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91화 (9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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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검 (16)

25명의 소형 봉갑진열의 방진 두 개가 조용히 연무장 한가운데 우뚝 섰고 50명의 보궁수가 진 후방에 반 무릎을 꿇고 일직선으로 줄지어 앉았다. 두 방진 정중앙에 순백의 군마가 서 있었다. 말에 탄 유은은 면갑(面甲)으로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었다. 그는 금색 국화가 그려진 커다란 깃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만족의 사나운 말이 연무장 한쪽에서 발굽으로 바닥을 긁어댔다. 기마병들은 힘껏 군마를 단속하며 연습용 목도를 들었다. 그들은 달리 진을 치지 않고 간단히 일직선으로 섰다. 중앙에서 철안이 백색 표운기를 높이 들어 올렸다. 흥분한 철엽은 막 기름칠을 한 각궁을 잡아당겼다. 조용한 사람은 희야뿐이었다. 만족 기마병은 털이 밖으로 드러난 가죽 갑옷에 익숙했다. 그러나 희야가 입은 것은 금군의 검은색 무소 가죽 갑옷이었다.

“한쪽은 금국화 깃발을 내걸었고 한쪽은 표운기를 내걸었군. 양쪽 다 가슴에 노기가 있어 보이네. 방 도위, 우리 어느 쪽이 이길지 내기나 한판 할까?”

식연이 담뱃대를 물고서 손으로 금수 한 닢을 빙글빙글 돌렸다.

“아유, 장군!”

방산이 울상을 했다.

“어느 쪽이 이기든 저한테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한쪽은 금장국에서 온 귀빈이고 다른 한쪽은 국주께서 총애하시는 유격장군이니 어느 쪽이든 골치 아프기로는 비할 수가 없지요. 이 일이 이리 고역일 줄 알았다면 차라리 금군에서 매일 훈련받는 고생을 감수하고 말았을 겁니다.”

식연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고생 속에서 낙을 찾아야지. 내기도 하나의 즐거움일세.”

방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감히 장군 앞에서 주제넘게 용병술(用兵術)과 포진술(布陣術)을 논할 자가 우리 하당에 어디 있습니까? 장군께서 누가 이기겠다 하면 그쪽이 이길 것을, 내기할 게 뭐 있나요?”

잠자코 있던 식연의 입가에 한 가닥 웃음기가 어렸다.

“나도 정말 모르겠다니까 그러네. 그러니 내기가 재미있지 않겠나.”

“장군도 모르신다고요?”

방산은 다소 의아했다.

“누가 알겠나?”

식연은 금수를 하늘 높이 던졌다.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 아래로 금수가 한 줄기 금빛 광선을 늘어뜨렸다. 식연은 느른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서출 잡종’이란 말 때문에 살인을 할 사람은 하나가 아닐 것이네…….”

모두의 시선이 식연이 던진 금수를 쫓았다. 금수가 바닥에 떨어지며 잔 흙먼지가 일었다.

101필의 군마가 동시에 앞발을 높이 들어 올리며 울부짖었다. 바위처럼 고요한 철안이 한 손으로 표운기를 높이 들어 올리고서 우렁차게 포효했다. 철안의 말발굽이 땅에 내려앉았다. 희야의 군마는 어느새 말 몸통 하나의 거리만큼 돌진해 나가 있었다. 먼지와 연기가 말발굽 아래에서 소용돌이쳤다. 모든 만족 기마병이 희야의 군마 뒤를 따르며 공세를 시작했다.

“만족 기마병이 확실히 날래고 용맹하군!”

식연이 감탄하며 칭찬했다.

검은 옷의 봉갑진 보병들은 흐르지 않는 물처럼 아직 고요했다. 전력으로 돌진하는 기마병을 마주한 채 진 후방의 보병 50명만 느린 걸음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화살촉을 제거한 화살을 걸고 활시위를 당겼다. 유은은 손에 창날이 없는 오동나무 장대를 들었다. 장대를 비스듬히 들어 올린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전방을 가리켰다.

기마병은 눈 깜짝할 새에 봉갑진 앞 50보 거리까지 들이닥쳤다. 그러나 봉갑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돌격!”

