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185화 (185/360)

185

2장. 영혼 없는 자들이 질주하는 밤 (11)

그가 피한 첫 번째 화살과 베여 떨어진 두 번째 화살 모두 함정일 뿐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세 번째 화살은 그가 살짝 긴장을 풀었을 때 기습적으로 다가왔다. 현혹하고 다시 현혹한 다음에야 독살하는 방식이었다. 상대는 그야말로 농락하듯 그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허리칼을 손에 들고 있었지만, 힘이 빠진 찰나인지라 다시 검을 휘둘러 벨 시간이 없었다. 고월의는 순간 결정을 내렸다. 칼을 버리고 휙 몸을 돌려 우전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화살대가 뜨거운 피로 범벅이 되었다.

피는 고월의의 손바닥에서 나온 것이었다. 무기를 버린 고월의는 맨손으로 화살대를 잡았다.

궁술에 정통한 고월의는 속도와 화살의 경로를 정확하게 계산했다. 그러나 손의 힘으로는 완전하게 화살을 받아낼 수 없었다. 화살의 힘이 지나치게 강했다. 전력을 다해 붙잡았지만 우전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잡아당겼을 뿐이었다. 손바닥 피부가 전부 까졌지만 고월의는 필사적으로 화살을 움켜잡았다. 화살은 고월의의 손에 붙잡힌 채로 그의 몸 옆 흙바닥에 꽂혔다.

“성문을 닫아라!”

고월의가 다시 한번 고함쳤다.

나머지 출운 궁기병들이 달려갔다. 그들은 군마도 없었고 활에 화살을 얹을 시간도 없었다. 오로지 허리춤의 칼, 거의 장식용에 가까운 허리칼과 몸에만 의지한 채 문을 닫으러 갔다. 젊은 군사의 횃불이 성문 입구에 버려져 있었다. 출운 궁기병들은 그 작은 불빛에 의지해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적들을 보았다. 그들은 움직임이 뻣뻣했지만 행동은 매우 빨랐다. 그들이 성문을 향해 돌격하려 했다. 처음에는 시체인 척 위장하고 진북군의 눈을 피한 모양이었다. 선두에 선 자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또렷하게 보이는 것은 그자의 우람한 체구와 머리에 쓴 거대한 쌍우각이었다. 그것은 리군 중에서도 명망 높은 무사나 할 수 있는 차림이었다. 이런 머리 장식에 그들은 야수처럼 더욱 흉포해 보였다. 그가 손에 쥔 무기는 리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사각형의 만도(蠻刀)였다. 거대한 칼머리와 톱니 형태의 칼날은 일격에 적을 쳐부술 수 있었다.

바로 성문 앞, 맨 앞에서 달려가던 출운 궁기병이 거의 정면으로 리국 무사의 몸에 부딪쳤다. 체중이 상대보다 못했던 그는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뒤따라가던 두 번째 출운 궁기병이 칼을 들려 했지만 한 발 늦었다. 그는 앞에서 달려가다가 튕겨져 나온 동료에게 세게 부딪쳤다. 리국 무사는 성큼 걸음을 내디디며 군도를 수평으로 휘둘러 세 번째 군사의 허리를 절단내버렸다.

나머지 궁기병들은 그 적을 돌아서 곧장 성문을 닫으러 갔다. 궁기병 몇 명이 그 리국 무사에게 다시 칼을 내리쳤다. 칼 두 자루가 성공적으로 그의 어깨를 베었다. 그러나 나무토막에 찍힌 것처럼 칼은 적군 어깨의 탄탄한 근육에 끼어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리국 무사는 전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 한 손으로는 칼을 휘두르고 다른 손으로는 손바닥을 휘저어 궁기병들을 내쳤다. 그에게 맞은 사람들은 누구 하나 살아남지 못했다. 리국 무사는 땅바닥에서 울부짖는 궁기병 하나에게로 달려들어 단칼에 머리를 베었다.

자신이 달려가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고월의는 전포 한쪽을 찢어 손에 단단히 감았다. 손바닥의 극심한 고통은 화살을 조준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월의에게는 단 한 대의 화살뿐이었다. 전투를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터라 덜렁 활만 가지고 나왔고 화살은 아까 그가 붙잡은 것이었다. 고월의는 반드시 이 화살로 적을 해치워야 했다.

