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주표묘록-88화 (88/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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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검 (13)

타닥타닥 폭죽 소리가 긴 거리의 끄트머리에서 들려왔다. 잠시 환호성과 웃음소리가 가라앉았다. 공기 중에는 폭발하면서 탄 죽절(竹節) 냄새가 자욱했지만 고약한 정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몹시 추운 날씨에 편안할 정도의 온기가 느껴졌다. 거리에는 인영이 드문드문했다. 대갓집에서 자기 집 앞에 뿌린 새해맞이 종이꽃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렸다. 이따금 화려한 복장의 남녀가 마차 위에서 서로 끌어안고 있기도 했다. 마차 앞에는 등잔불이 켜져 있고 구리 방울이 달그랑거렸다.

춘절 밤이었다. 평소 한밤중에 술을 퍼마시던 부호들도 집에 들어앉아 불을 쬐고 고기를 구우며 문묘의 새해 종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렸다. 어엿한 주점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고 대문에 희화(喜花)1)를 붙였다. 반면 이 작은 주점 안은 매우 시끌벅적했다. 대문에는 ‘탕고정(燙沽亭)’이라는 세 글자가 쓰인 단순한 목패만 하나 걸려 있었다. 가장 좋은 백주가 한 단지에 은화 한 닢밖에 하지 않는 작은 가게였다. 하지만 술을 마시러 온 손님들은 개의치 않았다. 단골들도 모두 집을 떠나 남회에 와서 자그마하게 장사를 하거나 기술로 먹고사는 타향민들로 주머니에 여윳돈이 조금 있긴 하지만 많지는 않았다. 이들은 탁자와 의자 모두 백목(白木) 원색인 단순하고 깔끔한 이 주점을 좋아했다. 이들은 춘절에도 남회에 머물렀다. 대부분 돈을 많이 벌지 못한 까닭에 가족을 보러 고향에 돌아갈 낯이 없는 이들이 마침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가운데 가장 커다란 탁자에 앉은 몇몇 상인은 그나마 조금 부유한 모양인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더니 주점 안의 모두에게 백주 한 단지씩 시켜 주었다. 주점은 순간 떠들썩해졌다. 피혁공인 노인 하나가 가지고 다니던 공후(箜篌)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비단을 파는 젊은 소녀들은 지니고 다니던 비단을 꺼내 커다란 붉은색 희화를 만들어 문 위에 걸었다. 처자식 없이 혈혈단신인 주인은 시끌벅적해진 참에 가게 가운데에 커다란 솥을 걸고 양고기와 어묵을 끓였다. 향긋한 매운 내가 모두의 취기를 돋웠다. 상인들은 머나먼 란주의 팔송에서 왔는지 반쯤 취하자 옷섶을 풀어헤친 채 뱃가죽을 두드리며 알아듣기 어려운 진북 가요를 불렀다. 주점은 더욱 왁자지껄해졌다.

검은 옷을 입은 손님 하나가 줄곧 창가의 작은 탁자 옆에 앉아 웃으며 흥미진진하게 그 모습을 구경했다. 들어올 때 주인장에게 친우를 기다린다고 말했지만 맞은편 자리는 내내 비어 있었다.

입구의 솜을 넣어 만든 휘장이 움직이고 그윽한 향기를 머금은 찬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현장의 분위기가 잠시 가라앉았다. 궁복을 입고 머리를 높이 틀어 올려 쪽을 진 부티 나는 여인을 모두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여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옷을 입은 취객의 맞은편에 앉았다. 더 쳐다보기가 머쓱해진 사람들은 다시 농담을 던지고 공후를 연주하면서 계속 왁시글거렸다.

“오랜만이구려.”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윈 것 같소.”

“장군께서도요.”

“섣달그믐에 갑자기 그대를 불러낸 것도 큰 결례인데 이리 작은 주점에서밖에 만날 수가 없었구려. 그래도 이곳의 백주는 아주 잘 빚어졌으니 맛볼 만할 거요.”