철안이 다시 포효하며 군기(軍旗)를 높이 들어 올렸다.

만족 준마의 괴력은 그때야 진정으로 폭발했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 이미 최고 속도를 낸 것 같던 군마가 다시금 힘을 올렸다. 앞장선 기마병은 같은 오동나무 장대를 평평하게 들고서 봉갑진 보병을 자극했다.

“활을 쏴!”

철엽은 벌써 참기 어려울 만큼 손이 근질근질했다.

수십 명의 기마병이 철엽을 따라 일제히 활을 쏘았다. 영민하고 용맹하며 활쏘기에 능한 만족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화살촉이 없는 우전이 위에서부터 거대한 검은 방패를 스치고 지나가 봉갑진 중앙의 보병을 정확히 맞추었다. 화살은 가죽 갑옷에 맞고 튕겨져 나갔지만 보병들은 잇달아 쓰러졌다. 철엽의 화살은 다른 길로 향했다. 활을 끝까지 당긴 힘이 매우 강해 화살이 직선으로 곧게 뻗어 나갔다. 거대한 방패 틈새로 쏘아져 들어간 화살은 방패수의 어깨에 명중했다.

방패수는 검은 방패를 내려놓고 재빨리 한쪽으로 피했다. 순간 검은 방패 뒤편의 보병들을 정확히 보게 된 철안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군마를 붙잡아 세우려 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유은이 장대를 전력으로 휘둘러 떨구었다.

그러자 봉갑진 전체가 갑자기 흩어지더니 후방의 보궁수들도 장궁을 버리고 새로운 진형에 합세했다. 병사들은 투창도 전투 도끼도 방패도 들지 않았다. 삽시간에 모두가 2장 길이의 장대로 바꿔 들었다. 100자루에 가까운 장대가 정면으로 내리쳐지는 순간 철안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은은 정말 순식간에 진형을 쌍봉어린진으로 바꾸었다. 보병들은 겹겹이 교차하더니 5인 1조로 서로 공격과 수비를 하며 장병기(長兵器)의 장점을 활용해 기마병이 돌파할 수 없는 장벽을 만들었다.

철안은 제 눈으로 보고서야 그 당시 철부도가 동륙의 진형 앞에 가로막힌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예측할 수 없는 진의 변화가 승리의 관건이었다. 철안은 목도를 버리고 두 팔로 장대를 막아서며 억지로 버텨냈다. 오동나무 장대는 원래도 약한지라 곧바로 부러졌다. 그러나 철로 만든 팔목 보호대를 한두 팔도 그 충격에 욱신거렸다. 통증에 철안의 머리는 더없이 또렷해졌다. 유은은 가장 간단한 장병기로 기마병에 대항했다. 만족 기마병은 이미 대비책이 없는 근접전 상황에 빠져 있었다.

다수의 만족 무사는 철안처럼 결단력이 있지 않았다. 그들이 장대로 막으려 시도하자 더 많은 장대가 아래에서 말 다리를 찔렀다. 만족 준마들은 고통에 울부짖으며 똑바로 몸을 일으켜 세웠고 기마병들은 말 등에서 나동그라졌다. 한계에 다른 군마가 장벽을 이루었고 뒤편의 기마병들은 자신의 동료를 밟을까 봐 걱정하면서 어쩔 수 없이 옆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유은이 말한 것처럼 기마병의 돌격 대형은 갈라지고 말았다.

땅에 떨어진 수십 명의 만족 기마병은 벌떼같이 몰려든 하당 보병들에 포위되었다. 얼마나 많은 장대가 정면으로 내리쳐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만족 무사들은 허리춤의 목도를 뽑아 들고 서로 등을 맞댄 채로 사방에서 떨어지는 장대를 막았다. 하당 보병들은 발길질로 먼지를 일으켰고 사람 키만큼 높이 일어난 먼지 속에서 만족 무사들은 주변 상황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마구잡이로 목도를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철엽이 막 머리 위로 내려치는 장대 하나를 치워내자 다른 장대가 옆구리를 쑤시고 들어왔다. 사납고도 강했다. 몸 절반이 마비된 느낌이었다. 극심한 통증은 진짜 창날에 찔렸을 때 못지않았다. 철엽은 고개를 돌려 주위 동료를 살폈다. 전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형 철안은 단철로 만든 기병 갑옷에 의지해 부상을 입고 쓰러진 동료 앞을 막아섰다. 너댓 자루의 장대가 동시에 철안을 찔렀다. 철안의 허리가 반으로 구부러졌고 철갑의 비늘도 뒤집어졌다.