궁기병들이 공격하며 시간을 벌었고, 성문은 천천히 닫혔다. 백부장은 이미 한쪽에서 기괄을 잡아당기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톱니바퀴가 힘겹게 돌아가며 구리 쐐기가 천천히 밀려갔다. 문이 닫히고 있었다.

우람한 리국 무사는 그제야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깨달은 듯했다. 그는 뒤돌아 문을 닫는 궁기병들을 공격하러 갔다. 한순간도 그자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겨루는 사람은 곧바로 그의 난폭한 칼 아래 죽임을 당했다.

구리 쐐기가 아직 완전히 제 위치에 닿지도 못했는데 문 밖에서 광분한 가격음이 들려왔다. 뒤따라온 적들이 성문을 열려 했다. 성문에 남은 사람은 백부장 하나였다. 그는 리국 무사는 쳐다보지도 않고 두 손으로 죽어라 기괄을 회전시켰다.

리국 무사가 백부장에게로 달려들었다.

고월의의 활은 이미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구리 쐐기가 끝까지 밀어 넣어졌다.

백부장은 몸을 돌려 리국 무사를 마주했다.

이 모든 상황이 순식간에 끝났다. 만도가 백부장의 머리로 내리쳐지며 그의 몸을 세로로 반토막 내려고 하던 그때였다. 백부장도 칼을 뽑아 내리쳤다. 그러나 그는 리국 무사에게 칼을 휘두르지 않고 단칼에 기괄 손잡이를 베어버렸다!

“장군, 빨리 피하십시오!”

백부장의 겁에 질리고 절망한 외침이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그의 외침과 함께 상양관 안의 동종(銅鐘)이 울렸다. 공격을 당했을 때 울리는 경보였다. 이곳에만 적이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문은 이미 닫혔고 기괄은 망가졌다. 서각충 같은 날카로운 무기로 성문을 부서뜨려 열지 않는 한 단시간에 성 안으로 쳐들어올 수는 없었다. 고월의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부하를 구하고 싶었지만 부상을 입은 손으로 활을 잡아당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곳에는 혼자뿐이었다. 그는 끈적끈적한 어둠과 피비린내 속에 서 있었다.

백부장이 죽기 전 외친 고함에는 극도의 공포가 스며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경고였다. 백부장은 그에게 빨리 피하라 했다. 고월의가 활시위를 메운 것을 보았음에도 그는 고월의에게 어서 도망치라 말했다.

백부장은 고월의의 화살이 적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리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일련의 생각들이 고월의의 머릿속에서 폭풍처럼 스쳐 지나갔다. 고월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우각 투구를 쓴 리국 무사가 천천히 몸을 돌려 자신을 마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상대방은 활을 당긴 고월의를 보았지만 피할 생각이 없었다. 리국 무사는 말없이 칼을 들고 서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사냥감을 바라보는 야수 같았다.

고월의는 철수할 생각을 버렸다. 그와 적 사이의 거리는 단 50보. 고월의는 종군 이래 단 한 번도 이 정도 거리에서 목표물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리국 무사가 돌연 미친 듯이 질주해 왔다. 고월의는 힘이 매우 빠르게 팔에서 손가락 끝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감각을 느꼈다. 정신을 최고로 집중한 이 순간, 일체의 고통도 모조리 잊혔다. 쌩 하며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목표물에 명중하며 쟁쟁한 파열음이 울렸다. 리국 무사의 머리에서 나는 소리였다. 화살촉과 함께 화살대가 반 척 가까이 리국 무사의 미간 정중앙을 찌르고 들어갔다. 화살이 명중하는 소리가 매우 또렷하게 들렸다. 화살촉이 우각 투구의 호액철(護額鐵)을 부수고 두개골을 꿰뚫는 소리였다.

고월의는 온몸에 힘이 쭉 빠진 듯 몇 걸음 물러났다. 이 화살 한 대를 쏘는 데 그는 전력을 다 쏟아부었다.

리국 무사는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화살의 힘에 고개가 쳐들렸고 들고 있던 칼도 떨어뜨렸다. 꼼짝 않고 그곳에 서 있던 그자는 몸을 휘청거리며 힘없이 나자빠지려 했다. 고월의는 다가가 살펴볼까 싶어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다음 광경을 목도한 고월의는 자신감과 용기가 일제히 무너져 내렸다. 리국 무사는 화살을 맞은 다리에 힘을 주어 버티더니 똑바로 섰다. 꼭 꿈에서 깨어난 사람 같았다. 그는 손가락을 더듬어 미간에 꽂힌 우전을 뽑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횃불의 빛에 고월의는 똑똑히 보았다. 화살 꼬리에서는 시커먼 피가 뚝뚝 흘렀고 그 무사의 부릅뜬 눈은 회백색으로 일말의 고통도 없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자의 시선이 다시 고월의에게로 향했다. 그는 허리를 구부려 땅의 군도를 주워들고 재차 고월의를 향해 돌진해 왔다.

