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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창 (17)
뜨듯한 무언가가 우연의 등에 뚝뚝 흘렀다. 우연은 그것이 뭔지 알았지만 만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도 피가 나!”
“괜… 괜찮아.”
희야가 얼굴을 슥 더듬자 손에 피가 잔뜩 묻어났다.
“찰과상이야. 무뢰한들이 따라오기 전에 빨리 가자.”
소년들은 목도는 실제로 희야에게 중상을 입히지 못했다. 철엽이 허리에 남긴 상처야말로 최악의 상처였다. 상처가 벌어져 계속 피가 흘렀다. 희야는 출혈로 인해 눈앞이 어릿해지고 온몸에 한기가 들어 우연을 꼭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희야는 말을 잘 타지 못했다. 격렬한 흔들림에 영혼이 머리 위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희야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우연을 더욱 꼭 끌어안을 뿐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희야는 꿈속에서 여전히 그 말 위에 있었다. 그러나 손을 뻗어 끌어안으려 해도 품속은 텅 비어 있었다.
“앗!”
우연이 놀라 소리쳤다.
갑자기 말이 히이잉 울며 앞발을 곧게 들어 올렸다. 희야는 우연을 안은 채 말 위에서 떨어졌다. 땅에 떨어지면서 느껴진 통증에 희야는 조금 정신이 들었다. 몸을 쳐든 희야는 벼랑 가장자리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준마의 본능 덕분에 두 사람은 악운을 피할 수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나도 모르지!”
우연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난 말도 몰 줄 모른단 말이야!”
“성 밖으로 나왔어! 여기는 이운산 산길이야. 우린 산길을 따라 계속 올라온 거고.”
희야가 창을 움켜쥐며 말했다.
“이제 알겠어. 여긴 막다른 길이야. 쟤들이 우리가 이 길로 도망치게 몰아붙인 거야. 이 말은 군마라 알아서 도망칠 수 있거든.”
“다른 길은 없어?”
벌써 빠르게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우연의 귀에 들려왔다. 희야가 짐작한 대로 동궁 금위군의 말이 두 사람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던 것이다.
“없어.”
희야가 고개를 저었다. 한쪽 발로 낭떠러지 가장자리를 디뎌 보았다. 부서진 돌멩이가 희야의 발에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한참, 아주 한참이 지나고서야 바위 위로 돌멩이가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둥근 보름달이 낭떠러지 위를 비추었다. 주위에는 숲도 없었다. 두 사람은 숨을 곳도, 물러날 곳도 없었다.
기병대가 질풍처럼 밀려왔다. 말타기의 명수인 소년들이 넓게 흩어져 쫓아왔다. 유은의 사자마가 맨 뒤에 있었다. 그는 음침한 얼굴을 하고서 손가락으로 중검을 탁탁 튕겼다. 몇몇 소년들이 유은의 곁으로 다가왔다. 몇몇은 고개를 숙이고 숙덕댔다. 나머지 아이들은 얼굴에 사냥감을 구경하는 듯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우연은 주체할 수 없이 몸이 덜덜 떨렸다.
“우리를 죽이지는 않겠지?”
희야가 고개를 저었다.
“널 죽이지는 않을 거야. 나는 모르겠지만.”
희야는 우연을 밀며 말했다.
“나 신경 쓰지 마. 난… 안 무서워.”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우연이 소리를 질렀다.
희야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그저 힘껏 우연을 손을 잡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숙덕대던 아이들이 흩어졌다. 전체 기병대가 소리 없이 압박해 왔다. 낮에 볼 때는 애티가 나던 아이들의 얼굴은 지금 유난히도 음산해 보였다. 희야는 저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단순히 그를 모욕하고 구타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저 명문가 자제들에게 평민 아이들 한두 명을 죽이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고.
희야는 가문의 용감한 기개에 먹칠하고 싶지 않아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손가락에는 그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반지 덕에 좀 더 용기가 생긴 희야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런데 우연이 희야의 앞을 가로막았다. 우연이 불쑥 희야의 앞으로 달려 나와 두 팔을 벌리고 소년들을 막아섰다.