여인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압니다. 장군께서는 작은 가게에서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하시지요. 섣달그믐이라도 별다를 것 없습니다. 남회에 집이 있는 다수의 여관(女官)들이 잠시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국주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요. 저 혼자 궁에 남은 터라 달리 할 일도 없었습니다.”

“유은은 괜찮소?”

여인은 잠시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그다지 제 아버지를 닮지는 않았습니다.”

여인은 앞에 놓인 술잔을 들었다. 그러나 식연이 제지했다.

“술이 차오. 바꿔주겠소.”

식연이 여인의 술잔을 가져가 헹궈내고는 탁자의 사기그릇에 식은 술을 따라냈다. 그리고 뜨거운 물에 데우고 있던 주석 술단지를 꺼내 새로 술을 따라주었다.

가게는 작았지만 흰색 사기잔은 무척 컸다. 정방형의 술잔이 여인의 가냘픈 손바닥에 놓였다.

여인은 고개를 숙이고 술 향기를 맡을 뿐 마시지는 않았다. 열기에 증발한 술 향기가 소리 없이 자욱하게 퍼지며 여인의 몸에서 나는 꽃향기와 뒤섞였다. 약간 촉촉한 기운이 도는 것이 자림추 꽃밭에 연한 술 비가 내린 듯했다.

여전히 주변 탁자에서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들려왔지만 소리는 두터운 장막 한 겹에 차단된 것 같았다.

“유풍당의 꽃이 다 졌소. 내 가을 내내 보살폈건만.”

“자림추 화분 몇 개도 구들방에 들여놓았지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더군요.”

여인이 작게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살짝 어색할 정도로 조용했다.

한참 뒤 식연이 마침내 웃으며 말을 꺼냈다.

“딱히 할 말도 없으니, 내 그대를 찾은 이유나 말하겠소.”

“네.”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 심야에 또 일곱 명이 성 남쪽에서 살해되었는데 모두 나무에 목이 매달려 죽었소. 그대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

식연이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검을 원하더군요.”

“명창현후 양추송은 지금 순국의 실질적 주인이오. 그의 성격상 원하는 것이 있다면 분명 무슨 짓이든 다 할 거요. 어쨌든 하당의 국경 내인지라 양추송도 함부로 날뛰지는 못할 터인데 너무 긴장하는 것 아니오? 양추송은 아직 그 검의 근처에도 오지 못했소.”

“제가 걱정하는 바는 양추송이 아니라 그 검에 대한 소식이 외부에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장군과 저만 알던 그때 장군을 죽이고 이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갈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가 다시 그 검을 뽑는 일은 천년 후로 미뤄두려 했지요.”

여인은 고개를 살짝 들어 식연을 쳐다보았다.

식연은 여인과 시선을 맞추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여인의 아름다운 두 눈은 살기를 띠지 않았다. 맑디맑은 눈 속에는 물빛이 한 겹 엉겨 있는 듯했다.

“감출 수 없는 것은 어떻게도 감출 수 없소. 그 검의 이름이 하락 문자로 무엇인지 아시오? 서절이근두랍공(西切爾根杜拉貢), 지옥의 쇄혼룡의 검이오. 혼을 봉인하는 비술로 단조된 무기요.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의 힘으로 같은 용광로의 쇳물에 주조된 다른 무기와 공명할 수 있소.”

식연은 허리에 찬 특이한 형태의 고검을 어루만졌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하루라도 더 그 검을 지켜내는 것뿐입니다. 저도 제가 평생 이 비밀을 지킬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여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장군을 죽였을지도 모르지요.”

식연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그대는 이미 순국 척후를 두 부대나 죽였소. 양추송이 비록 무사는 아니지만 나약한 사람도 아니오. 새로운 풍호 기병을 계속 보낼 거요. 다시 말하지만 저들이 그대를 찾지 않는 한 먼저 건드리지 마시오. 명창현후든, 국주든 언젠가는 격노할 것이고 그때는 누구도 그대를 도와줄 수 없소.”

여인은 잠시 침묵했다.

“감사합니다, 장군. 알겠습니다.”

