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134화 (134/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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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군왕(軍王) (2)

그때, 하당 중군 보병과 상양관까지의 거리는 50리였다. 수백 대의 군수품 수레가 한가운데에 있고 군사들은 손에 무기를 들고 도보로 수레를 뒤따르며 먹구름이 낀 하늘 아래를 천천히 나아갔다.

여귀진은 수레 발을 걷고 내다보았다. 대군은 약간 울퉁불퉁한 초원을 따라 기다란 뱀의 형태로 모여 새털구름이 낮게 떠다니는 지평선을 향해 나아갔다. 북륙 들판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던 영양 떼가 떠올랐다. 그들은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기나긴 대열을 이루고 수원(水源)이 있는 옛길을 따라 남쪽의 따뜻한 초목장으로 장장 2천 리를 옮겨갔다. 황량한 들판을 지나는 위험한 길은 양떼의 핏줄 속에 각인된 듯했다. 새로 태어난 어린 양도 어른 영양을 따라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귀진은 아주 어릴 적 아버지와 사냥을 나갔다가 이동하는 양떼와 마주쳤다. 가는 내내 목이 말라 쓰러진 영양들을 보았다. 어미 양이 죽어가는 새끼 양을 핥아주는 모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애달프고 처량했다. 여귀진은 동행하는 늙은 사냥꾼에게 연유를 물었다. 사냥꾼은 부근의 샘물이 끊겨서 옛길을 따라 이동하는 양떼가 갈증을 참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 다른 길에서 물을 찾으면 되지 않아요?”

여귀진의 어리디어린 마음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양떼가 원래 그렇습니다. 해마다 같은 길로 가지요. 올해 목말라 죽은 양이 많아도 내년에 또 이 길에서 목말라 죽습니다. 돌아볼 줄을 몰라요.”

나이 든 사냥꾼은 감회에 젖은 것인지 소리 높여 오래된 목가(牧歌)를 불렀다.

여귀진은 불현듯 전쟁터로 달려가는 대군이 옛길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던 영양처럼 자기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정에 출정을 거듭하고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매 왕조, 매 세대의 피가 흘러 강이 되었지만 뒤를 잇는 사람들은 여전히 죽음의 길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갔다.

“아소륵. 무슨 생각해?”

등 뒤에서 희야의 목소리가 울렸다.

희야는 하얀 수레에 누워 있었다. 전신을 흰 베로 동여맸고 부목을 댄 왼팔을 목에 매달았다. 의관이 그의 부상을 치료하면서 이렇게 심하게 다치고도 기절하지 않은 사람은 처음 보았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나뭇가지로 희야의 온몸을 고정하고 붕대로 꽁꽁 동여맸다. 희야는 지금 기껏해야 손가락을 꼼지락대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목을 돌리기만 해도 통증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수레 문이 열리고 식원이 몸을 기울이며 훌쩍 뛰어 들어왔다. 손에는 달인 탕약을 들고 있었는데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약 먹자. 약 먹어.”

식원이 희야의 곁에 앉았다.

“그 약 더럽게 써. 소한테 먹여봐. 소도 써서 죽으려고 할걸?”

희야가 안 먹으려고 버티며 불평했다.

“그만 투덜대. 시집 못 간 아가씨 같다니까.”

식원은 탕약을 후후 불며 말했다.

“소가 너랑 비교가 돼? 소가 감히 위무왕에게 칼을 휘두를 수 있겠어? 요 며칠 네 위세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모르지? 전군에 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 순국 명장 화엽이라고 알아? 별명이 추호인데 부하들은 호신이라고 불러. 군신(軍神) 같은 인물이지. 그가 출정하면 전군이 무릎을 꿇고 절한대. 지금 네 명성에 위무왕과 한 번 더 승부를 겨룬다면 화엽 장군의 명성과 비슷해질걸?”

식원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너는. 음…. ‘야신(野神)’이라고 부르자!”

“야신은 무슨…. 황야에 떠도는 야귀가 낫겠…….”

희야는 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식원이 한 손으로 깔때기를 희야의 입에 쑤셔 넣고 한 손으로 그릇 가득한 탕약을 그대로 들이부었다. 식원은 만족스럽게 자신의 깔때기를 보며 말했다.