“뛰어내려.”
우연이 고개를 돌리고 작게 말했다.
“뭐?”
희야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우연이 목소리를 키웠고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그 소리를 들었다.
“우연. 대체 뭐라는 거야?”
희야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우연은 이미 희야를 낭떠러지가로 밀어내고 있었다.
“내 말 안 들려?”
우연은 사과를 달라고 떼쓰는 아이처럼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오늘 내 생일이잖아. 나한테 선물 준다면서? 그러니까 여기서 뛰어내려!”
희야는 우연의 장밋빛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진지함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놀란 것일 수도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자유분방함에 홀린듯한 기분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은 은은한 온정이자 뼛속 깊이 심어진 우연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었다.
희야는 뒤돌아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내렸다!
산바람이 희야의 귓가에 쌩 하고 불어왔다. 희야는 애써 고개를 쳐들고 보름달을 쳐다보았다. 그때 달빛 속에서 갑자기 인영 하나가 늘어났다.
“우연!”
희야가 고함을 질렀다.
우연이 희야를 뒤따라 낭떠러지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빠르게 추락하는 가운데 우연의 몸에서 은처럼 찬란한 빛이 번쩍였다. 우연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얼굴을 하고선 온 힘을 다해 두 손을 뻗어 희야를 꼭 붙잡았다.
눈이 휘둥그레진 소년들이 일제히 낭떠러지 가로 달려와 떨어지는 두 사람을 보았다. 으슥한 산골짜기, 여자아이가 걸친 하얀 옷이 달처럼 환하게 빛났다. 흡사 그녀의 몸에 한 겹의 빛이 둘러진 듯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 빛이 수천수만 배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갑자기 하늘과 땅에 각각 둥근 달이 하나씩 생겨났고 날카로운 칼 같은 무언가가 아래쪽 달의 광채에 구멍을 낸 것 같았다.
빛살은 놀랍게도 실제하는 것처럼 부서지더니 잿더미처럼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2장 길이에 달하는 휘황찬란한 빛의 날개였다. 완전히 펼치자 그 날개는 스스로를 구속하는 알껍데기를 있는 힘껏 깨고 나온 새끼 새처럼 세상을 향해 맑게 울었다. 모든 사람이 그 빛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들이 눈을 뜰 수 있게 되었을 때 소녀는 거대한 빛의 날개를 퍼덕이며 낭떠러지 아래에서 천천히 날아오르고 있었다. 소녀의 등쪽 옷이 다 찢어져 맑은 옥처럼 투명한 피부가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소년들은 다른 데 주의를 기울일 새가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펄럭이는 거대한 빛의 날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신의 사자가 불타는 잿더미 속에서 부활한 듯 휘황찬란했다.
“우족… 저 여자애 우족이었어!”
누군가가 한마디를 외쳤다.
“순수한 혈통의 황족 우인이군.”
유은은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의 날개만이 저런 빛을 띨 수 있지.”
우연이 날개 끝을 올리며 비스듬히 한 바퀴 돌았다. 그러고는 거대한 호선을 그리며 산골짜기 멀리 활공(滑空)했다. 희야는 두 다리를 허공에 붕 띄운 채 우연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자신이 커다란 매에게 붙잡힌 새끼 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이렇게 대지를 내려다보니 상처의 고통은 깡그리 사라지고 경이로움만 느껴졌다.
멀리까지 뻗어나가는 푸르른 산맥은 곧 뇌안산과 합류했다. 달빛 아래 아득하고도 또렷한 흰색 물줄기는 건수의 지류였다. 희야의 눈에 대지는 한 장의 거대한 지도로 변했다.
“우연. 너 정말 날 수 있구나.”
희야가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가만히 있어!”
우연도 소리쳐 대답했다.
“나도 몇 번밖에 안 날아 봤어. 오늘밤이 마침 명월률의 보름달이 뜨는 시기라 그랬지,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날개를 펼치지 못했을 거야.”
“우리 어디까지 날아가?”
“몰라. 사람을 데리고서는 멀리까지 못 날아가.”
