처로 남을 걸세. 상처가 아물어도 매년 겨울에 눈이 내리면 어깨 아래로 몸 절반이 쑤실 거야. 젊다고 목숨 아까운 줄 모르면 늙어서 고생해!”

순간 아연해진 희야는 차갑게 말을 뱉었다.

“늙을 때까지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무서울 게 뭐 있겠습니까?”

의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 리가 있군. 그럼 쉬게나.”

의관이 일어나 나갔다. 막사에는 방구들에 드러누워 꼼짝도 못하는 희야만 남았다. 또 벌어진 희야의 상처를 본 의관은 독하게 마음을 먹고 붕대 안에 부목을 댄 뒤 희야의 어깨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래서 이젠 혼자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졌다.

희야는 고개를 틀었다. 엽근이 창문에 기대 앉아 전포를 꿰매고 있었다. 창문으로 스며든 햇살이 엽근의 옆얼굴을 비추었다. 엽근의 한쪽 귀에는 백옥 귀걸이가 걸려 있었다. 다른 쪽은 잃어버렸는지 비어 있었다. 희야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멍하니 넋을 놓고 엽근의 움직임에 따라 백옥 귀걸이가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거예요. 하나는 아버지께서 갖고 계세요.”

한참 뒤 엽근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희야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응.”

희야는 가볍게 대꾸했다.

두 사람은 또다시 침묵했다.

또 한참이 흐르고 엽근이 고개를 들어 희야를 흘깃 보았다. 엽근은 정오의 햇살 아래 앉아 있었다. 햇빛에 비친 피부는 투명했지만 새카만 눈동자는 극도로 깊고 그윽했다.

“왜 쳐다보세요?”

“심심해서.”

엽근의 물음에 희야는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우리 눈이 참 닮긴 했어요. 어릴 때 아버지가 그러셨는데 까만 눈동자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대요.”

엽근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바느질을 하며 물었다.

“장군도 그래서 절 구한 거 아녜요?”

“아니. 난 군인이야. 그런 때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지. 넌 상양관 차기도호였던 엽정서의 딸이라며?”

“네.”

엽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중 엽씨는 유명한 가문인데 넌 시녀를 하고 있네.”

엽근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방계 출신이에요. 운중 엽씨 직계 후손은 아니고요. 하지만 조상의 명성 약간을 빌리고 꾀를 조금 써서 높은 자리에 올랐죠…… ”

“꾀?”

희야가 물었다.

“<병랑지권(兵狼之卷)>이라는 책을 위조해서 엽씨 가문의 <병무안국팔권서(兵武安國八卷書)>의 <비사권(祕四卷)> 중 하나라고 속이고 풍염 황제 시절의 명장 엽정훈이 이 병서에 의지해 천하를 누볐다고 말했죠. 아버지께서는 그 책을 황제께 바쳤고 황제는 그것을 보고 아버지가 인재라 여겨 사람들이 흠모하는 높은 자리에 봉하셨어요. 사실 그건 전부 아버지가 날조해낸 탁상공론이었죠. 평생 검이라고는 몇 번 뽑아보지도 못했는데 무슨 병법이며 무예를 알겠어요?”

엽근이 피식 웃고는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께서 출사하시기 전에 우리는 무척 가난했어요. 운중 엽씨가 어떻다는 생각도 없었고요. 나중에 갑자기 황제의 은혜를 받고 우리에게 의탁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서서히 우리가 고귀한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죠. 하지만 다시 몇 년이 흐르고 리공의 대군이 천계를 휩쓸면서 과거의 지위와 영예가 모두 사라졌어요. 시녀 일도 아무렇지 않아요. 지난 몇 년간 황성에서 누린 삶이 가져서는 안 될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할 뿐이에요.”

“어머니는? 돌아가셨어?”

“네. 제가 여덟 살 때 세상을 떠나셨어요.”

한참의 침묵이 흐르고 희야가 입을 열었다.

“우리 어머니도 돌아가셨어. 난 벌써 어머니 얼굴도 잊어버렸어.”

“제가 쓸데없이 말이 많았네요.”

엽근이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희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이 든 것 같았다.

북대영, 초위군 막사.

6국 대군의 통수가 전부 자리했다. 하나같이 안색이 암담했다. 그들을 맞이한 것은 시체 한 구였다. 그들이 이 막사에 들어왔을 때 백의는 누추한 대나무 침상 옆에 앉아 있었다. 침상은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는데 그 아래 놓인 것은 시체가 분명했다. 나이 든 검시관 한 명과 얼굴이 누르스름한 초위국 노병 하나가 고개를 숙인 채 한쪽에 서 있었다. 백의는 장군들에게 시체 옆 의자에 앉으라 청했다.

모든 사람이 도착한 뒤, 백의가 일어나 흰 천을 젖혔다. 천 아래에는 정말로 시체 한 구가 있었다. 죽은 지 꽤 된 듯했지만 심하게 썩지는 않았다. 시체의 가슴에는 커다란 상처가 있었는데 그날 밤 군사에게 심장을 가격당한 행시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백의가 입을 열었다.