“역시 쓸모 있을 줄 알았어. 네가 고개도 못 들고 맨날 약을 다 흘리니 어쩌면 좋을까 하고 오는 내내 생각했거든. 내가 생각한 대로 하니까 봐, 한 방울도 안 흘렸잖아!”

식원은 희야를 흘긋 쳐다보았다.

“왜 노려봐? 내가 불어서 식혀줬잖아. 안 뜨겁게!”

“뜨겁진 않지만 얘 사레들려 죽을 뻔했잖아.”

여귀진이 다가가 도와주려는데 식원이 재빠르게 약을 다 들이부어 버렸다. 그 바람에 여귀진도 희야가 곧 죽을 사람처럼 눈이 불룩 튀어나오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숨을 고르지 못한 희야는 식원에게 고함도 지르지 못했다. 식원과 한판 붙고 싶어도 지금은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깔때기를 보며 히죽거리던 식원은 자기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맹수처럼 사나운 제 친구가 꼼짝도 못 하고 누워서 괴롭히는 대로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커다란 무기를 얹은 커다란 수레가 쿠르릉 소리를 내며 창밖을 스쳐 지나갔다. 마침 그들이 탄 수레를 지나가고 있었다.

“저게 뭐야?”

여귀진이 물었다.

식원이 흘긋 쳐다보았다.

“서각충(犀角冲)이에요. 사실상 공성추(攻城椎)죠. 예전 것은 되게 무거워서 한 번 출동하려면 마바리가 60필이 필요하고 수십 명의 군사가 지켜야 했거든요. 한데 숙부께서 설계도를 고쳐서 서각충은 분해와 조립이 가능해요. 분해하면 가장 무거운 몽치 몸통이 4천 근 정도밖에 나가지 않아서 큰 수레 위에 얹어서 갈 수 있어요.”

“그럼 뒤의 건?”

식원이 창문으로 목을 내밀고 보았다.

“저건 상노(床弩)예요. 기괄을 펼쳐서 사용하는 커다란 활이죠. 1천2백 보 거리까지 쏠 수 있어요. 저건 작은 편이에요. 하락족은 위에 앉아야만 쏠 수 있는 거대한 노를 만들 수도 있대요. 이름은 합파이심(哈巴尔沁)이라고 하죠. 80근의 쇠화살도 쏠 수 있고 사정거리가 2천 보나 된대요!”

“왜 이렇게 큰 노를 만들어야 하는데?”

여귀진은 수레 양쪽에 묶인 쇠화살을 보며 물었다. 화살은 굵기가 여귀진의 팔뚝만 했고 머리 부분에는 2척 길이의 기다란 침이 있었다.

“사람한테 쏘는 게 아니에요. 성벽에 쏴서 박는 거죠. 이렇게 성을 공격하면 병사들이 밟고 올라갈 수 있거든요. 운제(雲梯)1)를 올리지 못할 때 꽤 효과적이죠.”

“만약 사람 몸에 쏘면…….”

식원은 깜짝 놀랐다.

“아마 몸이 두 동강날걸요?”

여귀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난 후방에 가볼게요. 숙부께서 안 계시니 각 부대가 해이해지기 시작했어요.”

식원은 희야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다음번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게.”

“됐어. 이대로 들이부어도 돼.”

희야가 이를 드러내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근데 소장군. 내 어깨는 치지 마. 거기는 멀쩡한 뼈가 하나도 없으니까.”

“이 정도로는 너 안 으스러져! 난 널 믿거든!”

식원이 씩 웃으며 수레에서 뛰어내렸다.

수레 안에는 희야와 여귀진만이 남았다.

“아소륵. 무슨 생각해?”

희야가 또 물었다.

여귀진은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아까도 물어봤었지?”

“근데 넌 대답을 안 했고.”

희야가 말했다.

“그것도 기억하는구나.”

“너 삽매곡에서 오는 내내 그랬어.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지. 무슨 생각 하냐고 묻고 싶은 지 오래됐어.”

“별일 아냐.”

여귀진이 고개를 저었다.

“쉬어. 의관이 너 석 달 걸려도 다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대. 지금 억지로 움직이면 뼈가 잘못 자랄 수 있어.”

“아소륵…….”

희야가 살짝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무서워서 그래?”

여귀진은 한참을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촌 형님을 생각했어.”