“봉황지까지 날아가서 오색 등롱을 볼 수 있을까?”
우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년의 새카맣게 빛나는 눈동자를 보았다. 우연은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내가 커서 더 멀리 날 수 있게 되면 너 데리고 청주에 날아가 숲을 보여줄게. 용족을 찾아가려고 배를 만들 필요도 없어. 내가 날아서 데려가 줄게!”
* * *
[역사]
우연의 이름은 장미공주와 병칭된다. 역사 소설에서 우연과 섭우열왕은 장미 공주와 장미 황제 같다. 그러나 오랜 세월 뒤 대섭의 역사서에 이 여인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길거리의 이야기꾼들이 역사서의 한마디 말에다가 야사(野史) 기록에서 찾아낸 일화를 더해 터무니없는 역사 소설을 엮어냈고 돈벌이를 목적으로 널리 퍼트렸다. 우열왕의 힘없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이런 소녀가 그의 곁에 있었고 그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날았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관의 글에도 언제나 약간의 실마리는 숨겨져 있었다.
<섭하한서·항공월열전>에서는 우열왕이 진국을 정벌할 때의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적군이 성 밑까지 쳐들어오자 진국의 대장군 비안이 국주에게 투항할 것을 권유했다. 쌍방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3개월을 대치한 끝에 우열왕은 진국 군대의 본진을 크게 격파하고 비안을 참수했으며 진국공은 생포했다. 우열왕은 행군 관례상 투항하지 않은 성지의 경우 백부장 이상을 일괄적으로 처형했다. 투항하지 않은 진국공도 죽음을 면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진국공은 나이가 어리고 금예(琴藝)에 정통했다. 그 재능을 아깝게 여긴 태부 항공월이 진국공의 목숨을 살리고자 그에게 그림 한 폭을 주면서 우열왕을 만날 때 바치라 일렀다.
서화에도 정통한 진국공의 눈에 그 그림은 일개 길거리 화공의 솜씨에 불과했다. 그는 예술적으로 구성이며 정취가 하나도 없는 그림에 절로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항 태부는 이 그림이 하당 남회성에서 유랑하던 화가가 무심결에 길거리에서 포착한 실재 인물의 뒷모습을 그린 것으로, 세상이 아무리 넓다 할지라도 다시는 얻을 수 없는 그림이므로 분명히 진국공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진국공은 항 태부의 말에 따라 조정에 나가 그림을 바쳤고 마침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비록 모든 작위를 박탈당했지만 뜻밖에도 우열왕은 진국공의 여생을 담보하는 증표로 쌍월(双鉞)을 하사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진국공은 한없이 기뻐했다. 사람들이 대체 뭐가 그려져 있었느냐고 물어도 늘 입을 꾹 다물었다. 임종 직전에서야 그는 이 비밀을 자기 아들에게 말해 주었다. 그는 평생토록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서 졸렬한 필치의 그림에는 달빛 아래 길거리에서 손을 맞잡은 한 소년과 소녀가 그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우열왕이 그림을 얻은 날 밤, 시종들은 보았다. 처마 아래의 눈밭에서 긴 창을 짚은 채 밤새도록 말없이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 * *
[역사]
대섭 신무 3년의 어느 밤. 천계성 한 서점의 발이 젖혀졌다. 미소를 머금은 청년이 등불을 들고 있었다.
사롱(紗籠) 너머에서 금을 뜯는 사내는 고개를 들지 않았고 금 소리만 둥당 둥당 울렸다.
“깊은 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항 태부. 지금 북방에서 여 장군이 북도성을 함락하고 계속 북상하고 있다는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대군(大軍)이 가는 곳마다 모든 부락이 소문을 듣고 투항했으며 목민들도 말젖과 새끼 양을 바치며 환영한다 합니다.”
젊은 사내가 공손하게 문가를 지키고 서 있었다. 말을 전하는 시동(侍童) 같은 모습이었다.
금 소리가 그치고 사롱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북방은 어쨌든 표범의 고향으로 우리가 도모할 수 있는 곳이 아니잖은가.”
태부가 나직하게 탄식했다.
