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103화 (103/360)

103

6장. 검 (28)

“우연. 안 무서워?”

여귀진이 초를 높이 들어 통로 꼭대기를 비추었다. 팔을 쭉 뻗지 않아도 돌에 새겨진 무늬를 만질 수 있었다. 통로 양쪽의 돌벽을 두드려 보았다. 튼튼하고 두터운 벽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소리가 났다.

“아무 일 없을 거야. ‘안’은 공격을 하기에는 힘든 비술이거든. 비술을 걸어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안에 있으면 누구나 환상에 미혹돼. 죽상도 예외는 아니지.”

“유은이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걸까?”

“모르니까 재미있지.”

“하여간 넌 장난밖에 모르지. 여기 점점 좁아지는데 막다른 길 아니야?”

여귀진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희야는 통로가 더 비좁고 낮게 느껴졌다. 흥분되면서도 무서워서 벌벌 떠는 우연이 뒤에서 희야의 허리띠를 잡았다. 희야는 수레를 끄는 나귀가 된 기분이었다. 여귀진은 손에 녹처럼 묻어난 청회색 가루를 보면서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무덤으로 통하는 길이지? 형태를 보니까 조릉 아래 들어온 것 같긴 한데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신도의 입구가 아니라 예비용 옆길 같아. 이 벽화들은 뭐지?”

“벽화는 무슨! 모르겠어?”

우연이 여귀진의 손가락에 묻은 가루를 비벼 코끝에 대보고는 말했다.

“비술의 주문이야. 대청수(大靑樹)를 태운 재에 청유분(靑釉粉)을 섞고 뜨거운 납(蠟)을 부은 거야. 묘도(墓道)를 지키는 용도지.”

여귀진이 감탄했다.

“우연. 너 아는 게 정말 많구나!”

우연이 뿌듯해하며 말했다.

“이건 우족 주문이야! 그러니까 당연히 알지.”

“우연. 내 허리띠 좀 그만 잡아당겨. 그 무늬들은 뭐 하는 건데?”

맨 앞의 희야가 어둠 속을 탐색하듯 긴 창을 가지고 무언가를 쑤시면서 물었다.

“소멸하지 않는 혼백을 몰아내는 거야. 강시 같은 거 나타나지 않게.”

우연은 무릎을 구부리고 통로에서 작게 몇 번 폴짝거렸다. 그녀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눈의 흰자위를 번득이며 여귀진을 향해 껑충껑충 달려가더니 불쑥 혀를 내밀었다.

“우연. 뭐 하는 거야?”

여귀진이 신기하게 우연을 쳐다보았다.

“강시잖아!”

우연이 여귀진의 목을 조르듯 움켜쥐고 말했다.

“내가 강시라는데 안 무서워?”

“아.”

여귀진이 피식 웃었다.

“난 토끼인 줄…….”

어안이 벙벙해진 우연이 갑자기 손에 힘을 주었고 여귀진은 아파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좀 해. 이러다 진짜 죽은 사람 깨겠다.”

희야가 몸을 옆으로 틀어 앞쪽 길을 보여주었다.

“이거 봐.”

주위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으악!”

우연은 날카롭게 비명을 내지르며 정말 토끼처럼 깡충 뛰어올랐고 그 바람에 머리를 통로 천장에 부딪치고 말았다.

“무슨 짓이야!”

희야가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큰 소리로 외쳤다.

“죽은 사람이잖아! 시체라고!”

우연이 한 손으로 정수리를 누른 채 다른 한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너희는 안 보여?”

“누가 몰라? 네가 내 허리띠 잡아떼 갔잖아!”

희야가 분개하며 두 손을 허리춤에 그러모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우연은 물끄러미 제 손에 들린 검은색 허리띠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시체가 확실했다. 통로 벽에 반쯤 기댄 채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온몸이 얼룩덜룩한 회황색을 띠었다. 무슨 연유인지 시체는 썩지 않은 상태였다. 이따금 물이 떨어지는 통로 안에서도 쪼글쪼글하게 말라 있을 뿐이었다. 온몸의 근육과 피부가 바싹 오그라들어 뼈에 붙었고 안구도 물기가 다 빠져 있었다. 동공도 다 풀렸다. 마지막 시선은 아득히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듯했다.

“소리 좀 지르지 마. 밖에서 누가 들으면 우리 다 끝장이야.”

