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112화 (112/360)

112

1장. 난세의 사자 (1)

윤 희제 9년 겨울. 12월 17일.

천계성, 태청궁.

“폐하! 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옥으로 된 섬돌 아래에서 한 노인이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린 채 황제의 옷소매를 필사적으로 잡아당겼다.

젊은 황제는 탁은으로 된 중갑(重甲)을 걸쳤는데 가슴 부분에는 금빛 유운과 화염이 새겨져 있고 그 안에는 타오르는 장미가 활짝 피어 있었다.

대윤 황족 백씨 가문의 휘장이다.

700년 전, 백윤이라는 사내가 불길 속의 장미 깃발을 높이 들고 동륙을 통일하여 구주 역사상 전무후무한 인류의 제국을 세웠다. 그때부터 타오르는 장미는 대윤 조정의 위엄과 힘을 상징했다. 백씨는 이를 가문의 휘장으로 삼고 당시 전쟁의 신이나 다름없었던 ‘장미 황제’의 영혼이 후손을 지켜주길, 백씨 조정에 영원한 힘과 번영을 가져다주길 바랐다.

황제는 노쇠한 신하를 안쓰러워하지도 않고 채찍 자루로 신하의 쇄골을 세게 쳤다. 그리고 휙 돌아서 서안(書案)1)에 놓인 검을 잡았다.

제왕의 검 ‘승영(承影)’은 장미 황제 백윤의 패검으로 전해져 오는 검이다.

“폐하!”

나이든 신하가 무작정 달려들어 황제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팽천려!”

황제가 분노해 소리쳤다.

“선황제의 유신(遺臣)이라 하여 내 그대를 죽이지 못할 것 같소! 우리 대윤의 강산이 그대들처럼 겁 많고 소심한 신하들 때문에 망해 가는 것이오! 당장 물러나지 않으면 내 그대의 머리를 검의 제물로 삼겠소!”

“폐하!”

격노한 황제는 결국 검을 들었다. 검집의 붉은색 끈이 강제로 끊어졌다. 검집에서 나온 고검에는 있는 듯 없는 듯 한 광채가 흘렀다. 700년 만인데도 승영검의 검끝은 막 갈아낸 듯했다.

700년이 흐른 지금, 백씨 가문 금기의 주문이 깨지고 말았다.

승영검은 백씨 가문에 전해 오는 신비한 무기이지만 전설 속 ‘난세의 검’이기도 하다. 백윤은 가만있지 못하고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이 검을 들고서 켜켜이 쌓인 시체를 밟고 동륙을 통일했다. 그러고는 직접 붉은 끈으로 검을 봉인하여 신병(神兵)이라 할 수 있는 이 예리한 무기를 깊은 궁궐의 검각(劍閣)에 계속 방치해 두었다.

궁중의 내시들이 말하길, 궂은비가 내리는 날이면 검각에서 희미한 외침이 들린다고 했다. 또한 별도 달도 없는 밤, 검각에 등잔을 하나 켜면 등불 그림자 속에서 옅은 인영 하나가 검집을 쓰다듬는데 그러면 기이하게도 검이 스스로 울기 시작한다고 했다.

“너무 많이 죽였다.”

백윤은 일찍이 탄식하며 말했었다.

“불길한 검이야.”

마침내 봉인의 붉은 끈이 다시 끊어졌다. 묘망한 가운데 검의 악한 혼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700년간 번영을 누린 백씨 왕조는 끝내 난세의 액운을 피할 수 없는 것인가?

고검이 바람을 가르고 노신의 목을 향해 내리쳐졌다. 분노에 찬 황제는 힘을 제어하지 못했고 승영검은 노신의 어깨를 1촌 깊이 베고 들어갔다. 거의 투명한 검 위로 시뻘건 색이 흘러내렸다. 순간 황제와 신하 모두 조용해졌다. 황제가 흠칫 손을 떨었다. 노신의 멀어 버린 두 눈에서는 뜻밖에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참 뒤, 황제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팽천려. 선황제와 만족을 북벌하러 가서 우전에 두 눈이 멀고도 화살을 뽑아내고 온 힘을 다해 싸웠으면서, 어찌하여 내가 이 조정의 위엄을 다시 세우려 하는 지금은 이토록 두려워하는 것이오…. 정녕 우리 백씨 황실에 충신은 없단 말이오?”