“우리가 속았어!”

철엽은 제 형에게로 달려가 장대를 막았다.

“모두 일어나!”

철안이 고함을 질렀다.

“아직 우린 지지 않았어!”

철안은 수중의 목도만으로 포위를 뚫으려는 것은 헛수고임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상을 입은 만족 무사들은 한데 몰릴 것이고 더는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악독하게 몸을 내리치는 장대를 참아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에 철안은 투지를 다졌다. 철안은 스스로에게 말했다.

‘저 녀석이 넘어갔어!’

맨 앞에 달려 나갔던 무사들 중에서 희야만이 인파를 뚫고 넘어갔다. 땅에 떨어지던 순간 철안은 말 등에 탄 희야의 불가사의한 움직임을 보았다. 희야는 손의 장대를 빙그르르 회전시켜 자신을 향해 내질러진 장대 몇 자루를 한데 뒤얽더니 전부 겨드랑이 아래에 끼웠다. 그리고 군마의 힘을 빌려 겨드랑이에 끼운 장대를 하당 보병들을 손에서 떼어냈다. 희야는 빼앗은 장대를 두 손으로 내던졌다. 근거리에서 던진 장대는 상노(床弩)1)로 쏜 철령전(鐵翎箭)2)처럼 웅장하고 힘이 강력했다. 장대에 맞은 보병들은 그 즉시 쓰러져 전투력을 상실했다.

검은색 군마는 날카로운 이빨처럼 하당 보병진 틈에 끼어 들어가더니 곧 철안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바로 여귀진이 말한 진의 가운데를 곧장 뚫고 들어가는 그 전술이었다. 진정으로 중진을 뚫고 들어간 사람은 희야 하나뿐이었지만.

“과연… 과연 장군의 제자입니다. 정말 용맹하네요!”

방산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돌격하는 희야의 기세에 감동했다. 최고로 빠른 말의 속도와 일말의 거리낌도 없는 공격 기세는 희야가 인파를 뚫을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었다. 희야의 군마가 최전방의 보병 전선을 뛰어넘었을 때 나머지 보병들은 돌아서 쫓아갈 여유가 없었다. 희야의 장대가 명령을 내리는 유은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가만히 선 채로는 희야의 공격에 대응할 수 없었던 유은은 어쩔 수 없이 말을 몰아 내달리기 시작했다. 군마 두 필은 혼전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 거대한 원을 그리며 질주했다.

“내가 가르친 게 아니네.”

식연은 멀리 두 사람의 교전을 응시했다.

희야는 자신의 등에서 1척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번득이는 장대가 또렷이 느껴졌다.

설핏 고개를 틀어 등 뒤를 보았다. 말에서 떨어진 만족 무사들이 먼지 속에 포위되어 있었다.

돌연 가슴이 바짝 긴장되었다. 희야는 직감적으로 적시에 몸을 숙였고 장대가 등 복판의 가죽 갑옷을 스치며 지나갔다. 피부가 까진 것처럼 아리고 얼얼한 고통이 느껴졌다. 방금 전 찌르기의 힘은 희야에게 너무나도 익숙했다. 금군 내에서 이런 팔심을 가진 이는 유은이 유일했다. 희야는 고개를 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유은의 군마는 국주가 하사한 사자마, 순수 혈통의 만족 준마였다. 희야는 군마를 채찍질해 전력으로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등 뒤의 말발굽 소리가 별안간 빨라졌다. 희야는 무심결에 고개를 숙였다. 장대가 희야의 머리카락 위쪽을 쓸며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희야는 스승에게 배운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야수와도 같은 직감적인 반응은 모두 익천첨과의 반복된 연습에서 나온 것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동작, 같은 창술을 백 번도 넘게 반복했다.