“대도호께서도 아는가?”
“아직입니다. 오늘밤 주상께서는 서문 박사의 처소에 남아 요양하신다 합니다. 듣기로는 두통이 재발하셨다는 것 같습니다.”
“알겠네.”
사롱 속 금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침식도 잊고 전장에서 심혈을 기울이는데도 천구 군단은 사상자가 심각합니다. 이제 겨우 동륙 국토의 절반을 얻었을 뿐이지요. 여 장군의 경기병은 가뿐하게 난관을 돌파하고 석 달 만에 한주 초원의 영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들인 노력이 비교가 되지 않지요. 태부께서는 이에 어떤 고견이 있으신지요?”
젊은 사내는 물러가지 않고 물었다.
“사 태사는 뭘 묻고 싶은 겐가?”
태부의 목소리가 냉랭해졌다.
“태부께 영웅에 관한 일을 여쭙는 것입니다.”
“영웅에 관한 일? 물으면 또 무엇하겠는가. 사 태사의 일생에는 영웅의 기상이 없는 것을.”
“참된 이치를 듣고 깨우친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지요.”
“좋네. 내가 영웅이란 그저 미치광이일 뿐이라 말한다면 태사는 믿겠는가?”
살짝 어리둥절해하던 태사는 미소를 되찾고 대답했다.
“바다처럼 깊은 학식을 가진 태부의 말씀을 후학된 몸으로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조금만 설명을 보태 주시지요.”
“세상의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은 자유로이 대군(大軍)을 휘두르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를 부러워하지. 그러나 이 위대한 과업을 해내는 사람은 수십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라네. 왜겠는가?”
“아마도… 타고난 자질이 달라서는 아닐는지요?”
태부가 나직하게 웃으며 답했다.
“자질이야 다르겠지만 차이가 나면 또 얼마나 나겠는가? 무적의 무사란 힘으로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불과하네. 16국을 아우르는 책사도 실수하는 때가 있는 법이지. 무력과 지혜는 모두 근본이 아니네. 마지막에 영웅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라네. 왜 정상에 올라 천하를 굽어보려 하는지, 그 염원이 바로 그가 마음속에 지닌 천군만마를 대적할 힘이라네.”
“제가 무지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태사의 지혜라면 이미 이해했을 터. 그저 내 입으로 듣고 싶었던 게지?”
태부가 웃었다.
“주상의 염원은 무엇인지 감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말을 에둘러 하는 것을 보니 20년 전의 일을 묻고 싶은가 보군. 대도호께서 10만 장병을 통솔해 동륙을 질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염원 때문이 아니었네.”
태사부가 그윽하게 태사를 한 번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두려움이었지.”
“두려움요? 주상의 대군은 가는 곳마다 적을 무너뜨렸지요. 서넛의 반역 무리를 제외하고 사방에 굴복하지 않은 자가 없는데 어찌 태부께서는 두려움이라 말씀하십니까?”
“파죽지세로 적을 물리치고 천하가 굴복하면 두렵지 않은가? 많든 적든 모든 사람은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네. 보이지 않을 뿐이지. 모두가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그곳에 깊숙이 묻혀 있는 것뿐 사라지지는 않네. 사람의 마음에는 우물이 하나 있어. 우리는 무언가를 덮고 싶어서 계속 그 안에 한 층, 한 층 흙을 채우지. 감추고 싶은 그것은 귀매라네. 우리 마음속의 귀매. 그러나 직접 그것을 죽이지 않는 이상 감출 수는 없지. 안 그러면 밤마다 두텁게 쌓인 흙더미를 넘어 자네 눈앞에 떠오를 걸세.”
태부는 악기 줄을 퉁겼고 쟁쟁 소리가 울렸다.
“그것이 바로 두려움이라네. 우물 속 귀매 같은 것 말이네. 대도호, 태사는 물론 나조차도 예외일 수 없어.”
“주상의 우물 속 귀매는 또 무엇입니까?”
“귀매에 대해서는 묻는 것이 아니야.”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태사는 등의 심지를 비벼 불을 끄고 문밖으로 물러났다.