“한 가지 더 있소.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있었소. 푸른 하늘의 매가 이미 남회에 도착했다오. 무엇 때문에 왔을지는 그대도 잘 알 거라 생각하오. 나는 그대를 묵과했지만 그분은 그러지 않을 거요. 그 검은 어찌 되었든 천구의 성물이라 반드시 가져가려 할 거요.”

“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까?”

“아직 안 했소. 그대에게 한 약속은 지킬 거요.”

식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다만 곧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을까 걱정이오.”

“괜찮습니다. 그들이 제 모든 것을 가져간다면 저도 남회에 머물 필요가 없지요. 장군도 아시겠지만 저 같은 사람은 원래 떠도는 넋처럼 유랑해야 하는데 어쩌다 실수로 이 새장에 들어온 것이니까요.”

“새장?”

“네…. 사실 떠나고 싶어진 지는 무척 오래되었습니다. 북쪽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여인은 두 손으로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여 투명한 액체를 보았다. 따뜻한 술에 손이 데워졌다. 여인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리따운 얼굴에 소녀 같은 표정이 어렸다. 연노랑 빛 영춘화처럼 부드럽고 그윽했다. 아주 많은 일들이 한순간 가슴 속에서 북받쳐 오르는 모양이었다.

식연은 문득 여인의 생각이 궁금해졌지만 물을 수 없었다.

“장군께서 이 작은 주점의 술을 좋아할 만하군요. 이런 백주가 데운 후에 이리도 맛이 좋을 줄은 몰랐습니다.”

여인은 그리 말하면서 고개는 들지 않았다.

술잔의 술을 비운 여인은 얼굴이 살짝 발그레해졌다.

“한 잔 더 하겠소?”

“아뇨.”

여인이 몸을 일으켰다.

“가봐야겠습니다. 궁은 드나들기가 편치 않아서요.”

“바래다줄까요?”

“괜찮습니다.”

여인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오늘 이후로 별일이 없으면 장군과는 만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짙은 먹구름이 벌써 남회성 위로 모여들었습니다. 어느 날이고 갑자기 무너질 텐데 장군께 누를 끼칠 필요는 없겠지요.”

“보아하니 이번 섣달 그믐밤은 이곳에서 혼자 술이나 마셔야겠구려. 오래도록 보지 못해 할 말이 많으리라 생각하고 다른 일을 계획하지 않았거든.”

식연이 웃으며 잔을 들었다.

여인은 문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불빛 가득한 자량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무심하게 말했다.

“사실 남회에 온 뒤 오늘 처음으로 거리의 새해 풍경을 봅니다. 번화한 것이 참 좋네요.”

“다친 곳은 나았소? 그런 약은 그만 쓰시오.”

“그것은 저주이지요. 평생을 갈.”

여인이 치맛자락을 들고 문을 나섰다.

휘장이 떨어지자 잡담을 나누고, 노래를 부르고, 공후를 연주하던 사람들이 우르르 문간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목을 길게 빼고 휘장 틈새로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도리어 식연이 한쪽에 가로막힌 형국이었다.

“끝내주는 미인이던데. 왜 안 붙잡으셨어요?”

비단을 파는 소녀가 잔뜩 술에 취한 얼굴로 식연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한밤중에 보러 온 걸 보면 관심 있다는 소리잖아요.”

“맞소, 맞소.”

나이 든 피혁공이 다가와 술 냄새를 풍기며 말했다. 그는 염소수염을 파르르 떨며 말을 이었다.

“봄날 밤의 일각은… 천… 천…….”

식연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천금과 같다2)!”

각석(刻石)하는 사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호색한 같으니!”

식연은 돌연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돌려 피혁공의 손에서 공후를 가져왔다. 그는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춤에서 담뱃대를 꺼냈다. 식연은 현악기 악사의 의자에 앉아 한쪽 다리를 올려세우고 무릎에 공후를 얹었다. 공후 소리는 순박했다. 담뱃대로 공후 줄을 퉁기자 두근두근 기분이 고양되는 느낌이 들었다. 한밤중에 별안간 터져 나오는 악기 소리에 탁자 위의 촛불마저도 압도되는 듯했다.