희야가 짜증내듯 허리띠를 가져가 묶었다.

“그래 봐야 강시지. 벌떡 일어난다고 해도 그게 뭐 별건가. 산 사람도 안 무서운데 죽은 사람을 무서워할 게 뭐야? 여기서 죽은 장인(匠人)들일 수도 있어. 처음 조릉을 만들 때 죽은 장인이 엄청 많대. 석재를 운반하다가 깔려 죽은 사람만도 수천 명이랬어.”

우연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 그럼 우리는 어떡해?”

“돌아가야지. 서둘러. 내가 맨 뒤에 갈게.”

희야가 우연의 어깨를 밀며 말했다.

“네가 맨 앞에 가.”

우연은 희야의 뒤로 몸을 물렸다.

“싫어. 내가 중간에 갈래!”

우연의 몸을 되돌린 휘야가 뒤에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강시가 어떻게 사람을 잡아먹게? 네 뒤에 따라와서 손을 몸에 얹어. 뒤에서 누가 부르는 것 같아서 네가 고개를 돌리면 바로 목을 물어뜯지. 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해. 그렇게 맨 끝에 있는 사람이 사라지는 거야. 그러고 나면 강시는 이제 뒤에서 두 번째 사람을 먹어치우지.”

우연은 악, 비명을 지르며 희야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희야는 한 손으로 머리를 잡고서 잠시 우연에게 맞아 주었다. 희야를 때리고 난 우연은 여귀진의 손에서 초를 빼앗아 통로 반대편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여귀진은 제자리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놀라기는 했지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희야. 또 우연을 놀리는 거야? 네가 말한 건 늑대가 사람을 잡아먹는 방법이야. 강시도 늑대랑 똑같아?”

희야는 전혀 시시덕거리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는 여귀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냉엄한 얼굴로 말했다.

“우연의 뒤를 따라가. 떨어지지 말고. 난 강시가 어떻게 사람을 잡아먹는지 몰라. 그런 구역질 나는 것들 무섭지도 않아. 그래도 여기는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방금 저 시체가 입은 옷 봤어?”

“옷?”

여귀진이 흠칫 놀랐다.

“우연한테 말하지 마. 금군 금오위의 군복이야. 저자는 장인이 아니야.”

희야가 고개를 돌려 그 시체를 흘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고위 금군이 여기에서 죽을 이유가 없어. 게다가 저자 어깨에 상처가 나 있었는데 누군가가 내리쳐서 베어진 것 같았어!”

발소리에 메아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몸 옆의 통로 벽이 만져지지 않았다.

희야는 우연의 손에서 초를 건네받았다. 손에 수갑(手甲)을 찬 자신이 초를 들면 촛농이 떨어져도 우연은 손이 데지 않을 터였다. 초는 이미 매우 짧아져 있었고 불씨가 가볍게 흔들렸다. 이미 상당한 거리를 더듬어 나온 듯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주위가 변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거대한 공간을 걷는 것 같았다. 한참을 걸어도 부딪치는 장애물이 없었다. 초의 미약한 빛은 겨우 발아래 벽돌 바닥만 비출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외의 모든 빛은 어둠에 묻혀 버렸다.

희야가 갑자기 비틀거리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 한 점 불빛이 꺼져 버렸고 세 사람은 완전히 어둠에 휩싸였다.

“희야. 칠칠맞기는!”

우연이 얼른 몇 걸음 달려와 희야의 영건(領巾)을 꽉 붙잡았다.

“괜찮아.”

희야는 쭈그리고 앉은 채 조심스럽게 주위를 더듬어 보았다.

“돌에 걸려서 발을 삐끗했어.”

“망했어. 빨리 초 찾아, 초!”

우연이 말했다.

“못 찾아. 어디 굴러간 거 같아.”

“아얏!”

어둠 속에서 여귀진이 비명을 질렀다.

“우연. 나는 왜 꼬집어?”

“누가 손 여기다 두래? 그리고 내가 꼬집으려던 사람은 네가 아니라 희야거든!”

우연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발을 삐끗했다는 애가 내 다리는 왜 더듬냐!”

어둠 속에서 또다시 짝, 하고 시원하게 따귀를 후려치는 소리가 났다. 우연은 씩씩대며 일어섰다.

“이번에 맞은 사람은 희야 맞지?”

“그렇다고 쳐.”

여귀진은 한숨을 내쉬며 후끈 달아오른 제 얼굴을 어루만졌다.