“네 사촌 형님?”

“용격진황 백로합 고살이. 형님 이름이야. 하지만 초원의 사람들은 모두 형님을 사자왕이라 불렀지. 형님은 이미 돌아가셨어…. 내가 우리 가족 얘기해준 적 없지?”

“없어.”

여귀진은 가끔 희야와 우연에게 북륙에 대해 이야기해 주곤 했다. 기러기며 영양이며, 과보와 용마까지 이야기했지만 자기 부모나 가족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이따금 몇 마디 했다가도 이내 말을 거두곤 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여귀진은 고개를 돌려 제 지기를 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마. 알겠지?”

“응!”

“나는 아버지의 다섯째 아들이지만 어머니는 청양부 사람이 아니야. 어머니는 삭북부 출신이지. 그해 청양부가 삭북부를 물리쳤어. 북도성을 지키느라 많은 사람이 죽었지. 외조부께서는 청양부와 화해하려고 어머니를 보냈어…….”

여귀진은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침묵했다.

“스승님께 들었는데 동륙에서는 혼례를 하려면 기러기를 보내야 하고, 길일을 물어야 하고, 혼서와 납폐도 보내야 한다며. 하나라도 빠지면 예의에 어긋난대. 하지만 우리 북륙에서는 무척 간단해. 아버지는 사실 여자가 많아. 대부분 포로로 잡혀 온 여자들이라 예절을 갖출 명분도 없어.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임자가 되지. 우리 청양부 시조는 여청양이라는 분인데 형제가 일곱 명이 있었어. 시조와 함께 여덟 명이 전쟁에 나가 소와 양, 사람을 빼앗아 왔고 기여한 공에 따라 나누어 가졌어. 나중에 일곱 형제가 소와 양, 초목장 때문에 시조를 배반했어. 그래서 그분은 일곱 형제를 모두 죽였어. 그들의 두정골을 깎아서 자기 검에 박아두고 형제들의 소와 양, 인구를 다 차지했지. 다른 부락이 그의 것을 다시 빼앗아갈까 봐 두려웠던 시조는 자기 누나와 누이를 아내로 들였어…. 알아, 근친상간이지. 하지만 이렇게 하면 광혈을 가진 후손이 태어나기 쉽대. 나중에 정말 광혈을 가진 아들이 세 명 태어났어. 두려워진 사람들은 선물을 들고 와 귀순했고 청양부는 그렇게 큰 부락이 된 거야.”

희야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여귀진이 말을 이었다.

“나는 형님이 네 분 있는데 내가 세자야. 네 아버지와 네 아우는 너한테 못되게 굴어도 널 죽이려고는 하지 않잖아. 하지만 나는 가끔 생각해. 언젠가 내 형님 중 누군가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나 같은 사람은 대군(大君)에 어울리지 않아. 청양의 무공을 빛낼 수도 없어.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게 우리 북륙의 규칙이야. 약한 사람은 죽어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없어. 형님들이 날 죽이지 않는 건 청양의 선조들에게 면목 없을 일이야…….”

여귀진이 돌연 고개를 들었다.

“희야. 아는지 모르겠지만 너와 우연을 알게 되었을 때 난 정말이지 평생 북륙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내 친형님들이 칼을 들고 나를 죽이는 모습을 보는 게 두려워!”

두 사람은 묵묵히 서로를 마주한 채 오래도록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가 많이 우둔하다는 거 알아…….”

여귀진은 살짝 멋쩍었다.

“근데 무예는 왜 배워?”

희야가 나직이 물었다.

“가끔 생각만큼 내가 그렇게 형편없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거든. 언젠가는 내가 청양을 지키고 아버지처럼 공훈을 세울지도 모르지. 그럼 내가 그들을 지켜줄 수 있을지도 몰라…….”

여귀진은 돌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데 너와 리국공이 겨루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어. 난 못해. 넷째 형님 말이 맞아. 난 아무리 노력해도 겁쟁이에 무능하지. 내가 리국공의 칼 아래 있었다면 칼을 뽑지도 못했을 거야…….”

여귀진은 창백한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희야. 네가 정말 존경스러워. 내가 너만큼만 용기가 있었더라면…….”

“나도 그렇게 대담하진 않아. 나도 무서워.”