“이 시체를 보라고 여러분을 모셨소. 왜 이런 시란이 일어났는지 이자가 대신 설명해줄 것이오.”

백의는 얼굴이 누르스름한 노병에게 손짓을 해보였다. 노병은 쩔쩔매며 나왔다.

“지난번에 본 그자로군.”

고월의가 불쑥 말을 뱉었다.

“네, 네. 고 장군, 저번에 몹쓸 짓을 저지르다 장군들께 들켰습지요. 이번에 소인이 공을 세워 속죄하고자 합니다.”

노병은 전전긍긍했다.

“두려워할 것 없네. 큰 소리로 말하게.”

“네!”

식연의 말에 노병은 용기를 얻어 앙상한 가슴을 쭉 펴고 말을 이어갔다.

“소인은 진영 내에서 줄곧 시신을 처리해 왔습니다. 궂은일인 데다 검시관으로 쳐주지도 않지요. 하지만 시체와 접촉한 세월이 오래되다 보니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시란이 진영에서 발생한 적 있다더군요. 다만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오는 밤에 시체가 자극을 받아서 일어나 몇 걸음 걸었다는 이야기들입니다. 보기에는 무섭지만 방망이로 허리를 쳐서 넘어뜨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답니다. 저희가 매일 시체를 상대하지만 이런 일은 수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지요. 수백수천 구의 시체가 변한 것이라면, 게다가 사람까지 해칠 수 있다면 분명 시고술일 것입니다.”

“시고술?”

강무외가 물었다.

“네. 소인이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노병이 백의를 쳐다보자 백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위국 산진군 3여단 1위 치중 부대, 설대을!”

노병이 힘차게 군례를 행했다.

“노병이었군!”

식연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설대을의 규정에 맞는 반듯한 군례를 칭찬했다. 노병이기에 가질 수 있는 기개였다.

설대을은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하는 작은 패도를 뽑아 조심스럽게 시체에 꽂았다.

칼이 푹 소리를 내며 들어갔다. 썩은 나무를 관통한 듯 피가 흘러나오지도 않았다. 설대을은 허리춤을 더듬어 작은 종이 포장을 꺼냈다. 열어 보니 황색 가루가 들어 있었다.

“유황 가루입니다. 시고는 벌레를 이용해 정신을 다루는 술법입니다. 벌레는 유황을 무서워하므로 시고에 효과가 있지요.”

설대을이 설명했다.

비안이 미간을 구겼다.

“백 장군은 이런 시골 촌구석의 사술을 정말 믿는 거요?”

백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설대을은 유황을 칼로 찌른 상처에 뿌려 넣었다. 검시관은 손에 부시를 들고 한쪽에 서 있었다. 설대을은 작은 칼로 자기 손가락을 베더니 행시의 코에 피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고월의는 행시의 손가락이 꿈틀하는 것을 본 것 같았다. 놀라 일어나려는데 행시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이번에는 장군들도 가만있지 못했다. 정규는 벌떡 일어나 칼을 뽑았다. 단칼에 시체를 동강내기라도 할 기세였다.

“정 장군, 가만히 계십시오!”

검시관이 황급히 외쳤다.

“절대 아무 일 없습니다. 이것은 이미 쇠고리로 고정해 두어 사람을 해치지 못합니다.”

정규는 어리둥절했다. 시체를 보니 목, 허리, 두 다리가 쇠고리에 묶인 채 침상 아래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체는 부상이 심한 상태로 최후의 발악을 한 것뿐이었다. 놈은 신선한 피 냄새에 이끌린 듯 힘없이 꿈틀거렸다. 검시관은 부시를 비벼 불꽃을 유황 위에 떨어뜨렸다. 화염이 시체의 가슴속으로 타들어갔다.

“장군들, 보십시오!”

설대을이 큰 소리로 외쳤다.

설대을의 음성이 떨어지자마자 무언가가 그 상처 안에서 빠져나왔다. 온몸이 섬뜩해진 장군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유황불이 무서운지 필사적으로 몸을 꾸물거리며 기어 나왔다. 누구도 본 적 없는, 청회색의 꼬리가 긴 벌레로 온몸이 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은 기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시체에서 굴러 내려온 그것은 곧장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구석으로 기어갔다.

고월의는 민첩하게 손을 휘둘러 소매에 숨겨진 칼을 던졌다. 칼은 그 벌레를 정확히 땅에 못 박아 죽였다.

벌레는 필사적으로 꼬리를 꿈틀거리며 발악했다. 하지만 점점 그 색이 옅어지더니 형체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응결되어 있던 청회색 연무가 몹시 빠른 속도로 흩어지는 듯했다. 고월의는 허리칼을 뽑아들고 한 걸음 나아갔다. 그가 채 다가가기도 전에 벌레의 형태가 와해되더니 홍갈색 가루만 약간 흩날렸다.

고월의의 칼은 아무것도 찌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대로 땅에 꽂혀 있었다. 고월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손끝이 미미하게 떨렸다. 검시관이 입을 열었다.

“고 장군 만져보셔도 됩니다. 저것이 고(蠱)1)입니다. 이미 죽었으나 원래도 생물은 아니지요. 지금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고월의는 손으로 가루를 조금 집어 비벼보았다.