이어 황제의 가슴속에 숨어 있던 화가 터져 나왔다. 수년간의 굴욕과 무력감이 일찍이 분노의 씨앗을 파묻어 버렸으나 필사적으로 이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분노의 불길은 눈먼 팽천려가 꺼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팽천려를 발로 차 버린 황제는 검을 들고 전각에서 내려와 성큼성큼 태청문을 나갔다. 그곳에는 이미 어가가 준비되어 있었다. 흰색 꿩의 깃을 꽂은 백마 네 필이 황금 장식이 된 병거(兵車)에 메여 있었다. 우림군 정예병 400명도 완전 무장을 했으며 무기도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고요한 궁전에는 삼대에 걸쳐 황제를 모신 원로대신, 용벽 장군 팽천려가 어깨에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내 오늘 반드시 역신을 죽이고 대윤의 황위를 공고히 하리라!”

황제의 목소리가 궁문 밖에서 전해졌다.

“목숨을 바쳐 적을 죽이는 자는 모두 제후에 봉할 것이다! 영무예를 죽이는 자는 대대로 왕에 봉할 것이다!”

“와--!”

우림군이 일제히 호응했다.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함성은 상당히 놀라웠다.

수레와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황제의 전차는 어느새 먼지를 밟고 출발한 듯했다. 궁전 안에서는 팽천려가 주위를 더듬으며 일어났다. 홀로 허리를 숙인 채 섬돌 아래로 걸어간 그는 묵묵히 자색 관복을 매만졌다. 멀찍이 있던 궁녀와 내시는 팽천려의 완고함이 두려워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은 팽천려가 뭘 하려는지 몰라 서로 눈짓만 주고받았다.

“선황의 영령(英靈)이시여.”

팽천려가 북쪽의 종묘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소신 밖으로는 제후를 제재하지 못하고 안으로는 군왕을 지키지 못하였으니 선황제의 유지를 받들 낯이 없나이다. 불구의 몸은 쓸모가 없어 죽음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을 터이나 선황께 사죄할 방법은 이뿐이옵니다.”

팽천려가 또다시 소리쳤다.

“영무예! 나라를 어지럽힌 역적! 50년 전 전장에서 만났다면 네놈을 난도질하여 갈기갈기 찢어 죽였을 것이다!”

팽천려가 포효하며 몸을 일으켰다.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든 그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 목에 칼을 깊숙이 밀어 넣고 힘주어 당겨 후두부의 혈관을 끊었다.

뜨거운 피가 3척 높이의 피 안개로 흩뿌려졌다. 지난날의 명장(名將)은 금란전의 새빨간 양탄자 위에서 불구의 몸으로나마 대윤에 충성을 다했다.

팽천려가 한 말을 영무예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영무예가 50년 일찍 태어났다면 때는 팽천려가 한창 재능을 떨치며 대윤의 파군지장(破军之将)인 소근심과 이름을 나란히 할 시기다. 당시 팽천려의 용맹함이라면 영무예와 진두에서 만났을 때 정말 이 역신을 제 손으로 베어 죽이고 충군애국(忠君愛國)의 꿈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애석하게도 동륙의 수사자가 대윤의 조정을 호령할 때 팽천려는 이미 역사로 사라지고 말았다.

백윤이 영씨 가문 선조를 리국에 봉했을 때 당연히 영무예의 출생까지 생각했을 리 없었다.

별자리가 어찌 운행하여 소심하고 신중한 영무예 아비에게서 이런 아들이 태어났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17공자 영무예는 어려서부터 악명 높았다. 성정이 괴팍하고 사나웠으며 매일 사냥을 다녔고 성안의 무뢰한 소년들과 신분을 숨기고 어울리는, 리국의 해악이었다.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 칼솜씨와 말타기에 뛰어났음에도 리 제후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영무예가 열아홉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난 부친은 장자 영무망에게 리국을 물려준다는 유서를 남겼다. 자신의 무능함을 알았던 영무망은 형제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을 염려해 무력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금군 정예병 400명을 정비해 각 공자들의 집으로 보냈다. 형제들을 내궁에 들여 감시하려 했던 것.

영무망은 많은 형제를 성공적으로 굴복시켰다. 처음 사용한 무력에서 달콤함을 맛본 그는 자신감에 차 갑옷과 무기를 갖추고 말을 몰아 금군의 맨 앞에 섰다.