희야가 여귀진의 말을 끊었다.

“뭐라고?”

여귀진은 의아한 얼굴로 희야를 쳐다보았다.

“나도 그렇게 대담하지 않다고. 나도 무서워. 그때 난 내가 곧 죽는구나, 생각했어…. 아소륵, 난 죽음이 두려워. 너보다 더할 거야. 그때 내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계속 외치는 것 같았어. 그가 날 죽이지 못하게 하라고 그가 날 죽이게 두지 말라고…. 날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말이야. 가끔 내가 창을 연습할 때 완전 미친 것 같지 않아? 가끔 정말 무서울 때가 있어서 그래. 난 창야가 아니라 챙겨줄 사람도 없으니 두각을 드러내려면 나 스스로를 믿고 열심히 창술을 연마할 수밖에 없어. 그래야 전쟁터에 나가도 죽임을 당하지 않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지.”

여귀진은 놀란 눈으로 희야를, 희야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새카만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희야는 여귀진을 보지 않고 수레 지붕을 곧게 응시했다.

“어젯밤에 꿈에서 어머니를 봤어. 깨고 나니까 엄청 울고 싶더라.”

“너희 어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셨어?”

“기억이 안 나.”

“기억이 안 난다고?”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천계에 살았어. 나중에 변고가 생기면서 남회로 이사 오게 된 거야. 그 난리 통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사실 나…. 여섯 살부터 여덟 살 때까지의 일을 전혀 기억 못 해.”

“설마…. 실혼증(失魂症)이야?”

여귀진은 로 선생이 이런 불치병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모르겠어. 천계에서 남회로 이사 오던 길에 가족들과 헤어지게 됐는데 가족들이 나를 찾았을 때는 이미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어. 할아버지가 날 의원에게 데리고 가 보였는데, 의원도 실혼증이라면서 아마 길에서 자빠져 머리를 부딪치면서 바보가 되었고 이전 일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을 거래.”

희야가 고개를 돌려 여귀진을 보았다.

“네가 보기에도 내가 자빠져서 멍청해진 것 같아?”

여귀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 멀쩡한걸?”

“어쩌면 전에는 보통 사람보다 조금 더 똑똑했는데 넘어지면서 보통 사람처럼 되었는지도 모르지…….”

희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듯했다.

“하지만 그런 건 신경 안 써. 난 그냥 어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것도 안 떠올라.”

“어머니 초상화는 없어?”

여귀진은 궁금해졌다.

희야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본 적 없어. 들어본 적도 없고. 원래대로라면 우리 가문 같은 귀족의 후손은 집에 분명 초상화를 남겨야 맞거든. 근데 할아버지께 여쭤봤더니 이사하면서 잃어버렸대. 그래서 어머니가 어떤 모습의 여인이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 계속 생각하다 보니까 꿈도 꾸었어…….”

“꿈에서는 어떤 모습이었는데?”

여귀진은 희야에게 물으면서 속으로는 언제나 조용히 노래를 흥얼거리며 장막 깊은 곳에 앉아 있는 여인을 생각했다. 여인은 품에 헝겊 인형을 안고서 그 인형이 여귀진이라고 생각했고 그가 얌전히 잠들도록 노래를 들려주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희야가 다시 입을 뗐다.

“이상한 게, 꿈에서는 항상 어느 오후야. 발에 걸린 창문으로 눈부신 바깥의 햇살이 비쳐 들어와. 어머니와 나는 방 안에 있고 밖에서는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두드려. 꼭 딱따기 같아. 가끔 나는 침대에서 자고 어머니는 곁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계셔. 가끔은 어머니가 나를 안고 노래를 흥얼거려. 매번 가까이 다가가 어머니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만 꿈에서 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어떻게든 고개를 돌려봐도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옷만 보여.”

희야의 목소리가 잠꼬대처럼 변해갔다.

“문밖에서는 인영이 왔다 갔다 해…….”

여귀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물었다.

“어머니 많이 보고 싶지?”

“아주 오래전의 일이야. 이젠 혼자에 익숙해졌어.”

희야가 조용히 말했다.

“그냥 가끔 이런 생각해…….”

희야가 수레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정말 바보가 된 건가?”

* * *

1) 고대에 성을 공격할 때 사용했던 높은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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