“피딱지를 가루 낸 것 같군.”

검시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래 보이긴 합니다만 아무도 정체를 모릅니다.”

“사실 그 벌레도 죽은 벌레로 형체가 없습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목격한 사람도 환각을 본 것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설대을이 한마디를 보탰다.

“하지만 우리 다 보았지 않습니까?”

고월의가 주위를 둘러보며 묻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이거요. 누군가가 시고를 이용해 우리에게 함정을 놓았소.”

백의가 입을 열었다.

“며칠간 각 방면으로 수집한 소식을 공유하겠소. 시란이 일어난 밤, 리군이 돌연 되돌아왔으니 이번 일은 틀림없이 그들과 관련이 있소. 당시 상양관 안에는 행시가 총 6천152구가 있었소. 그중 절반은 화문을 열고 성 안에 들어온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치중부대의 부상자들이었소. 이런 고독은 부상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오. 중상자는 고충에 혼백을 빨려 행시와 다를 바가 없어지지. 놈들은 조직이 없고 그저 본능대로 사람을 죽인다오.”

“하지만 행시는 여전히 누군가가 조종해야 합니다. 나를 쏘았던 그자는 절대 행시일 리 없습니다. 궁술이 매우 날카로웠습니다.”

고월의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속임수를 써서 화문과 아군이 지키던 성문을 열었습니다. 행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맞소.”

백의가 대답했다.

“하지만 시체는 어쨌든 천천히 썩어가니 어떤 비술도 오래 유지될 수는 없소. 이제 굳건히 지키는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려고 여러분을 이곳에 모셨소. 사현은 지금 성을 공격할 수 없소. 공격하면 그들도 행시 떼에 발을 들이게 되기 때문이오. 우리 측의 남은 병력을 생각하면 사현이 우세를 점한다는 보장도 없소. 그에게는 적려 1만 명뿐이니까. 그저 행시가 움직일 수 없게 될 때까지 기다리면 이 전쟁의 승리도 우리가 차지하게 될 거요.”

강무외가 나직하게 말을 꺼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놈들이 알아서 쓰러지겠소? 우리는 식량도 없고 약재도 없소. 그러나 행시는 먹을 필요가 없지.”

정규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얹었다.

“승리? 우리 군은 1천200명밖에 안 남았소. 더구나 부상자가 한가득이오. 5천 정예병이 이런 손실을 입었는데 승리라 할 수 있겠소?”

“남은 병사와 군마가 대충 얼마나 되오?”

식연이 화제를 돌렸다.

“군사는 부상자 포함…….”

백의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2만 6천 명 남짓이오. 군마는 7천여 필 남았고.”

식연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백 장군,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이야기해 봅시다. 식량은 얼마나 남았소?”

“장군이 짐작한 대로요. 진북 진영의 행시를 없애기 위해 진북군은 화분술(火焚術)을 썼소. 하여 부득이하게 군량으로 충당하려 했던 귀리가 몽땅 사라졌지. 이미 말먹이는 남은 것이 없고 사람이 먹을 식량은 겨우 이레를 버틸 만큼밖에 없소!”

각국 통수들의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백의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내가 하려는 말은, 우리가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거요. 황성과 하당국, 우리 초위국에서 어쩌면 지원병이 올 수도 있으나 우리도 자구책을 찾아야 하오. 각 진영에는 기병이 있으니 군마를 죽여 군량을 충당할 준비를 합시다.”

정규가 펄쩍 뛰었다. 그는 벌게진 눈으로 벌컥 성질을 냈다.

“우리 군은 전부 기병이오. 어릴 때부터 키운 말과 함께 출정하며 이들은 우리에게 형제와도 같소. 백 장군, 말을 죽이려거든 왜 장군 말부터 죽이지 않는 거요?”

백의는 가만히 정규를 쳐다보았다. 평온한 눈빛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자기 허리춤에서 패검을 풀어 정규에게로 던졌다. 정규는 망연히 백의의 검을 받아들었다.

백의는 막사 입구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백의의 명마, 백추련이 있었다. 백의는 제 군마를 가리켰다.

“초위국은 산진과 창에 강해 가져온 군마가 매우 적소. 죽인다 하더라도 군량을 충당하기에는 부족하지. 하지만 내게도 오랜 세월 함께 출정한 말이 한 필 있소. 내 처음 녀석을 만났을 때는 망아지였지. 내 말을 죽여야만 내가 여러분과 생사를 함께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면 정 장군은 내 검으로 녀석을 죽이시오.”

정규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백의와 시선을 맞추었다. 백의는 전혀 피하지 않았다. 정규는 끝내 참지 못하고 손을 털어 검집을 벗겨내고는 성큼성큼 나와 말이 묶여있는 말뚝 앞으로 갔다. 정규는 체구가 매우 크고 하얀 준마를 올려다보았다. 극히 얻기 어려운 괴력마임을 알아보았다. 말을 사랑하는 정규로서는 아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백의에게 이 지경까지 내몰린 터라 이를 악물고 검을 들어 내질렀다.

* * *

1) 전설상의 독충.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