영무예의 저택으로 돌진하는 그를 맞이한 것은 날카로운 낭아전이었다. 영무망이 주인을 부르라며 호통치던 그때였다. 바람을 가르고 날아온 긴 화살이 그의 입을 찌르고 들어가 그대로 뒤통수까지 꿰뚫었다. 열아홉 살에 불과한 영무예가 앞채의 기둥 뒤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강궁을 던져 버린 그는 휴대하는 장도를 들고서 한 걸음, 한 걸음 금군을 향해 다가갔다. 1 대 400의 대치 상황이었다. 영무예는 제 형이 데려온 금군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매 걸음 힘차고 꿋꿋하며 일말의 두려움도 없어 보였다. 저항할 수 없는 위엄과 살기는 열아홉 청년이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앞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금군들은 양 떼와도 같았다. 그리고 영무예는 영락없는 사냥 나온 수사자였다!

영무망은 400명의 금군 정예병을 구슬리는 데 반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영무예는 한순간에 그들을 굴복시키고 환호를 받으며 리후 전하가 되었다.

다음 날 영무예는 제 형을 죽인 장궁을 들고 리국 궁전에 반듯하게 앉아 형들에게 말했다.

“날 죽이고 싶은 이는 얼마든지 나를 따라 하면 기회가 있을 것이오. 그러나 우리가 검을 맞부딪치게 되는 날에는 더 이상 형제라 할 수 없겠지. 승자만이 살고 패자는 죽게 될 것이오!”

승자는 살고 패자는 죽는다. 이것이 영무예가 평생 강경하게 고수해 온 규칙이었다.

윤 희제 6년 8월, 당시 16국 제후 중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변경의 후작 영무예가 뇌안산을 넘어 5천 경기병을 이끌고 황성에 황제를 알현하러 왔다. 사실상 뛰어난 기습 부대인 그들은 5천 병마로 천계성을 통제했다.

제후들은 그제야 질겁하며 깨달았다. 영무예의 오랜 지휘 아래 리국 군대가 어느새 16국을 제패하고도 남을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영무예는 강력한 두 부대 ‘뇌기’와 ‘적려’를 등에 업고 황제를 협박하고 제후들을 위협했다. 윤 희제는 제후에게 능욕당하고 싶지 않아 비밀리에 근왕 철권을 전했고 15제후국의 18만 연맹군이 황성에 접근했다. 결국 양측은 쇄하산 혈전으로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15제후국 연맹은 한 달 뒤 무너졌고 리국은 쇄하산 전장에서 제후국들과 동맹을 맺고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무너지기 쉬운 평화나마 유지될 수 있었고 후세에는 이를 ‘쇄하 동맹’이라 불렀다.

이 동맹에서 동륙 제후들 간의 균형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약자는 끝내 강한 권력에 굴복했고 권력을 노리는 자들은 발톱을 숨기고 수사자가 무너지기를 기다렸다. 오랜 평화가 전쟁으로 무너지고, 새로운 전쟁이 새로운 평화 속에서 또다시 움트고 있었다. 역사의 이 한 토막은 피로 점철되어 후세 사람들은 쇄하 동맹 당시 제후들의 표정을 알 방도가 없었다. 쇄하산의 7만 구 시신만이 100년 후에도 텅 빈 눈을 하늘로 향한 채 오르내리는 별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희제가 마침내 들고 일어나고 팽천려가 자진(自盡)한 일은 난세의 변화 사이에 끼어 있는 짤막한 한 대목에 불과했다. 근왕의 전쟁이 종식된 것을 목도한 희제 백록안은 답답했고 더는 영무예의 오만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희제 9년, 그가 황제로 불린 마지막 해. 백록안은 격분하며 우림군 400여 명을 이끌고 영무예의 저택으로 쳐들어갔다. 안타깝게도 영무예는 당시 분노한 황제를 직접 보지 못했다. 눈 깜짝할 사이 백록안의 부대는 리국의 뇌기병에 의해 해체되었고 희제는 배신한 부하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영무예는 젊은 황제의 관이 그의 앞에 놓이고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무예는 관을 치며 길게 탄식했다.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 구천에서 기뻐해야 마땅하겠지.”

사관은 영무예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백록안의 시호(諡號)를 ‘희(喜)’로 삼았다. 하여 승영검을 가지고 가문을 부흥시키려다가 도리어 죽임을 당한 황제는 사서에 ‘희 황제’로 불리게 되었다.

난세에는 패망한 자를 이렇게 조롱했다.

* * *

1) 책을 펴 보거나 글씨를 쓰는 데 필요한 서실용 평좌식 책상.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