식연이 연주하는 곡은 완주 지방의 속요(俗謠)인 <원자화(圓仔花)>로 남회성의 모두가 부를 줄 아는 노래였다. 사람들은 현악기 소리에 빨려들었다. 문인 차림의 식연은 공후를 연주하는 순간 시골 주점의 술손님처럼 변했다. 신수가 훤하고 헌걸차며 미간 사이로는 자유분방한 느낌이 넘쳐흘렀다.

식연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주변 탁자의 여인들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식연은 한층 더 크게 웃었다. 그가 담뱃대를 튕기는 속도는 악사의 손놀림보다 조금 더 빨랐다. 셀 수 없이 많은 동전이 돌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시골 마을에 갑작스레 쏟아지는 소나기 같기도 했다. 사람들은 문득 자신이 지금 하당국의 도성이 아닌 어느 시골 사당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춘제(春祭)를 마친 뒤 남녀가 뒤섞인 채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바싹 기대앉아 있고 세상에는 서서히 술 향기가 퍼지는 듯한 분위기였다.

“저기, 저기를 보시오!”

피혁공이 흥분해 창밖을 가리켰다.

약한 빛으로 뒤덮여 있던 창호지 위로 한 사람의 인영이 더해졌다. 그녀는 조용히 그곳에 서 있었다. 창호지에 바짝 붙은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멀리,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기도 했다. 머리 위의 비녀가 격앙되는 악기 소리 속에서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갈채를 보냈다.

식연은 쳐다보지 않고 홀로 악기를 연주했다.

그가 별안간 부드러운 목소리로 길게 읊조렸다.

“묘당은 높고 화려한데 들려오는 제악 소리는 낡았구나

초는 다 타들어 가고 어렴풋한 노랫소리만 들리나니”

악기 소리가 돌연 변했다. 초야에서 갑자기 환한 등불이 일렁이는 궁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만첩(萬疊)의 금꽃이 한 겹, 한 겹 활짝 피어나듯 은은하던 소리는 차츰 화려해졌다.

“백 년 남짓한 인생, 그 누가 의미 있는 죽음을 맞으려나

차라리 한잔 술에 취하리, 달빛 내린 아름다운 이곳에서

검을 뽑는 영웅은 보지 못하였으나, 우렁찬 철적 소리와 용의 포효를 들었노라

연지에 붉게 물든 눈물은 보지 못하였으나, 용의 선혈로 눈썹을 붉게 그리리”

식연의 노랫소리가 주점 안에 울려 퍼졌다. 연주 소리도 빨라졌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자신감이자 포부, 자유로움이었다. 15년 전 황성 태청궁 앞을 지키던 소년 금오위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인적이 드문 깊은 밤, 독주를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던, 칼을 뽑아 기둥을 내리치고 친우들과 고주망태가 되도록 취했던 그 시절의 그. 당시 분명 붉은 옷을 입은 가희(歌姬)들이 안하무인인 소년들을 따라다니며 손뼉을 쳤으리라. 눈가 가득 연정과 집착을 드러내면서.

악기 소리는 어느덧 절정에 다다랐다. 펑! 모든 소리가 돌연 사그라들고 불완전한 여음만이 남았다. 식연은 일순 멍해져 고개를 숙였다. 공후 현이 한 번에 세 줄이나 끊어졌고 담뱃대만 그 자리에 덩그러니 드리워져 있었다.

“현이 끊어졌군…. 날씨가 정말 건조하구나. 언제나 비가 내릴는지.”

식연은 공후를 내려놓고 멍하니 창살 너머 밤경치를 바라보았다.

“다음번 비가 내릴 때는 누가 내 연주를 들어줄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창문의 인영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 * *

1) 전지공예.

2) 春宵一刻値千金(춘소일각치천금). 동파 소식(蘇軾)의 시 <춘소(春宵)>의 한 구절로 봄날의 아름다움을 상찬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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