“죽지 않았어!”

고월의는 자기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심지어 빨리 달려가거나 반항하는 것도 잊고 접근해 오는 적을 지켜보았다. 불현듯 그는 왜 백부장이 제게 피하라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지척에서 적과 대면한 백부장은 이 적군이 고월의의 화살로도 죽일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아챘던 것이다.

맹렬하게 돌진하던 적은 제 발아래를 보지 못했다. 그는 거대한 추에 발이 걸렸다. 움직임이 민첩하지 못한 적은 휘청하더니 그대로 넘어졌다. 돌진하는 속도는 빨랐지만 동작은 날쌔지 못해 바닥에서 두 팔을 움직여 몸을 떠받치려 했다. 그러나 그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중심을 잃고 거듭 일어나지 못했다. 고월의는 번득 정신이 들어 각궁을 버리고 뒤돌아 목숨 걸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그를 지탱했다. 뒤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그 무사는 벌써 일어나 고월의를 추격해 오고 있고 속도도 무척 빨랐다. 고월의는 돌아보지 않고 그저 미친 듯이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한순간이라도 망설이면 등 뒤에서 달려오는 무사의 칼에 그대로 목숨을 잃게 될 것이었다.

전신의 피가 두 다리에 쏠리고 머릿속은 텅 비었다. 그는 각 부대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경보를 들었다. 고요하던 영지에 잇달아 불빛이 일었다. 요새 전체가 깨어나고 있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적이 어둠 속에서 흐름을 장악했다. 눈앞에 길은 하나뿐이었다. 뒤편의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주위의 모든 것이 검은색 거대한 벽처럼 붕괴되며 그의 몸을 깔아 누르려는 것 같았다. 그는 입을 크게 벌려 소리치고 싶었지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청력이 유달리 민감해진 지금, 등 뒤에서 나직하고 느린 호흡 소리가 들렸다. 또한 적의 몸에서 나던 구역질나는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적이 거의 그의 등 뒤에 붙어있는 것 같았다. 고월의는 머리 위에서 이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들었다. 군도를 들어 올리는 소리였다.

‘이제 죽겠군.’

고월의는 생각했다.

그는 돌연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무기도 없고 저항할 기회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상대를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고월의는 회백색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네모난 군도가 휙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적의 회백색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망가진 입술은 절반이 뜯겨 나가서 핏기 없는 잇몸과 시커먼 치아가 드러나 있었다. 고월의는 이렇게 흉악하고 끔찍한 얼굴은 처음 보았다. 전혀 살아 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그때 검은 형상 하나가 고월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적의 만도는 반 척 차이로 고월의를 베지 못하고 땅에 떨어졌다. 검은 형상은 화살처럼 쏘아져 나왔지만 화살보다 훨씬 거대한 힘으로 리국 무사의 가슴에 명중했다. 나아가 그자를 밀쳐내고 땅에 단단히 못 박았다. 그러나 리국 무사는 죽지 않았다. 울부짖지도 않았다. 거대한 추에 걸려 넘어졌을 때처럼 두 손과 두 발을 꿈틀거리며 힘을 받을 만한 곳을 찾아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식은땀이 내의로 스며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검은색 군마가 질풍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리국 무사를 고정시킨 무기는 말 등에 탄 사람이 내던진 극(戟)이었다.

“식 장군!”

고월의가 다가오는 사람을 알아보았다.

식연은 질주하는 묵설을 멈추었다. 그는 고월의에게 대꾸하지 않고 허리춤의 고검 정도를 뽑았다.

말에서 뛰어내린 식연은 바닥에 못 박힌 채로 버둥거리고 있는 무사에게로 달려갔다. 그는 왼손으로 검을 들고 리국 무사의 왼쪽 가슴에 찔러 넣은 뒤 검자루를 비틀었다. 검의 기세가 적의 심장을 짓이기고도 남을 정도였다. 리국 무사의 발악은 마침내 막바지에 달했고 두 손과 발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놈은 죽일 수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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