사자마는 어느새 희야의 흑마를 몸통 반쯤 앞서나갔다. 몸을 반쯤 돌린 유은이 장대를 정면으로 내리쳤다. 유은은 공격과 거의 동시에 가슴을 파고드는 세찬 바람을 느꼈다.

“좋았어!”

유은이 소리치며 몸을 반쯤 돌렸다. 공격 기세는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장대가 처절한 소리를 내며 정확하고 힘차게 희야의 어깨를 내리쳤다. 희야는 고통에 입이 쩍 벌어졌지만 찍소리도 내지 않았다. 희야가 내지른 공격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장대의 머리 부분이 유은의 호심경에 부딪쳤다. 잠깐의 멈칫했던 장대는 유은의 옆구리로 뚫고 나갔다. 약속이나 한 듯 상대의 장대를 겨드랑이에 끼워 잡은 두 사람은 동시에 자신의 무기를 뽑아내려 했다.

말 두 필이 나란히 달렸다. 힘이 막상막하인 두 사람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섰다.

“너!”

유은은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가슴도 연신 들썩였다.

“네가 졌어!”

희야가 크게 외쳤다. 희야는 상대의 체력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유은은 줄곧 동궁 무사 중에서 최강자였지만 오래 버틸 체력은 못 되었다. 녀석의 힘이 너무 강했기에 대련을 하면 대체로 1회합 만에 승패가 갈렸고 그 바람에 애당초 그의 체력이 떨어질 때까지 가지 못했을 뿐이었다.

“죽어버려!”

유은의 얼굴에 돌연 한 줄기 흉악함이 어렸다.

눈앞에 쇳빛이 번쩍했다. 유은의 철신발에서 쌍철치(雙鐵齒)를 본 희야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유은은 말안장을 떼버리고 매섭게 한 발로 희야의 종아리를 차려 했다. 희야는 다리를 틀어 재빨리 피했다. 예리한 철치가 흑마의 복부를 찔렀다. 질주하던 흑마가 길게 울부짖으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말이 속도를 내자 말 복부에 박힌 철치가 가로로 죽 그어졌다. 깊고 긴 상처를 남긴 철치는 말 다리에 가 박혔다. 흑마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네 다리에 힘이 풀린 말은 균형을 잃고 먼지 속에 쓰러졌다. 그 순간 희야는 말안장에서 뛰어오르며 360도 회전해 1장(丈) 거리만큼 뛰쳐나와 달려오던 타력(惰力)을 간신히 피했다.

멀리 성루 위의 식연이 세게 난간을 치며 아래쪽에 소리쳤다.

“어서 내 말을 끌고 와!”

여귀진은 난간에 달라붙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유은은 장대 두 자루를 손에 쥐고서 천천히 말을 몰아 희야에게 접근해 갔다. 희야는 반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고개를 쳐들고 유은을 보았다. 최후의 고요함 속, 가장 흉맹한 공격이 숨어 있는 법. 여귀진은 그 이치를 알고 있었다. 늑대 떼가 물을 마시는 사슴 떼를 덮치기 전 쌍방은 종종 고요함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곤 했다. 여귀진은 어느새 주위의 모든 것을 잊었다. 자신이 딱딱한 나무 난간을 우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움켜쥐고 있다는 사실도 전혀 깨닫지 못했다.

“내가 말했지. 동궁에서 반년도 못 버틸 거라고!”

유은은 숨을 몰아쉬며 웃었다.

“개새끼, 지금 후회해 봐야 늦었어!”

사자마가 두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희야의 머리를 밟으려 했다. 사발 크기만 한 말발굽에는 무쇠 편자가 달려 있어 흉악한 늑대의 두개골도 부술 수 있었다.

“몹쓸 놈!”

식연은 깨달았다. 자신이 이미 늦었다는 것을.

* * *

1) 여러 개의 화살이나 돌을 연달아 쏠 수 있는 커다란 활인 노를 더 크게 만든 형태로, 발사대나 수레 등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원거리 공격 무기.

2) 철로 만든 날개(철령)를 화살 중간 부분에 부착한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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