“다들 내 창을 잡고 함께 걸어. 절대 흩어지지 말고.”

희야가 바닥의 무언가를 걷어찬 것 같았다. 희야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도 매우 침착했다.

“사실 이곳은 별로 넓지 않아. 보이지 않으니 에돌아서 넓게 느껴질 뿐이야. 우연이 중간으로 와. 아소륵이 맨 뒤로 오고. 내가 맨 앞에서 갈게.”

“이리 오랬다가 저리 가랬다가…….”

우연은 투덜대면서도 무서워서 얌전히 창대를 잡고 중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바꾸면서 희야가 여귀진의 손목을 한 번 꽉 쥐었다. 여귀진은 아무 말 없이 한 손으로 창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가슴 앞의 청사를 꼭 붙잡았다. 극한의 공포가 여귀진의 마음을 옥죄어왔다. 식은땀이 흥건한 손바닥으로 앞에 있는 우연의 어깨를 살며시 눌러 잡았다. 소녀의 따스한 체온에 여귀진은 손이 따뜻해지면서 조금 진정이 되었다.

“우연. 무서워하지 마.”

여귀진이 조용히 말했다.

화를 내려던 우연은 하려던 말을 다시 꿀꺽 삼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금, 여귀진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드물게 진중함이 어린 목소리에 우연도 긴장이 살짝 풀어졌다.

또 얼마나 오래 걸었을까.

“여전히 길이 없어! 우리 사람 죽은 곳에서 이제 그만 좀 돌자!”

우연은 인내심을 잃었다.

“‘안’을 풀 방법은 없어?”

여귀진의 물음에 우연은 의기소침해졌다.

“그게 뭔지만 알고 사용할 줄은 몰라. 푸는 방법은 더더욱 모르고.”

“우연. 조용히 해봐.”

희야의 목소리가 앞쪽에서 들려왔다.

“길을 찾았어. 한쪽 벽이 만져져.”

“단경왕… 왕태비의 능(陵).”

여귀진이 다가가 돌벽을 더듬어 보더니 나직하게 외쳤다.

“알았어. 여기가 어딘지 알았어!”

“어딘데?”

희야와 우연이 동시에 물었다.

“여기 글자가 있어. 단경은 국주의 친할머니 시호야. 애제 6년에 돌아가셨는데 백리 국주가 직접 능을 지어서 왕태비라 불리지. 로 선생님 말씀으로는 조릉 구조에서 단경왕태비의 무덤은 지하 궁전의 중심에서 약간 동쪽에 있다고 했어. 여기는 단경왕태비릉의 곁에 딸린 전각일 거야. 우리 정말 조릉 안에 있었어!”

우연이 세게 콧방귀를 뀌었다.

“아소륵! 너 머리가 어떻게 됐지! 이 늙은 여자가 당공의 친할머니인지 양할머니인지 내가 알게 뭐야! 난 당장 나가야겠어! 유은한테 속아서 들어왔는데 그 자식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초도 없잖아. 난 늙은 여자 무덤에는 관심 없단 말이야! 유은이 우리를 이 여자 옆에 순장시키려고 끌어들인 건 아니겠지?”

“걔가 단경왕태비랑 그렇게 친하겠어?”

희야가 말했다.

“측전(側殿)에 도착했으니 출구가 멀지 않았을 거야. 이 벽을 따라 앞으로 가다 보면 신도가 나올 테고 신도를 따라 쭉 가다 보면 우리가 들어온 곳이 나올 거야.”

여귀진이 참을성 있게 우연에게 설명해 주었다.

“대금(大禁)? 아소륵, 이게 무슨 뜻이야?”

희야도 벽을 더듬어 보고 물었다.

“친족이 아니면 진입을 금기한다는 소리야…….”

“너희 둘 다 돌았어? 나는 당장 신도를 찾아서 나갈 거야. 죽은 할망구의 금기고 나발이고 난 몰라!”

화가 치민 우연이 발을 들어 돌벽을 세게 걷어찼다.

순간, 환한 빛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눈을 가렸다. 귓가에는 삐그덕 낮은 울림만이 들렸다. 옅은 기름 냄새가 주위로 자욱하게 퍼졌다. 희야는 창으로 우연의 앞을 가로막았고 여귀진은 가슴에 걸어두었던 청사를 꽉 움켜쥐었다.

이어 적막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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